경기필 마스터피스 시리즈 VI 베를리오즈 환상교향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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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4월 14일 금요일 오후 7시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도대체 어떤 게 경기필의 참모습인가? 불과 며칠 사이에 마술이라도 부린 건가? 2주 전 서울시오페라단의 ‘마술피리’ 때와는 180도 아니 환골탈태란 사자성어도 모자랄 정도로 차원이 다른 수준의 연주력을 보여준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중배의 지휘로 경기필이 아니라 독일 중서부 지방의 관현악단 소리를 창출해 냈다. 오늘의 트롬본이 ‘마술피리’에서 음정이 엉망진창이었던 그 트롬본이란 말인가? 오늘의 호른이 ‘마술피리’에서 제대로 맞추지도 못했던 그 호른이었단 말인가?

베를리오즈의 ‘로마의 사육제’ 서곡은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주선율이 잉글리시 호른에 이어 목가적으로 나오더니 그걸 받은 비올라와 첼로의 중저음이 잉글리시 호른과 대조적으로 중후하게 제시되었다. 다채로운 음색으로 깔리면서 미리 오늘의 메인 이벤트인 ‘환상교향곡’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10분도 안되는 서곡 안에서 지중배는 악기들의 특성과 장점을 극대화하고 절묘하게 균형을 맞추었다.

에스메 콰르텟이 협연한 존 애덤스의 ‘완벽한 농담’은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3악장과 같은 리듬이 첼로의 트레몰로 배경에 팀파니로 나오며 시작했다. 현악4중주단이 솔리스트이지만 오케스트라 콘트라베이스 솔로 주자가 피치카토로 합류하면서 마치 현악5중주단이 협연하는 거 같은 형상을 띄웠다.

베토벤 7번 교향곡 3악장, 브람스 1번 교향곡 4악장 등 여러 유명 악곡들의 파편들이 콜라주로 나오는데 이런 여러 요소들의 혼종이요 존 애덤스 음악의 특징이며 전혀 예상치 못한 모티브들이 곡의 다른 성부와 계층과는 상관없이 불쑥 튀어나와(예를 들어 베토벤 교향곡 9번 2악장의 팀파니 리듬) 상반되고 이질적으로 결합된다.

이러면서 작은 세포로 쪼개지고 나누어지면서 베토벤 현악4중주가 역시나 존 애덤스 특유의 로드러너(Road Runner) 스타일로 변박과 리듬 분할이 되면서 돌진한다. 한국 초연이긴 했지만 전형적인 존 애덤스 스타일이라 별로 신선하지는 않고 도리어 미국식 유머 코드가 좀 안 맞았다. 필자에게는 차라리 볼프강 림의 ‘Fremde Szene’ 같은 ‘완벽한 농담’과는 비슷하지만 다른 독일식 해학과 상상이 더 가까울 듯.

경기필에 지중배가 스스로 선택한 곡답게 베를리오즈 ‘환상교향곡’은 암보였다. 1악장 서주 후 바이올린과 플루트의 유니슨으로 수줍게 주제를 드러나게 하더니 제너럴 파우제 다음의 사장조로 전조되어 플루트와 바순 유니슨으로 나올 때는 완급 조절을 하는 게 일품이었다.

2악장 무도회 왈츠 전의 하프 2대 솔로는 인터미션 때 홀로 쉬지 않고 불 꺼진 무대에서 열심히 연습하던 하피스트들에게 보람이 있었을 듯할 정도로 황홀했고, 마지막의 클라리넷 솔로로 자연스레 전원의 풍경으로 넘어갔다.

3악장 오보에의 메아리와 공명을 살린 공감각적 구성은 획기적이었다. 현의 섬세한 피치카토에 맞춘 강약의 폭이 두드러졌던 클라리넷의 솔로와 함께 지중배는 듣고만 있어도 스토리가 눈앞에 척척 그려지게 만드는 마술사였다.

특히나 3악장 마지막의 앞으로 다가올 폭풍우가 몰아치는 팀파니 연출은 미장센의 극치로 여기에 다시 잉글리시 호른이 가미되면서 불길함을 더했다. 그리고 단두대의 4악장, 트럼펫의 저음은 지극히 음울하며 환상교향곡 내내 진한 밀도를 보여주었던 첼로와 콘트라베이스 조합이 만개하여 짙은 어둠으로 모든 걸 덮어버렸다.

5악장의 묵직한 튜바의 ‘진노의 날’ 모티브에 현들의 일사불란한 꼴 레뇨 바투타는 탄력이 넘쳤다. 지중배는 공간을 비워주지 않고 일부러 한 발자국 앞으로 당겨 지금까지 나온 모든 음악적 요소들을 다닥다닥 붙이면서 베를리오즈가 품었던 환상교향곡의 이상을 미장센의 극치로 이루었다. 전체적으로 환상교향곡은 지중배와 경기필하모닉만의 오케스트라 사운드로 독일식 베를리오즈 사운드라 창연했던 열연이었다.

믿을 수가 없구나! 믿을 수가 없어! 이 오케스트라가 정말 ‘마술피리’를 했던 그 경기필이 맞는다는 말인가? 도무지 모르겠다. 어떤 게 진짜인지 몰라, 몰라, 몰라!

評 성용원(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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