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의 합창교향곡은 종교 편향 아닌 보편적 인류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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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 은혜는 불교음악인데

군대에 입대한 아들의 논산 신병훈련 수료식에 참석했다. 5주 동안 훈련을 마쳤기에 체중이 좀 줄었나 싶었는데 ‘웬걸’이다. 여전한 듯하다. 그래도 약해 보이기만 했던 아들이 제법 제식에 맞춰 입장하는 모습이 늠름해 보였다. 이러저러한 순서가 진행되고 양주동 시인의 가사에 이흥렬 작곡가가 지은 ‘어머님 은혜’가 흘러나왔다. 신병 유격훈련 중 머리를 꼬라박고 360도 회전하면서 저 노래를 불렀을 때가 떠올랐다. 전 부대원이 그야말로 폭포 같은 눈물을 쏟으며 노래 부르지 않았던가. 그러나 아들이 부르는 어머님 은혜에는 그런 감동이 없어 보였다. 속으로야 끄억끄억할 지 모르지만. 누구 하나 눈에 이슬이 맺히지 않는다. 그저 무덤덤할 뿐이다.

저 노래, ‘어머님 은혜’란 대체 무슨 노래일까? 이번 사찰음악회 콘텐츠를 기획하면서 처음 알게 되었는데, 불심이 강한 양주동의 불교가곡 ‘어머니의 마음’이 대중화된 곡이다. 지금 부대원들이 불교가곡을 부르고 있으니 이는 불교 종교 편향적인 곡을 전 부대원들이 부르고 있는 셈이다. 기독교 신자라면 저 노래를 거부해야 한다. 찬불가를 기독교인들이 노래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어디 이뿐이랴. 홍난파의 ‘장안사’ ‘성불사의 밤’, 조두남의 ‘선구자’, 장일남의 ‘기다리는 마음’, 이수인의 ‘석굴암’, 김용호의 ‘승무’ 등도 모두 불교노래이니 기독교인들이라면 거부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비록 종교와 관련된 노래라 해도 이미 일반곡으로 정착돼 있기 때문이다. 이 곡을 쓰게 된 동기나, 그 가사에 담긴 의미가 알고 보니 불교더라 하고 따지지 않는다.

베토벤이 종교 편향이라는 희한한 사고방식

그런데 참으로 희한한 일이 대한민국에서 벌어졌다. 늘 ‘역동적인’ 대한민국은 참으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정신이상자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아 놀라울 것도 없지만 그래도 이번 문제에 잠잠해서는 안 될 일이다. 대구시립예술단이 베토벤의 대표 교향곡인 9번 ‘합창’을 공연하지 못하게 됐기 때문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대구시 조례로 운영하는 종교화합심의위원회에서 가사 중에 ‘신’이라는 단어가 들어갔다는 이유로 ‘연주 불가’ 판정을 내린 것이다. 종교화합은커녕 없는 종교도 억지로 끄집어 내어 종교 편향을 불 지른 판정이라고 할 수 있다.
수성아트피아는 재개관을 앞두고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다. 낡은 시설과 설비를 교체하고 1년 넉 달 만에 새로운 모습으로 탄생하는데 재개관에 맞춰 시립예술단이 오랜 기간 동안 공연준비를 해오던 차에 커다란 암초를 만났다. ‘영웅’ ‘운명’과 더불어 베토벤 3대 교향곡으로 꼽히는 곡인데 종교화합심의위원회가 ‘신’이라는 단어가 들어갔다며 종교 편향을 이유로 부결시킨 것이다. 만장일치가 아니면 부결되는데 9명 위원 가운데 유독 한 명이 부결했다는 것이다. 음악계 논객은 물론 시민들도 황당한 결정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방성택 대구음악협회장은 “예술을 종교로 접근을 하면 할 수 있는 게 없다. 예컨대 국악, 오페라 등 거의 대부분이 종교와 관련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일균 대구시의원도 “종교 편향성 때문에 합창교향곡 공연 무산은 어불성설이다. 만장일치 제도에 큰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조례를 개정해서 좀 더 유연하게 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만장일치라는 비민주적인 조항 때문에 베토벤 같은 세계적인 거장들의 곡을 연주하지 못하는 웃지 못할 코미디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슬람국가에서도 북한에서도 연주되는 교향곡

그러면 기독교를 싫어하는 이슬람 국가에서는 베토벤 합창교향곡을 연주하면 안되는 것 아닐까? 천만의 말씀이다. UAE나 카타르 등 세속적이기는 하지만 이슬람 국가에서는 베토벤의 합창교향곡을 자주 공연하고 심지어 극단주의인 이란의 테헤란심포니오세트라도 전세계인들을 위로하기 위해 히잡을 쓴 채 온라인으로 합창을 연주하는 일도 있었다. 수니파의 종주국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도 합창교향곡은 단골 레퍼토리이다. 지난 2022년 수도 리야드에서 합창교향곡을 연주하는 영상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종교 자체를 인정하지 않은 북한에서도 합창교향곡을 연주한다. 극악무도한 히틀러 정권이 독일 국민들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합창교향곡을 이용하거나 일본이 제국주의 시절 국민들을 결속시킬 의도로 연주하기도 했지만 어떤 식으로든 베토벤의 합창교향곡은 인류의 음악임이 분명하다.

기독교문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을 연주하기 싫다면 그걸 방해할 게 아니라 본인의 종교와 관련된 작품을 창작, 보급하는 게 민주주의에 합당한 자세가 아닐까?

몇 년 전에도 국립합창단이 메시아를 부른다며 트집을 잡던 일이 있었다. 한심한 작태들이다. 일부 불교광신도들이 세상 물정 모르는 스님들을 부추겨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립에서 왜 이런 종교 음악을 노래하냐며 따질 게 아니라 찬불가를 대승적으로 개발하든, 우리가곡에 널려있는 수많은 불교가곡을 찾아 무대화하는 노력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말이다.

글 발행인 김종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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