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체된 오페라에 트리거 가능성, 현대화된 ‘돈 조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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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제일 많이 공연되는 오페라 중에 하나인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가 제14회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 참가작으로 공연되어 관객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돈 조반니’는 모차르트의 오페라 중 ‘다 폰테 3부작’으로 불리는 ‘피가로의 결혼’ ‘돈 조반니’ ‘코지 판 투테’의 하나로 풍자적이고 코믹한 ‘로렌초 다 폰테’의 대본에 모차르트의 아름다운 음악이 결합되어 현재까지도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정통 오페라 중 하나이다.
서울오페라앙상블(예술감독 장수동)의 ‘돈 조반니’는 번안수준을 넘어 재창작되면서 많은 부분이 원작과 달라졌는데, 향후 K-오페라의 방향을 가늠해본다는 의미에서 그 중요성이 있다고 하겠다.
모차르트의 정통 오페라와 장수동 감독의 현대화된 재창작된 작품을 비교해 보면서 다음 공연에 반영하면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품을 판다.

첫째, 정통오페라를 모국어 대사로 바꾼 도전을 주시해 보자

이탈리아어와 독일어로 공연하는 정통 오페라에 비해 현대화된 오페라는 아리아와 앙상블 등 노래는 원작인 이탈리아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오페라 대사인 레치타티보는 한국어 대사로 개사했을 뿐만 아니라, “서울이면 미투감이야” “ 라면 먹으며 넷플릭스 보자” 등 시류를 반영한 코믹하고 감각적인 대사들로 부파 오페라에 가까운 ‘돈 조반니’ 오페라의 희극성을 극대화 시켰다.

장점 : 이탈리어가 아닌 모국어로 듣는 레치타티보는 관객들에게 즉시적인 공감을 일으킨다. 특히 희극의 경우 모국어 개사에 대한 필요성을 알게 해 준 공연이었다.

단점 : 모국어 레치타티보가 관객들에게는 유리한 변화인 것 같지만, 노래와 앙상블은 이탈리어로 해야 하고, 레치타티보는 한국어로 빠르게 전환해야 하는 출연자들에게는 어려운 일일 것 같다. 특히 대사전달에 익숙하지 않은 몇몇 출연자들의 신파조 대사전달은 극의 성격과 품격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또한 레치타티보에서는 K-도시로 언급하면서, 영상에 나오는 이탈리어 번역에서는 원작품대로 스페인 세비아로 나오는 통에 관객들에게 혼란을 가져오기도 했다.

둘째, 주인공의 신분과 캐릭터 변화를 살펴보면, 원곡에서 돈 조반니는 중세 스페인 세비아의 절대 권력자이자 천부재력가인 젊은 귀족이다. 현대극에서는 가상화폐와 마약밀매로 떼돈을 번 자수성가형 어둠의 권력자이다.

장점 : 현대극의 돈 조반니의 절대권력은 돈에서 나온다. 소품으로 뿌려지는 금화와 마약, 양아치 같은 행동과 의상, 악당 같지 않은 귀여운 연기는 마치 코믹 르와르 장르영화처럼 친근하고 희극적 장르를 강화시켰다.

단점 : 정통극의 ‘돈 조반니’의 절대권력은 태어난 운명자체에서 나온다. 모차르트 원작에서는 그리스비극의 주인공처럼 돈 조반니를 왕족에 버금가는 절대권력자로 그렸는데 그 이유는 그리스비극에서 주인공들은 왕족이나 영웅, 귀족처럼 평민들이 ‘선망’하는 신분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관객들은 자신들이 선망하는 왕족과 귀족들의 사생활을 훔쳐보고, 대리만족을 느끼며, 하늘로부터 축복만 받은 것 같은 그들도 사실은 신탁에 의한 운명의 수레바퀴를 피할 수 없으며, 고난을 겪으면서 성장하는 영웅적인 주인공의 모습에 동일시•투사를 통해 공감과 교훈과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그리스비극에 훈련되어 있다. 이는 그리스비극 공연에서부터 시작되어 오늘 날 드라마까지 수천 년 동안 검증된 공연전략 중 하나이다. 모차르트는 그리스 비극의 주인공 高신분 전략을 따랐고, 현대극의 돈 조반니는 低신분으로 원작의 공연전략을 따르지 않으므로 그리스비극에서의 교훈과 카타르시스 부분이 원작에 비해서 약하게 느껴졌다.

셋째, 미투 프레임과 돈 조반니의 현대적 세계관에 관한 관점이다. 미투운동을 했던 사람으로서 비교적 예민한 문제지만 모차르트는 원작에서 스페인에서 광범위하게 퍼진 ‘돈 주앙’ 전설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18세기의 쾌락주의와 자유방임 시대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모차르트는 사회지도층이 자기 쾌락에 빠져 평민의 고통을 외면하는 자들을 비판하는 계몽주의자들의 관점에 서고 있다. 결과적으로 모차르트는, 귀족들의 막강한 권력의 힘으로 인해 농노봉기는 실패하고, 결국 ‘돈 주앙’의 전설에서처럼 ‘돈 조반니’ 역시 신의 심판을 받아 지옥 불에 떨어지게 한다. 권선징악은 오페라 부파와 잘 어울리고, 오페라 부파의 성공은 오페라가 궁정예술을 넘어 대중적 확산과 극장의 상업화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장점 : 현대로 치환한 ‘돈 조반니’는 모차르트와 유사한 계몽주의 관점에서 희극적 요소를 극대한 점이 있다. 이는 ‘돈 조반니’가 유아적 관점에서 여성의 몸이나 황금, 음식 등 유아적 수준의 쾌락주의에 빠진 본성적인 인간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랑을 하지 않고 여성을 가학하고 죽이는 돈 주앙과 달리, ‘돈 조반니’는 여성과 사랑에 빠지고 사랑을 갈구하는 입장에서 애정결핍적인 모습을 보이므로 악인임에도 동정심을 느끼게 되고 태도들도 귀엽게 느끼게 했다.

단점 : 돈 조반니는 다양한 인물들과 캐릭터들이 등장하고, 예술감독과 관객들의 가치관에 따라 다양한 해석을 낼 수 있는 유연성이 큰 작품이다. 공연에 따라 희대의 난봉꾼으로 그려내거나 혹은 ‘돈 조반니’를 금기를 뛰어넘는 진취성으로 표현한다거나, 가학적 쾌락주의로 자극적으로 표현할 수도 있는 작품이다. 만일 장수동 예술감독이 정통적인 작품을 현대화하려는 의사가 있다면 ‘돈 조반니’의 성적 가학성은 그대로 둔 채, 단지 캐릭터의 신분이나 코믹성의 변화만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성(性)을 중심으로 미투 이후 MZ세대들이 느끼는 가치관과 세계관의 변화, 성적 자기결정권을 잃었으나 ‘돈 조반니’를 구원해 줄 여신처럼 등장하는 ‘돈나 안나’를 주인공으로 하는 전환, 여성의 미를 본능적으로 갈구하는 예술인으로서 ‘돈 조반니’ 등 다양한 상상으로 작품의 세계관 자체를 현대화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자유인과 악인 사이의 경계에 있는 ‘돈 조반니’ 보다는 주인공의 신분을 처음부터 악한으로 상정한 것에 대한 아쉬움, 육체적인 아름다움과 재치있고 강한 남자, 매너있고 멋쟁이인 ‘돈 조반니’가 사랑과 삶을 찬미하는 모습도 다음에는 그려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돈나 안나’ 아버지이자 석상은 과거의 규범과 관습들을 상징하는데 자유로운 영혼인 ‘돈 조반니’는 과거의 규범이었던 기사장을 결투를 통해 살해하지만, 바로 과거의 규범인 석상에 의해서 자유로운 영혼인 ‘돈 조반니’는 지옥불에 떨어진다. 권선징악이라는 이름으로 자유로운 정신의 상징인 ‘돈 조반니’가 굴복당한 것이다. 규범에 반대하며 개인의 자유를 추구했던 시대를 앞서갔던 천재들이 억울하게 죽어 패자의 역사가 된 ‘돈 조반니’와 ‘돈 주앙’을 함께 주인공으로 해서 역사 비틀기 ‘돈 조반니’도 재미있을 것 같다.

‘돈 조반니’만 보더라도 모차르트가 몇 세기를 뛰어넘는 천재라는 것을 느낄 것이다. 제14회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에 참가한 ‘돈 조반니’를 통해 관객들이 천재 모차르트의 진정한 모습을 만날 수 있었고, 계속 진화하고 있는 서울오페라앙상블의 ‘돈 조반니’를 통해 대중들은 좀 더 쉽게 오페라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돈 조반니’는 예술단들의 노력에 의해서 모차르트 같은 천재음악가들의 음악을 훼손 없이 즐기면서 동시에 잠재적인 오페라 관객과 애호가들을 극장으로 불러들이는 트리거로서도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준 계기가 되었다.
다음 ‘돈 조반니’는 어떤 세계관으로 재창작되어 등장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글 남정숙 (문화예술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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