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없는 삶, 상상할 수 없어 피아니스트 김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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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아트센터 광복절특집음악회
지휘자 장윤성의 지휘, 그리그 피아노 협주곡

부천아트센터의 실내에서 풍기는 싱그러운 외장재 내음새는 이 극장이야말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최근에 개관했음을 자랑하는 듯하다. 그렇게 개관의 분위기가 채 가라앉기 전에 새로운 협연자를 맞이하는 것은 여간 까다롭지 않다. 부천아트센터가 어떤 홀인지 세상에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연주자를 쉽게 선택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런 까닭에 노련한 연주자에게 자리를 내주기 마련이다.

오는 8월 18일 오후 7시 30분에 개최되는 광복절 특집콘서트에 새로운 피아니스트가 협연자로 나선다. 지휘자 장윤성의 지휘로 펼쳐지는 이번 연주회에서 그리그의 피아노 협주곡(E. Grieg Piano Concerto in a minor Op.16)으로 부천 시민들을 맞이할 피아니스트는 누구일까? 젊은 피아니스트 김다혜다.

특히 8월에 이번 공연은 광복절을 기념하는 의미로 민족적 색채가 짙은 작곡가들의 작품을 소개한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작곡가 베르디로 시작해 노르웨이의 그리그, 체코의 스메타나, 핀란드의 시벨리우스, 헝가리의 코다이, 바르톡 등 저마다 고유한 민족의 모습과 정서로 그들의 조국을 그린다. 민족적인 색채를 잘 표현하기 위해서는 작곡가가 표현하고자 했던 섬세한 감정에 집중해야 한다. 작곡가에 대한 연구에 심혈 기울이는 그에게 이번 공연은 김다혜가 선보이는 협주곡은 이전에 선보였던 자신의 곡보다 훨씬 원숙하게 연주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그가 독일에서 유학 생활을 하면서 슈만과 리스트에게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슈만의 협주곡과 조성도 같고 후대에는 두 작품이 많이 비교되어 연주되기도 합니다.”

김다혜는 지극히 낙천적이다. 음악에 관한 한 어떤 제안을 했을 때 ‘못할 것 같다’는 생각보다는 마치 모차르트의 가벼운 낙천(樂天)처럼 웃으면서 달려드는 편이다.

“그런 편이에요. 유학시절을 포함해 그동안 수많은 콘체르토 오디션에 도전해보았습니다. 베토벤의 피아노협주곡 황제(Beethoven, Piano Concerto No. 5 in E-flat Major, Op. 73 ‘Emperor’),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4번(Mozart, Piano Concerto No.24 in C Minor, K.491), 브람스의 작품도 모두 레퍼토리로 만들면서 각각의 작품을 통해 배울 점이 너무 많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모차르트를 연주할 때는 모차르트 특유의 가벼움과 우아하고 고풍스러운 매력에 빠지는가 하면, 베토벤 작품을 연주할 때는 인간적인 정신의 어떤 숭고함을 깨닫습니다. 그런 정신적 동질감을 체험하고 온전히 하나가 되지 못하면 진짜 음악이 나오지 않거든요.”


피아노는 동반자요 위로자

작곡가마다 성격별로 작품에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면 연주자들은 피아노 연주를 통해 자신의 마음도 컨트롤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모든 경우 그렇지는 않지만 대체로 그런 편이라는 게 김다혜의 답변이다. 마음이 억눌리고 답답할 때 라흐마니노프의 작품을 격정적으로 연주하면 엉킨 마음의 타래가 풀리고 위안받는 느낌을 받는다. 삶의 속도에 조금 브레이크를 걸고 싶을 때는 브람스의 곡을 연주한다. 안개같은 우중충한 분위기에 휩싸이기도 하지만 연주하다 보면 종지 만한 마음이 커다란 호수처럼 확장되는 기분에 사로잡힌다. 얼마나 멋진 피아니즘인가.

“저는 아직 어리지만 그래도 열심히 살아왔잖아요. 그동안 적지 않은 일들을 겪는 것 같아요. 기쁘고 행복한 상태에서도 우울한 음악을 연주하면 금세 작곡가의 세계로 몰입할 수 있거든요. 그건 경험 때문인 것 같습니다. 우울했던 경험이 연주를 할 때 소환되면서 자연스럽게 공감되거든요. 만약 삶 속에서 그런 경험이 없었다면 작곡가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냥 손가락 흉내만 냈겠죠. 저보다 나이가 많으신 분들, 인생 행로에서 온갖 시련을 겪은 분들의 음악은 그래서 달리 들립니다. 그 분위기에 푹 빠져서 절로 우러나오는 음악, 저도 빨리 그런 농익고 성숙한 연주를 하고 싶습니다.”

김다혜는 연주자가 먼저 작곡가와 깊은 교감을 가질 때에야 청중들과도 소통할 수 있다고 말한다. 특정 곡을 작곡할 때 작곡가 역시 이런 감정의 폭포수 아래 곡을 써 내려갔구나 하는 경지에 도달해야 하는데, 그게 생각만큼 쉽지 않다고 말한다. 거트루트 스타인은 ‘예술이란 날마다 오는 기적’이라고 했다. 일상을 통해 마주치는 접신(接神)의 경지를 표현하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나 ‘일상이 주는 이미지는 쉬우나 ‘기적’이란 어디 그리 쉽게 등장할까? 그만큼 어렵다는 의미다.

“맞아요.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제가 만난 대가들도 때로는 심적으로 힘들거나 뜻대로 일이 되지 않을 때 연주를 망치는 경우가 참 많거든요. 접신의 경지로 자신의 감정을 끌어 올리는 것도 어렵지만, 겨우 도달해도 유지하는 것 역시 쉽지 않은 거예요. 연주자가 그 음악에 공감하고 사랑한다고 해도 그 음악 자체는 결국 작곡가의 영혼이니까요. 어떻게 보면 타인을 이해해야 하는 입장이거든요. 비슷한 감정을 느낄 때도 있지만 마에스트로적인 수준까지 승화하려면 저 역시 정신적으로 성숙해야 하고, 공부도 정말 많이 해야 합니다.”

김다혜의 연주를 쭉 지켜본 많은 지인들은 김다혜의 성향상, 베토벤의 음악에 최적이라고 말한다. 파워 넘치는 타건 때문일까? 스스로도 라흐마니노프나 브람스의 피아노를 사랑하기도 하지만 중력을 거스르는 파워와 속주(速奏)를 보고 유학시절 스승들도 ‘김다혜 하면 베토벤’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모차르트를 연주할 때는 모차르트 특유의 가벼움과 우아하고 고풍스러운 매력에 빠지는가 하면, 베토벤 작품을 연주할 때는 인간적인 정신의 어떤 숭고함을 깨닫습니다. 그런 정신적 동질감을 체험하고 온전히 하나가 되지 못하면 진짜 음악이 나오지 않거든요.

한국과 잘츠부르그와 하노버, 문화적 차이를 낙천으로 소화

어떤 이에게는 고국을 떠나 먼 타지에서 공부하는 게 굉장한 스트레스로 와닿을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일에 낙천적인 김다혜는 오히려 유학생활을 통해 다양한 감정을 경험하고 무엇이든 불가능은 없다는 성격이 강화되었다고 말한다.

“예원을 졸업하고 바로 유학으로 떠났거든요. 제가 살던 문화와 전혀 다른 오스트리아 잘츠부르그와 비엔나 등 한정된 테리토리 안에서 지냈어요. 한정된 생활양식 때문에 좀 답답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어요. 오히려 너무 이른 시기에 유학을 가서 그런지 무엇이든 호기심을 자극했고 새로운 것들이라면 무조건 즐거운 마음으로 흡수했거든요. 유럽 특유의 자연과 경치는 늘 설렘의 대상이었고 당시 한국에서는 좀처럼 찾기 어려운 대형 미술관과 역사박물관, 오래된 건축물 등을 접하면서 위대한 작곡가들의 작품에 대한 영감을 많이 받았습니다.”

김다혜는 잘츠부르크를 살면서도 곧잘 비엔나를 찾았다. 모차르트와 베토벤 등 위대한 음악가들의 흔적을 따라 보이지 않은 음악가의 혼을 따라 어디서나 동행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자연과 환경이 주는 영향 때문에 유학생활이 늘 행복했던 것은 아니었다. 존 러스킨은 세상에 나쁜 날씨는 없고 서로 다른 종류의 좋은 날씨만 있을 뿐이라고 했다. 유학생활 14년 동안 처음 만나 인생을 가이드해주었던 정든 사람이 곁을 떠날 때는 아무리 햇빛이 달콤하고 바람이 시원하다 해도 우울할 뿐이었다. 김다혜에게 유학에서 만난 대가이자, 마음 좋은 할아버지 ‘칼 하인즈 캠머링’(Karl Heinz Kämmerling)이 작고했을 때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 중 가장 슬프기만 했다.

“나중에 루비에 선생님에게 피아노를 배웠지만 캠머링 선생님이 중간에 돌아가셔서 심적으로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하노버에서 유학을 할 때는 아기자기 하고 예쁜 잘츠부르그와는 달리 날씨가 늘 우중충한 편이거든요. 어린 시절부터 오스트리아 분위기에 익숙했기 때문에 더욱 힘들었던 것 같아요. 모던하지 않으면서 유물처럼 칙칙한 도시 분위기와 학교도 인간적 교감보다는 딱딱한 군대 같은 느낌도 들었고요. 물론 그런 도시를 좋아하는 분들은 고향처럼 생각하는 분들도 많지만요.”

그러나 천만 다행이다. 그런 하노버에서 석사과정을 마치기까지 불과 2년 밖에 안 걸렸다.

잘츠부르그 모차르테움 국립음대 최연소 입학하기까지

김다혜는 왜 그토록 어린 나이에 사고무친의 유학길에 올랐을까? 어린 나이에 유학을 떠나겠다는 당찬 목표를 갖고 있었던 아닐테고… 맞았다. 친구따라 강남간 게 그만 유학지가 돼 버렸다. 예원 3학년 때 평소 알고 지내던 선배가 캠머링 교수의 캠프를 소개해주었다. 모차르트 작품에 한창 심취해 있을 때 캠머링 교수에게 배울 수 있다면 오디션을 보겠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오스트리아로 향했다. 물론 부모의 동의가 있었다.

“오디션에서 캠머링 교수님은 단박에 더 공부하자고 제안했습니다. 물론 시험을 통과해야 하지만 저의 피아노 연주를 듣고 먼저 제안한 것이에요. 저에게 오디션을 추천해준 선배도 캠머링 교수의 제자였고요.”

그렇게 14년에 유학을 시작해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국립음대에 최연소 입학했다. 그의 음악적 기초를 더욱 탄탄하게 해준 칼 하인츠 캠머링(Karl Heinz Kämmerling)을 계속 사사, 만장일치 최고점수로 졸업했다. 이후 독일 하노버 국립음대에서 석사과정을 마치고, 다시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국립음대로 돌아와 Master’s Course for Soloist 과정과 Postgraduate에서 쟈크 루비에 교수(Jacques Rouvier)를 사사, 이번 역시 만장일치 최고점수로 취득했다.

김다혜에게 그 오랫동안 배워온 피아노의 레슨 스킬이 한국에서는 왜 잘 통하지 않는지 물었다. 우선 한국에서 예원과 한국예술종합학교 예비학교에서 배울 때와 유럽 유학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 궁금했다.

“많이 달랐어요. 이미 대학생이 되었거나 대학 입시를 앞두고 유학온 한국 친구들은 유럽 아이들과 여러모로 차이가 있었습니다. 유럽 학생들은 화성적으로 어느 화성을, 어떻게 느껴야 하며, 어떻게 표현되어야 하는지 ‘빠삭하게’ 배우는 게 기본입니다. 반면 우리는 주로 기교 위주로 익히는 게 사실입니다. 그중 음악적으로 남다른 감수성을 가진 친구는 금세 적응하고 따라오긴 해요. 어쨌든 유럽은 화성 위주의 음악적 표현을 위해 굉장히 많은 공부를 합니다. 어떤 선율이 있다면 단순히 버티컬 하게 연주하는 게 아니라 어디서 아고긱(agogics)을 줘야 하고, 프레이즈의 시작이 어디며 클라이막스가 어디며, 어디서 끝맺음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밸런스에 대해서 훤하게 배우거든요. 어느 성부를 숨겨야 하고 밸런스는 어떻게 맞춰야 하는지 또 곡의 원천은 어디인지도 중요하고요. 프레이즈를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봐야 하는지도 굉장히 중요하잖아요. 우리 레슨현장에서는 그렇게 배울 기회가 많지 않은 것 같아요.”

김다혜는 이미 서양음악 본고장에서는 이런 기본기가 어릴 때부터 차근차근 다져지지만 우리는 주로 대학에 와서야 조금씩 배우기 시작하기 때문에 그만큼 늦은 감이 있다고 안타까워한다. 이해는 한다. 모든 교수들이 그렇게 가르치지는 않지만, 우선 당장 한국 입시가 원하는 기교에 충실해야만 입시에 먹히는 까닭이다. 여기에 시대변화도 한몫한다고 말한다. 유튜브 등 미디어 위주의 영상물이 활발해지면서 작은 실수도 쉽게 노출되기 때문에 틀리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 또한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에전에는 그나마 음악적으로 접근하려는 노력은 있었지만 유튜브나 영상 SNS가 유행하면서 더욱 스킬에 포커스를 두는 경향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음악적으로 보려는 근본 정신은 여전히 살아있다고 생각합니다.”


캠머링 교수와 자크 루비에 교수가 가르쳐준 음악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음악적으로 클래식 작품을 바라보려는 김다혜의 관점은 여전히 탄탄하다. 그런 시각을 확고부동하게 만든 스승으로 역시 캠머링 교수와 자크 루비에 교수를 꼽는다.

“제가 피아노를 공부하면서도 제 스스로가 얼마나 음악을 좋아하는지 몰랐어요. 피아노를 그래도 좀 칠 줄 아는 아이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캠머링 선생님을 만나면서부터 음악을 어떻게 표현해야 청중이 공감하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자크 루비에(Jacques Rouvier) 선생님은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엘린 그리모(Helene Grimaud)와 볼로도스(Arcadi Volodos), 다비드 프레이(David Fray) 등을 가르친 대가이십니다. 캠머링 선생님은 교육자로서 음악에 공감하도록 하는 스킬을 세심하게 가르쳐주었다면 루비에 선생님은 소리가 더 풍부하고 테크닉적으로 편안히 칠 수 있도록 거시적인 시각으로 가르치면서도 손끝으로 텐션을 어떻게 자유자재로 활용하는지 등의 스킬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이런 배움이 작곡가마다 가진 특유의 표현법, 그 미묘하면서도 세밀한 차이를 발견하게 했습니다. 또 시대에 맞게 연주하는 통시적 시각도 배울 수 있었고요. 베토벤을 라흐마니노프처럼 칠 수는 없다는 의미인거죠.”

그래서일까?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2번 연주에서 남성 피아니스트 못지 않을 만큼 폭넓은 스케일로 완주하는 김다혜의 피아니즘에 적이 감탄한 적이 있다. 그의 음악은 파워풀함이 끝이 아니었다. 오히려 세미한 소리에 신의 뜻이 담겨있다는 성경 말씀처럼 슈만의 ‘어린이 정경’과 같은 곡에서도 큰 감동을 준다.

“슈만의 어린이 정경(Schumann, Kinderszenen Op.15)은 정말 너무 좋은 곡이죠. 저도 연습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저는 아직 나이가 어리지만 호로비츠(Vladimir Horowitz)의 비엔나와 모스크바 연주회를 볼 때면 언제나 감정이 금세 이입되어 눈물이 흐르곤 해요. 아마 피아니스트라면 누구나 그럴 거예요. 그분의 연주는 레전드입니다. 예컨대 예브게니 키신이 연주하는 것과 호르비츠가 연주하는 걸 비교해보세요. 그냥 완전히 다른 세상이에요. 라흐마니노프, 스크리아빈과 같은 광대한 곡을 치시던 분이 그런 아기자기하고 미세한 감수성을 자극하는 연주를 할 때면 경외심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언젠가 독주회를 한다면 라흐마니노프의 ‘소나타 1번’과 드뷔시의 ‘영상’ 등과 함께 슈만의 어린이 정경을 꼭 넣고 싶답니다.”

김다혜는 내면의 흐름을 드러내는 연주에 대해 이야기가 흐르자, 특히 베토벤의 마지막 소나타 32번을 언급한다. 2악장이야말로 내면적으로 우러나오지 않으면, 숭고함을 담지 않으면 나오지 않는 음악이다. 김다혜는 최고의 연주자로 알프레도 브렌델(Alfred Brendel)을 꼽으며 그의 음악을 토대로 자신 또한 치열하고 내밀하게 공부해왔다고 고백한다.

“특히 그리그 협연 오디션에서 칭찬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 오디션을 통과해야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하게 됩니다. 쇼팽 에튀드 전곡도 했습니다. 전곡 중 즉석에서 대여섯 곡을 뽑아서 연주하는데 그때 1등을 차지했어요. 뿐만 아니라 유럽에서 했던 모든 협연은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지난해 11월 마에스트로 장윤성 선생님과 협연했던 브람스 협주곡 1번을 오스트리아에서 연주한 적 있는데 청중들의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힘들 때 시간을 바라보자,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는 지혜

김다혜는 환경이나 인간적인 관계 문화적인 차이 등으로 인한 심리적인 위축이나 우울보다 뜻대로 피아노 연주가 되지 않을 때 무척 속상해한다. 그러나 오랜 유학생활에서 터득한 게 있다. 힘들 때 ‘시간을 바라보자’는 것이다. 어떤 고통도 즉시 극복되는 것은 없으며, 시간의 열차를 타야만 벗어나야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다고 그냥 시간만 멍하니 바라보는 것은 어리석다고 생각해요. 실수한 것 때문에 피아노를 두려워하기보다 그래도 계속 연주하면 조금씩 다시 무대에 익숙해지거든요. 연주자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호로비츠도 10년 동안 피아노를 떠난 적도 있고요. 도밍고(Plácido Domingo)의 경우 어떤 경우에도 매일 노래하고 무대에 서야만 오히려 스트레스가 풀리는 성격인데 반해 클라이버의 경우 전혀 반대거든요. 본인은 어려울 때면 가능한 한 연주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답니다. 오죽하면 카라얀(Herbert von Karajan)이 ‘냉장고가 빌 때마다 연주하는 사람’이라고 얘기했겠어요. 집 안에 냉장고가 비거나 돈이 필요할 때 어쩔 수 없이 연주했던 사람이라는 뜻이에요. 그래서 클라이버 음반이 그렇게 많지 않잖아요. 카라얀에 비해서…”

김다혜는 처음부터 힘든 일은 시간이 해결해준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은 아니다. 처음 유학을 왔을 때 스킬은 물론 오스트리아의 음악적 특징을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 한국에서 배웠던 것과 너무 달랐기에 쭟기듯이 공부했고 어느 지점에서 풀리지 않으면 연습하면 할수록 쳇바퀴 돌듯 반복될 뿐이었다.

“그게 틀린 내용을 생각하면 할수록 더 깊은 수렁에 빠지는 것 같아요. 반복이 되는 연주가 아니라 되도록 표현을 하려고 하고, 마음을 열어서 연주를 하려고 하고요. 그 부분에 있어서는 심리적으로 무장을 해야 하는 것 같아요. 피아노라는 악기가 경쟁자가 굉장히 많다보니 ‘아주 잘 해야 돼’와 같은 강박감에 빠지기 쉬운 것 같아요. 누구를 제압해야 하고, 이기는 게 목적이 되면 스스로가 굉장히 힘든 것 같아요. 피아노 연주를 통해 사람들에게 숨은 의미와 메시지를 전달하고, 청중과 공감하고, 작곡가의 생각을 전달하는 데 목적을 두면 좋지 않을까요? 흔히 ‘연주하는 순간에는 내가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는 그런 얘기가 있잖아요. 그러니까 음악에 완전히 빠져서 무아지경 상태로 연주해야 듣는 이들도 푹 빠지게 되거든요.”

김다혜는 음악은 머리로 연주하는 게 아니라 머리에서 벗어나야 가능하다고 말한다. 물론 쉽지 않다. 연주경험도 풍부해야 하고, 작곡가에 대한 깊은 탐색이 전제되어야 한다. 당장의 음악만 듣는 게 아니라 피아노 외에 다양한 종류의 악기도 감상해야 한다.

“작곡가의 피아노 음악뿐만 아니라 다른 악기의 음악도 꾸준히 감상해야 그 작곡가의 성향에 대해서 더 크게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또 피아노라고 해서 건반만 두드리는 게 아니라 레가토 스킬과 현악기의 보잉도 표현할 줄 알아야 하거든요. 그런 것들을 이해하고 소화하지 않으면 피아노는 타악기와 다를 게 없는 것 같아요. 이럴 때 피아노 음악이 땡 하고 소리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선율’이 되고 ‘크레센도’가 되는 것이죠. 현악기처럼은 불가능할지라도 그 안에서 소리를 만들고자 하는 의지로 연주를 해나가야 합니다.”

김다혜는 연주할 때마다 이런 방향을 잊지 않고 있다. 그러기에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3번(Piano Concerto No.3 Op.30) 역시 자신의 내면에 내재된 피아니즘으로 연습하고 있다. 언제 협연할지는 모르지만 기회가 오면 언제라도 연주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이미 2번은 손가락의 DNA에 깊이 새겨져 있기에 2주 정도만 연습하면 금세 무대에 뛰어오를 수 있단다. 여기에 더해 협주곡 3번보다 더 어려운 소나타 1번(Rachmaninoff: Piano Sonata No.1 in D minor, Op.28)도 준비하고 있다.

“차이코프스키 1번(Piano Concerto No.1)은 라흐마니노프에 비해 조금 더 섬세함이 필요한데 그래서 현악기적인 타건을 더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라흐마니노프는 좀 질러도 되는 반면, 차이코프스키는 발레음악 같은 그런 섬세함이 필요하거든요.”


피아니스트 김다혜에게 피아노란?

김다혜에게 피아노란 무엇일까? 그는 피아노 없는 인생은 상상해볼 적이 없다고 말한다. 너무 무미건조한 삶이 아닐까 싶다. 카라얀은 어느 인터뷰에서 그의 아버지가 평범한 시민의 직업을 선택하는 것은 어떠냐고 의중을 물었을 때 ‘본인은 음악가가 되고 싶어서 된 게 아니라 음악을 하는 것 외에는 다른 것으로는 살 수가 없었어’라고 답했다고 한다. 어쩌면 김다혜도 그런 것은 아닐까?

피아노는 인간의 힘으로 풀지 못하는 일을 잘도 풀어줄 때가 많다. 스스로 또는 그 누구도 해결해 주기 어려운 불안과 걱정, 내면의 복잡함, 갈등 등이 타건하는 순간 스르르 녹아내리는 까닭이다. 그러나 음악은 마법 아닌가.

“물론 사람과 만나서 해결되는 게 더 많겠죠. 그러나 그만큼 피아노를 좋아한다는 의미입니다. 제 인생의 최고의 낙입니다. 피아노가 이 정도로 마음을 채워줄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대단한 위력이라고 할까요?”

그럼에도 그는 세계적인 콩쿠르에 나가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루비에 교수의 강력한 반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심지어 세상에 ‘정치와 콩쿠르’는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시기와 질투, 누군가를 이겨야만 하는 야만의 세계가 바로 콩쿠르라는 것이고 그 우리 안에서 재능을 자랑하는 것이나 동물원의 묘기를 보는 것과 하등의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김다혜가 루비에 교수를 사사한다고 했을 때 루비에를 아는 몇몇 지인들은 그 점을 걱정했다. 그분에게 배우면 콩쿠르는 나오지 못한다는 걱정…

“물론 학교에서 콩쿠르에 도전하면 도와주시겠다는 분이 따로 계셨어요. 그런데 차마 루비에 선생님의 뜻을 배반할 수가 없었어요. 루비에 선생님의 제자들은 볼로도스, 엘링 그리모, 다비드 프레이 등 세계적 피아니스트입니다. 이런 분들은 콩쿠르 없이도 세계적인 거장들이 되었거든요.”

드라마 ‘이태원클래쓰’에 장 회장은 부하의 아들인 박새로이가 ‘소신을 지키겠다’고 하자, 비참한 멘트를 남긴다. ‘소신, 패기? 없는 것들이 자존심 지키겠다고 쓰는 단어’라고 일갈하고 ‘이득이 없다면 그건 고집이고 객기’라고 비난한다. 콩쿠르에 진출하지 않은 사람들이야말로 콩쿠르 무용론을 들고 나올 수 있다는 말로 치환할 수도 있다. 그러나 김다혜가 콩쿠르 피아노의 답은 아니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 어느새 루비에의 신념을 닮고 있는 듯하다.

“네 맞아요. 저는 콩쿠르가 꼭 답이 아니라고 봅니다. 한국과는 조금 다를 수 있겠지만 캐나다에 호넨스라는 큰 콩쿠르가 있습니다. 상금도 어마어마하거든요. 그런데 그 콩쿠르에서 2등을 차지한 분과 인연을 맺은 적이 있는데 그분이 30대 중반까지도 제대로 초청받지도 못한 채 크고작은 콩쿠르에만 매달리는 거예요. 아내와 자식을 건사하기 위해서는 경제적인 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연주회에서는 인정받지 못한 것이죠. 그래서 콩쿠르에 나갈 때에도 늘 걱정 때문에 수전증 환자처럼 손을 떨곤 했거든요.”

그쯤 되면 음악은 즐거움이 대상이 아니라 공포의 대상이 된다. 혹시 김다혜의 그런 공포의 순간이 있었을까? 그는 힘들지언정 싫어한 적은 없다고 고백한다.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감정을 끌어내어 연주해야 하는데 그런 감정이 뜻대로 구현되지 않을 때는 속상하고 힘든 게 사실이다.

그는 본인이 유학시절에 그래왔던 것처럼 음악 외적인 경험을 위해 늘 여행자처럼 다양한 문화를 접할 것을 권한다. 음악가란 시인이나 소설가처럼, 연주를 통해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줘야 한다고 믿는다. 카를로스 클라이버는 모든 프레이즈마다 그림을 그려냈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서는 타 장르의 예술을 받아들이는 것에 기꺼워야 하고 게을리하지 말하야 한다. 미술관, 박물관, 역사적 건물,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산책, 영화, 책 등 다양하다. 또 현존하는 음악가뿐만 아니라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레전드의 영상이나 음반도 피아니스트로서 꼭 챙겨야 할 목록이라고 강조한다.

“저는 정말 클라이버 광팬이에요. 성악은 또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엘리자베스 슈바르트코프(Dame Elisabeth Schwarzkopf)나 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라면 사족을 못쓸 정도랍니다. 부쉬 콰르텟(The Busch Quartet)이나 알반 베르크(Alban Berg) 같은 콰르텟 역시 너무 좋고요.”

본지가 운영하는 리음앙상블의 멤버로서 지난 5월 가정의 달 특집 실내악음악회 ‘시실내악’에도 김다혜가 참여할 수 있었던 토대도 바로 이런 앙상블 음악을 사랑하는데 기인한다.

“지난 5월 연주회 정말 좋았습니다. 앞으로도 리음앙상블과 함께 연주하고 싶은 곡들이 많고요. 엘가의 퀸텟, 슈베르트 트리오 1번 등은 다음 기회에 연주하고 싶답니다. 그러나 우선 당장은 이번 8월 18일 부천아트센터에서 개최하는 광복절 특집 음악회에 집중해야죠. 월간리뷰 독자들을 꼭 초청하고 싶습니다. 꼭들 오세요.”

그의 음악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 인터뷰 내내 전해져 행복했다. 그가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 국내를 대표하는 음악가로 우뚝 설 날이 머지 않았음을 확신했다. 앞으로의 그의 행보가 무척 기대된다.

취재 글 김종섭
정리 신은지


피아니스트 김다혜 프로필

김다혜는 예원학교와 한국예술종합학교 예비학교에서 Prof. 김대진을 사사한 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국립음대에 최연소 입학하여 Prof. 칼 하인츠 캠머링(Karl – Heinz Kämmerling)을 사사하여 만장일치 최고점수(Auszeichnung)로 졸업하였다. 또한, 독일 하노버 국립음대에서 석사과정을 마쳤고,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국립음대에서 Master’s Course for Soloist 과정과 Postgraduate에서 Prof. 쟈크 루비에(Jacques Rouvier)를 사사하며 만장일치 최고점수(Auszeichnung)로 졸업하였다. 일찍이 뛰어난 실력으로 주목을 받은 그는 2009년 10월에 스페인 마요르카 Auditori d’Alcudia에서 초청연주를 가졌고, 2011년에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Rising Star & Youth Orchestra와 협연무대를 가졌다. 2013년 4월에는 Salzburg Mozarteum University 콘체르토 오디션에서 우승하여 스위스 Bern Symphony Orchestra 상임지휘자인 거장 Mario Venzago와 연주하며 관객들에게 큰 호평을 받은 바 있다. 2013년 9월, 부다페스트 주헝가리대사관 초청연주, 독일 Saarbrücker Sommermusik 2016 초청연주, 헝가리 Szent Gellért Fesztivál Szeged 2016에 초청되어 가진 부다페스트 Vigadó Concert Hall에서의 연주 등 다양한무대와 페스티벌에서 뛰어난 연주력을 선보였다. 유럽무대에서 특히 두각을 나타낸 그는 또한, 이탈리아 Val Tidone Festival, 오스트리아 Tirol Pinswang홀, 잘츠부르크 Wiener Saal, Schloss Mirabell, 독일 레겐스부르크 Alteiglofsheim, 린다우 Forum am See Füssen Hopferau, 라이프치히 University hall, 뒤셀도르프 Udo – Van – Meeteren Saal, 베른부르크 Sparkasse Bank Saal, 베를린 Potsdam Schloss Glienicke Statt, 파사우 Freudenhain, 리히텐슈타인 Triesen Fürstentum Liechtenstein 등 유수의 홀에서 연주하며 다시 한 번 그 실력을 입증하였다. 국내에서는 2017년 12월,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Prof. 장윤성의 지휘로 프라임필하모닉 정기연주회의 협연자로서 공연하였고 2020년 10월 베토벤 탄생 250주년 기념으로 군포 문화예술회관에서 협연하였다. 2020년 11월에는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에서 귀국 독주회를 가졌다. 최고의 무대를 위해 끊임없는 열정으로 노력하는 피아니스트 김다혜는 2018년 스페인 Delia Steinberg 국제콩쿠르에서 우승하는 쾌거를 이뤘고, 2019년 7월, 독일 Saarbrücker Sommermusik 2019에 다시 초청되어 연주하는 등 활발한 연주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후학양성에도 힘을 쏟고 있는 그는 현재 연세대학교 음악대학에 출강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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