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운트, 리바운드, 그렇게 다시

12

복싱의 카운트
올림픽대회에서 복싱 라이트미들급 금메달리스트였지만 실패한 지금은 체육교사인 박시헌. 그는 고교시합경기에서 과거의 아픔을 송곳으로 푹푹 찌르는 상대 학교 교사를 폭행한 죄목으로 수사선상에 오르는 바람에 제자가 시합을 펼치는 경기장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래도 제자가 링 위에서 싸우는 모습을 보고 응원하고 싶었다. 실패했던 자신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제자에게 전해주고 싶었다. 결국 경비원들의 쉴드를 피해 대기실 창문을 찾는 그는 창살 틈으로 제자에게 닳고 닳은 한 자루 몽당연필 같은 조언을 남긴다.
“복싱이라는 것은 다운당했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다시 일어나라고 카운트를 10초씩이나 주거든. 너무 힘들고 고되면 엎어진 자리에서 조금만 그대로 누워 있어라. 그리고 네 숨이 다시 돌아오면 그때 다시 딛고 일어나 싸우면 된다. 최윤우, 화이팅!”
영화 ‘카운트’는 그다지 흥행하지 못한 것으로 안다. 그러나 이런 작품에서도 카프카의 눈을 빛나게 했던 사금파리와 같은 교훈이 있다. 이 얼마나 감동적인, 그리고 지친 팔다리에 동맥을 발기시키는 유혹적인 대사인가 말이다. 아하! 카운트가 그런 뜻이 있었구나. 누군가에게 복싱의 ‘카운트’란 자기 소멸과 자기 파괴의 마지막 장례순서로 인식하겠지만 이 영화에서 카운트는 마라톤 지역에서 아테네까지 달려오느라 지쳐 쓰러진 용사가 다시 일어서는 기적의 숫자로 인식할 수 있다.
아 달리고 싶지만, 주먹을 날리고 싶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는 이 절체절명의 순간… 10초간의 휴식이란 삶과 죽음의 문턱에서 한 줄기 빛과 한소끔 호흡을 주기에 너무도 충만한 시간이 아니랴.
그러니 쓰러진다 해도 절망하지 말자는 얘기다. 10초간 충분히 널브러져 있다가 연어의 꼬리처럼 치고 일어서자는 말이다.

농구의 리바운드
체육교사 강양현은 소심하다. 부산중앙고 농구팀은 약체 중 꼴찌지만 한때는 전국을 호령하던 추억을 갖고 있다. 추억은 추억일 뿐, 이제 농구팀을 해산하기 위한 구실로 어리바리한 코치 한 사람을 영입한다. 대충 가르치는 척하다가 전국농구대회에서 아예 참패를 당하면 해산시킬 작정이었다. 교장이 기대했던 대로 어리숙해 보이는 강양현이 이끄는 농구팀은 최강 용산고 농구팀에 패퇴하고 만다.
그냥 진 게 아니다. 한때 스타선수였던 강양현이 농구팀을 살리기 위해 발품을 팔며 어렵게 찾아낸 센터가 용산고로 이적해 버리고, 농구대회에서 부당한 판정으로 강력하게 항의한 강양현까지 오펜스 파울로 퇴장을 당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6개월 출전정지라는 사약을 마시고 만다. 게다가 경기가 끝난 후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순규와 기범의 싸움에 절망을 느끼던 차였다. 강양현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소주병을 나발 불면서 고통스럽게 쓰러지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쓰러지지 않았다. 고교시절 실패할 때마다 농구일기장에 적어놓았던 단어가 떠올랐다. ‘리바운드.’


전 농구스타 강양현은 급히 옛 농구일기를 들춰보다 추억 속으로 훅 빨려 들어간다. 그때도 그랬다. 하루 수백 번씩 공을 던지면서 골대를 맞고 떨어지는 공을 얼마나 많이 리바운드했던가.
‘리바운드. 실수와 실패를 만회하려 다시 한번 기회를 얻는 것. 실패를 성공으로 바꿀 수 있는 기술. 포기하지 말 것!’
그는 해산했던 농구팀 단원들을 다시 찾아가 용산고와의 투쟁을 선포한다. 리바운드. 우린 실패한 게 아니라 다시 기회를 얻은 것이야!

야구의 글러브(GLove)
쓰러지지만 넘어지지 않아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건만, 이런 신념도 존경받을 만할 때 효과가 있는 법이다. 프로야구계에서 폭행으로 물의를 일으킨 스타에게 이런 말은 오기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물론 환경에 따라 진짜 신념으로 인정받을 수도 있다. 명투수 김상남이 그랬다. 폭행으로 야구계에서 제명을 당할 위기에 그가 잠시 피신을 떠난 곳은 맹아학교 충주성심학교 야구부였다. 학부모들은 장애인 자녀들이 야구팀으로 뛰는 게 과연 말이 되느냐며 해산을 종용하던 차였다. 그러나 일부 열정 넘치는 교사들 사이로 툭 떨어진 사과 같은 김상남.
매니저의 압력으로 마지못해 굴러들어 온 장애인 학교가 마음에 들겠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그러나 그는 이 학생들의 재능을 하나둘씩 발견해 나간다. 자존감과 자신감 부족에 문제의 원인이 있다고 본 그는 가혹하리만큼 훈련을 시킨다. 그러나 실력이 어찌 쉽게 성장하겠는가.
학교대항 야구대회에서 콜드게임으로 참패한 야구팀 아이들에게 김상남은 경기장에서 학교까지 마라톤으로 뛰어오던 중 지켜 넘어진 아이들에게 분노에 찬 사자후를 내지른다.
“우리에게 가장 무서운 상대는 도저히 이기기 힘든 강팀이 아니다. 얘들아! 내 말 들어! 바로 우리를 불쌍하게 보는 팀이다. 그런 놈들을 만나면 열심히 해보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니까. 붙어보고 싶은 마음이 없어지니까. 그래서 우리가 먼저 다르게 보여줘야 한다. ‘우리가 왔다. 너희들을 박살내겠다.’ 하지만 눈빛만으로는 모자라다. 소리를 질러야 해. 소리를 질러! 소리는 귀로만 듣는 게 아냐. 가슴이 울리도록 소리를 질러! 화나고 열 받아서 눈물밖에 안 나던 것 벌써 잊었어? 잡고 싶은데 못 잡아서 미치게 이기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서, 눈이 터져도 못 쉬고 그렇게 고생하면서 흘린 땀, 더 이상 속에 담아두지 말고 터트리란 말이야. 소리를 질러! ‘우리가 왔다. 너희를 박살내겠다.’ 으아~ 으아~ 우리는 너희가 두렵지 않다. 나는 내가 자랑스럽다. 으아~ 밟을 만큼 밟아봐라. 또 일어나면 된다. 우아~”


늘 만족스럽지 못하다. 왜 그런 실수를 했을까? 좀 더 잘하고 싶었는데… 매사가 그렇다. 7월 27일 경기아트센터에서 펼친 ‘정전협정 70주년 위대한 청춘 70년’은 그동안 공연한 그 어떤 공연보다 가슴 뜨거웠다. 대곡을 4곡씩이나 배치한 데다 40인조 합창과 대규모 오케스트라가 등판해서인지 역시 감동의 휘모리를 일으켰다.
게다가 국보급 바리톤 고성현의 피아니시시모와 포르테시시모의 화려한 스펙트럼은 전설이 아니라 현존하는 스타임을 증명했다. 김동원의 목련화와 손에 손잡고는 일품요리였으며, 송난영의 챔피언스는 관객들의 심장을 뚫고 지나갔다. 자원의 막힘없는 고음과 팽팽한 비브라토에 이영조 교수는 입을 다물 줄 몰랐다.
그러나 나는 부족하다. 아직 완벽한 음악회를 하기에는 부족한 게 너무 많다. 하지만 다시 일어날 것이다. 아니 일어나겠다. 한국소극장오페라축제 역시 주최자로서 나는 실패했다. 그러나 다시 일어설 것이다. 아니 일어서겠다.
누구나 열패감과 실패감에 매몰될 수도 있다. 자신이 하는 일이 늘 마음에 들지 않아 마뜩잖은 이들… 그러나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지 않은가. 우리 생명을 다하는 그날까지… 카운트처럼, 리바운드처럼, 저 김상남처럼 넘어질지언정 쓰러지지 말자.

발행인 김종섭

Loa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