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혜경, 슈베르트의 초상을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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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 갈래 꿀타래 음색의 로맨틱 피아니스트

Wanderer Fantasy(방랑자 환상곡) 점점 신들린 듯연주

“지난 몇 달 간 열심히 암보한 슈베르트 impromptu(즉흥곡)와 Wanderer Fantasy(방랑자 환상곡)를 오늘 드디어 제대로 연주해봅니다. 이제부터 예술적으로 승화시켜서 혼을 울리고 감동을 줄 수 있도록 지난 58년 피아노 인생의 연륜으로 슈베르트의 마음을 담아내는 작업으로 들어갈 거예요.”

이제야말로 피아노 음악이 얼마나 깊이 있고, 얼마나 아름다운 세계인지 깨닫게 된 것 같다. 오는 9월 8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있을 연주회 연습에 한창인 피아니스트 서혜경은 그렇게 술회한다. 영혼이 담긴 예술적 표현을 위해 200% 노력하는 건 피아니스트의 기본이라는 그는 이번 공연을 앞두고 슈베르트의 대곡 Wanderer Fantasy를 점점 ‘신들린 듯’이 연주하고 있다며 웃는다. 감정이입이 심해 때로는 Wanderer Fantasy 2악장을 연주하다, 아름답게 가슴 미어지는 슬픈 pppp, ppp, pp의 표현을 건반을 어루만지며 소리로서 이끌어내고 무한한 외로움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마치 외로운 방랑자가 된 양 한없이 침잠하기도 한다.

또 어려운 부분을 만나 천착할 때는 마치 악마가 연주하듯 테크닉을 훌륭하게 소화해낸다. 그리곤 스스로 대견스러워 두 팔로 자신을 안아준다. 피아니스트에게 연습이란 홀로 만드는 최고의 퍼포먼스 아닌가. 작곡한 장본인인 천재 슈베르트보다도 쉽게 테크닉을 연주해 낼 때의 쾌감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이런 부분까지도 서혜경은 ‘신통하게’ 즐긴다.

“슈베르트보다 연주가로서는 한 수 위인 것 같아 뿌듯해요. 물론 리스트의 테크닉에는 미치지 못하지만요. 오랫동안 연주하다 보면 혼자만의 연주가 아닌 이 연주를 통해 세상의 모든 고통과 아픔을 승화시키고 싶어져요. 오르페우스(Orpheus)가 라이어(Lyre 리라)를 연주하면 그 음악에 취해 지옥의 사자들이 문을 한 층씩 열어주어 결국 부인 에우리디체(Eurydice)를 지옥 밖으로 데리고 나오듯이, 그렇게 연주하고 싶거든요. 저는 이번 무대에서 그렇게 연주해드릴 거예요.”


9월 8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방랑자 환상곡 연주

기다려진다. 세상 어딜 봐도 ‘모든 게 위기’라고 외친다. 경계선에 선 지구는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 위험천만이고 전 세계가 정치적, 경제적 혼란으로 모두가 허우적거린다. 이럴 때 피아니스트 서혜경은 선한 천사가 되어 아름다운 피아니즘으로 우리 정신의 지옥, 삶의 지옥으로부터 탈출시켜줄 것이라는 기대가 앞선다. 진심으로 그의 연주가 기다려진다.

서혜경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라는 그럴듯한 홍보 문구를 따라가 막상 공연을 보면 그저 암보의 달인일 뿐, 뭉퉁한 감성둥치들이 피아노를 두드리는 게 전부인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지난 58년간 매일 매일 7시간 이상씩 벼리고 날을 세운 감정의 손가락과 오감(五感), 육감, 영감을 나노급으로 조합해 pp, ppp, pppp와 f, ff, fff까지 광범한 다이내믹 레인지(dynamic range)를 컨트롤할 수 있는 서혜경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우리들의 마음과 영혼을 흔드는 연주… 그러면 마침내 악마의 영혼까지도 감동시켜 위기 속에 갇힌 우리들에게 열락과 행복의 문을 열어줄 게 틀림없다.

피아노가 건반악기라지만 그가 만지는 피아노는 현악기 이상의 ‘in a big romantic style’로 노래할 수 있기에 9월 8일 연주회 소식에 마음은 벌써 설레기만 하다. 그런데 정말 기대만큼 그의 연주가 그토록 감동적일까? 물론이다.

“루빈스타인은 결혼 후인 41세부터 본격적인 연습을 매일 시작했어요. Richard Goode(리차드 구드)는 50대부터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늦은 나이에도 최고의 연주를 펼쳤습니다. Shura Cherkassky(슈라 체르카스키)는 60대부터 다시 유명해졌고요. 세상을 살다 보니 연륜이 있는 분들이 세월이 갈수록 더욱 예민하고 섬세한 연주로 심금을 울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에게 알려진 서혜경의 직업은 단순히 피아니스트로 끝나는 게 아니다. 두 자녀를 키우는 엄마였고 20년간 경희대 음대와 맨해튼을 ‘날아다니며’ 제자를 양성해온 교수로서 활동해온 까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피아노에 대한 감각은 날로 섬세해지고 있다. 60이 넘은 나이이지만 지금도 매일 7시간씩 피아노를 붙잡고 작곡가들이 새겨놓은 비밀을 탐험하는 탐광자(探鑛者)로 살고 있다.

“이제부터 뭔가 본격적인 연주를 시작하는 느낌이 들어요. 대단한 불굴의 의지를 갖고 억지로 덤비는 게 아니라 젊은 시절에는 미처 발견할 수 없었던 음악의 신비가 새롭게 보이면서 pallet of colors in grand big romantic style, 즉 더 깊이 있는 표현을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정도입니다. 제 스스로 점점 무르익어가는 걸 피부로 느낍니다.”

1980년 부조니 국제 콩쿠르를 통해서 한국인으로서는 세계무대에서 최초로 우승(1등 없는 2등)을 차지한 1세대 피아니스트 서혜경. 지금이야 국제콩쿠르에서 입상하는 후배들이 줄을 잇고 있지만 옛날 계보로 거슬러 오르면 최초 우승의 역사를 개척한 연주자는 반박의 여지없이 서혜경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그가 지금까지 쌓아온 협주곡 레퍼토리의 탑은 참으로 높지만 그는 오늘도 한층 한층 더 높이 쌓고 있다. Beethoven 1, 3, 5 Mozart 19, 20, 21, 23 Tchaikovsky 1, 2, 3 & Concert Fantasia op.56, Rachmaninoff 1, 2, 3, 4 & rhapsody on a theme by Paganini, Brahms 1 & 2, Saint Saens, Schumann, Mendelssohn, Prokofiev, Chopin, Liszt 등 협주곡만 30여 곡에 이른다.


어린 시절의 슈베르트 방랑자 환상곡, 60에 이르러 재해석

“최근 세계 공연계는 슈베르트 전곡 연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 같아요. 지난해에는 베토벤 전곡을 연주했었잖아요? 올해는 슈베르트 전곡 연주를 초청받았거든요. 그런데 참 기묘한 게 예전에는 슈베르트의 impromtu(즉흥곡)을 참 여러 번 연주했구나 싶더라고요. 심지어 어렸을 적 이화경향콩쿠르 특상을 받은 곡도 슈베르트였습니다. 그 어린 시절에 슈베르트에 대해 알면 얼마나 알겠어요. 40년 세월이 지난 지금, 인생의 경험이 무르익은 전문연주자로서 이번 슈베르트는 또 다를 것 같아 저 스스로도 기대가 되는 공연입니다.”

58년의 관록으로 그 어린 시절에 연주했던 곡을 어떻게 해석할까 내심 궁금하다. 수많은 길을 돌고 돌아 다시 만난 작품이기에 남다를 게 분명하다. 60이 넘어서 만난 슈베르트의 세계는 실로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무엇을 말하는지도 모르고 테크닉만 파고들어 연습해 특상까지 수상하며 인정받았던 그 곡이다. 그러나 작품의 세계를 알고부터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빛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연습 또한 쉽지 않았다.
“슈베르트는 그리 잘 생기지 못 한데다 152cm의 작은 키, 게다가 가난하기까지 해서 하숙집 딸에게 프로포즈했다가 거절당했어요. 성격까지 수줍었죠. 사랑하고 싶어도 주변에 여자가 없었어요. 그 와중에 그나마 딱 한 번 큰맘 먹고 고백했는데 보기 좋게 차인 거예요. 베토벤이 한창 잘 나갈 때에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쳤는데 그렇게 가까운 거리에 있으면서도 인사 한 번 해보지 못했을 정도로 수줍었습니다. 기댈 친구 한 명 없던 슈베르트는 인생이 너무 외로웠어요. 슈베르트의 음악이 딱 그래요. 혼자 고뇌하고, 짝사랑하고… 본인을 받아주는 사람이 없으니 시냇물과 대화하고 그야말로 자연을 벗 삼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이번에 연주할 ‘Wanderer Fantasy’ 중 특히 2악장이 너무나 아름다워요. 비극미죠. 그 멜로디는 ‘Der Wanderer’(방랑자)라는 가곡에서 왔답니다. 이 곡을 연주하면 그 고독과 절절한 외로움이 가슴 깊이 파고듭니다. 어릴 때는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없죠.”

사인 받으려고 기다리는 관객들

가곡은 이 세상을 홀로 정처 없이 돌아다니고 또 돌아다니며, 행복을 찾으려고 끊임없이 돌아다녔는데 결국은 당신(자기 자신)이 없는 그곳에 내 행복이 있었다‘는 내용이다. 얼마나 가련하고 마음이 아픈지… 서혜경은 슈베르트의 음악은 가슴 찢어지게 아리고 아프면서도 아름다운 그 무엇이라고 정의한다. 서혜경은 그의 삶이 더욱 가슴 아픈 것은 살아생전에 꽃 한번 제대로 피워보지 못했다는 점이다. 예컨대 모차르트 등 잘 나가는 작곡가들은 ‘모차르트 콘체르토 시리즈’처럼 사전에 공연을 기획하는 동시에 출연료를 미리 다 받고 공연 직전까지 혼신 다해 작곡하는 스타일이었다.


비극적인 슈베르트의 삶, 피아노에 녹아 있어

하지만 슈베르트에게 이런 호사스런 작곡의뢰는 없었다. 단지 돈이 많았던 친구가 슈베르트의 엄청난 재주를 알아보고 ‘슈베르티아데’라는 모임을 만드는 정도였다. 이들이 파티를 펼칠 때면 슈베르트의 작품들을 초연했고 슈베르트는 그저 공짜 술 한잔, 밥 한 끼를 제공받는 데 그쳤다.

“그 엄청난 걸작들이 슈베르티아데 덕분에 탄생하기도 했지만 거꾸로 그 세계에 갇혀 세상 밖으로 알려지지 못했던 거예요. 본인의 커리어를 제대로 쌓아보지도 못하고.”

슈베르트는 본인 소유의 피아노도 없어 친구 집을 찾아가 연주하거나 기타를 치곤 했다. 그러다 갑자기 악상이 떠오르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휘갈겨 쓰곤 했다. 그래서일까? 서혜경은 슈베르트의 ‘즉흥적 멜로디’는 그 어느 작곡가보다 뛰어나다고 말한다. 그렇게 즉흥적으로 기록한 덕분에 그의 가곡은 600곡에 달한다.

“우리가 무언가 즉흥적으로 생각나면 받아 적듯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바로 Impromtu(즉흥곡)입니다. 제가 이번에 연주할 세 곡 모두 즉흥곡이에요.”


슈베르트의 불행은 더욱 깊어졌다. 슈베르티아데를 결성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던 극작가 프란츠 폰 쇼버(Franz von Schober) 마저도 슈베르트를 주색잡기에 빠지게 해놓고 떠나버렸다. 사창가를 들락거리다 그 젊은 나이에 매독에 걸린 슈베르트는 수은 치료를 받아야 하는 고통 속에서 걸작 ‘Wanderer Fantasy’을 써 내려갔다. 그리고 2악장에 본인의 가곡 ‘Der Wanderer’를 접목해 Romanticism(낭만주의)의 시대적 조류 속에 흘려보냈다.

“제가 11살 즈음에 슈베르트의 곡을 연주했어요. 그 어린 나이에 이런 마음을 어떻게 알았겠어요. 외롭고 가련하고, 세상에 오롯이 홀로 남은 상태로 나름의 행복을 찾으려고 끊임없이 번뇌하는 마음들이요. 하지만 지금껏 살아오며 남들에게 말 못 할 정도로 힘든 시기도 겪어 보고 인생의 쓴맛을 경험해보면서 이젠 슈베르트의 고통을 몸으로 이해되게 됐습니다. 그래서인지 아름다움 뒤에 숨겨져 있는 슈베르트만의 처절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거예요.”

어쩌면 슈베르트의 곡들은 진짜 인생을 경험한 예술가, 그저 성공한 연주자이기에 행복해 보이지만 삶을 한 꺼풀 벗기기만 하면 누구보다 처절하게 살아온 서혜경과 같은 구도적 예술가만이 제대로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그게 틀림없다면 ‘몇 번이라도 좋다. 이 끔찍한 생이여, 다시’라고 포효한 니체의 말에 공감하는 이들은 이번 연주회를 통해 그 처절한 삶을 깨달아야 할 일이다.


혹독하고 버거운 생활로 인한 스트레스, 40대 유방암 3기

슈베르트는 4악장의 소나타 ‘Wanderer Fantasy’ 4악장을 연주하다가 “악마여 연주하라!”(The Devil may play the piece!)라고 외치고 중단하고 말았다. 그렇다고 그 곡에 담긴 아름다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얼마나 아름다운지 리스트는 이 곡을 듣고 홀딱 반해버렸다.

“리스트는 그 당시 잘 생기고 인기가 엄청났어요. 반면 슈베르트는 무명작곡가였죠. 리스트는 이 곡을 듣고 Two piano, 피아노와 오케스트라(Wanderer Fantasy for Piano and Orchestra) 등 두 가지 버전으로 편곡했습니다. 또한 리스트는 소나타를 딱 한 곡만 썼는데 슈베르트의 Wanderer Fantasy를 듣고 폭포 같은 영감 아래 4악장을 한 그룹으로 한 Symphonic poem(교향시) 같은 소나타를 창조해내죠. 엄청난 곡입니다.”

Impromtu(즉흥곡) Op.90, 4곡 중 1번째 곡의 경우 심플한 멜로디 한 줄로 시작해 외로움의 극치를 표현한 첫 악장이다. 그러나 진행하면서 점차 분위기와 색채를 다 바꿔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슈베르트의 심정을 온전히 이해하면서 연주하려면 이 한 악장만으로 몇 달 동안 붙들려 있어야 한다. 음조가 비슷하지만 미묘한 차이가 있기에 한 번의 실수만으로 함정에 빠지면 빠져나올 수 없는 까닭이다. 알지 않은가? 피아노 연주자에게 손은 두 개지만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 등 네 가지 빛깔을 창조주처럼 능란하게 소화해내야 한다. 우리는 서혜경을 통해 이 네 가지 빛깔을 통해 아로새겨진 슈베르트의 곡들을 마치 노래처럼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서혜경은 아직 길들이지 않은 말을 조련하는 조련사처럼, 노래하기 힘든 피아노를 ‘노래하는 피아노’로 만드는 Romantic singing 피아니스트라는 데 이의를 달 수 없을 정도로 노래를 좋아한다.


서혜경과 대화하는 동안 이번 연주회에서 서혜경만의 결, 색깔… 우아하고 섬세한 독보적인 연주를 기대해도 좋겠다는 확신이 섰다. 슈베르트는 ‘비극과 슬픔 속에서 아름다운 음악이 탄생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돌이켜보면 피아니스트 서혜경의 삶은 그 누구보다 녹록지 않은 험난한 삶이었다. 오직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되기 위해 아르헤리치의 힘과 호로비츠의 빠른 테크닉에 몰입하던 순간 피아니스트로서는 생명과 같은 팔의 근육 파열을 겪어야 했던 20대의 사건은 아무것도 아니다.

샤를르 뒤투아, 리카르도 무티 등 세계적인 지휘자와 무대에 서고, 1985년에는 여성으로서는 세계 최초로 윌리엄 퍼첵상을 수상하고 ICM과 계약을 맺기도 했다. 카네기홀이 선정하는 세계 3대 음악가에 뽑히는가 하면 로스트로포비치, 장 피에르 랑팔 같은 대가들과 함께 전미 순회 공연을 펼치기도 했던 서혜경. 세계무대에서 ‘웅장한 기교, 대담한 열정과 섬세함이 돋보인다’는 평을 들었던 그가 경희대 교수로 재직하던 40대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갑작스런 유방암 3기를 판정받아 피아니스트로서 좌초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부조니국제콩쿠르 한국인 최초 우승 후 연주는 ‘산넘어 산’

그럴 만했다. 부조니국제콩쿠르에서 우승했어도 세계 최고를 향해 한시도 긴장을 놓지 않은 예술가였지만, 그에게는 예술가 말고도 떠맡아야 할 책임이 너무도 많았다. 세계 무대를 돌아다녔을 시절에는 매일이 그야말로 ‘산 넘어 산’이었다. 부조니국제콩쿠르 최초 우승 이후 수상자음악회를 잘 마치고 나면 그 다음에는 더 큰 것이 기다리고 있었고, 또 그 다음에는 전보다 더 큰 산이 기다리고 있었다. 산을 넘다 포기할 수는 없었지만 이런 생활이 지속되면서 서혜경의 진짜 인생은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5살 때부터 피아노 하나만 붙잡고 지겹게 연구하고 머리 터지게 암보하는 일상이 시작되었고 8살 때부터 본격적인 무대 생활에, 11살 때에는 5.16민족상까지 수상하지 않았던가. 어딜 가나 신동 소리를 듣고 살았던 서혜경은 그 유명세에 걸맞은 실력을 유지하기 위해 맹렬하게 연습했다. 매일 눈 뜨면 10~12시간씩 피아노와 씨름해야 했고 그런 일상이 반복되면서 어느 순간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독백이 흘러나왔다.

“그래서 서른 살이 넘어서야 제 인생을 살고 싶어졌어요. 제가 서른 두 살에 딸을 낳고 서른 여섯에 아들을 낳았어요. 그 후에 경희대의 초청으로 교수직을 시작했는데 연주자로서 세계적인 커리어는 유지하면서도 매달 두세 차례씩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아이들을 가르친 거예요.”

한국시간으로 새벽 6시 반에 공항에 도착해 집에 들어가면 이미 8시… 9시부터 바로 레슨을 시작해야 했고 수업이 끝난 후 새벽 4시까지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면 언제나 진이 빠졌다. 그러면서도 계속 두 아이를 일일이 케어했다. 적어도 아이들과 한 약속은 지키려고 한국 일정을 마친 후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쉬지 않고 수학여행이나 크고 작은 학교 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했고 아이들 셔틀까지 자처했다.


이런 생활 속에서 웬만한 스트레스는 극복할 줄 알았는데 나이가 들고 결혼을 하면서 정신은 감당하지만 몸의 건강은 ‘이제 그만 쉬라’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

“그래서 교수도 해봤지만 결국은 연주가로서의 삶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 거예요. 하나님께서 저에게 재능을 주신만큼 연주가로서의 책임감에 더 큰 무게를 주신 것이죠.”

유방암 3기 진단을 받고 숱한 병원을 찾아 헤맨 끝에 다행히 국내 최고의 유방암 전문의인 노동영 박사를 만나 그 힘들다는 항암을 6-7개월에 걸쳐 8번이나 진행했다. 이후 수술에 성공했고 33회의 방사선 치료를 받았다. 살이 타들어가는 고통과 피아노에서 멀어지는 만큼 우울증이 더 가까이에서 서혜경을 괴롭혔다. 하지만 결국 ‘건반 위의 여제’는 유방암 3기를 극복하고 2008년 라흐마니노프 2번과 3번을 한 무대에서 완주하면서 재기에 성공했다.

“그렇죠. 저처럼 열정적인 사람이 암이 걸릴 줄 상상이나 했겠어요? 제가 그런 길을 걸어왔기에 아마도 슈베르트의 작품을 고통의 측면에서 연주할 수 있는 거겠죠?”


피아니스트의 인생은 이제부터

알다시피 피아노는 원래 이름이 피아노포르테(pianoforte)이다. 피아노 이름에서 느낄 수 있듯이 훌륭한 피아니스트는 피아니시시시모(pppp)부터 포르티시시시모(ffff) 등 피아노 음의 스펙트럼을 최대한 넓게 연주할 줄 알아야 한다. 귀가 고도로 예민해야 하고 고도의 테크닉으로 컨트롤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는 손가락만 잘 돌아가서는 결코 소화할 수 없는 영역이다. 피아노 음의 스펙트럼을 이론적 또는 기계적으로 표현하는 게 아니라 무엇보다 본인이 그 소리들을, 또 그 소리가 담고 있는 감정을, 고통의 다양한 색깔을 직접 느끼고 연주할 줄 알아야 한다.

“어떤 피아니스트는 ‘피아노와 음식과 침대’만 있으면 살 수 있다고 합니다. 솔직히 저는 그렇게는 못 살 것 같아요. 예술은 경험한 만큼 감정을 표현할 수 있잖아요. 저는 다양한 인생을 살고 싶은 사람이거든요. 사랑도 하고, 아이들도 기르고, 춤도 추되 몰입해서 열심히 해냅니다. 이 모든 것이 피아노 앞에서는 자연스레 음악적으로 흐르는데, 연주자로서는 축복받은 삶이죠. 저에게 또 하나의 재능이 있다면 그건 performing 기질이에요. 저에게 흐르는 음악으로 몇천 명의 마음을 터치하는 기질 말입니다.”

서혜경은 인터뷰를 하는 동안 자신이 최근 몇 년간 게을렀음을 고백한다. 지난 몇 년간 연습을 힘들어 했는데 최근 들어 피아노 연습 자체를 사랑하게 됐다고 한다. 무슨 말일까?

“루빈슈타인(Artur Rubinstein)도 결혼해서 형편없는 피아니스트라고 얘기 들을까 봐 마흔 살 무렵부터 연습하기 시작했거든요. 저도 교수직 내려놓고 제대로 연습하니까 본래 재주가 나오더라고요. 재주가 있는데 개발을 안 하면 아무 소용이 없어요. 땅에 묻힌 보석일 뿐이죠. 사실 예브게니 키신(Evgeny Kissin)을 천재라고 하지만 이런 피아니스트들의 노력은 실로 어마어마합니다. 다닐 트리포노프(Daniil Trifonov)도 마찬가지고요. 소콜로프(Grigory Sokolov)도 50살부터 유명해지잖아요. 저도 60대이지만 지금부터 지켜보세요. 타고난 재능만 믿지 않고 꾸준히 성장할 거예요, 이번에 서혜경의 진짜 진미를 보여드리려고 합니다.”


피아니스트에게 암보는 그저 기본이다. 문제는 피아니스트로서 그 곡을 어떻게 소화하고 승화시키느냐가 관건이다. 서혜경은 그런 면에서 ‘다니엘 바렌보임'(Daniel Barenboim,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수석지휘자)을 최고로 꼽는다. 바렌보임은 카네기홀에서 베토벤 소나타를 사흘에 한 번 꼴로 3개씩 연주해서 총 31곡을 완주한 적이 있다. 그 방대한 양의 악보를 다 외워서 한다는 것 자체도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한 곡 한 곡 정말 기가 막힌 수준으로 또 동일한 레벨의 수준으로 연주했기 때문이다.

“간혹 전 곡 연주 시, 암보하지 않고 옆에 페이지 터너를 두고 연주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그건 곡을 완벽하게 소화하고 연주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 많은 곡을 외워서 한다는 건 물론 어려운 일이지만 피아니스트에게 암보는 기본이에요. 작가가 글을 잘 쓰는 것도 단어를 많이 알고, 문장 어휘력이 있고 거기다 영감이 더해진 결합체로서 나오는 거잖아요. 마찬가지로 피아니스트가 암보를 하지 않는다는 건 단어가 없는 것이라고 보시면 돼요. 다른 악기들은 하나의 소리만 내는 데 비해 피아노는 오케스트라의 수많은 악기들의 색깔을 한꺼번에 다 발현해야 하고요.”

피아노가 표현할 수 있는 소리들을 어느 것 하나 소홀하지 않고 모두 표현해내려면 암보만으로는 어림없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서 카네기 3대 피아니스트의 반열에 오른 서혜경은 그러나 지난 20년 동안 너무 힘든 나날 속에서 피아노의 예민한 소리들까지 터치할 겨를이 없었다. 그러나 모든 교수직을 내려놓고 오로지 피아노에만 집중, 매일 8시간씩 연습하면서 피아노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실현하고 있다.

“맞아요. 그래서 이번 슈베르트는 그동안 듣던 슈베르트가 아니라는 걸 알려주고 싶답니다. Wanderer Fantasy을 초견부터 암보했어요. 예전에 연주하던 해석을 잊고 완전 새로 공부한 거죠. 그것이 이번 연주의 포인트라고 보면 돼요.”

최근 내한이 잦은 피아니스트 ‘루돌프 부흐빈더'(Rudolf Buchbinder)의 레퍼토리 확장에 대해 칭찬하자, 서혜경은 예술가로서 기본이라도 답하며 대가로서의 서혜경 인생은 이제 60대부터라고 힘주어 말한다. 전설의 피아니스트가 되려면 적어도 90세까지는 연주해야 하고 새로운 레퍼토리이건 이전에 연주했던 레퍼토리이건 항상 오늘과 다르게 배워나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야 피아니스트 고유의 삶이 묻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슈베르트의 방랑자 환상곡을 선택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천부적으로 큰 스테이지를 즐기는 카리스마 넘치는 여제

서혜경은 이번 연주가 끝나면 내년 7월 브람스 콘체르트 협주곡 두 개에 도전한다. 말이 두 곡이지 브람스 콘체르트는 사실 한 작품만 연주하는 것도 굉장히 어렵다. 더구나 브람스 협주곡 2번은 4악장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은가. 역대 피아니스트들 중 한 콘서트에 두 개의 작품을 연주한 연주자는 루빈스타인이다.

또 하고 싶은 시리즈가 있다. 앞서 밝힌 것처럼 지금까지 서혜경이 연주해낸 피아노 협주곡은 무려 30곡에 달한다. 그 곡들을 피아니스트 김주영과 함께 ‘The Concerto’라는 시리즈로 한 번에 두세 곡씩 연주하는 기획 연주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나이가 들면서 제 연주력이 현저하게 달라졌어요. 사실 성장하던 시절 다 연주한 곡들입니다. 한창 세계적으로 유명했을 시절, 20대 때 부조니국제콩쿠르에서 우승했을 때는 테크니컬 퀄리티가 기가 막혔죠. 하지만 지금같이 예술적인 성숙함이 없었습니다. 이런 예술에 눈이 밝아지기 때문에 사실 나이 들어가는 게 행복하답니다.”

뉴욕필하모닉 음악감독이자 내년 서울시향에 음악감독으로 취임하는 지휘자 ‘얍 판 츠베덴’(Jaap Van Zweden)과 함께 오는 2025년 홍콩에서 초청연주회도 앞두고 있는 서혜경은 가장 가깝게는 올해 슈베르트 투어가 끝나면 슈베르트 작품만으로 디지털 앨범을 발매할 계획이다.

“저는 천부적으로 큰 스테이지를 즐깁니다. 그건 타고나야 가능한 일이에요.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사람들 앞에서 기죽으면 소용없거든요. 일단 저는 나가면서 카리스마로 압도합니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연주가로서의 기질이 있어도 음악적인 재주가 없으면 음악이 지루해져요. 그 말은 재미가 없다는 말이기도 하죠. 사람들을 지루하게 하면 안되거든요.”

기대된다. 이번 슈베르트 방랑자 환상곡에서 서혜경은 분명 ‘세상의 중심에 너 홀로 서라’는 왈프 왈도 에머슨의 외침을 들려주리라 기대된다.

글 김종섭


피아니스트 서혜경 국문 프로필

서혜경은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이다. 노래하는 ‘황금빛’ 피아노 톤과 다채로운 음색으로 알려진 그녀는 오늘날 피아니스트 중 몇 안 되는 로맨틱 스타일 피아노 연주 계보를 이은 특출한 연주자이다. 다이나믹하고 폭발적 파워와 예민하고 아주 섬세한 소리가 겸비된 긴장감 넘치는 비르투오소 공연으로 유명한 그녀는 점차 잊혀져 가는 피아노 연주의 황금시대 스타일로 정통 피아노 레퍼토리의 작품들을 새로운 세대의 음악애호가들에게 들려주고 있다.

서울 출신인 서혜경은 11살 때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으로 국립교향악단과 오케스트라 데뷔 무대를 가졌다. 세계를 무대로 활동한 1세대 한국인 음악가인 그녀는 예원학교 2학년 재학 중 일본으로 건너가 다나카 기요코에게 사사하고 10대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으며 뉴욕 매네스 음악학교에서 나디아 라이젠버그, 줄리어드에서 사샤 고로 드니츠키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이화경향 콩쿠르를 필두로 서혜경은 여러 대회를 석권하고 많은 상을 받았는데 1980년 부조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최고상을 수상하고 독일 뮌헨 ARD 국제 콩쿠르에서 2위 없는 3위를 거머쥐며 국제적 명성에 날개를 달게 되었다.

서혜경은 국내 주요 오케스트라들과 수많은 공연은 물론 필라델피아, 피츠버그 심포니, 필하모니아, 런던 필하모닉, 프랑크푸르트 라디오 심포니, 베를린 라디오 심포니, 슈투트가르트 라디오 심포니,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슬로바키아 라디오 심포니, 모스크바 필하모닉, 상하이 심포니 등 유수의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하였으며 리카르도 무티, 샤를 뒤투아, 이반 피셔, 드미트리 키타옌코, 파벨 코간, 알렉산더 드미트리예프, 프란츠 벨저-뫼스트, 게르트 알브레히트, 잔 루이지 젤메티, 모세 아츠몬, 아사히나 다카시, 롱 유, 정명훈 등 많은 명 지휘자와 함께 호흡을 맞추었다. 서혜경은 솔리스트로 많은 유럽과 아시아 국가에서 순회 리사이틀을 가졌으며 윌리엄 페첵 상 수상자로 뉴욕데뷔 독주회를 가진 링컨센터에서 정기적으로 공연을 열어왔다. 스타인웨이 아티스트인 서혜경은 카네기홀에서 열린 스타인웨이 창립 135주년 갈라콘서트에 초청되어 연주한 세계 유명 피아니스트 25인 중의 한 명이었다.

서혜경은 차이콥스키, 라흐마니노프, 스크리아빈 등의 낭만주의 러시아 작곡가들의 비르투오소 피아노 작품의 탁월한 해석가라는 명성을 구축하였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을 러시아 작품 스페셜리스트 연주가로 여기지 않으며 모차르트에서 베토벤, 쇼팽, 리스트, 슈만, 브람스, 드뷔시, 라벨에 이르는 넓은 레퍼토리를 가지고 있다. 서혜경은 베토벤, 쇼팽, 리스트, 무소르그스키, 스크리아빈 등의 솔로 피아노 작품을 녹음했으며 차이콥스키와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변주곡을 포함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전곡 모두를 음반으로 냈다. 2016년 5월 1일에 전설적인 지휘자 네빌 마리너와 아카데미 세인트 인 더 필즈와 녹음한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도 유명하다.
2022년에는 베토벤 소나타 디지털 음반을 출시한 데 이어 올해는 슈베르트 즉흥곡과 방랑자 소나타 디지털 앨범 출시를 목표로 오는 10월에 녹음을 계획하고 있다. 2018년 뉴욕에서 독주곡 버전의 ‘무소르그스키 전람회의 그림’을 드디어 출시했다. 첫 시도를 기점으로 11년 동안 장장 3번에 걸친 녹음 작업 끝에 이뤄진 것이다. 2007년 뉴욕에서 녹음했지만 마음에 들지 않아 출시하지 않았고, 이후 2013년 리히터가 같은 곡을 녹음했던 불가리아 소피아에서 녹음했으나 이 역시도 마음에 들지 않아 출시를 중단했다. 심지어는 이미 판매된 CD를 오히려 사들이기도 했다. 이 세상을 떠나더라도 최고의 연주로 역사적인 녹음을 남기고 가고 싶어서였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최고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피아니스트 서혜경. 60대를 맞아 비로소 피아니스트로서의 화양연화를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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