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이 문화를 바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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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지않아 불교와 기독교 가톨릭 원불교 등 모든 종교들이 하나의 건물에서 예배와 예불을 치를 날이 올 겁니다. 이미 유럽에서는 많은 교회들이 문을 닫았고 우리나라 교회들도 변경된 용도로 사용하고 있는 곳이 점차 늘고 있어요. 불교요? 불교라고 변하지 않을까요? 불교는 더욱 불리합니다. 유명 사찰들이 도심보다는 산속에 있잖아요.”
제천호숫가음악제를 준비하면서 만난 대한불교 조계종 능인선원의 원장인 지광스님은 시대 흐름을 근거로 종교시설의 변화를 그렇게 예견했다.
지광스님을 만나 만해 한용운과 관계있는 ‘선학원’의 역사를 알고 그 선학원 중심으로 음악회 프로그램을 짜려고 했다. 처음 만났을 때 지광스님의 말씀 중에 ‘종교의 저수지론’에 대해 그냥 흘러들었는데 공연을 치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종교의 합종연횡

게다가 젊은 사람일수록 종교 자체에 회의적이거나 종교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특히 인구 절벽으로 인해 종교계에 청소년, 청년층 신자들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태어남이 곧 고통이라는 ‘생즉고’를 절절히 느낄 일이 없기에 절을 찾는 이들이 줄어들고 있어 불교 역시 점차 신자를 찾기 힘들고 태어날 때부터 금이야 옥이야 키워진 아이들에게서 ‘나는 죄인’이라는 의식이 없기에 교회도 어려움에 처하고 있다.
그러나 종교의 필요성 유무를 따기지 이전에 현재 예배당이나 사찰을 다니며 믿음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 고령화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 산속에 있는 사찰까지 오르기에는 무릎관절이 너무 노화된 분들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시주가 줄면 사찰운영도 곤란해지는 것 아닌가. 시골 교회도 경제 능력이 없는 고령층들이 대부분인지라 줄어든 헌금으로 교회운영이 어려운 것은 뻔한 이치가 아닌가. 가톨릭은 예외라지만 인구가 절벽인데 무작정 후원하기란 쉽지 않겠다.
이런저런 사정을 따져보면 결국 비용절감을 위해 서너 개의 종교가 하나의 건물에 입주, 또는 시간대별로 사용하는 방식으로 변할 수 있다는 합리적인 결론에 이른다. 어쨌든 종교의 쇠퇴와 함께 살기 위한 합종연횡의 원인은 ‘그놈의 무릎’에 있을 것이라는 데 동의한다.


불경을 가사로 한 ‘어머니 은혜’

그동안 산사음악회는 주로 산속에서 펼쳤다. 그러나 이번에는 제천의 장락사 칠층모전석탑 앞에서 개최됐다. 3년 전만 해도 해발 300미터가 족히 넘는 저 높은 강천사 부근에서 산사음악회를 치렀지만, 올해는 신자들의 무릎관절을 고려해서인지 어쨌든 평지에서 개최했다. 이번 제천호숫가음악제의 첫 번째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산사음악회의 두 번째 특징은 프로그램을 트로트 음악 등 불교와 관련 없는 곡이 아니라, 우리가 그동안 몰랐지만 작곡 유래를 조금만 따져보면 모두 불교 내용으로 인정할 수 있는 가곡을 노래했다는 점이다. 누가 봐도 산사음악회에 매우 적확한 레퍼토리라 할 수 있다.
어버이날 필수곡으로 자주 불리는 ‘어머니 은혜’는 불경 중 ‘부모은중경’의 내용을 가사로 한 곡이고, 이은상이 북한에 있는 장안사를 그린 ‘장안사’와 성불사의 밤 등은 모두 불교가곡이 아닌가.


더위도 우리를 막을 순 없다

제천호숫가음악제를 개최했던 지난 7월 29일, 일찍이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지독한 폭염으로 온몸을 땀으로 목욕하면서 치러낸 야외무대였지만, 가장 큰 감동은 성악가들의 열정을 넘어 제천시민들의 열정에서 찾을 수 있었다. 못해도 600명은 참석할 것이라는 이충형 위원장의 예상이 딱 들어맞았기 때문이다. 그 더운 날 부채질을 하면서도 진실로 즐거워하는 모습이 바닥에 흥건했다.
앙코르곡 ‘붉은 노을’을 노래할 때 모두가 일어나 떼창으로 화답하는 바람에 ‘그깟 더위’는 노을과 함께 저세상으로 떠나버린 듯싶었다.
실로 감동과 재미, 열정이 가득한 무대였다. 내년에는 또 어떤 무대를 펼쳐 보일까. 더 감동적인 콘서트로 제천의 사랑에 보답해야겠다.

발행인 김종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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