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의 우정이 만들어 낸 음악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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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자삼우(益子三友)란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논어(論語)의 계씨편(季氏篇)에서 나온 말로 ‘사귀어서 도움이 되는 세 가지 벗’을 말한다. 서로 사귀어서 도움이 되는 벗으로 첫째 정직한 사람, 둘째 성실한 사람, 셋째 견문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인데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더라도 ‘세 명의 친구를 가지면 성공한 인생이다’라는 말처럼 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진정한 벗을 가지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친구로 인해 인생이 어그러진 경우도 많이 볼 수 있듯이 말이다.
여기 인생에 도움이 되는 세 가지 벗 이상으로, 더 나아가 ‘가족’이 되어준 친구들을 가진 한 음악가가 있다. 이 음악가의 친구들은 정해진 거처 없이 떠도는 친구에게 숙식을 제공해 주며 음악가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또한 그의 작품을 나누는 모임을 만들어 그가 음악적으로 더욱 성장하고 널리 알려질 수 있도록 해주었다. 친구들의 따스한 사랑을 받은 음악가는 바로 오스트리아의 작곡가이자 ‘가곡의 왕’으로 불린 프란츠 슈베르트(Franz Schubert) 이다.

슈베르트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와 형에게 음악을 배우기 시작했고 짧은 기간에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7살에 음악에 재능 있는 어린이를 선발하는 오디션에 선발된다. 이때 슈베르트의 재능을 알아본 심사위원이 우리가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모차르트의 재능을 질투하던 궁정악장, ‘안토니오 살리에리’(Antonio Salieri)이다. (실제로 모차르트를 질투했는지에 대해선 근거가 없는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슈베르트는 11살에 음악 영재들을 위한 ‘슈타트콘빅트’(Stadtkonvikt, 황실에서 운영하는 기숙학교)에 입학하였고 빈 궁정 예배당 소년합창단의 일원이 되며 체계적인 음악교육을 받았다. 이 시기에 슈베르트 인생의 최초 후원자가 되어준 ‘요제프 폰 슈파운’(Josef von Spaun)을 만나게 되면서 자신의 음악 세계를 인정해 주는 친구들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 이후 변성기가 오면서 학교를 중퇴하였지만 슈베르트의 재능을 높이 산 살리에리에게 계속해서 음악을 배웠다. 1814년부터는 교사로 재직하며 작곡을 시작한 지 몇 년 되지 않아 ‘들장미’(Heideroslein, D.257) ‘마왕’(Erlkönig, D.328)을 포함한 140개가 넘는 가곡을 작곡하였다. 교직 생활로 인해 자유롭게 작곡 활동을 하지 못하는 것에 답답함을 느꼈던 슈베르트는 1816년 교직을 그만두고 이곳저곳을 떠돌며 생활하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그의 음악을 사랑한 친구들이 그가 계속해서 음악 작업과 활동을 해나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후원해 주었다. 이 모임은 화가, 작가, 법률가, 배우 등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이 모여 시와 문학, 미술, 그리고 슈베르트의 음악을 나누고 토론하는 자리로 활성화되었는데 이 모임이 바로 ‘슈베르티아데’(Schubertiade)이다. 슈베르티아데는 ‘슈베르트의 밤’이란 뜻으로 슈베르트를 소중히 여기는 친구들의 우정을 느낄 수 있다. 슈베르티아데를 통해 슈베르트는 계속해서 곡을 발표해 냈고 당시 최고의 인기 가수였던 바리톤 ‘미하엘 포글’(M. Vogl)을 만나게 된다. 슈베르트의 가곡 ‘마왕’을 초연한 성악가이기도 한 포글은 슈베르트의 곡을 듣고는 열렬한 지지를 보내며 순회공연을 함께 하는 등 그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줬다. 그 덕분에 슈베르트는 명성을 얻게 되었다.


하지만 이 시기에 슈베르트에게 은인으로 볼 수도 있는 친구로 인해 불행이 찾아오게 된다. 극작가인 ‘프란츠 폰 쇼버’(Franz von Schober)는 슈베르트의 재능을 높이 사며, 오갈 곳 없는 그를 거두어주고 주위 친구들에게 소개해 주며 ‘슈베르티아데’가 시작하는 데 큰 도움을 준 인물이다. 하지만 쇼버는 슈베르트를 향락을 즐기는 일에 끌어들였고, 밤새 술을 마시며 향락에 빠지게 된 슈베르트는 결국 매독에 걸리게 된다. 친구로 인해 자신의 재능을 꽃피울 기회를 얻었으나 동시에 친구 때문에 31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슈베르트라는 꽃은 지고 말았다. 슈베르트는 ‘가곡의 왕’이란 이름 대신 ‘다작의 왕’이라고 불려도 될 만큼 일생동안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는 1200여 곡의 작품을 남겼으며, 특히 600여 곡에 달하는 가곡은 슈베르트 음악 세계의 중심이 된다. 이렇듯 짧은 생애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곡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주변에 늘 함께 있어 준 친구들이 영감이 원천이 되어준 덕분이 아닐까 싶다.
병세가 악화되면서 육체와 정신이 무너져 내리는 상황에서도 피아노 소나타, 연가곡집 ‘백조의 노래’ 등의 훌륭한 작품이 탄생한 것을 보면서, 그가 조금 더 오래 살았다면 더 아름다운 작품들을 남기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슈베르트에게는 유명하지 않았던 자신의 곡을 적극적으로 세상에 알리고, 일찍 죽음을 맞이한 자신의 작품을 수집하여 보존하는 등 끝까지 슈베르트에 대한 우정을 지켜나가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는 짧은 생을 살아갔지만 진정한 친구들과 함께하며 음악을 할 수 있었던 슈베르트. 그가 행복한 삶을 살았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슈베르트 대표 가곡
(Erlkönig, D.328)
슈베르트가 1815년 작곡한 걸작 중의 하나로 괴테의(Johann Wolfgang von Goethe) 동명의 시에 피아노곡을 붙인 것이다. 마왕이 아이를 죽음으로 몰아간다는 내용으로 해설자, 아버지, 아들, 마왕이 등장하는 매우 극적이고 드라마틱한 음악이다. 곡 시작부터 연속해서 나오는 말발굽 소리를 묘사한 셋잇단음표의 연타가 곡의 긴장감을 높이며, 한 명의 성악가가 1인 4역으로 각 인물을 표현하면서 한순간도 긴장을 놓칠 수 없는 상황이 생동감 있게 전달된다.

글 한숙현 (리음아트앤컴퍼니 이사, 음악감독)

[참고자료 및 링크]

문양일. 영원한 방랑자의 음악-슈베르트. 경북매일. 2019.05.28
https://www.kbmaeil.com/news/articleView.html?idxno=816943

신상호. 슈베르트의 사랑과 우정. 전북일보. 2010.11.29
https://www.jjan.kr/article/20101129377226

오수현. 누가 슈베르트를 밤의 향락으로 이끌었나. 매일경제. 2021.03.13
https://www.mk.co.kr/news/culture/9785439

정혜원. ‘가곡의 왕’ 슈베르트 후원한 사교 모임 ‘슈베르티아데’의 정체는?. 올댓아트. 2018.12.18
https://www.khan.co.kr/culture/culture-general/article/20181218134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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