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가들이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

28

진화론을 주장한 ‘찰스 다윈’은 “인간의 조상은 아마도 남자였든 여자였든 아니면 둘 다였든 서로에 대한 사랑을 정교한 언어로 표현하는 힘을 갖기 전에는 음악적 멜로디와 리듬으로 상대방을 매혹시키려고 했다”고 말한다. 1871년 출간되었던 ‘인간의 기원과 성에 관한 선택’ (The Descent of Man and Selection in Relations to Sex)에서 찰스 다윈은 새들이 주로 번식기에 천적들에게 노출되는 위험한 상황에서도 짝이 될 만한 상대 새에게 짝짓기를 위한 유혹의 노래를 부르는 것은 생식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인간 역시 새들처럼 ‘성 선택’으로 인해 진화한 것이라고 보았는데, 이는 인간에게 있어 음악이 자신들의 유전자를 후대에 남기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보는 것이다. 최근엔 음악의 기원을 이성을 향한 구애에서 찾은 찰스 다윈의 분석이 틀렸다는 학계 주장이 나오기도 했지만, 우리가 음악을 통해 사랑을 표현하고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이 많은 부분에 음악이 스며들어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대중가요에서도 대부분의 노래 주제가 사랑인 것처럼 시간을 거슬러 오래전 음유시인들부터 지금까지 많은 음악가들이 ‘사랑’을 음악으로 표현해 왔다. ‘사랑’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음악가는 낭만주의 시대를 풍미한 로베르트 슈만(Robert Schumann)이다. 슈만은 어릴 적부터 피아노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으나 법률을 전공하게 된다. 하지만 음악에 깊게 빠져있었기 때문에 결국 다시 피아노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는데 이때 만난 사람이 비크(Friedrich Wieck) 교수이다. 비크 교수에게는 딸인 클라라가 있었는데 그녀는 어린 나이에 피아노에 두각을 드러내며 장래가 촉망되는 피아니스트였다. 슈만이 무리한 연습으로 인해 손가락을 다쳐 회복 불능의 상태가 되어 피아니스트가 아닌 작곡가로서 활동했을 때 클라라와 열렬한 사랑에 빠지게 되었으나 이들의 사랑은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아버지 비크 교수의 반대로 법정에 서기도 했지만, 서로에 대한 열렬한 사랑으로 극복하였다. 그렇게 행복한 생활을 이어가다 슈만의 유전적인 요인과 건강 악화로 인해 그는 심한 우울증을 앓게 되었고, 라인 강에 몸을 던져 투신자살을 시도하기도 하였다. 결국 정신병원에 수용되었고 2년 동안 요양 생활을 하면서 클라라를 그리워하다 쓸쓸히 생을 마감하게 된다. 이후 클라라는 유럽 전역을 돌면서 공연을 하며 슈만의 곡을 세상에 알렸고, 슈만의 명성은 이전보다 높아지게 되었다. 클라라로 인해 슈만의 곡이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슈만의 클라라를 향한 사랑은 그의 음악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비크 교수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클라라와 결혼한 1840년에는 사랑의 충만함에 빠져 영감이 솟구쳤는지 무려 183곡이나 되는 가곡을 작곡해내며 그 해는 ‘가곡의 해’로 불리기까지 한다. 결혼식 전날 클라라에게 결혼 선물로 유명한 시인 26명의 시를 골라 곡을 붙인 가곡집 ‘미르테의 꽃’(Myrthen op.25)을 바쳤다. ‘미르테’는 신부가 결혼할 때 화관을 장식하는 ‘은매화’라는 꽃으로 순결을 상징한다고 한다. 특히 첫 번째 곡인 ‘헌정’(Widmung)은 뤼케르트의 시를 가사로 하여 연인에 대한 진실한 사랑을 표현하는 매우 아름다운 곡으로 알려져 있다. 시의 일부를 소개하자면 이렇다.

Du meine Seele, du mein Herz,
그대는 내 영혼이며 심장,

Du meine Wonne, du mein Schmerz,
내 기쁨이며 나의 고통,

Du meine Welt, in der ich lebe,
당신은 나의 세상, 그대는 내가 살아가는 이유

Mein Himmel du, darein ich schwebe,
당신은 나의 하늘이며, 그 속으로 나는 날아가리

O du mein Grab, in das hinab
나의 모든 근심은

Ich ewig meinen Kummer gab!
내 무덤 안에 영원히 묻었다오


슈만의 비참한 말년과 최후를 맞이하였을 때 클라라와 가족들을 돌봐준 음악가가 있었다. 바로 고전적 낭만주의 음악가로 불리는 브람스(Johannes Brahms)이다. 브람스는 독일 작곡가로 어려서부터 피아노, 첼로와 같은 악기를 배우며 음악 실력을 키워나갔다. 1853년 바이올리니스트 요아힘(Joseph Joachim)과 슈만 부부를 만나면서 음악적 행로에 큰 영향을 받게 되었다. 슈만은 브람스의 재능을 알아보고 ‘음악신보’(Neue Zeitschrift für Musik)에 글을 써 브람스를 세상에 알렸다. 이뿐만 아니라 브람스의 작품을 출판하는 데도 도움을 주었다. 이후 브람스는 오페라를 제외하고 교향곡, 합창곡, 피아노 소나타 등 여러 분야에서 작곡 실력을 발휘하며 성공적인 음악 생활을 이어갔다. 브람스는 슈만 부부가 안타까운 상황에 놓이자 클라라와 가족들을 보살폈고 막내 펠릭스가 태어나자 ‘슈만 주제에 의한 변주곡’(Variations on a Theme by Robert Schumann)을 써서 그녀를 위로하기도 하였다. 클라라 역시 힘든 상황에서 브람스가 전해오는 마음에 위로를 받았으나 그녀는 그와의 관계에 선을 그었다. 하지만 브람스의 클라라를 향한 마음은 식지 않았고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다.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계속해서 클라라와 가족들을 도운 브람스는 클라라가 죽음을 앞둔 것을 짐작하고 ‘4개의 엄숙한 노래’(4 Serious Song, Op.121)을 작곡한다. 이후 클라라가 세상을 떠나고 이듬해 브람스 역시 죽음을 맞이한다. 평생 독신으로 산 브람스가 어떤 마음으로 클라라를 일평생 지켰을지 그 마음을 가늠하긴 힘들지만 이 둘 사이에는 단순히 남녀 간의 사랑을 너머의 그 무언가가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교향곡 4번 e단조’(Symphony No.4 in e minor, Op.98)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이란 계절과 잘 어울리는 이 곡은 고전주의적 느낌을 많이 담고 있는 작품이다. 단조로 된 교향곡으로 브람스 내면의 쓸쓸함과 고독감이 표현되어 있으며 ‘어둠의 근원’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동안 쓴 교향곡들이 베토벤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는데 4번 교향곡으로 인해 베토벤에게서 완전히 벗어나 브람스만의 음악적 색채를 깊이 느낄 수 있는 곡이다.

글 한숙현 (리음아트앤컴퍼니 이사, 음악감독)

[참고자료 및 링크]

김용만. 사랑을 놓아주고 간 슈만 vs 사랑을 뒤따라 간 브람스. Newsverse. 2023.02.19
https://www.newsverse.kr/news/articleView.html?idxno=3006

김형찬. 노래는 시대를 타고…진화하는 음악. 한겨례. 2014.05.22
https://www.hani.co.kr/arti/culture/music/638504.html

박한나. [클래식, 기억하다] 쓸쓸하지만 숭고한 음악, 가을에는 브람스를 기억하세요. 문화뉴스. 2020.10.07
http://www.mhn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18432

진혜인.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엠디저널. 2022.11.24
http://www.mdjournal.kr/news/articleView.html?idxno=35551

ART insight 문화특집. [Closer to Classic] 클래식에 담긴 ‘헌정’이야기. 아트인사이트. 2015.07.13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18045

Loa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