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삼각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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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유년 시절부터 자전거를 참 좋아했다. 어릴 적 세발자전거를 타다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선물로 보조 바퀴가 달린 두발자전거를 받았을 때는 마치 어른이 된 느낌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가 보조 바퀴를 떼어 주실 때 ‘과연 내가 중심을 잃지 않고 탈 수 있을까?’ 하고 두근거렸던, 그리고 얼마지 않아 별로 어렵지 않게 두발자전거로 달리게 되었던 흥분스러운 추억이 있다. 이러한 추억은 아마도 필자뿐 아니라 독자들 누구나 가지고 있으리라 짐작된다. 자전거 타는 것을 좋아해서 대학 시절에는 인천에서 부천까지 약 한 시간여를 자전거로 통학하기도 했다. 이후에 접이식 미니벨로들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일반 자전거와 비교하면 약간은 고가인 스트라이다 (Strida) 를 구매해 대중교통과 갈아타며 서울에 오가기도 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삼각형’이라는 테마를 가지고 나온 스트라이다는 타고 다닐 때도, 접어서 휴대할 때도 주변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2009년에 처음 구매했던 스트라이다는 당시 60만 원대에 판매되었으니 20만 원대의 일반 자전거와 비교하면 가격이 꽤 나가는 편이었으나, 1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타이어를 두어 번 교체한 것 외에 별 고장 없이 잘 타고 있으니 그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말할 수 있다. 현재는 100여만 원을 훌쩍 호가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애지중지하던 스트라이다를 훌쩍 커버린 아들에게 양도하고 지하철역까지의 왕래를 목적으로 평범한 자전거를 하나 마련하였다. 별 탈 없이 몇 년간 타고 다녔는데 브레이크가 헐거워지고 타이어에 바람이 빠져서 자전거 수리점에 가게 되었다. 브레이크는 선을 갈아야 해서 이만 원이나 주었고 타이어는 펑크를 때우느라 오천 원, 모두 이만 오천 원을 주고 수리했다. 그런데 며칠 지나서 타이어에 바람이 또 빠져버려 질질 끌고 가서 다시 수리를 부탁했다. 재발생된 수리 건이라서 고맙게도 다시 수리비는 받지 않았다. 그런데 며칠 지나서 또 바람이 빠져 버렸고 아직 시간이 없어 수리점에 가지 못하여 몇 주일 동안 타지 못하고 멀뚱멀뚱하니 세워두고 있다. 이만 원이나 들여서 수리한 브레이크가 아무리 잘 들어도 바퀴가 없으니 자전거는 쓸모가 없었다. 역시 자전거는 바퀴가 중요하다.
자전거를 타면서 바퀴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 그런데도 수리점에 두세 번을 다녀오고도 움직일 수 없는 자전거를 보고서야 이 생각을 하게 된다니 참 한심한 노릇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삼각형’ 접이식 미니벨로 <스트라이다>

대한민국 클래식 음악계는 그 수요에 비교하면 콘서트 전문 홀이 많지가 않다. 그러다 보니 국내에서 음악을 공부하고 해외 유학을 하여 수많은 각종 국제 콩쿠르에 입상하고도, 귀국하여 국내에서 리사이틀을 하려면 마치 시험을 또 치르듯이 대관 신청을 해놓고 당락을 기다리는 유쾌하지 않은 현상이 벌어진다. 이런 상황임에도 세계의 유명 콩쿠르와 무대를 장악하다시피 하는 한국의 음악가들을 보면, 우리는 참 기적적이고 자랑스러운 민족이라고 여겨진다.
필자의 고향인 인천을 예로 들자면 콘서트 전문 홀이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는 ‘복합 문화 공간’만 있을 뿐이다. 그러다 보니 그다지 넓지 않은 연주 홀 안에서 마이크를 쓰게 되는 경우도 생기고, 그러기 위하여 또 비싼 예산을 들여 음향장치를 갖추는 아이러니가 발생하기도 한다. 결국, 공명이 중요한 클래식 연주가는 그 홀에서 공연하게 되면 음향 면에서 손해를 보게 된다.

관객으로서 음악회에 간다는 것은 좋은 선율과 아름다운 음향을 듣는 것이 우선이다. 독주회를 들으러 갈 때와 뮤지컬을 보러 가는 심정이 같을 수 없다. 그런데도 울림이 중요한 콘서트와 음향 증폭 시스템이 중요한 뮤지컬이나 대중음악회의 공연을 같은 연주 홀에서 진행한다는 당당함이 놀랍기만 하다. 얼마 전 친분 있는 음악가 한 분이 유명 오페라 극장에서 공연한 뮤지컬을 보고 와서 자신의 SNS 게시판에 “음향감독이 귀가 먹지 않았나 생각했다.”라고 써 놓은 글을 보고 무척 공감했던 적이 있다. 무조건적으로 증폭시킨 큰 소리로 정말 아름다운 음악이 가려지는 경우를 너무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오페라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대한민국에는 오페라 극장은 있는데 그 안에 오페라단이 없다. 자신의 전용 연주 공간이 있는 오페라단이 없다. 정단원을 보유하고 있는 오페라단이 없다. 그런데도 국내에서는 오페라가 일 년에 수십 회 올려지고, 한국의 성악가들은 세계 오페라 극장을 종횡무진 누비고 있다. 마치 자전거가 틀은 없는데 바퀴만 굴러가는 것 같다.

아름다운 공명으로 유명한 모스크바 볼쇼이 극장 내부

필자는 수년 전 모 대학 음악연구소에서 개설한 뮤직큐레이터 과정 심화반의 교육을 맡아 교육을 한 적이 있었다. 그동안 모스크바에서 또 국내에서 오페라와 각종 공연에 출연하고 기획했던 경험과 노하우를 전해줄 기회였었다. 예비 공연 기획자들이 직접 꾸미는 공연을 지도하고, 이 과정에 참여하면서 우리나라 공연예술계의 새로운 희망을 보았다. 이제 단순히 홀이 있고 연주자가 있으니 공연을 하자는 식이 아니라 어떠한 기획 의도를 가지고 어떤 청중에게 어떤 연주자를 선보여야 할지, 어떠한 제작 과정을 거쳐 어떻게 홍보하고 관객의 발길을 끌어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연구하는 이들이 모여 있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르겠다. 마치 스따니슬라브스키(러시아의 연극연출가, 오페라 연출가, 배우)가 녜미로비치-단첸코(러시아의 극작가ㆍ연출가)와 함께 모스크바 예술극장 창립을 앞두고 느꼈던 그 아름다운 예감이었다고나 할까?
이제 이 아름다운 움직임을 통해서 연주자, 교육가, 기획 및 제작자, 해설 및 진행자들이 각자 자기의 역할로 공연을 만들어가고 관객에게 기쁨과 감동을 주게 된다고 생각하니 정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삼각형’이 여기서 만들어지겠구나 싶었다. 시간이 흘러 필자는 그 교육과정의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그 과정을 수학하고 여러 가지 모습으로 공연무대에서 일하는 후배 공연예술인들을 만날 때면 그 뿌듯함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다.

수년 전 필자가 강사와 연주자로 함께했던 모 대학 음악연구소 뮤직 큐레이터 과정의 종강 연주회 장면

콘서트홀이나 오페라 극장과 같은 공연장이 자전거의 틀이라면 연주가와 관객은 자전거의 두 바퀴라고 할 수 있겠다. 과연 이 아름다운 삼각형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타이어의 바람이 빠져서 굴러가지 못하고 세워져 있는 필자의 자전거를 두고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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