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의 데자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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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 여행을 하고 있었다. 국내 여행이었지만 제법 긴 시간을 기차에 앉아 있어서인지 피곤함이 몰려온다. 옆자리에는 한 여인이 앉아 있었고 나는 멀미를 피하려고 창가자리에 앉았다. 얼마나 달렸을까, 많은 열차들이 선로를 바꾸느라 정차는 하지 않으면서 속도를 늦추는 간이역을 지나고 있었다. 내가 앉은 창가 바깥쪽, 같은 방향으로 조금 빠른 속도의 기차가 하나 지나간다. 화물열차였다. 컨테이너처럼 문이 잠겨있는 몇몇 열차들이 지나고 뚜껑을 덮지 않은 낮은 화물칸이 지나갈 때였다. 슬쩍 곁눈질로 보던 나는 창밖에 믿을 수 없는 장면에 소스라치게 놀라 소리를 지를 뻔했다. 뚜껑을 덮지 않은 낮은 화물칸에 실려 있는 짐은 사람들이었다. 시체더미였다. 생전 처음 보는 광경에 너무 놀라 소리도 못 지르고 간신히 힘을 내어 옆자리에서 잠들어 있는 여인을 팔꿈치로 두드려 깨우려 했으나 몸이 움직이지를 않았다. 목에서는 간신히 “꺼억, 꺼억” 작은 신음만 새어 나오고 눈을 감고 고개를 돌리려 했으나 전혀 움직일 수가 없었다. 시체더미는 마구 쏟아부어 놓은 듯 들쭉날쭉 쌓여 있었다. 열차 바깥으로 팔이며 다리며 삐쭉삐쭉 어지럽게 나와 있었다.
꿈이었다. 지독한 악몽이었다. 가위에 눌린 것이었다. 2014년 4월 11일 새벽이었다.

1812년 프랑스와의 조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미하일 글린카의 ‘자정의 사열’(Ночной смотр)이라는 Fantasy Romance(환상 가곡)는 나폴레옹의 예전의 영광을 풍자한 바실리 주코프스키(Василий Жуковский)의 시를 바탕으로 작곡했다. 멸망한 나폴레옹의 군대가 한밤중에 무덤에서 일어나 사열 한다는 가사이다. 4절로 되어 있는 이 노래는 각 절마다 불길한 전조와 같은 전주 후에 ‘매일 밤 12시가 되면 무덤에서~’로 시작한다. 피아노는 작은 뿔 나팔, 북소리 등의 소리를 모방한다. 고수, 나팔수에 이어 나폴레옹이 등장한다. 나폴레옹이 장군들에게, 장군들이 병사들에게 “프랑스, 성 헬레나” 암호를 전하는 내용으로 진행되며, 음산한 느낌으로 종지된다. 이 노래를 부르노라면 마치 미국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의 뮤직비디오 ‘스릴러’(Thriller)의 장면을 보고 있는 듯하다.

자정의 사열

매일 밤 12시가 되면 무덤에서 고수가 일어나네.
그는 앞뒤로 다니며 작은북을 울리고, 경보를 울리네.
보병, 기병대, 척탄병도 일어나네.
러시아의 눈 아래에서
이탈리아와 아프리카, 팔레스티나에서 온 병사들이 일어나네.

매일 밤 12시가 되면 나팔수가 무덤에서 일어나네.
그는 앞뒤로 행진하며 크게 경보를 울린다네.
어두운 무덤에서 기병대가 흰머리의 병정들이
콧수염 난 중기병들이 일어나서
북에서 남으로 날아다니네, 동에서 서에서 말을 타고 질주하네.

매일 밤 12시가 되면 무덤에서 장군이 일어나네.
그는 제복을 갖춰 입고, 군모와 군화를 신고
늙은 전투마에 올라 천천히 전선을 향하네.
부관들은 그 뒤를 따르고 병사들은 거수경례를 올린다네.
장군은 그 앞에 멈춰서고 주위엔 군악대의 주악에 맞춰 군대가 행군하네.

매일 밤 12시가 되면 장군은 부관들을 모두 소집한다네.
그리고 자신에게 가까이 불러 세우고 암호를 속삭인다네.
병사들은 암호를 전달한다네.
그 암호는 “프랑스”,
그 암호는 “성 헬레나”

매일 밤 12시가 되면 어두운 무덤으로부터
이렇게 자신의 늙은 병사들에게 황제가 되어 일어난다네.
매일 밤 12시가 되면, 매일 밤 12시가 되면…….

– 자정의 사열(Ночной смотр), (V. Zhukovsky 시, M. Glinka 곡)

1778년 헤르더(Johann Gottfried von Herder)가 덴마크 민요로부터 독일 시로 소개한 것을 괴테가 ‘Der Erlkönig’으로 발표하자, 18세의 슈베르트가 영감을 받아 곡을 붙인 가곡 ‘마왕’은 어린아이의 악몽과 죽음을 노래한다. 1인 4역-해설, 어린이, 아버지, 마왕-을 노래하다 보면 죽음의 마왕도, 달래는 아버지도, 두려워하는 어린아이도 모두 악몽의 한 부분처럼 느껴진다.

어둠 속 바람을 가로질러 이렇게 빨리 달리는 자가 누군가?
그것은 아이를 안고 있는 한 아버지.
아이를 그의 품에 싸고 있네,
아이를 따듯하게 팔에 꼭 안고 있네.

“아가, 무엇이 무서워 얼굴을 숨기니?”
“아버지, 아버지는 마왕이 보이지 않아요?
관을 쓰고 긴 옷을 입은 마왕이?”
“얘야, 그건 그냥 안개 모양일 뿐이야.”

‘귀여운 아가, 이리 오너라, 나와 가자!
나와 재미있는 놀이를 하자꾸나
갖가지 색깔의 꽃을 볼 수 있을 거야.
내 어머니는 금으로 된 옷이 많단다.’

“아버지, 아버지 들리지 않으세요
마왕이 내 귀에 달콤하게 속삭이는 것이?”
“조용히, 가만히 있거라, 오 내 아들아
마른 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란다.”

‘착한 아가, 나와 같이 가자꾸나?
내 딸들이 널 정중히 기다리고 있단다
내 딸들이 밤마다 축제를 열거야
널 위해 노래 부르고 춤출 거야.’

“아버지, 아버지 보이지 않으세요,
저 어두운 곳에 마왕의 딸들이?”
“아들아, 아들아 잘 보인단다
그것은 잿빛의 오래된 버드나무란다.”

‘난 널 사랑해, 네 잘 긴 모습에 반했어
그래도 내 말을 듣지 않으면 강제로 끌고 가겠어.’

“아버지, 아버지 그가 내 팔을 잡았어요!
마왕이 절 다치게 했어요!”
아버지는 두려워 급히 말을 달린다
팔에는 떨면서 신음하는 아이를 안고서
땀에 젖고 지쳐서 집 마당에 도착했을 때에는,
그의 팔의 아들은 이미 죽어 있었다.

– 마왕(Der Erlkönig) (W. Goethe 시, F. Schubert 곡) (‘고클래식’에서 발췌)

친구 A. Golenischev-Kutuzov의 시에 곡을 붙인 M. Mussorgsky의 ‘죽음의 노래와 춤’은 그의 성악 작품 중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이 작품은 4개의 소곡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앞의 3곡은 1875년에, 마지막 곡은 1877년에 완성되었다. 이 작품의 4곡 모두에서 부드럽게 인간을 위안하는 부분이라곤 찾아볼 수 없이, 죽음이 예고도 없이 찾아오는 순간을 냉정히 그리고 있다. 죽음은 홀연히 찾아와 아직 그를 맞을 준비가 채 안 된 이 들을 이승으로부터 데려간다는 내용이다. 그중 첫 곡 ‘자장가’는 병든 자식의 요람 앞에 있는 한 어머니에게 죽음이 찾아와 마침내 음울한 자장가와 함께 자식을 데려간다는 아픈 내용이다.

“죽음의 노래와 춤” 제1곡 ‘자장가’의 일러스트레이션(Elizaveta Vaseyna-Prokhorova작)

아이가 울고 있다.
양초의 어두운 빛이 희미하게 주위를 비추고
엄마는 졸지도 못하고 밤새 요람을 흔든다.
새벽에 죽음이 문가에 다가와 천천히 노크한다.
몸을 떨며 엄마는 놀라서 뒤돌아본다.

“두려워 말라, 곧 아침이 온다.
울고 슬픔에 잠겼다. 그대는 지쳤다. 쉬어요.
내가 곁에 앉아서 아이가 죽지 않도록 잠재울 테니
조용히 아기를 괴롭게 하기는 싫어요.
그대보다 달콤한 노래를 부르리다.”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죽음은 노래한다 : “자장, 자장…”

“쉿! 아이가 울고 있어요. 가슴 아파하고 있어요.”
“아이는 나와 함께 뛰어 놀 것이요 : 자장, 자장…”
“뺨이 창백해지고, 호흡이 약해지고 있어요.
제발 조용히 해주어요!“
“좋은 징조가 있을 거요. 고통은 가라앉을 것이요.”
“꺼져! 저주스러운 죽음이여! 너는 내 기쁨을 가져가려 한다.”
“아니, 나는 아기에게 평화로운 잠을 가져다 줄 것이오 : 자장, 자장…”
“가여워라! 잠시라도 그 끔찍한 노래를 멈추시오!”
“보아요, 아이가 고요한 노래로 잠들었다오 : 자장, 자장…”

– 무소륵스키 ‘죽음의 노래와 춤’ 중 제1곡 ‘자장가’ (A. Golenischev-Kutuzov 시, M. Mussorgsky 곡)

해마다 4월이 되면 9년 전 꾸었던 악몽이 데자뷰가 되어 한밤의 꿈을 침범하곤 한다. 그해 4월은 거의 모든 대한민국의 국민이 밤잠을 설치며 아이들의 귀환과 영혼의 안식을 빌며 가슴 아파하였다. 불합리한 제도와 부정한 권력의 검은 손이 우리의 어린 아들들에게, 소녀들에게 손을 뻗어 죽음에 이르게 하였다. 지난해 10월에는 150여 명의 젊은 영혼들을 또 허망하게 떠나보내야 했다. 감정에 호소하는 직업을 가진 예술가들에게 특히나 견딜 수 없이 힘든 시간들이었다. 희생자들의 부모와 가족들은 심장을 도려내는 아픔을 안고, 바라보는 국민들도 무기력증과 시도 때도 없는 눈물로 하루하루를 힘겹게 지내왔다.
다시는 꾸고 싶지 않은 지독한 악몽이 예고도 없이 데자뷰가 되어 들이닥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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