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수준의 오페라 하우스 조성을 추진하는 인천, 그 허상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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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1995년 7월 28일 처음 모스크바의 땅을 밟았다. 유학을 목적으로 간 모스크바는 모든 것이 좋았다. 그러나 정작 입학하려고 했던 모스크바 국립음악원의 건물을 보고는 살짝 실망을 했던 기억이 있다. 생각했던 것보다 학교 건물의 규모는 작았고, 4층짜리 ‘ㄷ’자 형태의 건물 하나가 전부인 학교의 외관은 세계 4대 음악원 중 하나라는 부풀었던 기대감을 한풀 꺾이게 하였다. 우리나라의 음악대학들이 거대한 종합대학 안에 자리한 것과는 다른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모스크바 국립음악원 정경

그러나 모스크바에 몇 년을 살며 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니 이 실망감은 사라지게 되었다. 모스크바 국립음악원은 대통령 궁인 크레믈에서 도보로 15분 정도의 거리에 위치해 있다. 우리로 치자면 청와대에서 숭례문 정도의 거리쯤 되는 셈이다. 그 주변에 유명한 ‘볼쇼이 극장’이 있고, 필자가 단원으로 있었던 ‘스타니슬라브스키 오페라 발레 극장’, 시립 극장인 ‘노바야 오페라 극장’, 모스크바 필하모니 연주홀인 ‘차이콥스키 홀’, 또 뮤지컬 전용 극장인 ‘오페레타 극장’, 그리고 10여개의 크고 작은 연극 극장이 위치해 있다. 러시아 심장부인 크레믈이 음악원과 공연장으로 둘러싸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우리가 흔히 음악도시라고 인정하는 비엔나, 베를린, 파리, 밀라노 등 유럽의 여러 도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볼쇼이 오페라 극장
스칼라 오페라 극장

전문 공연장이 필요하다
국제 수준의 오페라 하우스를 추진하는 “음악 도시, 인천” 마스터플랜에 관한 기사를 보고 인천에 거주하고 있는 필자로서는 ‘역시나’ 하는 아쉬움이 들 수밖에 없었다. 시립 오페라단이 없는 인천에서 오페라 하우스를 건립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대관 극장을 만들자는 것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주지하시다시피 대한민국에는 국립오페라단을 비롯해서 단원을 제대로 갖춘 오페라단이 없다. 마찬가지로 오페라단을 운영하고 있는 오페라 극장도 없다. 도대체 왜 이럴까 생각해 보았더니, 공연장을 건립할 때 이미 ‘대관’을 목적으로 시작하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서울에 위치한 예술의전당 오페라 하우스에는 이미 오래 전부터 적지 않게 뮤지컬 공연이 더 자주 열리고 있다. 다들 인정하겠지만 공명이 중요한 오페라와 음향시스템이 좋아야 하는 뮤지컬은 같은 공연장에 올라갈 수 없다. 그런데도 오페라 극장에 뮤지컬 공연이 오르는 이유는 오페라 극장에 오페라단이 없기 때문이다. 오페라는 대관을 해봐야 3~4일인데 뮤지컬은 한 달, 두 달씩 대관을 하기 때문에 공연장을 관리하는 입장에서는 수입이나 관리 측면에서 훨씬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서울에 예술의전당이 있고, 세종문화회관이 있고 많은 음악대학들이 있고, 각종 음악 페스티벌이 열리지만 해외에서 서울을 일컬어 음악 도시라고 하지는 않는다. 음악도시라고 하면 그 생각부터 달라야 한다. 다목적 극장이 아닌 공연단을 갖춘 목적 공연장이 건립되어야 한다. 국악 극장에 국악단이 있듯이 오페라 극장에는 오페라단과 발레단이, 뮤지컬 공연장에는 뮤지컬 공연단이 있어야 한다.

아트센터 인천과 오페라하우스 부지

그 도시의 예술고등학교를 졸업한 인재들이 예술대학을 진학하고, 그 도시의 전문공연장의 예술단에서 일하게 되는 예술 인생의 로드맵이 그려지는 도시가 진정한 음악도시가 아닐까? 우리나라의, 우리 도시의 유수한 공연장들이 외양만 그럴듯한 랜드마크를 목적으로 건축되는 것이 아니라, 예술 인재들이 모여 일하게 되고, 시민들은 그 수준 높은 예술을 함께 공유하는 도시, 그것이 진정한 음악 도시가 아니겠는가?
국제수준의 오페라 하우스를 조성하겠다는 인천은, 왜 오페라 하우스가 필요하고, 그 안에 무엇을 채워나갈 것인지 심사숙고하기를 바란다. 단지 랜드마크로서의 또 하나의 대관 극장을 만들 것인지, 아니면 예술가와 시민들이 어우러져 진정한 음악을 향유할 수 있는 음악도시를 만들어 나가는 공연장을 지을 것인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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