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 앙드레 지드의 ‘전원 교향악’, 베토벤 교향곡 6번 ‘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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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문’(La porte etrote) ‘지상의 양식’(Les nourritures terrestres) ‘사전꾼들/위폐범들 ’(Les faux-monnayeurs) ‘교황청의 지하실’(Les caves du Vatican) ‘도스토예프스키 론’ (Dostoievsky d’apres sa correspondence)와 같은 걸작을 남기며 1947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프랑스의 작가이자 비평가 ‘앙드레 지드’(Andre Paul Guillaume Gide, 1869-1951)는 극단적인 성향의 부모 아래에서 크며 복잡한 인생을 산 인물이었습니다. 남프랑스 출신의 신교도였던 아버지 ‘폴 지드’(Paul Gide, 1832-1880)는 파리 대학의 법학 교수였으나 시인의 정신을 마음에 품고 살았던 인물이었으며, 북프랑스 출신의 가톨릭 신자였던 어머니 ‘줄리엣 롱도’(Juliette Rondeaux, 1835-1895)는 엄격하고 극단적일 정도로 현실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앙드레 지드가 11세가 되던 해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어머니 아래에서 자신과 맞지 않는 철저한 청교도 교육을 받으며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됩니다. 그는 청년이 되었을 때 자신에게 동성애 성향이 있음을 알게 되고 이는 지드에게 큰 죄책감을 심어줍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가장 큰 고통의 원인이 된 근본적인 성향을 자신의 모든 굴레에서 벗어나는 계기로 삼았습니다. 1893년부터 2년간 북아프리카를 여행하며 자신의 성향을 받아들이고 폐결핵으로 죽을 고비를 넘기며 이 고뇌를 모두 벗어버리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으로 잘 알려진 아일랜드의 시인이자 작가 ‘오스카 와일드’(Oscar Fingal O’Flahertie Wills Wilde, 1854-1900)와 친분을 쌓은 지드는 1895년 알제리에서 다시 한 번 그를 조우하고 그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게 되었습니다.

앙드레 지드 (Andre Paul Guillaume Gide)

운명의 장난처럼 앙드레 지드가 마음을 굳히기가 무섭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지드는 자신이 13세의 나이에 느꼈던 첫사랑이었던 사촌 누나 ‘마들렌 롱도’(Madeleine Rondeaux, 1867-1938)에게 청혼하여 그녀와 결혼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들의 결혼생활은 지드의 양성애적인 성향으로 점차 파국으로 치닫게 되고 앙드레 지드가 외도로 혼외자식을 낳은 후에는 지드가 사망할 때까지 24년간 별거를 하며 사실상 남처럼 살게 됩니다. 그럼에도 마들렌은 지드에게 많은 문학적 영감을 주었으며 ‘좁은문’ ‘앙드레 왈테르의 수기’와 같은 그의 자전적인 작품들 속에 여러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앙드레 지드가 1919년에 쓴 소설 ‘전원 교향악’(La Symphonue Pastorale)에서도 지드와 마들렌의 모습이 등장인물들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귀머거리 노파의 임종을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고 작은 오두막에 도착한 목사는 그 곳에서 노파의 조카딸인 장님 처녀 ‘제르트리드’를 만나게 됩니다. 뜻하지 않게 그녀를 집으로 데려온 목사는 다섯 자식들을 키우는 것만으로도 벅차다는 아내 ‘아멜리’의 반대에도 그녀를 양육하고 정신적으로 개안을 시키고자 합니다. 목사의 노력으로 제르트리드는 인생을 선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그녀의 영혼이 지식의 습득과 다양한 경험으로 발전하고 충만을 하게 되는 것을 옆에서 보며 목사는 자신의 노력의 결과물에 기뻐합니다. 하지만 점차 이러한 사랑은 여성에의 사랑으로 변질되어 가고, 장남인 자끄와 제르트리드의 사랑을 반대하기에 이릅니다. 아내의 질투까지 사각관계가 심화되고, 결국 제르트리드의 개안수술을 계기로 파국으로 치닫게 됩니다. 제르트리드는 아름다움으로 가득 찬 세상을 꿈꾸었으나 그녀의 눈앞에 펼쳐져 있는 현실은 욕망의 번뇌에 휩싸인 목사, 그리고 질투와 모멸감에 휩싸인 아멜리의 얼굴이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했던 사람이 목사가 아닌 자끄였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또 목사의 가정을 파괴시킨 장본인이 자신이었다는 것과 개종을 하여 신부가 되기로 결심한 자끄를 잡을 수 없음에 좌절하여 자살을 시도하고, 이 모든 것을 목사에게 밝힌 후 세상을 떠납니다.

두 가지 수첩으로 나눠져 목사의 일기 형식으로 쓰여진 앙드레 지드의 ‘전원교향악’에서 두 번째 수첩은 세상을 볼 수 있게 된 장님처녀의 눈 앞에 펼쳐진 잔인한 현실과 파국으로 치닫는 등장인물들을 그리고 있습니다. 첫 번째 수첩은 베토벤의 ‘전원 교향곡’을 중심으로 하여 장님처녀에게 청각과 촉각으로 느낄 수 있는 세상과 자연의 조화로움과 아름다움을 인간의 내면에서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줍니다. 그리고 그의 사랑이 변질되지 않은 순수한 아가페적 사랑임을 순수한 하얀 색의 빛의 세계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전원교향곡’ 스케치

교향곡 3번 ‘영웅’, 교향곡 5번 ‘운명’, 교향곡 9번 ‘합창’과 함께 음악의 성인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7)의 대표적인 교향곡인 ‘교향곡 6번’(Symphony No.6 in F Major, Op.68)은 ‘전원(Pastorale) 교향곡’이라는 부제로도 잘 알려진 작품입니다. 1808년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요양을 하던 중 쓰여진 이 교향곡은 5개의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가 표제를 붙인 유일한 교향곡입니다.

전원교향곡을 작곡하고 있는 베토벤

자연을 사랑하였던 베토벤은 숲 속 오솔길을 산책하는 것을 즐긴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의 자연에의 사랑이 잘 나타난 작품이 바로 이 ‘전원 교향곡’입니다. ‘프란츠 요제프 막시밀리안 대공’(Fuerst Franz Joseph Maximillian von Lobkowitz, 1772-1816)과 ‘라주모프스키 백작’(Graf Andrei Kirillowitsch Rasumowski, 1752-1836)에게 헌정된 이 작품의 각 악장에도 베토벤이 직접 부제를 붙였는데요. 1악장은 ‘시골에 도착했을 때의 상쾌한 감정’(Angenehme heitere Empfingungen, welche bei der Ankunft auf dem Lande im Menschen erwachen), 2악장은 ‘시냇가의 정경’(Szene am Bach), 3악장은 ‘시골 사람들의 즐거운 모임’(Lustges Zusammensein der Landleute), 4악장은 ‘뇌우, 폭풍우’(Donner, Sturm), 그리고 5악장은 ‘목가, 폭풍우 후의 기쁨과 감사’(Hirtengesang. Wohltaetige, mit Dank an die Gottheit verbundene Gefuehle nach dem Sturm)란 부제가 붙어있습니다.


거의 동일한 시기에 작곡된 5번 교향곡 ‘운명’과 대조적으로 매우 풍요롭고 자연의 품에 안긴 듯한 편안한 분위기의 작품인 베토벤의 6번 교향곡 ‘전원’은 앙드레 지드의 소설 ‘전원교향악’에서 목사가 제르트리드를 데리고 간 음악회에서 연주되는 작품입니다. 목사는 각각의 악기가 다양한 음색과 높낮이, 강약으로 나타내듯 자연에서도 호른이나 트롬본의 음색을 닮은 붉은색과 오렌지색, 바이올린과 첼로와 같은 현악기의 음색을 닮은 노란색과 녹색, 플루트, 클라리넷과 같은 목관 악기의 음색이 연상되는 자색과 청색이 있다는 사실을 제르트리드에게 알려줍니다. 그리고 그 전까지 색과 빛, 밝기에 대한 의문에 휩싸여 있던 그녀의 의혹이 씻겨지며, 그녀는 2악장 ‘시냇가의 정경’처럼 세상이 아름답기만 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세상 속의 악이나 죄, 죽음과 같은 냉정한 현실을 알려줄 용기가 없던 목사의 모습은 결국 후에 파국의 씨앗이 되고 마는데요, 목사는 제르트리드가 물었던 흰색의 세계와 닮은 베토벤의 ‘전원 교향곡’처럼 아름다운 세계만을 알려주고 그녀의 순수한 마음을 지켜주고 싶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또 그녀의 순수한 마음을 사랑하였던 자신의 아가페적 사랑이 변질되는 것을 부정하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앙드레 지드의 소설 ‘전원교향악’의 제목으로도 쓰일 정도로 베토벤의 ‘전원교향곡’은 이 소설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순수한 마음을 지켜주겠다는 명목으로 아들의 사랑을 갈라놓은 목사는 결국 제르트리드를 범하고 그녀를 죄악 속에 눈을 뜨게 만드는 추악한 존재이며 지드 자신의 자기혐오도 내포된 존재이지만, 그 모든 것이 나쁜 의도에서 시작한 것이 아닌 순백의 감정에서 시작되었음을 이 클래식 명곡을 통하여 표출하고 있는 것입니다.

글 박소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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