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 헤르만 헤세 소설 ‘데미안’ – 1. 북스테후데 ‘파사칼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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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사칼리아’(Passacaglia)는 스페인에서 시작된 ‘파사칼레’(Pasacalle)라는 2박의 행진곡이 발전하여 16세기 중엽의 프랑스에서 유행한 춤곡입니다. 프랑스 궁정 발레를 위한 음악 중 하나였던 파사칼리아는 샤콘느와 함께 바로크 시대의 대표적인 변주곡 형태의 기악곡으로 발전하였습니다. 바흐, 헨델, 브람스 등의 작곡가가 남긴 파사칼리아는 지금까지도 많이 사랑받고 있으며 그들에게 영감을 준 파사칼리아 작품이 바로 북스테후데가 작곡한 오르간을 위한 파사칼리아입니다.

디트리히 북스테후데 (Dietrich Buxtehude)

덴마크 출신의 오르가니스트이자 교회음악 작곡가였던 ‘디트리히 북스테후데’(Dietrich Buxtehude, 1637-1707)는 독일 북부 도시 뤼벡의 성 마리아 교회 오르가니스트로 명성이 자자했던 음악가였습니다. 그가 교회에서 열리는 연주회인 ‘아벤트무지크’(Abendmusik, 저녁 음악)를 번성시키자 젊은 오르간 연주자들이 그의 연주를 듣고 가르침을 얻기 위하여 몰려들었습니다. 18세의 헨델 역시 1703년 북스테후데를 찾아와 가르침을 받았으며, 2년 뒤인 1705년 20세의 바흐 역시 400km가 넘는 길을 여행하여 그를 찾아와 4주간 북스테후데의 음악을 익혔습니다. 북스테후데는 100곡이 넘는 칸타타를 작곡하였으며 오르간을 위한 작품만 90여 곡을 작곡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북스테후데가 작곡한 유일한 파사칼리아인 ‘오르간 독주를 위한 파사칼리아 라단조’(Passacaglia in d minor, BuxWV.161)는 북스테후데의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 곡은 세계적인 케이팝 그룹인 BTS의 히트곡인 ‘피땀 눈물’의 뮤직비디오에도 등장하며 북스테후데를 모르는 많은 사람에게도 낯익은 멜로디가 되었는데요. 이 뮤직비디오의 내용이 인용하고 있는 것이 바로 헤르만 헤세의 대표작인 ‘데미안’이기 때문에 이 책 속에 등장한 북스테후데의 대표적인 오르간 음악인 파사칼리아를 등장시킨 것입니다.

헤르만 헤세 (Hermann Karl Hesse)

‘헤르만 헤세’(Hermann Karl Hesse, 1877-1962)는 위대한 소설들을 남긴 작가이자 시인으로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작품들을 많이 남긴 노벨 문학상 수상자입니다. 인도에서 선교활동을 한 적이 있는 선교사인 아버지 ‘요하네스 헤세’(Johannes Hesse)와 어머니 ‘마리 군데르트’(Marie Gundert-Hesse) 사이에서 태어난 헤세는 동양 사상에 크게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선교사인 아버지의 영향도 있었다고 볼 수 있겠지만 일본에서도 활동한 불교 연구의 권위자였던 외삼촌 ‘빌헬름 군데르트’(Wilhelm Gundert)의 영향 역시 많이 받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헤르만 헤세는 1904년, 27세의 나이에 첫 장편소설 ‘페터 카멘친트’(Peter Camenzind)를 발표하였는데요. 우리나라에서는 ‘향수’란 이름으로 번역되어 출간된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며 헤르만 헤세는 명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2년 뒤인 1906년, 드디어 헤르만 헤세는 자전 소설 ‘수레바퀴 아래서’(Unterm Rad)를 발표합니다. 신학교에 입학하여 자신을 원하는 것을 포기하고 살아가던 소년 ‘한스 기벤란트’를 통하여 당시 권위적이던 교육과 사회 시스템을 비판하는 자전적인 내용의 이 소설은 주인공이 만취 상태로 귀가하던 중 강에 빠져 죽으며 끝나는데 그것이 자살인지 사고인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신학교에서 수학하며 강압적인 교육 환경을 적응하지 못하고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해 자퇴하고 요양해야만 했던 헤세의 어린 시절의 경험이 묻어나는 고전 명작 소설 작품입니다. 1946년 ‘유리알 유희’(Das Glasperlenspiel)로 노벨 문학상을 받기까지 한 헤르멘 헤세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등장하는 작품은 ‘수레바퀴 아래서’ 외에도 한 작품이 더 있는데 바로 ‘데미안’입니다.

소설 ‘데미안’ 초판

1919년,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시기에 탄생한 ‘데미안’(Demian-Die Geschichte von Emil Sinclairs Jugend)은 ‘수레바퀴 아래서’처럼 헤르만 헤세를 투영시킨 ‘에밀 싱클레어’(Emil Sinclair)가 주인공인 소설입니다. 불량소년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에밀 싱클레어는 전학생인 데미안의 도움을 받고 청년이 될 때까지 데미안을 비롯하여 데미안의 어머니인 에바 부인, 그리고 교회의 오르간 연주자인 피스토리우스에게 조언받으며 성숙해지는 과정을 담고 있는 이 소설에는 클래식 작품이 2개 등장하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북스테후데의 파사칼리아입니다.
방황하던 싱클레어는 우연히 피스토리우스가 연주하는 오르간 소리에 이끌려 교회에 들어가 마음의 안정을 찾게 됩니다. 처음 싱클레어가 그와 마주하고 “듣고 있자면 천국과 지옥을 잡아 흔드는 듯한 느낌을 주는 그런 음악을 좋아합니다. 제가 음악을 매우 사랑하는 것은, 아마 음악이 그렇게 도덕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모든 것들은 다 도덕적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렇지 않은 것을 찾고 있습니다. 저는 늘 도덕적인 것에 괴로움만 받고 살아왔습니다.”라는 말을 하는데요. 이후에 마음이 복잡해지거나 우울해질 때면 싱클레어는 피스토리우스에게 북스테후데의 파사칼리아를 연주해달라 요청하였습니다. 저녁이 다가온 어둑한 교회 안에서 울려 퍼지는 멜로디를 듣고 있으면 자기 내면의 세계에 빠져들어 넋을 놓게 되고, 이 음악은 싱클레어 자신의 목소리가 옳다고 인정하도록 도와주었다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소설 ‘데미안’ 속 피스토리우스는 아직 자신을 감싸고 있는 알을 깨지 못한 새와 같은 싱클레어가 그 껍데기를 깨고 세상에 나올 수 있게 돕는 충실한 조력자를 하고 있는데요. 북스테후데의 파사칼리아는 싱클레어에게 힘을 북돋아 주는 존재였던 것입니다.

책 속에 스며들어 주인공을 감화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고, 후에 그 책의 내용을 차용한 케이팝 그룹의 뮤직비디오에도 등장하는 클래식, 북스테후데의 유일한 파사칼리아 ‘파사칼리아 라단조’였습니다.

글 박소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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