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 헤르만 헤세 소설 ‘데미안’ – 2. 바흐 ‘마태 수난곡’

58

구세주의 수난과 죽음에 대하여 성서에 쓰여있는 것은 아주 어릴 때부터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었다. 어린 소년 시절, 가끔, 이를테면 ‘수난의 금요일’과 같은 때, 아버지께서 그리스도의 수난에 대한 이야기를 읽어 들려주신 다음이면 나는 마음 깊이 감동받아 이 고난에 찬 아름답고 창백하고 유령 같은, 그러면서도 섬뜩하게 생생한 세계, 저 겟세마네 동산과 골고다 언덕에 살았다.
바흐의 ‘마태 수난곡’을 들을 때면, 그 온갖 신비로운 전율을 간직한 비밀로 가득 찬 세계의 어둡고도 강렬한 수난의 광채가 내 마음에 흘러 넘쳤다. 나는 오늘날에도 이 음악 속과 저 ‘죽음의 칸타타’(Actus Tragicus)를 모든 시와 모든 예술적 표현의 정수라 생각한다.

헤르만 헤세 <데미안>

헤르만 헤세 (Hermann Karl Hesse)

소설 ‘수레바퀴 아래서’(Unterm Rad), 노벨문학상을 안겨준 ‘유리알 유희’(Das Glasperlenspie), ‘향수’(Peter Camenzind) 등을 남긴 독일의 위대한 작가이자 시인 ‘헤르만 헤세’(Hermann Karl Hesse, 1877-1962)의 대표작인 ‘데미안’(Demian-Die Geschichte von Eml Sinclairs Jugend)는 헤르만 헤세를 투영시킨 ‘에밀 싱클레어’(Emil Sinclair)가 전학생인 데미안과 그의 어머니 에바 부인, 교회의 오르가니스트 피스토리우스에게 영향을 받아 성장하는 소설입니다. 소설 ‘데미안’에는 저번 시간에 다뤘던 북스테후데의 오르간을 위한 ‘파사칼리아’ 외에 또 하나의 클래식 명곡이 등장합니다. 바로 에밀에게 비장하면서도 신비로운 전율을 안겨주는 작품인 바흐의 ‘마태 수난곡’입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까지 수난을 당하는 이야기를 묘사한 ‘수난곡’(Passion)은 교회의 수난 주간에 연주되는 음악입니다. 오라토리오와 비슷하게 연기가 없이 올려지는 음악극의 형태를 띄고 있지만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이렇게 4개의 복음서를 기초로 하여 복음서 속 구절을 가사로 하였기에 수난곡은 ‘마태 수난곡’ ‘마르코 수난곡’ ‘루카 수난곡’ ‘요한 수난곡’, 이렇게 4개가 존재합니다. 독일의 작곡가 텔레만(Georg Philipp Telemann, 1681-1767), 바르톨로모이스 게시우스(Bartholomaeus Gesius, 1562-1613), 하인리히 쉬츠(Heinrich Schuetz, 1585-1672)와 같은 작곡가들이 수난곡을 남겼는데요. 대표적인 수난곡으로 손꼽히는 작품이 바로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의 수난곡들입니다.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 (Johann Sebastian Bach)

음악의 아버지란 이름으로도 친숙한 바흐는 4개의 수난곡을 모두 작곡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바흐는 1724년 요한 수난곡(Johannes-Passion)을 시작으로 1727년에 작곡, 1729년 초연된 마태 수난곡(Matthaeus-Passion), 1730년 작곡한 것으로 알려진 루카 수난곡 (Lukas-Passion), 그리고 다음 해인 1731년 작곡된 마르코 수난곡 (Markus-Passion)을 남겼습니다. 안타깝게도 마가복음의 구절을 가사로 하여 바흐가 마지막으로 작곡해 1731년에 라이프치히에서 초연을 올린 마르코 수난곡은 악보가 더이상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또 바흐의 ‘작품번호 246번’(BWV.246)으로 지정되기도 했던 루카 수난곡은 1730년 성 금요일에 맞추기 위하여 바흐가 자신이 작곡한 곡들만이 아닌 다른 작곡가들의 작품들을 가져와 편곡한 것으로 알려져 이제는 더이상 바흐의 작품으로 간주되지도 않고 거의 연주되지 않습니다.

요한복음을 기초로 한 요한 수난곡과 함께 바흐의 수작이라 칭송받는 마태 수난곡 (Matthaeus-Passion, BWV.244)은 마태복음을 기초로 한 작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히는 수난일인 ‘성 금요일’은 부활절 바로 2일 전으로 가톨릭과 기독교 모두에게 매우 중요한 날이며, 이 날에는 그리스도의 고난을 다룬 종교 음악인 수난곡이 예배당에 울려 퍼졌습니다. 바흐의 마태 수난곡 역시 독일 라이프치히의 도마 교회 예배당에서 1729년 성 금요일에 초연되었습니다. 마태복음 중 26장에서 27장까지의 내용, 즉 최후의 만찬의 자리에서부터 예수가 숨을 거둔 후 무덤에 묻히기까지의 내용을 다루고 있는 마태 수난곡은 수많은 바흐의 작품들처럼 바흐가 사망하고 난 후에 잊혀 버렸습니다.

10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흐른 1829년, 도서관 깊숙한 곳에서 잊힌 채 시간의 흐름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던 바흐의 ‘마태 수난곡’을 찾아낸 사람은 바로 20세의 젊은 청년 음악가 ‘멘델스존’(Jacob Ludwig Felix Mendelssohn-Bartholdy, 1809-1847)이었습니다. 멘델스존에 의하여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온 마태 수난곡은 3시간 정도의 연주 시간을 자랑하기 때문에 1부와 2부로 나눠 제1부는 예수가 체포되기까지의 내용을 29곡의 음악으로 다루고, 체포 이후 사망하여 매장되기까지의 내용을 2부에서 39곡과 함께 다루고 있습니다. 바흐는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을 2중으로 구성하여 총 78곡의 음악으로 복음서의 내용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려 하였습니다. 이는 당시 복음서만을 바탕으로 대본을 한 것이 아닌 당시 활동하였던 시인 ‘크리스티안 하인리치 피칸더’(Chrisitian Friedrich Heinrici Picander, 1700-1764)의 종교시와 성가시를 많이 차용하였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도입과 종결 합창의 가사를 피칸더의 시로 차용할 정도로 당대 최고의 시인이었던 피칸더의 작품을 존중하였던 바흐는 대화를 나누거나 이중으로 교차되기도 하는 시처럼 악기군과 합창을 구성하여 더욱 풍부하게 소리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예수의 역할을 베이스가, 복음서의 화자이자 해설을 담당하는 복음사의 역할을 테너가, 제자들과 군중들은 합창단 1과 2가 맡고 있으며 솔리스트들 역시 복수로 등장하여 유다, 베드로, 두명의 하녀, 빌라도와 그의 아내 등의 아리아나 레치타티보 등을 노래합니다.

방대한 길이를 자랑하는 바흐의 ‘마태 수난곡’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은 바로 47번째 곡인 ‘불쌍히 여기소서’(Erbarme dich, mein Gott, um mener Zaehren willen)입니다. 영화 ‘카지노’, ‘리플리’, ‘아름다운 청춘’, ‘희생’ 등에 등장한 이 알토 아리아는 새롭게 68개의 악장으로 구분하는 ‘새로운 바흐의 작품번호’(Neue Bach-Ausgabe)에서는 39번째 곡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현재는 39번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예수를 세 번이나 부인한 베드로의 심정을 표현한 이 곡은 베이스인 베드로가 아닌 알토가 부르는 것이 매우 인상적인 작품으로 소설 ‘데미안’ 속에서 주인공인 에밀이 ‘예술적 표현의 정수’라 표현하였던 ‘마태 수난곡’의 신성하면서도 신비로움을 극대화 시킨 대표적인 곡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태수난곡’ 중 알토 아리아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Erbarme dich)


Erbarme dich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Erbarme dich, mein Gott,
Um meiner Zaehren willen!
Schaue hier, Herz und Auge
Weint vor dir bitterlich
Erbarme dich, mein Gott.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의 주여,
내가 흘리는 눈물을 보시고
당신 앞에서 가슴 아프게 통곡하는
나의 이 마음과 눈을 보소서.
주님,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Erbarme dich) 비올라, 첼로, 오르간 편곡 버전

다음 시간에는 소설 데미안의 마지막 시간으로 종교에 심취한 주인공 에밀이 마태 수난곡과 함께 칭송하였던 바흐의 칸타타 ‘악투스 타르지쿠스’(Actus Tragicus)에 대해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글 박소현

Loa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