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들의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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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혁명가 중에는 의사 출신들이 많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체 게바라가 의사라는 사실은 제법 널리 알려져 있지만, 칠레에서 가장 존경 받는 대통령이었던 살바도르 아옌데, 알제리의 프란츠 파농도 의사였다.
특히 중국의 근대화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혁명적인 사상을 가졌던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중 아큐정전을 쓴 루쉰, 신해혁명을 일으킨 중국 근대화의 기수 순원도 모두 의사 출신들이다.
왜 이렇게 의사 출신들이 많을까? 그들은 왜 수술칼을 던지고 사회 혁명 내지는 국가 혁명가로 나섰을까? 질병에 시달리는 개개인을 치료하다 보면 열불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씩 정성을 다해 치료한들 개가 토한 음식을 다시 먹는 것처럼, 또는 시시포스의 굴레처럼 영원히 벗어나기 어렵다고 판단해, 한 개인에 대한 치료 자체에 회의감이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의사들이 혁명의 기수로 나서기 시작했다.
혁명가 중 가장 위대한 혁명가는 중국인들을 치료하다가 끝내 사망한 헨리 노먼 베순 박사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의사들이 왜 사회개혁에, 혁명에 목숨을 걸었는지 분명한 이유를 3가지 유형의 의사로서 설명했다.


캐나다 출신의 의사인 노먼 베순은 폐결핵을 앓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후 흉부외과 전문의가 되었다. 그는 폐결핵의 근본원인을 추적하다가 빈곤에 의해 발병한다는 사실을 알고 정부 운용의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사회개혁에 눈을 뜬다.
그는 스페인 내전이 발발했을 때 곧바로 참전, 프랑코군부독재에 대항해 진보주의 대열에 서서 죽어가는 군인들을 치료하고 나섰다.
여기저기 피를 쏟는 군인들을 동시에 치료할 수 없었던 그는 이동수혈부대를 창립해, 앰뷸런스를 최초로 개발해 수많은 군인들의 목숨을 건져냈다. 스페인에서 부상병을 치료하던 중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에 고립되어 옴짝도 못하는 중공군을 구하기 위해 사지로 뛰어든 노먼 베순은 환자의 부러진 뼈에 왼손 중지를 찔렸고, 사흘 뒤 경부에 단독 및 봉소염이 생긴 부상자를 맨손으로 수술하다가 상처 부위가 감염되어 패혈증에 걸려 사망한다.


그 노먼 베순이 남긴 의사의 정의는 두고두고 ‘우리가 왜 사회를 개혁하고 혁명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되새기게 한다.
한 개인의 질병만을 치료하고 환자의 삶에 대해 무관심한 의사는 ‘작은의사’일 뿐이다. 그러나 질병은 물론 그 질병이 어쩌다 발병했는지 개인의 삶까지 고치려는 의사는 ‘보통의사’, 그런 병을 생기게 된 원인을 사회적인 구조와 국가시스템까지 따지고 고치려는 의사는 ‘큰의사’라고 했다.

병을 고치는 의사라고 해서 다 똑같은 의사가 아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의 크기에 따라 이토록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이다.
며칠 전 학생들에서 노먼 베순의 ‘의사의 정의’를 설명하면서 학사와 석사, 박사의 정의로 풀이했는데 설명하고 보니 그럴싸하다.
학사(學士)란 질병만 고치려는 ‘작은의사’와 같아서 완성체가 아닌 아직은 어리다는 의미의 bachelor로 풀이할 수 있다. 석사(碩士)란 한자 그래도 속이 꽉찬 사람이며 영어로 풀이해도 master, 즉 그 분야에 통달한 사람이다. 의사로 따지면 보통의사쯤 된다. 그러나 박사(博士)는 다르다. 박사는 사회제도 전체에 대해 관심을 갖고 고치려는 ‘큰의사’와 같아야 한다. 한자로 봐도 박사의 ‘박’(博)은 열십자와 펼보의 합자어로서 석사에서 익힌 학문으로 열(十) 가지 분야에 관심을 갖고 지식을 펼치라(甫)는 뜻이며, 나아가 열 가지 분야에까지 관심을 갖고 자신의 학문을 펼치라는 뜻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자신의 학문 이외에 이웃 학문과도 연계하고 더 많은 경험을 통해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고 가라는 뜻이다.
예전에는 사회에 문제가 발생하면 교수들이 시국선언을 하거나 나름 성명을 발표하곤 했다. 박사의 정의처럼 세상을 바라보는 혜안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시국선언을 하면 ‘교수들이 학생이나 열심히 가르치지 왜 고시랑고시랑거리느냐’고 반박하지 않았다.
이들은 교수이기 전에 세상에 대해 넓고 큰 시각으로 국가정책을 질타할 수도, 방향을 제시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은 대학교수라는 사람들이 보수든 진보든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있다. 일견 말이 박사지, 여전히 석사의 생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일까? 그저 방구석에 처박혀 의사면허나 보지하려는 박사들처럼 너도나도 사무실 잠가 놓고 제 공부만 파고들어서일까?
아니면 박사의 정의를 몰라서일까? 또는 입 한번 벙긋했다가는 보이지 않는 5호담당제의 희생양으로 전락할 우려가 크기 때문일까?
체 게바라는 ‘혁명은 다 익어 저절로 떨어지는 사과가 아니다’고 했다. 격발시키는 방아쇠가 있어야 한다. 박사들이라면 큰 의사가 되어 세상을 바꾸는 방아쇠가 되어야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이 사회는 다시 30년 전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다.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면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아니라 그 사회는 그냥 늙어갈 뿐이다. 인간사회란 제멋대로 놔두면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행위예술 ‘리듬0’에서 보여준 것처럼 점점 더 사악해지고 잔인해지기 때문이다. 그런 사회의 흐름을 제지할 연어의 역동적인 힘을 박사들이 가져야 한다. 박사학위증을 가진 교수들의 각성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글 발행인 김종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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