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오페라페스티벌 ‘토스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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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세대에 전복되어도 살아 남는다
9월 16일 (토) 오후 7시 30분 춘천KT&G상상마당

폭우도 못 말리는 춘천오페라페스티벌

굵은 빗줄기가 멈추지 않고 내렸지만 춘천오페라페스티벌의 ‘오페라 토스카’(연출 최지형)는 그깟 비 따위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관객들도 판초의를 뒤집어쓰고 눈에 정성을 담아 감상하는지 옹송옹송 웅크리며 감상하는 태도가 참으로 진지하기 짝이 없었다. 비옷도 빨간색과 붉은색 두 가지를 준비했는데 우의 하나를 선택하는데도 집행부는 꽤나 고민한 듯싶었다. 토스카의 내용이 나폴레옹의 승리와 패배, 그리고 부활이기 때문이다.
스카르피아(오동규)의 ‘테 데움’, 토스카(엘레나 디)의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카바라도시(정호윤)의 ‘오묘한 조화’ ‘별은 빛나건만’ 등 흔히 듣던 아리아가 흘러나올 때면 우레같은 박수가 비와 조명을 뚫고 저 깊은 무대 속으로 파동쳤다.
오늘 모인 춘천 시민들은 오페라를 얼마나 사랑하기에 이 우중 속에서 청승을 떨며 무대를 지켜보는지 알 수 없다. 오페라가 죽었다고 생각하지 말라! 오성룡은 강조한다. 인간의 삶이란 게 우주의 역사에 비하면 1초도 되지 않는데, 그 짧은 시간에 인간의 언어와 노래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여주는 장르가 오페라 말고 어디에 있다는 말이냐, 이 말이다.
르네상스 이후 신의 권력에서 벗어나 인간의 낭만성이 완전히 꽃피우던 400여 년 동안 오페라는 인간의 사상과 철학이, 그리고 인간의 육체와 인간의 사랑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가장 잘 보여주던 장르다.

복잡한 음악을 비단처럼 엮어내다

악인인 스카르피아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시어들조차 은구슬이요, 카바라도시의 아리아는 향내 나는 꽃들의 오르가즘이요, 토스카가 부르짖는 신에 대한 원망마저 가슴을 후비는 시어들이다. 빗속을 뚫고 달려간 보람이 있다. 밤과 비, 악기가 주는 불안감에도 불구하고 강석희 지휘자는 잘 마른 현악기들이 소리 내는 것과 다름없는 정치한 연주를 이끌어냈다. 관악파트와 현악파트를 분리해서 지휘할 수밖에 없는 여건임에도 그 복잡한 음악을 비단처럼 엮어냈다.
야외 음악회에서 가장 큰 ‘골칫덩어리’인 음향을 얼마나 신경을 썼는지 중간중간 약간의 하울링을 제외하고 전체적으로 극적이고 장대한 소리 덕분에 심장이 쿵쿵거렸음을 고백한다.
이날의 주인공은 정호윤의 ‘호연’이었다. 음향을 사용할 때 가장 불리한 점은 발성에 묻은 약간의 잡티도 몽땅 드러낸다는 점이다. 그러나 티 없이 맑은 정호윤의 고음이었다. 그만큼 매끄러웠다. 오동규의 테 데움은 감동 이상이었다. 상상마당의 외벽을 오래된 성당처럼 영상으로 꾸민 탓이기도 하지만 마치 오랑주의 고대극장에서 거대한 합창단과 함께 부르는 모습을 상상하게 했다. 고려인 3세 소프라노 ‘엘레나 디’는 춘천이 발굴한 세계적 수준의 성악가로 러시아적인 풍부한 성량과 호흡, 젊지만 노련한 연기에 수많은 팬들을 금세 확보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춘천오페라페스티벌이 수상음악회, 즉 춘천호수 위에서 펼쳐질 그날을 상상해도 될 것 같다. 오스트리아 브레겐츠나 뫼르비슈 오페라페스티벌을 가지 않아도 될 날, 그날이 빨리 오기를 기대해 본다.

글 김종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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