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크여행-16부] 라이프치히의 칸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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쾨텐의 영주 레오폴트 공이 결혼한 후 음악에 대한 열의가 시들해지자, 바흐는 인생의 후반기를 새로운 곳에서 보내기로 결정하고 1722년 12월 라이프치히의 성 토마스 교회 칸토르 자리에 지원하게 됩니다. 라이프치히는 당시 상업과 무역, 학문의 중심지였는데 전임자인 요한 쿠나우(Johann Kuhnau)가 세상을 떠나면서 새로운 칸토르를 찾고 있었습니다. 성 토마스 교회는 독일 신교지역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저명한 음악가들이 줄줄이 칸토르 지위를 계승하면서 명성이 높았던 교회입니다.

라이프치히의 토마스 교회

하지만 처음에는 라이프치히 의회는 바흐가 아닌 텔레만(Georg Philipp Telemann)을 선출합니다. 오히려 텔레만이 당시 함부르크 칸토르 자리가 더 매력적이라고 생각해 이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후 라이프치히는 바흐의 선출을 승인하기 위해 3개의 시 위원회가 연합회의를 열었으며 라이프치히 시장은 ‘바흐는 쾨텐의 카펠마이스터로 재직했으며 건반악기의 탁월한 실력을 보여주었다’며 바흐를 적극 지지했습니다.
결국 바흐는 라이프치히 토마스 교회의 칸토르로 선출되었는데 이는 바흐의 예술적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바흐는 이전부터 ‘정연한 교회음악을 만들려는 궁극적 목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흐는 바이마르 궁정에 있을 때부터 교회 예배에 사용할 칸타타와 교회 반주를 돕는 오르간 소곡집을 작곡하며 이러한 것들을 추구해 왔습니다.

라이프치히 토마스 교회 앞에 있는 바흐의 동상

라이프치히에서 바흐에게 주어진 소임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교회력의 모든 주일과 축일에 약 60번의 칸타타를 연주하는 것이었습니다. 정기적으로 연주되는 칸타타가 반드시 본인의 작품일 필요는 없었지만, 그는 취임 초기에 자신의 음악 레퍼토리를 정립하여 이후에도 정기적으로 사용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칸타타를 단순한 배경 음악 정도로 간주하지 않았습니다. 바흐는 칸타타 작품을 음악적인 퀄리티가 높으며 영적인 깊이가 있는 작품으로 만들 수 있도록 진심으로 노력했습니다. 이는 성악가와 연주자들에게 고도의 숙련도와 기교를 요구했으며 이런 부분에 바흐는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라이프치히의 주 교회인 성 토마스 교회와 성 니콜라이 교회의 주일 예배는 성대하고 풍성하게 치러졌습니다. 오전 7시 본 예배가 시작되며 본 예배 후에는 12시 30분경에 오후 설교가 뒤따랐습니다. 각종 오르간 연주와 오케스트라와 합창이 어우러지는 칸타타 연주가 있는 주일 예배는 당시 라이프치히 시민들에게 종교적으로 참회하며 예배하는 시간임과 동시에 한주의 고된 삶의 피로를 음악을 들으며 털어낼 수 있는 일종의 여가시간 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바흐는 예배의 하이라이트라고도 볼 수 있는 칸타타를 년 단위로 연주할 수 있는 60여 곡으로 구성된 사이클로 구성하기 원했습니다. 하지만 쾨텐에서의 업무를 마치고 라이프치히에서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를 수행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바흐의 첫 칸타타 사이클은 여러 작가의 텍스트에 새로 작곡된 칸타타를 조합해야 했고 이전 바이마르에서 작곡한 칸타타를 다시 사용하기도 했으며, 쾨텐에서 작곡한 세속 칸타타를 종교 칸타타로 바꾸기도 했습니다. 물론 새롭게 작곡된 작품들도 많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몇몇 작품들은 종교 칸타타 장르를 이전의 바이마르의 수준을 뛰어넘는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 올렸습니다.

라이프치히 시절의 칸타타 BWV140 자필악보

바흐의 첫 번째 칸타타 사이클은 어떤 형식적인 틀에 매이지 않고 자유롭고 다채롭습니다. 그 중 한가지 공통점은 표현력이 강한 웅장한 합창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바흐 학자인 크리스토프 볼프는 ‘주님 당신의 종을 심판하지 마소서’(BWV 105), ‘살펴보고 또 보라’(BWV 46)을 유례가 없는 예술적인 칸타타라고 이야기합니다.
부임한 첫 해를 보내고 라이프치히 칸토르직에 적응한 바흐는 두 번째 칸타타 사이클을 작곡하기 시작합니다. 바흐가 그의 두 번째 칸타타 사이클에 접근한 방식은, 주선율로 채택된 코랄 선율을 중심에 두고 악장 간 통일성을 꾀하는 방식입니다. 선택된 코랄 선율은 오프닝 악장의 칸투스 피루무스 선율로 매우 정교하게 사용됨과 동시에 마지막 악장인 다같이 부르는 4부 합창 코랄의 주 멜로디로 사용됩니다. 바흐는 이런 식으로 매우 효과적으로 악장 간의 통일성을 정립합니다. 칸타타 악장 숫자는 다양하며 (2~3악장부터 12악장까지) 칸타타 기사를 마드리갈 시처럼 재구성해서 작곡합니다. 레치타티보와 아리아는 패턴과 라임 구성을 사용합니다. 이런 레치타티보나 아리아는 주로 솔로로 부르는데 찬송가의 기사를 직접적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실로 바흐의 두 번째 칸타타 사이클은 그가 꿈꿔온 정연한 교회음악을 정립하는 일을 실제로 실행한 결과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그 예술적 깊이와 구조적 완성도가 뛰어납니다. 바흐는 같은 방식으로 세 번째 사이클을 완성하고 이후 네 번째, 다섯 번째 사이클까지 만들었지만 아쉽게도 네 번째와 다섯 번째 사이클 칸타타는 대부분 소실되어 전해지는 곡이 많지 않습니다.

다음 호부터는 바흐의 라이프치히 시절 칸타타를 하나씩 들어보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글 강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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