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수학자가 수학을 포기한 학생을 만나서 겪는 인생 전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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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훈 감독의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의 메가폰을 잡은 박동훈 감독은 영화 ‘말이야 바른 말이지’와 웹드라마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2012)’ ‘게임회사 여직원들(2016)’ 등을 연출하며 제5회 대한민국 영화대상 단편 영화상(2006년)을 수상한 실력자이다.
음악감독 이지수는 이미 KBS 드라마 ‘겨울연가’와 영화 ‘올드보이’ ‘건축학개론’ ‘마당을 나온 암탉’ 등 OST 작업을 20년간 해 온 영화음악의 재원이다. 특히 이번 작품에서 원주율의 숫자를 음표로 삼은 ‘파이송’은 수학과 음악을 접목하여 탄생한 곡으로 더할 나위 없는 명작이 탄생했다.


원주율의 숫자를 음표로 삼아
감성적으로 접근한 곡 ‘파이송’

수학의 둔탁한 이미지를 음악의 유연성으로 포장한 느낌이다. 극 중에서 학성이 보람(조윤서)과 피아노 듀오 연주를 한 ‘파이송’은 원주율 3.14를 이용해서 숫자로 피아노가 연주된다. 마치 연탄곡을 연상하듯 대조된 악상이나 조성 없이 숫자의 법칙대로 반복적 음이 나열된다. 경쾌함과 두 사람의 협동의식이 음악으로 번져갔고 수학이 음악처럼 흥미롭단 것을 암시하는 영상이다.
영화 속 주요음악, ‘파이송’은 천재 수학자와 학생과의 친밀도를 높게 한 곡이며, 학성과 한지우(김동휘)가 수학의 미를 풀어가는 장면에 배치한 것은 이지수 음악감독의 절묘한 타이밍이라 생각된다.


영화의 제목을 연상케 하는 ‘파이송’만 보더라도 건반 상에 원주율을 나열한 숫자와 리듬음악은 기발하고 참신하다. 보람이가 직접 연주에 참가한 점과 진취적이며 고딕 적인 성향을 보인 점도 응집력있게 완성도를 높인 결과로 간주된다.
이번 영화에서 공동작업으로 재탄생한 멜로망스의 ‘하나의 답’은 파이송의 영감을 받아 김민석, 정동환의 서정적 감성이 서려 있는 곡이다. 수학을 통해 자신의 삶도 돌아보는 심리적 요소와 복고적인 묘미가 감칠맛 나게 버무려진 음악이다.
유연한 단음 선율이 반복되고 대비된 전주와 후주, 원주율의 숫자가 경쾌하게 배열된 성부의 흐름을 주도적으로 끌어낸 점이 에너지를 준다. ‘하나의 답’을 향한 곡의 결미로 치닫는데 레가토와 기교가 동원되어 영상과 맞물린 통일성을 유지한다.
영상을 설득력 있게 받쳐준 노래와 반주이며, 영화 속 인간적인 갈등과 해소 과정을 설명하는 작용으로 전체의 흐름을 압축하고 있다. 발라드풍이며 피아노가 지속적으로 박자와 대조를 이루며 선율적으로 변화하는 점이 주목된다.


서사와 음악의 환상적 하모니
바흐 ‘무반주 첼로곡 제1번’

탈북 수학자 리학성(최민식)이 수학 문제를 풀 때, 잠자리에 들 때마다 자주 듣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중, 1번 프렐류드는 수학자의 내면의 세계를 그린 충실한 트랙으로 남는다.
수학을 서사에 조합한 이 영화에서 학성이 지우와 친밀하게 만든 곡, 바흐 ‘무반주 첼로곡 제1번’은 리듬 적 뉘앙스들로 영화의 흐름을 집중하는데 무리가 없이 장면 전환에 맥을 이룬다. 곡의 선택이 적절하게 활용되어 바흐가 주는 엄숙한 분위기의 분산화음이 영상을 환기시킨다.
영화의 톤과 맞는 이 곡은 대위법이 강조된 특성으로 수학과도 일맥상통하다. 스토리에 맞는 코드 진행은 감상적이 아닌 중용의 분위기를 잡아내며 장면 이완에 화성감이 주도되어 빈틈없는 사운드로 꽂힌다. 극 중에 작용한 바흐 곡은 주제의 빈번한 활용으로 도전적인 울림이며 학성이 지우에게 수학으로 다가갈 때 강렬히 부각되어 프렐류드의 불협화음이 특이한 분위기를 조성하여 음악의 진면목을 과시한다.


음악감독 이지수의 18곡의 사운드트랙, ‘수학을 가르쳐달라?’와 ‘우리는 이걸 용기라 부르기로 했어요’는 곡의 악상이 공개적이고 간결하다. 특히 반듯함의 ‘승리’, ‘한지우 미안하다’, ‘고맙소’는 짧고 대조적 분위기가 강하고 주제의 리듬을 견고하게 다져나갔고 장면에 순응하는 외적 평온함이 연상된다.
이번 영화는 소설의 앨리스처럼 미지의 시공을 아우르는 현대인의 의미 있는 체험의 시간이며 수학과 연상된 사운드트랙이 비중 있게 다루어졌고, 영화음악은 정적인 실체가 아니라 스토리를 새롭게 탈바꿈시킨 매개체란 인식을 준다.

글 정순영 (음악평론가, 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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