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음악의 탄생 비화. 무성에서 유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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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쏟아지는 비를 피해 온 나무 밑에서 우연히 만난 두 남녀, 도서관에 가려던 참이라던 여학생의 말에 남학생은 여자의 짐을 들고 재킷을 벗어 여자의 머리 위에 씌어주고는 함께 뛰어가길 권한다. 하나, 둘, 셋! 시선이 마주친 두 사람은 재킷 하나에 서로의 어깨를 부딪치며 이내 빗속을 뚫고 뛰어간다.’
그때 들려오는 음악이 있다.
‘너에게 난 해 질 녘 노을처럼, 한 편의 아름다운 추억이 되고~♬’
손예진, 조인성 주연의 한국 영화 ‘클래식’은 개봉한 2003년부터 지금까지 잊혀지지 않는 명장면이 있다. 비를 피해 함께 뛰어가는 두 주인공의 모습만으로도 예쁘지만, 흘러나오는 음악 ‘너에게 난 나에게 넌’은 이 장면의 서정적인 감성과 순수한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려 준다. 오로지 이 영화만을 위해 만들어진 음악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포크밴드 ‘자전거 탄 풍경’의 1집 타이틀곡에 나오는 노래다.
이미 발표된 곡을 영화에 사용하는 것을 ‘삽입곡’이라 부르며, 영화에 어울리게 만들어진 창작곡을 ‘스코어’라고 한다. ‘Original Sound Track’(OST)은 영화에 사용된 음악과 대사 또는 소음 등이 포함된다. 영화음악은 기존의 곡을 사용하거나, 창작곡을 만들어 영화 장면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적재적소에 사용하여 영화의 흐름과 주제를 표현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영화음악의 탄생

영화음악은 1895년 뤼미에르 형제가 개발한 영사기로 세계 최초의 영화를 상영할 때 탄생했다. 당시는 녹음 기술이 없기 때문에 실제 피아노 한 대로 배경음악을 연주했다. 시끄러운 영사기 소리를 가리고 어두운 영화관에서 관객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목적이었다는 설이 있다. 무성영화였기 때문에 대사, 효과음 등이 전혀 녹음되지 않은 영상만을 감상해야 했는데, 이때 흘러나오는 음악은 관객들이 영화의 내용을 더 이해하고 감정적으로 깊이 와닿게 하는 역할을 했다.
한 명의 연주자로 시작하였다가 영화관이 늘면서 연주자의 수도 점점 늘어가고 대형 관현악단을 운영하는 곳도 속속 생겨났다. 이어 영화에 어울리는 음악, 연주 시간, 음악의 시작과 끝맺음 등을 기록한 큐시트도 등장했다. 세계적인 작곡가로 알려진 쇼스타코비치도 무명 시절에 경제난을 해결하기 위해 영화관에서 피아노를 연주했다고 한다.
초기 무성영화 시대의 음악은 대부분 즉흥연주나 고전 작품에서 가져와 연주했다. 영화 ‘기즈 공작의 암살’(L’Assassinat Du Duc De Guise)은 영화사가 ‘생상스’(Camille saint-saëns)에게 의뢰하여 만들어진 ‘Op. 128’ 작품을 연주하게 했는데, 이 작품이 영화만을 위해 만들어진 최초의 영화음악이다. 대부분의 무성영화에는 음악이 계속 등장하는데 특히 1915년 영화 ‘국가의 탄생’(The Birth of a Nation)에서 사용된 폰 주페의 ‘경기병 서곡’, 베버의 오페라 ‘마탄의 사수’ 서곡 등은 고전음악을 영화 장면에 어울리도록 체계적으로 구성했다는 점에서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최초의 유성영화 재즈 싱어부터 전문 영화음악 창작

한편 녹음 기술의 발전으로 음악을 포함한 배우들의 대사, 효과음 등이 삽입되면서 영화계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1927년 최초의 유성영화 ‘재즈 싱어’ 개봉 후부터 영화만을 위한 전문적인 음악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1930~60년대 할리우드 영화산업이 발전함에 따라 역대 가장 많은 아카데미상을 받은 알프레드 뉴먼(Alfred Newman), 영화 ‘사이코’(Psycho), ‘택시 드라이버’의 영화음악을 만든 버나드 허먼(Bernard Herrmann)과 같은 영화음악 작곡가들이 등장하며 영화음악도 전성기를 맞이한다. 영화음악이 기존 배경음악의 기능에서 범위를 확장해 주인공의 감정선을 표현하거나 일을 암시하고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관객에게 도달하도록 하는 등의 다양한 역할을 맡게 된다.

새로운 장르로 정착한 영화음악

영화음악의 장르 또한 기존의 심포닉 사운드 외에 재즈, 록, 블루스 등 다양한 장르를 연주하기 시작했고 1960년대 이후 전자음악까지 포함하면서 대중적으로 영역을 확장해 나갔다. 최근에는 컴퓨터를 이용한 음악 작업이 고도화되면서 더욱 다양한 소리를 담아낼 수 있게 되었다.
1970년대에는 기존의 심포닉 사운드, 교향악 스타일의 고전 영화음악의 존재감을 다시 알리게 되는데 바로 존 윌리엄스(John Williams)의 등장이다. 영화 ‘죠스’(Jaws), ‘스타워즈’(Star Wars), ‘슈퍼맨’(Superman) 등이 그 대표작으로 클래식 오케스트라단의 웅장한 사운드의 진수를 보여준다.
이후로는 영화 ‘미션’(The Misson)의 ‘가브리엘의 오보에’(Gabriel′s Oboe)와 ‘시네마 천국’(Cinema Paradiso)의 ‘Love Theme’ 등의 엔리오 모리꼬네, 영화 ‘라이언 킹’(The Lion King), ‘쿵푸팬더’(Kung Fu Panda), ‘인터스텔라’(Interstellar) 등의 한스 짐머,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 ‘마녀 배달부 키키’ 등의 히사이시 조와 같은 작곡가들이 등장하면서 영화음악은 날로 그 인기를 더하고 있다.
배경음악에 불과했던 무성영화 시대의 영화음악은 현대에는 영화에 몰입감을 높여주고, 캐릭터의 서사를 완성해 주며, 극의 진행을 도와주는 등 그 역할이 확대되면서 하나의 장르로 독립된 세계를 이루고 있다. 영화음악은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영화를 보는 순간의 감정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 영화가 끝난 후에도 오래도록 잊지 못할 추억을 갖게 한다.

글 한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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