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오페라페스티벌의 전 과정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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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과 문화재단, 민간오페라의 협력모델 제시

10월 13일~21일, 8일간의 오페라 축제여행

지난 13일부터 21일까지 강동아트센터에서 공연된 서울오페라페스티벌! 8년째 이어져 오고 있는 페스티벌이다. 수년째 구경꾼으로 관람했지만, 올해는 촬영감독으로 참여해 페스티벌 전 공연을 밀도있게 관찰할 수 있었다. 오페라 한 작품을 제작해 보면 정말 영혼을 갈아 넣는다는 표현이 틀린 말이 아닐 정도로 집중하고 몰입하고 섬세하게 체크해야 하는 작업이다. 모든 참가자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 할 수 있도록 장을 열어주고 지속시켜주는 일이 단장의 가장 큰 역할이라 생각한다.
오페라 한 작품도 쉽지 않은데 서울오페라페스티벌은 해마다 오페라 세 작품, 콘서트 세 작품을 펼쳐오고 있다. 개중에는 외부 참가작도 두 편이 있으나 그 작품 선정도 예술감독의 몫이다. 이렇게 방대한 작업이 전개되는 모습을 보고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도 없지 않았으나 전체적으로 완성도와 수준이 높은 공연을 보면서 8년째 지속하고 있는 ‘노블아트오페라단’의 열정과 역량에 대해 존경심까지 들었다.

#1. 푸치니 오페라 토스카


첫 번째 공연은 푸치니 오페라 토스카였다. 동일한 프로덕션의 작품을 그동안 수차례 보아 왔던 바 작품의 완성도와 가수들의 실력은 이미 인지하고 있던 터였다. 그러나 환절기 탓인 걸까? 첫날 주역 두 명의 컨디션이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카바라도시 역의 테너 박성규는 시종일관 풀리지 않는 꼬인 실타래와 같은 소리로 듣는 이를 안타깝게 했다.
토스카 역의 소프라노 김라희는 자타가 공인하는 리릭스핀또 소프라노로서 훌륭한 음색과 성량을 들려주는 반면, 3막에서 보다 정교한 발성의 테크닉이 뒷받침해줘야 하는 정확한 음정에서 다소 아쉬움이 있었다. 스카르피아 역의 바리톤 박정민은 캐릭터 가득한 음색과 연기로 그 역할을 훌륭히 해냈다.
두 번째 토스카 공연은 토스카 서선영, 카바라도시 신상근, 스카르피아 정승기의 출연과 타 조역은 동일 가수로 공연되었다. 소프라노 서선영은 소리의 세기는 부드러워지는 한편, 소리를 다루는 테크닉과 연기는 완성도 높은 원숙미를 보여주었다.
카바라도시의 신상근은 근래에 들은 그의 오페라 중에서 가장 호연이었다고 할 만큼 우수한 연기와 노래를 들려주었다. 그의 비강에 가볍게 얹히어진 정교하고 단단한 발성과 극적인 표현력은 듣는 이를 감탄케 했다. 스카르피아 역의 정승기는 온 몸에서 발산하는 스카르피아의 아우라를 녹진하게 볼 수 있는 연기와 노래를 보여주었다. 안젤로띠 역의 베이스 윤종민, 성당지기 역의 베이스바리톤 성승민의 연기와 음악도 인상적이었다.

#2. 그랜드오페라갈라쇼


두 번째 프로그램은 오페라 갈라콘서트로 준비되었는데 본 프로그램만 무려 23곡이 연주된 공연이다. 이 긴 프로그램을 해설도 없이 관객이 즐길 수 있을까 우려하였지만 한곡 한곡 끝나는 순간마다 터져 나오는 관객의 함성과 박수는 그런 기우를 잠재우게 했다. 한가지 아쉬웠던 것은 더 큰 감동을 위해 간단한 해설과 아리아의 내용이 자막으로 제공하는게 좋았지 않았을까 싶었다.

#3. 어린이오페라 빨간모자와 늑대


세 번째 프로그램은 오페라팩토리의 어린이오페라 ‘빨간모자와 늑대’였다. 페스티벌 기간 중에 어린이 오페라를 기획한 것도 아주 좋은 프로그램이라고 생각된다. 그 어린이들이 그날의 감흥을 가지고 성장해 갈테니 말이다. 오페라의 내용은 이미 익히 알고 있는 그 내용이다.
미국의 작곡가 세이무어 바랍이 작곡한 작품으로 보는 내내 출연가수들의 연기에 푹 빠져들었다. 어른들도 이렇게 동화에 빠지게 되는데 어린이들은 어떠했으랴? 가히 무대와 관객이 순간접착제 같은 접합성을 보여주는 광경을 목격하였다. 현대오페라 하면 그 난해한 화성과 선율 없는 효과에 치중한 음악을 떠올리게 되는데 이 작품은 오페라와 뮤지컬의 경계를 적절히 지켜주면서 연극적인 요소가 매우 효과적으로 가미된 실로 상품성, 흥행성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연출자의 연출 의도, 등장인물들의 캐릭터와 연기가 매우 완성도 높게 결합된 작품이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엄마와 할머니로 1인 2역으로 출연한 테너 이상문의 음색인데 듣는 내내 메조소프라노로 오해했지만 프로그램북을 확인하는 순간 테너라는 사실을 알고 그의 연기력에 다시 한번 감탄했다. 늑대 역의 테너 위정민의 속사포 연기, 빨간모자 역 소프라노 김동연의 캐릭터와의 일치감은 극에 더욱 몰입하게 했다.

#4. 영상 가곡 콘서트 위대한 청춘 70


네 번째 프로그램은 리음아트&컴퍼니의 ‘위대한청춘70년’. 6.25부터 현재까지 우리나라의 변화 발전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소개하면서 그 역할을 담당하고 그 자리에 있었던 50~70세대들에게 ‘라이즈업’ 메시지를 전해주는 공연으로 관객 여러분 당신이 바로 ‘위대한 청춘’이라는 깨달음을 주었다.
순수클래식이라기보다는 하이브리드 성격의 공연으로 듣는이와 부르는 이가 함께 느끼고 웃고 우는 그런 감동 가득한 공연이었다. 그 어려웠던 시절을 이겨내고 지금을 살고 있는 많은 관객들의 젖은 눈시울을 보았다. 기성세대에게는 향수와 자긍심을, 젊은 세대에게는 우리의 현대사와 기성세대에 대한 존경심을, 또 젊은 세대가 살아갈 방향을 안내하는 그런 공연이었다.
음악과 영상 모두 한숙현 음악감독이 감독한 공연으로 바리톤 석상근, 소프라노 송난영, 이윤지의 노래가 그 시절의 향수를 더욱 깊이 있게 만들어 주었고, 백순재가 연주한 일렉톤은 오케스트라의 역할을 적절히 잘 감당해주었다.

#5. 영화 속의 오페라

다섯 번째 프로그램은 ‘영화속의 오페라 아리아’였다. 영화 속에 나오는 친숙한 오페라곡들로 짜여진 무대로 기획 의도대로 관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그러나 이 공연 역시 해설과 자막의 필요성이 느껴지는 공연이었다.

#6. 로시니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


여섯 번째 프로그램은 본 페스티벌의 메인 공연으로 로시니의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 마드리드 무도회에서 반한 로지나를 세비야까지 쫒아와 사랑을 구애하는 알마비바 백작, 로지나의 유산을 독차지 하려는 늙은 돈 바르톨로 백작과 로지나의 사랑을 연결해주는 피가로 로지나의 음악선생 돈 바질리오가 엮이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이 코믹하게 전개되며 결국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오페라 부파(코믹 오페라)다.
첫째 날은 제너럴 리허설로 본공연 감상을 대신했다. 로지나 역의 김순영, 백작 역의 정제율, 피가로 역의 김종표, 바르톨로 역의 성승민 모두 눈과 귀를 만족시켜주는 연기와 노래를 들려주었다. 로시니의 오페라는 멜리즈마가 많고 리듬이 빠르기로 정평이 나있는데 모든 출연진들은 이 부분을 훌륭하게 잘 연기하고 노래하였다.
둘째 날 공연의 출연진은 로지나 역의 김신혜, 백작 역의 김재민, 피가로 역의 김성결, 돈 바르톨로 역의 전태현, 돈 바질리오 역의 윤희섭 등이 출연하였다. 전체적으로 완성도와 안정감 있게 진행되며 요소 요소에 위치한 웃음코드는 여지없이 관객의 폭소를 이끌어 내었다.
김신혜의 훌륭한 가창능력을 다시 확인케 되었고 백작 역을 처음 연기하는 테너 김재민의 또 다른 면모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 가볍지 않은 음색임에도 수많은 멜리즈마를 여유있게 들려주었다. 피가로 김성결은 좋지 않은 컨디션에도 무리 없는 발성으로 안정감 있는 공연을 이끌었고 군데군데 비발성적인 희극적 사운드로 관객들의 몰입을 더해나갔다. 돈 바르톨로 역의 전태현의 초반 약간 경직된 음색이 들리는 듯하였으나 이내 제 음색을 찾아 똑똑한 줄 알지만 실상은 멍청한 바르톨로 캐릭터를 잘 표현하였다.
이틀 연속 공연한 돈 바질리오 윤희섭 독일 오페라 주역 출신답게 이틀간의 공연으로 다소 피곤한 음색은 들렸으나 그의 역할을 충실히 연기하고 노래했다. 깔끔한 서곡부터 전체적으로 군더더기 없이 오케스트라를 연주한 코리아쿱오케스트라와 지휘자 권민석의 지휘가 돋보였다.
무대세트 제작의 디테일에 신경을 쓴 흔적이 많이 보였다. 모름지기 오페라는 막이 열렸을 때 관객들 사이에서 와~하는 탄성이 터지는 무대여야 하지 않은가?

협력 모델의 모범적 사례

전체 공연을 관람하면서 극장과 문화재단, 그리고 민간오페라단이 손을 잡고 진행하는 오페라 축제가 오페라를 활성화하고 시민들 생활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축제가 아닌가 싶었다. 예술감독 및 제작의 역할을 분담하거나 함께하면서 지속 가능한 오페라 페스티벌로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 모델이 타 시도의 예술재단과 오페라단의 융합적인 선두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극장이 제작이 아니라 대관으로 굳어진 기형적인 모습인데 제작극장으로 쉽게 바꿀 수 없기 때문에 대관극장과 제작 오페라단이 협력하여 이와같은 오페라 페스티벌을 만들어 간다면 2주간만이라도 제작극장으로의 역할을 감당하는 셈이 된다.
극장에 예술가들은 없고 행정직 기능직 인력만 상주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예술가들을 상주직으로 고용하라 하면 예산탓, 제도탓이 먼저 나온다. 당연히 ‘시행 불가’라고 판정할 것이다. 하늘에서 훨훨 날아 다니고 싶은 예술가들이 강동아트센터의 서울오페라페스티벌 사례와 같이 전국 곳곳에서 활성화된다면 예술가들의 날개는 이제 공연장 안에서 펼쳐지지 않을까?
이런 모델을 꿋꿋하게 마련해주고 있는 강동문화재단과 더불어 적자도 마다하지 않고 지난 8년간 견뎌내고 있는 노블아트오페라단과 신선섭 단장에게 큰 박수를 보낸다.

글 허철 (성악가, 오페라뱅크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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