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기만 했던 현대음악에 친절한 답을 건넨 지휘자 최재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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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주년 매일클래식 음악회, 최재혁의 ‘시간과 공간’
10월 6일 (금) 오후 7시 30분 롯데콘서트홀

직원들 급여일! 2023년 10월 6일 기분이 아주 꿀꿀한 가운데 롯데콘서트홀을 찾았다. 그러나 세 곡을 들을 즈음 청량한 바람을 맞은 듯 우울한 구름은 이내 사라졌다. 현대음악을 소재로 한 ‘시간과 공간’이라는 복잡계를 풀기 위해 머리를 굴린 탓이다.
도대체 이 프로그램을 누가 구성했는지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시간과 공간’이라는 제목은 또 누가 정했을까? 지휘자 최재혁이었다. 이번 음악회를 통해 ‘제목달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도 깨달았다. 그는 대체 어떤 생각으로 프로그램을 결정했는지 직접 물어볼 수는 없었다. 단지 나의 아둔한 뇌피셜로 국량껏 퍼즐을 맞춰볼 뿐이다.

대답 없는 질문에 해답을 선사한 공연

이렇게 보자. 보험 영업사원이었던 작곡가 찰스 아이브스의 ‘대답 없는 질문’으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런데 듣자하니 ‘대답을 구하기 어려운 질문’이라는 뜻이지, 대답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트럼펫의 낙담 어린 무조음악적 질문에 이어, 현악기군과 목관악기들은 저마다 대답을 하느라 종잡을 수 없을 만큼 야단법석의 대답을 진설했다.
한바탕 무조음악의 울림으로 찰스 아이브스의 혼란이 잠시 휴지기를 맞자, 클라리네스트 김길우가 등장해 벨라 코바치의 ‘바흐에 대한 경의’를 연주하며 목관악기군와 현악기, 콘트라베이스 등의 소리를 정렬해나갔다.
그러나 바야흐로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랄까? 첼로 배성우와 더불베이스 유이삭이 연주해낸 베른하르트 갠더의 ‘원대한 영혼들’은 그야말로 쉴 새 없는 보잉으로 환상의 폭주를 달렸다. 와! 탄성이 절로 나왔다.
이 세 작품에서 이미 청중은 압도되었다. 카리스마의 주인공들이 번갈아가면서 쏟아내는 무조와 화성의 대 화합! 이를 정리한 것은 바이올린 박규민이었다. 튜닝인지 본 연주인지 구분할 수 없는 ‘흐름’으로 시작해, 시간의 벽을 뛰어넘는 사운드로 이끌어간 죄르지 리게티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현란한 테크닉으로 소화해냈다.

최재혁의 오르간 협주곡, 사자의 눈을 갖게 하다


지휘자이자 작곡가인 최재혁의 작품 ‘오르간협주곡’(앙상블 버전)은 ‘음악의 공간성’이 무엇인지 상상할 수 있도록 안내해준 친절한 현대음악이 아닐까?
현대음악의 공통적인 특징 중 하나는 가청음역의 극대화라고 할 수 있다. 그 높은 음역대에서 멜로디 라인을 파악하는 것은 마치 추상적인 단어로 도배된 시의 날줄과 씨줄을 구분해내는 것만큼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그러기에 불친절하고 무례한 음악이기도 하다. 귀 있는 자들만 감상하라는 것인가? 하지만 최재혁의 오르간 협주곡은 오르간 리듬이 줄타기의 줄을 잡듯 평형을 유지하면서 무조음악 속에서도 음악의 방향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시력이 뛰어난 ‘사자의 눈’을 갖게 한다. 너무 재미있는 곡이다.

어렵다는 편견을 두드리는 친절한 현대 음악

팽팽한 현대음악, 갑자기 뇌신경에 이완제를 투입하듯 첼로 이호찬이 협연자로 나선 안토니오 비발디의 ‘첼로협주곡’이 긴장을 느슨하게 하더니 스티브 라이히의 ‘여덟 개의 선’은 한 사람 한 사람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일을 처리해야 하는 현대인의 난삽을, 변화와 복귀의 반복적인 미니멀리즘으로 표현해냈다.
간만에 흥미로운 현대음악, 단언컨대 아직 마음을 열 준비가 되지 않은 클래식 청중에게 계속 문을 두드리는 지휘자 최재혁.

‘모든 음악은 탄생할 때 모두 낯설었다, 그러나 언제든 귀를 열면 들린다’는 신념을 무장하고 ‘어렵다’는 편견을 깨기 위해 유럽과 미국, 한국을 오가며 아무도 막을 수 없는 걸음으로 지축을 흔들고 있는 차세대 지휘자다.

글 김종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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