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멋에 멍드는 음악, 제발 바꿔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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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회 강원피아노듀오협회 정기연주회
10월 12일 (목) 오후 7시 강릉아트센터 소극장

번드르르하다. 강릉아트센터의 높이와 현대적 외벽은 압도적이다. 강릉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3시경. 서서히 저무는 태양빛이 유리 전면에 비추자 3시간 동안 달려온 피로가 싹 가실 만큼 고혹적이었다.
리허설 두번째 팀이 막 피아노를 치기 시작할 때 피아노소리가 어딘가 이상했다. 조율을 안했나? 그러나 조율을 하지 않을 리 없지 않은가. 투 피아노 연주이기에 두 대의 피아노의 화음이 잘 맞아야 하는데, 두 대의 피아노 모두 투명하지 않고 솜방망이로 젖은 빨래감을 두드리듯 먹먹한 느낌을 피할 수 없었다.
“선생님, 우측 피아노가 특히 벙어리 냉가슴처럼 웅얼거려요. 그 피아노가 뭐죠?”
아뿔사, 내 초창기 기자 시절에나 존재했던 대우로얄피아노였다. 벗겨진 페인트는 빈티지스타일이 아니라 진짜 썩음 털털한 것이었다. 한마디로 아슬아슬한 피아노였다. 멋진 건물 외벽이 크로즈업되었다. 벽면에 설치한 유리 몇장만이라도 절약해서 피아노 한 대 들여놓으면 될 법한데, 겉멋만 잔뜩 들었구나 싶었다.

주객이 전도된 결과


서울 공연 때문에 직원에게 뒷일을 맡기고 상경하던 도중에 전화가 왔다.
“사장님, 아까 그 로얄피아노 공연 도중에 현이 끊겨서 아주 당황했습니다. 다행히 마지막 곡이라서 대략 넘겼지만 큰일날 뻔했습니다.”
물론 연주 중에 현이 끊어지는 경우가 전혀 없는 일은 아니다. 피아노가 새것이라 해도 엄청난 파워로 속주를 하다 보면 장력이 견디지 못해 파열하는 것이다.
새것도 이럴진대 낡은 피아노는 말할 것도 없지 않은가. 확률상, 연주 중 끊어질 가능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 아마 극장관계자는 이 문제를 걱정해 수없이 피아노 교체를 요구했을 것이다. 살짝 들은 얘기도 있다.
그럼에도 늘 예산 부족 핑계였다. 연주회에서 가장 중요한 피아노에 대한 관심은 뒷전으로 밀렸음이 틀림없다.
음악회에서 가장 중요한 콘텐츠는 ‘음악’이요, 그 음악을 생산하는데 가장 중요한 기제는 ‘피아노’이다. 러시아의 극장들처럼 벽이 초라해도, 비엔나 황금홀의 무대 바닥처럼 바닥이 버근거려도 그건 봐줄만하다. 그러나 피아노가 낡아서 제 소리를 내지 못한다면 무슨 ‘음악회’를 한다고 할 수 있을까?
겉멋만 잔뜩 든 문화예술회관들이 얼마나 많은가. 대한민국 국민들의 수준이 그렇다면서 변명할 문제가 아니다.
부산의 어느홀에 갔을 때 그랜드 피아노를 보관하는 곳이 없어서 무대 한쪽에 밀어놓고 사용하는 시설현황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던 적이 있다. 습도관리 등 피아노 관리에 무지한 상태에서 그 추운 겨울 무대에 방치돼 있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관리를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지적에, 별도 공간을 마련할 예산이 없다고 말하며 하얀 이를 드러낼 뿐이었다.

본질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길

몇 년 전 선생님들을 데리고 모스크바콘서바토리로 연주여행을 갔을 때 낡은 피아노에 앉아 세상 어디에서도 듣지 못했던 아름다운 선율로 연주하던 노 교수가 떠오른다. 외관은 낡은 피아노였지만 현과 액션 등은 항상 최고의 상태를 유지했기에 가능한 소리였다.
반면 싱가포르 교향악단이 내한했을 때 그들이 갖고 있는 악기는 세계적인 악기들이었다. 악기에 겉멋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그들이 연주했을 때 소리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본질을 외면한 극장의 모습이 어디 한두 군데겠는가. 그러나 마침 강릉아트센터 소극장의 피아노 상태를 발견했기에 이 극장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제발 피아노를 교체해주길 바란다. 대우로얄피아노가 언젯적 피아노인가. 일반 음악학원서조차도 사라진 피아노를 가장 최신 시설의 극장이 유물처럼 껴안고 연주하고 있기에 한심해서 하는 소리다.

글 김종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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