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혁과 앙상블블랭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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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감독·지휘 최재혁 / 플루트 류지원 / 오보에 이현옥* / 클라리넷 김길우 / 바순 김현준* / 호른 김형일* / 트럼펫 김상민* / 트롬본 차태현, 서주현* / 타악기 이서림 / 피아노 정다현, 김보영 / 바이올린 한윤지, 김예지, 박재준, 이마리솔, 김기환* / 비올라 최하람, 정승원, 박하양 / 첼로 이호찬, 배성우, 최민지* / 더블베이스 유이삭
(*는 객원)

만물의 음악을 담고 비우는 그릇
12월 15일(금) 대관령의 소리를 담다

앙상블블랭크(음악감독, 지휘자 최재혁). 지난 10월 롯데콘서트홀의 매일클래식에 초청받아 독특한 기획과 연출로 현대음악이라지만 누구나 귀를 기울이면 음악적 의미를 간파할 수 있는 ‘쉬운 현대음악’ 콘서트를 개최해 화제가 되었던 앙상블이다. 대한민국에 실험적이지만 결국 ‘실험실 화학품 냄새’를 풍기지 않는 현대음악을 펼치는 공연이 얼마나 될까? 화음챔버와 같이 현대음악을 주로 공연하는 단체도 있지만 그건 앙상블블랭크와는 전혀 다른 스탠스를 유지하고 있는, 이미 어른스럽고 현대음악의 고전적 앙상블로 인식돼 있다. 앙상블블랭크는 일단 젊고 활달하다. 바로크 시대와 고전음악을 거쳐 현대음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들의 연주를 듣고 있으면 갓볶은 콩으로 만든 커피향의 생기가 느껴진다. 그렇다고 야단법석을 깔아놓고 넘치는 에너지를 마구 방기하는 음악도 아니다. 여느 앙상블과 동일한 페르마타, 동일한 레가토를 연주해도 막 도화지에 그려내는 색연필이다.

이들이 오는 12월 15일 대관령음악제에 초청받아 평창 알펜시아 콘서트홀에서 올해의 마지막 연주회를 개최한다. 대관령음악제에서 기획하는, 그리고 앙상블블랭크의 올해 마지막 공연인 만큼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현대음악 애호가들을 감동시킬 것이다. 이번 호에는 앙상블블랭크의 급격한 인기를 해부하기 위해 펜을 들었다. 앙상블블랭크의 지휘자이자 음악감독인 최재혁을 단순히 인터뷰하는 선에서 그치지 않고 앙상블블랭크의 멤버, 협연자, 기획자 및 초청자 등 다각적인 시각에서 앙상블블랭크의 입체적인 모습을 살펴보기로 했다.

앙상블블랭크의 탄생 이야기

지휘자 최재혁은 앙상블블랭크를 ‘앙상블블랭크를 알고있는 음악가라면 누구든 우리와 함께 작업하고 싶어하는 단체’라고 소개한다.
“객원으로 함께하신 음악가들은 항상 ‘오랜만에 정말 재미있게 음악했다’ 라며 함박웃음을 지으십니다. 그 기저에는 우리가 재밌으면 관객에게도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남을 행복하게 하려면 내가 먼저 행복해야 하는 이치처럼 연주자들이 먼저 재미를 느낀다면 관객들도 즐겁지 않을까? 왜 그들의 펼치는 연주가 신선하고 즐겁게 들리는지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현대음악을 신선하게 퍼올리는 앙상블블랭크의 그물에도 분명 처음 그물을 짰던 ‘그물코’가 있을 텐데 도대체 누가 어떻게 그물코를 만들기 시작했을까? 2015년 봄 줄리어드음악원에서 작곡을 전공하고 있던 최재혁의 아이디어로 시작했다.
“류지원(플루트) 정다현(피아노), 그리고 커티스 음악원의 이원석(퍼커션)과 이구동성으로 한국에서 멋진 공연을 기획해보자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순수하고 멋진 음악을 함께 만들고 공유하자는 마음이었죠.”

고전, 낭만 등 과거 유명 작곡가들(모차르트, 베토벤 등)의
작품도 그 당시에는 ‘현대음악’이었어요.
그래서 저희가 현대음악을 널리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습니다.

– 앙상블블랭크 음악감독 최재혁 –

1톤의 아이디어보다 1그램의 실천이 중요하다고 했다. 뜻은 좋지만 당시 멤버들과 몇 년 동안 함께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질 않았다. 그래도 이들은 의기투합! 행동에 나서기로 했다. 2015년 6월 장욱진 미술관에서 첫 연주를 펼쳤다.
“단체명도 없이 일단 저질러보자는 심산으로 그렇게 시작한 거예요. 지속적인 프로젝트를 염두하고 줄리어드 맞은편에 있던 바에 앉아 단체명을 고민했습니다. 꽤 긴 회의 끝에 나온 결론은 ‘임시보류’였습니다. 그래서 Ensemble 옆에 ‘일단 비워둔다. 곧 무엇으로라도 채워지겠지’ 하는 기대로 괄호[ ]를 그렸습니다. 그렇게 마무리하고 일어나려는 찰나, 멤버 중 한 명이 괄호를 보더니 ‘앙상블블랭크!’(Ensemble Blank)라고 외쳤습니다.”

국내 최고령 민간오케스트라 중 한 단체가 맥주집에서 오케스트라 이름을 고민했지만 작명을 결정하지 못해 결국 호프집 이름을 사용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떠오르는 작명 일화였다. Blank는 비어있다는 뜻이기에 언제든 멤버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품을 수 있다는 강력한 의미를 갖고 있다. 그렇게 앙상블블랭크는 그 어느 단체보다도 자유로운 이름을 갖게 되었다. 불교 공즉시색(空卽是色)의 공(空)과 다를 바 없는 ‘블랭크’는 곧 이들의 정체성이 되었다. 이로써 20세기와 21세기 음악, 그리고 바로크와 고전음악을 함께 연주하는 것이 그들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늘 비어있기에 무엇을 담아도 본래의 색을 발하게 하는 기막힌 앙상블이 된 것이다. 줄리어드음악원에서 수학한 최재혁뿐만 아니라 멤버 모두 20세기, 21세기 음악과 친숙했고, 각각의 시대 음악이 풍기는 고유의 음악적 미학을 모두가 느끼고 있었다.
“바로크와 고전의 음악들은 우리의 뿌리가 어디서 왔는지 너무나 잘 보여줍니다. 여러 가지의 미학과 아름다움이 하나의 공연에 어우러지는 것 역시 다양한 아름다움을 가진 저희 블랭크들이 한자리에 모여 연주하는 것과 매우 닮았습니다.”

이처럼 남다른 아름다움을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 싶었다고 말하는 앙상블블랭크다. 이번 호는 앙상블블랭크의 단원들에게 앙상블블랭크의 정체성과 음악적 철학을 묻고 나아가 지휘자 최재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앙상블블랭크는 어떤 단체인가?

“고전, 낭만 등 과거 유명 작곡가들(모차르트, 베토벤 등)의 작품도 그 당시에는 ‘현대음악’이었죠. 그래서 저희가 현대음악을 널리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습니다.”
앙상블블랭크에서 최재혁 음악감독이 강조했던 멘트이다. 사람이 서로 사랑할 때 마주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곳을 바라본다고 하지 않는가, 이들 역시 그랬다. 최재혁이 그려가는 도화지 위에 단원들이 한마음으로 채색하고 있었다.

평소에도 현대음악전문 연주단체의 필요성을 느꼈던 유이삭(더블베이스)은 ‘앙상블블랭크는 우리 사회에 꼭 필요로 하는 전문 연주단체’라고 강조했다. 사실 앙상블블랭크가 유일무이한 현대음악 연주단체는 아니지만, 그들은 특별하기 때문이다. 앙상블블랭크만의 색깔은 프로그램만 살펴봐도 그들의 신념을 느낄 수 있다. 남이 알지 못하는 일방적인 선문답(禪問答)식이 아니라 현대음악 전문가나 초보자 모두에게 어필하는 곡들이라는 것이다. 이호찬(첼로)도 이에 고개를 끄덕였다. 현대음악이 어렵다는 편견을 받고 있지만 사실 굉장히 매력적이고 Fancy한 음악이라고 설명하며 사람들이 일상에서 매일 듣는 소리나 소음조차도 음악으로 바꿔줄 수 있다는 의미에서 앙상블블랭크는 그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한계를 갖고 있지 않는 앙상블단체(No Limit)이기 때문이다. 정형화된 모든 것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것, 편견에 맞서는 것, 이것이 또 하나의 블랭크였다. 이에 배성우(첼로)도 공감하며 말을 이어갔다.

“앙상블블랭크는 도전적인 방향으로 무대를 구성하는 단체입니다. 음악만이 주 레퍼토리가 아니라 의상, 동선 그리고 악기 배치에 이르기까지 무대까지도 블랭크 특유의 방식으로 구성하기 때문이에요. 정형화된 방식을 벗어나 자유로운 공간으로 활용하죠.”
김길우(클라리넷)도 덧붙여 나갔다. 앙상블블랭크가 사랑받는 이유가 단순히 연주만 특이한 게 아니라 ‘어떻게 공간을 활용할지, 혹은 어떻게 관객에게 그들의 메시지를 전달할지’ 등 다양한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장이기 때문이라는 것. 맴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떠오른 단어는 ‘힙한 앙상블’이었다. 앙상블블랭크만의 음악이 펼쳐진 그 공간에서 관람하고 함께 했다는 것만으로도 바로 인스타에 올려 자랑하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앙상블블랭크의 틀을 깨부수며 만들어내는 본인들만의 색을 담은 음악은 다른 음악가와,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

“젊고 힘 있고, 미래를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앙상블블랭크는 한국에 꼭 필요한 현대음악 단체입니다.”
한문경(퍼커션)은 앙상블 TIMF, 소리앙상블 등 선배 현대음악 단체가 있었고, 지금까지 각 단체마다 각자의 캐릭터에 맞는 작업을 펼치고 있지만 앙상블블랭크는 앞선 단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젊은 연주자들로 구성된 앙상블인 만큼 작품도 젊은 작곡가들의 작품에 더 집중하는 편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제네바 국제 콩쿠르 작곡부문 역대 최연소 우승자
최재혁이 이끄는 현대음악연주 단체, 앙상블블랭크

루체른페스티벌에서 공연이 끝나고 청중에게 인사하는 모습
(왼쪽부터 던킨 와드, 최재혁, 사이먼래틀)2018

지휘자 최재혁은 음악가란 개인의 생각과 철학이 견고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연주자들은 개성이 뚜렷하고 또 그런 연주자들과 음악을 만들며 즐거움을 느낀다는 것이다. 서로의 아이디어와 철학이 확고해야 그만큼 서로에게 주고받는 것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본인의 생각이 명확한 사람이 오히려 생각이 열려 있는 법이다. 갈등이 많을 것 같지만 오히려 이런 사람들과 소통할 때 불편함이 없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물론 ‘개성’과 ‘개인의 고집’을 잘 분별해야 한다.

서양음악의 특성상, 연주자들은 이미 작곡가들이 작곡한 작품을 연주해야 한다. 미국의 재즈는 개개인의 역량에 따라 즉흥적으로 음악의 모양새가 변하는 음악이다. 연주자가 실시간으로 작곡하기 때문에 굉장히 주체적인 음악을 할 수밖에 없다. 반면 작곡가들의 유산(遺産)을 연주해야 하는 클래식 연주자들은 재즈와 달리 악보에 의거해 미세하고 미묘한 작업능력을 요구한다. 작곡가의 음악이기에 그 작곡가가 말하고자 하는 메세지를 유추하고 이를 바탕으로 표현해야 한다. 지휘자 정명훈의 말처럼 연주자는 ‘셰프가 요리한 음식이 식기 전 테이블에 전달하게 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연주자들 또한 연주하는 음악이 식지 않게 관객에게 전달되기 바라는 마음은 같다. 따라서 메시지를 ‘어떻게’ 해석해서 전달할 것인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수시로 던져야 한다. 카라얀도 이렇게 말했다. ‘눈송이가 하늘에서 내려와 우리 손에 닿으면 우리가 뭘 하지 않아도 녹지 않는가?’

한편 이호찬(첼로)은 개성이 너무 뚜렷해 단원끼리 호흡을 맞추는 데 지장을 주거나 어려움으로 작용한다면 그건 좋은 개성이라고 할 수 없고 프로답지 못한 모습이라고 정의한다. 좋은 개성이란 오히려 그들의 뚜렷한 개성을 잘 융합해 좋은 시너지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며 최재혁의 의견에 공감한다. 배성우(첼로)는 개성이 또렷하면서도 서로 호흡을 잘 맞추는 것이야말로 블랭크만의 독보적인 장점이라고도 강조한다. 그동안 함께한 시간이 오래된 만큼 최재혁 감독의 자유로운 디렉팅으로 리허설 분위기가 매우 편해 서로가 편한 형, 누나, 동생 사이로 의견 개진에 막힘이 없다는 점도 앙상블블랭크의 장수비결(?)이 아닐까?

둑은 쓰나미 말고도 작은 구멍 하나로부터 터지기 시작한다. 앙상블 단원은 전체 단원들과 호흡을 맞출 수 있는 실력도 갖춰야 하지만 무엇보다 마음의 화음을 이뤄야 그 생명력이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다. 앙상블블랭크는 서로 마음에 합한 단원들을 어떻게 선발하며 어떻게 음악을 맞출까?
최재혁 감독은 좋은 음악은 모두의 마음이 편할 때 비로소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력은 당연히 기본이겠지만 열린 마음과 생각, 그리고 무엇보다 서로를 배려할 수 있는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 동시에 동생이 형이나 누나에게, 때로는 반대로 쓴 소리를 할 수 있어야 하고 이를 수용할 줄 아는 태도도 중요하다. 결국은 좋은 음악을 만들고자 하는 하나의 마음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초창기 창단 멤버들 모두 이러한 생각이었어요. 다행히 비슷한 생각을 하는 음악가들이 들어왔고요. 지금까지도 그렇습니다. 가치관이 같은 사람들은 서로를 알아보게 되는 것 같아요. 순간 특별한 케미가 발동합니다.(웃음)”
그렇기에 앙상블블랭크는 별도의 오디션을 거쳐 선발하지 않는다. 멤버 중 다수가 누군가를 추천하면 일단 그 연주자와 작업해본다. 그렇게 인연이 되어 여러 번 연주를 함께한 후, 내부 투표를 거쳐 만장일치가 되면 공식적인 블랭크의 ‘엔젤’(단원)이 된다.
“추후에는 오디션도 볼 수 있겠죠. 다양한 이유로 현재까지는 오디션 대신 실제 연주 활동을 통해 선발하고 있습니다.”

최재혁 감독은 열린 마음과 생각, 음악을 향한 진심 그리고 쿨함! 거기에 개인 개성까지 짙은 연주자라면 주저하지 말고 연락하라고 권한다.

시공간을 뛰어넘는 스펙트럼

“베토벤의 음악을 들으면 현재의 ‘나’라는 존재가 어떤 영감을 받듯이, 우리가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을 들으면 복합적인 감정을 느끼듯이, 먼 훗날 후세에 우리의 음악을 듣고 지금과 같은 영감과 감정을 느끼는 청중이 있다면 후세 사회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최재혁 감독은 지휘자로서 또 음악감독으로서 새로운 음악을 발굴하고 소개하는 것은 하나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음악, 새로운 예술이 계속해서 나오지 않는다면 사회는 과거의 예술만을 경험 한 채로 멈추게 된다. 당연한 일 아닌가. 사회가 다양하고 새로운 예술의 시각을 통한 창의적인 사고방식을 채근하고 독려받지 못한다면 결국 정체된 음악만 고수할 수밖에 없다.
무대 위의 연주자들은 미래의 베토벤이 될지도 모르는 음악을 외면하지 말아야 할 의무가 있기에 앙상블블랭크는 레퍼토리를 꾸준히 늘려가고 있다. 그들이 요리하는 작품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앙상블블랭크는 그들의 대표 레퍼토리로 Beat Furrer, Gyorgy Ligeti, Antonio Vivaldi, J.S Bach, 그리고 최재혁의 음악들을 꼽는다. 가장 많이 다룬 만큼 그 음악들을 항상 몸으로 느끼고 다닐 정도다. 특정 작곡가들을 다양하게 다루다 보면 그들만의 그루브가 음악 안에 녹아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다루고 싶은 레퍼토리는 고전의 모차르트와 하이든, 그리고 아직 많이 다루지 못한 라헨만(Lachenmann), 불레즈(Boulez), 횔러(Höller) 등 많은 작곡가들이 있습니다.”
물론 앙상블블랭크가 현대음악을 중시한다고 해서 20세기, 21세기 음악만을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비발디와 바흐 그리고 하이든 등 많은 고전주의 작곡가들도 함께 다뤘다. 앙상블블랭크가 다소 익숙하지 않은 작품들을 고전 레퍼토리와 함께 올리는 데에는,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그 아름다운 작품들을 외면할 수 없는 까닭이다.

“옛것이 아름답고 현재의 것은 아름답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그저 다를 뿐이죠. 사실 악보가 소리로 변하는 순간 모든 음악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20세기, 21세기 음악에 대한 공감의 정도(定度)가 고전 레퍼토리에 비해 낮을 수는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음악들은 17~19세기, 약 300년 동안의 음악들이다. 그중에서도 음악회에 자주 올려지는 작곡가들은 15명 남짓의 극소수에 불과하다. 바로크 시대나 15세기, 16세기 음악도 찾으면 아름다운 곡들이 굉장히 많다. 그러기에 이런 음악들이 더 널리 연주되면 좋지 않을까 하는 게 최 감독의 변(辯)이다. 다채로운 무대를 만들어가는 앙상블블랭크. 단원들과 함께한 연주자들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을 질문했다.

유이삭(더블베이스)은 앙상블블랭크를 통해 현대음악과 바로크 음악의 대조를 통한 메시지, 고음악에 대한 독특한 해석과 동시에 시대적으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현대음악 사이에 관통하는 무언가를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유이삭에게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것은 곡은 R. 손더스의 ‘Fury I’이라는 더블베이스 솔로곡이다.
“인간 내면의 멜로디를 여러 가지 익스텐디드 테크닉을 이용해 표현한 작품인데, 단순히 연주했기 때문에 기억에 남는다기보다 준비하면서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부담도 되고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 기억에 남습니다.”

이호찬(첼로)은 서서 연주하는 첼로 솔로곡 H. Lachenmann의 ‘Pression’은 새로운 도전이었다고 술회한다. 뿐만 아니라 B. Furrer의 ‘Spur’는 굉장히 리드미컬한, 합이 짝 맞아떨어져야 하는 곡으로 까다로운 연습 기간을 거쳐서인지 잊을 수 없다고 말한다. 배성우(첼로)는 앙상블블랭크가 현대음악을 주로 다루는 앙상블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바로크를 비롯한 고전시대 곡들과 낭만시대 음악도 많이 다루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쇤베르크의 ‘정화된 밤’입니다. 2020년 여름 당시, 코로나19의 여파로 공연 취소가 가장 심했던 시기에 단원들이 오로지 음악만을 위해 모여서 열심히 연습하고 연주했습니다. 앙상블블랭크답게 곡의 해석도 내용에 맞게 과장하여 표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김길우(클라리넷)는 지난 10월 6일 롯데콘서트홀 ‘매일클래식’ 연주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 넓은 롯데콘서트홀의 공간을 완벽하게 이용한 굉장히 재미있는 연주였다. 그날 ‘벨라 코박스-바흐를 위한 오마주’는 연주자로서 너무 감동했었다고 한다. 박규민(바이올린)은 앙상블블랭크는 “앙상블블랭크와 처음 작업했던 비발디 협주곡도 기억에 남지만, 지난 10월에 연주했던 리게티 협주곡이 개인적으로 매우 소중한 경험이었다”고 말한다.
“곡의 기교적인 난이도뿐만 아니라 음악적으로 설득력 있는 해석을 보여주기 위해 스스로에게도 큰 도전이 되었던 프로젝트였습니다. 앙상블블랭크였기 때문에 시도할 수 있었던 연주였고 다른 음악을 바라보는 시야 역시 넓혀준, 평생 잊을 수 없는 무대였어요.”

한편 지난 2021년 앙상블블랭크의 공연 ‘최재혁의 앙상블블랭크 & 이한나의 Viola in my life’에서 이한나와 한문경을 위해 작곡한 작품이 세계 초연된 적이 있다. 한문경(퍼커션)과 이한나(비올라)는 중학교 때부터 친구이지만 활동하는 분야가 달라 마주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최재혁 감독의 작품으로 두 벗이 드디어 한 무대에서 만났으니 얼마나 감회가 새로웠겠는가.
“상당히 난해하게 보이는 곡입니다. 악보만 보면 ‘도대체 이게 뭘까’ 할 정도였죠. 다행히 작곡가의 설명을 친절하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최재혁 감독은 본인이 원하는 소리와 아이디어가 굉장히 분명했는데 정말 즐거운 연주였습니다.”

한문경(퍼커셔니스트)은 앙상블블랭크와 함께했던 작품으로 Boulez, Feldman 그리고 최재혁 등 현대음악 작곡가의 작품들이 많다. 지난 2019년에 개인 독주회를 위해 작곡가 최재혁에게 위촉한 작품이 바로 ‘Self in Mind IV for Percussion Solo’인데 아주 작은 소리로 시작해 거칠고 복잡한 시끄러운 소리까지 작곡가 최재혁의 머릿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굉장한 작품이었다. 많은 악기가 등장해서 한문경을 빙 둘러싸게 세팅해야 했기 때문에 연주하러 들어갈 때 베이스드럼을 살짝 옮겨서 문처럼 열고 들어가야 했던 기억이 있다.

앙상블블랭크, 현대음악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답하다

최재혁 감독은 커피는 쓴맛이지만 우리가 커피를 좋아하는 것은 커피맛이 변해서가 아니라고 하면서 현대음악을 비유했다. 커피 맛은 그대로지만 우리가 그 맛을 받아들이면서부터 그 맛이 좋아진다는 얘기다. 새로운 스타일의 옷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어색하지만 자꾸 입으면 차츰 나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하게 된다. 옷과 자신은 변한 것이 없는데 말이다. 무엇이 변한 것일까? 본인의 마음과 생각이 변했을 뿐이다.
이처럼 새로운 음악, 새로운 예술은 새로운 커피나 음식을 먹거나 옷을 새로 입는 것과 다르지 않다. 좋아하는 음식만 계속 먹는 것도 좋지만 때로는 새로운 음식을 도전해 본다면 내가 좋아하는 음식의 종류가 하나 더 늘어나는 법이다. 좋아하는 것이 늘어나고 그 종류가 다양해진다면, 우리의 삶도 우리의 시각도 더욱 다채로워지지 않을까? 그게 최재혁의 생각이다.

젊고 힘 있고, 미래를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앙상블블랭크는
한국에 꼭 필요한 현대음악 단체입니다.

– 퍼커니스트 한문경 –

유이삭(더블베이스)은 앙상블블랭크의 매력은 현대음악의 ‘어려움’을 아름답게 해석하는 데 있다고 설명한다. 현대음악은 물론 대중음악이 아니기 때문에 모두에게 듣기 좋고 사랑받는 것이 목표가 될 수는 없다. 현대음악을 흥미롭고 관심이 가는 분야로 만드는 작업을 할 뿐이다. 물론 현대음악을 쉽게 보여준다 해도 직접 공연장을 찾아 음악을 감상한 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는 관객의 몫이다.
“가장 쉽고 좋은 방법은 어렵고 듣기 힘들다는 관념 자체를 지우는 것입니다. 기괴하면 기괴한 대로, 듣기 싫은 소리가 난다면 그대로 듣고 감상하는 거죠.”
김길우(클라리넷)는 현대음악은 연주자의 입장에서도 어렵기는 매한가지라고 이른다. 연주자 역시 리허설을 하면서도 매번 수많은 벽에 부딪히고 깨어지면서도 계속 도전해야 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작곡가들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 혹은 효과 등을 효율적으로 전달한다면 고전이나 낭만 작품보다 훨씬 더 듣고 싶은 음악이 될 수 있다는 게 김길우의 귀띔이다.

“유이삭 선생님이 말씀했지만 개인적으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부분을 집중해서 듣는다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입니다. 집중력을 강요받지 말고 있는 그대로를 느끼고, 졸리면 졸린 대로, 멍하다면 멍한 채로 듣고 즐기는 것이 현대음악의 매력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점에서는 한문경(퍼커션)도 동의한다. 모든 음악회나 공연이 반드시 인기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이 처음 연주되었을 때 관객들은 공감하지 않았지만 100년이 지난 지금 연주자와 관객 모두에게 사랑받는 레퍼토리가 되지 않았는가. 한문경은 앙상블블랭크의 역할은 인기가 많고 적고에 흔들리지 않고, 현 시대에 반드시 필요한 작업을 계속해서 남기고 공연을 올려줘야 한다는 논지를 펼친다.

이미란(롯데문화재단 홍보담당)은 최재혁 작곡가의 말처럼 ‘현재에 만들어진 음악이라고 해서 꼭 현대음악이라는 용어가 붙을 필요가 있나’ 하는 의견에 동의한다. 오늘이 곧 내일이 되는 시간의 속성 안에서 창작시기를 기준으로 고전음악, 현대음악을 나누는 건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는 것이다. 다양한 작품들을 떠올려보면 상대적으로 고전음악이 듣기 쉬운 것은 맞지만, 현대음악이 어렵다는 것 또한 편견일 수 있다. 비발디의 사계와 피아졸라의 ‘사계’와 리히터의 ‘사계’가 각각 다른 것처럼, 작곡가의 스타일에 따라 변모하는 다양한 음악 세계를 열린 마음으로 듣고자 하는 관용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매일클래식’ 20주년 기획의도와
김화림 감독이 앙상블블랭크를 선택한 이유

매일유업은 지난 2003년부터 ‘찾아가고 초대하는 음악회’의 형태로 ‘매일클래식’을 매년 개최해오고 있다. 지난 10월에는 20주년 기념으로 롯데문화재단과 협업해 총 4회의 특별 공연을 기획한 바 있다. 그 세 번째 무대에 젊은 작곡가 최재혁과 앙상블블랭크가 함께했는데 이번 공연을 총괄한 김화림 총예술감독에게 앙상블블랭크를 어떻게 초청하게 되었는지 물었다.

“지난 2020년 1월 금호아트홀에서 최재혁의 ‘베토벤이 상상한 미래’라는 공연을 감상한 적이 있습니다. 프로그램이 흥미로워서 표를 직접 구매해서 감상한 그룹인데 우선 그룹의 에너지와 dedication이 느껴지는 현대음악 그룹이라 굉장히 흥미로웠어요, 그 이후 계속 공연을 찾게 되었죠. 그전까지는 개인적으로 모르던 최재혁 지휘자를 직접 백스테이지로 찾아가서 인사를 나누었죠. 그런 인연으로 세 번째 시리즈로 현재를 조명해 보는 기획으로 정한 후, 앙상블블랭크를 초대한 거예요.”
김화림 감독은 최재혁 지휘자한테 전격적으로 다 맡겼지만 매일클래식의 총감독으로서 프로그램을 리뷰하고 의논하는 과정을 거쳤다. 몇 번의 수정을 거쳐서 프로그램을 결정했는데 공연의 연출적인 아이디어도 충분히 공감하고, 아이브즈의 작품을 시작으로 탄생 100주년을 맞아 세계 주요 공연장에서 공연되는 리케티의 바이올린 콘체르토를 선곡해 더욱 특별해 보였다.

“미니멀리즘의 음악으로 끝나는 전체 프로그램 안에서도 20주년 타이틀인 ‘시간과 공간’의 진행과 팽창이 느껴져서 아주 좋았습니다. 도전적인 프로그램이지만 낯설어도 흥미롭게 뭔가 질문을 던지는 음악회였지요.”

최재혁은 어떤 지휘자인가?

그동안 많은 음악가들이 최재혁과 공연을 펼치거나 음악적인 작업을 함께 했다. 혹은 단원으로서, 협연자로서, 총감독으로서 최재혁과 함께 음악을 만들고 연주했던 경험을 통해 그들은 최재혁 감독을 지휘자로서 어떻게 바라보는지 궁금하다.

김화림 매일클래식 예술감독은 최재혁에 대해 철저함과 여유로움이 느껴졌고, 프로 정신이 확실해서 현대음악을 풀 프로그램으로 한 롯데콘서트홀 공연을 올리면서도 믿음이 갔다고 호평한다. 연주자 각자의 주인의식이 느껴지는 단체다 보니 그 정신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는 것이다.

작곡가이면서 더하우스콘서트 대표인 박창수 음악감독은 최재혁을 재능이 많고, 여러 가지 가능성이 열려있는 친구라며 딱 하나로 정의하기보다 작곡, 지휘, 기획 등 다양한 능력을 지니고 있어 앞으로의 무한한 성장이 기대되며 음악계에서 관심 있게 바라보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현대 음악을 어렵지 않게 풀어내 관객들을 잘 이끌어 내고 리드하는 능력을 탁월하게 평했다.

유이삭(더블베이스)은 개인적으로 최재혁 지휘자와 대화를 즐긴다며 웃는다. 순수하게 음악과 연주를 사랑하는데 그 열정은 이루 말할 수가 없어서 대화할 때마다 좋은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특히 뛰어난 지휘 능력을 늘 옆에서 지켜보지만 곡해설과 지휘스타일에 대해 감탄한다고 평가한다.

최재혁에 대해 가장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음악가 중 한 명이라고 말하는 박규민(바이올린)은 기존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음악과 표현 방법에 대해 연구하는 진지함이 남다른 음악가라고 서술한다. 또 이한나(비올라) 역시 최재혁은 지휘자로서 멤버 한 명 한 명이 갖고 있는 고유 재능을 인정하며 밖으로 이끌어내는 능력이 있다고 말한다.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그 마음이 바로 최재혁만의 리더십이 아닐까? 최재혁 지휘자는 멤버들처럼 강한 개성의 소유자지만, 결코 혼자만의 세계에 빠지지 않고 그야말로 다채로운 색채를 포착하곤 한다. 함께하면 언제나 즐거운 지휘자, 그게 최재혁이다.

한문경(퍼커션)에게 최재혁 지휘자는 보기 드물 정도로 아름다움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기쁨, 밝음, 즐거움뿐만 아니라 어두움, 아픔, 슬픔도 그것들이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아름답다고 판단하고 지휘를 통해 그 느낌을 관객들과 오롯이 나누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연주할 때면 매 순간을 아름답게 보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때론 어렵기도 하지만 즐거운 작업인 것만큼은 확실하다. 최규미(오르간)는 한가지 경험담을 털어놓는다. 롯데콘서트홀에서 리허설할 때 오르간을 혼자 쳐보고 있는데 최재혁 지휘자가 갑자기 무대에 벌러덩 누워 혼자 지휘에 심취하는 게 아닌가. 파이프오르간의 소리를 온몸으로 느끼는 것임을 금세 알아챘다. 어디서든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기에 그의 음악은 무한할 것이다.

매일클래식 공연을 앞두고 오르간 협주곡 초연곡 기자간담회에서 최재혁을 처음 만났던 이미란(롯데문화재단 홍보담당)은 그의 기자회견에서의 태도에 깜짝 놀랐다. 보통 연주자들은 기자간담회 및 인터뷰 등을 진행할 때 질문에 대한 답변이 특별하거나 심도 깊은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때가 많다. 물론 답변하는 문장 하나, 문구 하나도 바로 기사 제목으로 달아도 손색없을 만큼 압축된 언어로 잘 표현하는 음악가들이 있다. 이미란은 최재혁 작곡가의 경우 후자라고 말한다. 아무래도 오르간 초연곡에 대한 기자간담회이니만큼 작곡 계기, 착상으로 이끈 이미지, 반영하고자 했던 요소, 오르간이라는 악기의 제약을 극복한 과정, AI의 시기에도 연필로 오선지에 악보를 적는 이유 등 다양한 질문이 쏟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휘자로서의 다양한 경험, 앙상블블랭크에 대한 애착 등도 꼼꼼히 밝히면서 작곡가와 지휘자, 예술감독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균형 있는 시선과 표현으로 능숙하게 답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미란 책임은 최재혁은 마치 클래식계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같은 인물이라고 기억한다. 음악가들과 직간접적으로 만나다 보면 자기 분야에만 밝은 편인데 최 지휘자는 전방위적으로 적극적이면서 능동적으로 임했기 때문이다. 매니지먼트나 소속사가 따로 없음에도 불구하고 창작 작품이나 커리어 포트폴리오를 직접 작성하는가 하면, 공연 후 연주자와 공연 관계자들에게 구글폼을 통해 공연 피드백을 받는 점, 지휘자로서의 커리어를 쌓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는 모습 등에 감동하곤 한다.

“배울 수 있을 때 다 배워놔야 한다. 나이 들면 배우고 싶어도 아무도 안 가르쳐 준다고 말씀하신 스승 마티아스 핀처를 생각하면서 배움의 길을 계속 추구하는 모습이 아름다워 보입니다.”

앙상블블랭크가 그려나갈 미래와 비전

앙상블블랭크는 다크호스처럼 현대음악계에 빛을 발하고 있다. 지금까지 펼쳐진 공연마다 건축계의 프랑크 로이드라이트나 르 코르뷔지에, 아니면 안도 타다오처럼 신선한 시각과 기획으로 현대음악을 즐겁게 받아들이도록 기발한 아이디어를 발휘해오고 있다. 물론 그 중심에 최재혁이 있다. 지금까지의 행보를 봐서는 앞으로도 범상찮은 음악적 진보를 이루어나갈 것 같다. 끝으로 최재혁의 친구들이 생각하는 앙상블블랭크의 미래와 비전을 들어보자.
먼저 최재혁 감독은 앙상블블랭크가 연주하는 이유는 단 하나, ‘우리가 사랑하고 좋아하는 음악을 재미있게 연주하고, 그것을 관객과 공유하고 싶어서’라는 답을 내놓는다. 앞으로 다채로운 소리의 경험이 관객분들의 눈에 비치는 세상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 주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김화림 감독은 제한된 시간 안에서 앙상블블랭크만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기획력과, 매번 완성도가 높은 연주를 유지해야 하는 힘든 상황을 하나의 즐거운 도전으로 받아들이는 ‘Fun contemporary Ensemble’이 될 것이고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프랑스의 ‘Ensemble Intercontemporain’처럼 발전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한문경(퍼커션). ‘EI’ 오케스트라처럼 현대음악 단체가 한국에서 정식 직장이 되는 것은 쉽지 않겠지만, 최재혁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기대도 함께 응원을 전했다.
이미란(롯데문화재단 홍보담당)은 앙상블 블랭크라면 [ ]에 ‘무한한 가능성’을 쓸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한다. 어떠한 제약 없이 자유분방한 모습으로 음악에 깃든 다채로운 미학을 추구하는 앙상블 블랭크는 음악이 줄 수 있는 무한한 매력을 전해주는 단체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앙상블블랭크는
에너지와 dedication이 느껴지는
현대음악 그룹입니다.

– 매일클래식 예술감독 김화림 –


유이삭(더블베이스)은 그동안 현대음악이 어렵다고 느껴서 멀리하던 분들도 앙상블블랭크의 연주를 꼭 보셨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흥미로웠다’라고 느낀다면 가장 좋겠지만 여전히 어렵고 생소하더라고, 새로운 아름다움을 표현하려는 연주자들을 본다면 현대음악의 매력에 한걸음 가까워질 것이라고…
배성우(첼로)는 ‘바로크, 고전, 낭만 시대에 쓰여질 화성과 리듬은 모두 쓰여져서 나온 것이 현대음악’이라는 농담 삼아 한 얘기를 듣고 웃었던 적이 있다며 ‘소음처럼 들릴 수도 있고 형식이 없고 난해하다고 볼 수 있지만 현대음악은 그만큼 기존에 없었던 아주 새롭게 ‘들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기존의 레퍼토리에서 벗어나 신선한 경험을 하고 싶다면 앙상블블랭크 공연에 꼭 오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박규민(바이올린)은 앙상블블랭크처럼 자신들만의 확실하고 고유한 색을 지닌 단체는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며 힘주어 말한다. 관객들에게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하면서 남들이 하지 않는 연주, 한 번도 본 적 없는 새로운 무대를 위해 늘 고민하는 독보적이고 진취적인 단체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결국엔 그들의 음악이 그 어느 시대 음악보다 편안하고 익숙한 음악이 될 것이라 믿는다.

긴 인터뷰가 끝났다. 단원들과 협연 경험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동안 몰랐던 앙상블블랭크의 매력과 지휘자 최재혁의 은밀한 매력까지 알게 되었다. 이쯤되면 앙상블블랭크의 대약진을 기대해도 되겠다. 먼저 오는 15() 대관령음악제 강원의 사계 겨울을 주제로 앙상블블랭크가 고전과 현대를 넘나드는 아름다운 선율을 선사한다. 2024년에도 그들은 다양한 모습으로 [ ]를 채워갈 예정이다. 수많은 초청 공연들은 아직 조율 중이지만 어쨌든 블랭크 자체 기획 공연은 2024817일 예술의전당 IBK홀에서 작곡가는 살아있다라는 제목의 공연이 펼쳐지고, 해당 공연에서 올해 블랭크 작곡 공모에 당선된 작곡가 두 명 (영국: Patrick Friel, 대한민국: 김준영)의 작품들과 함께 바흐, 불레즈 등의 곡을 연주할 예정이다. 많은 기대를 바란다.

인터뷰에 도움주신 분들
작곡가, 지휘자, 앙상블블랭크음악감독 최재혁 / 매일클래식 예술감독 김화림 / 더하우스콘서트 대표 박창수 / 롯데문화재단 언론홍보 이미란 / 퍼커니스트 한문경 / 오르가니스트 최규미 / 비올리스트 이한나 / 첼리스트 배성우 / 첼리스트 이호찬 / 클라리네티스트 김길우 / 더블베이스트 유이삭

글 김종섭


익사이팅한 하이든 첼로협주곡을 기대하세요”
대관령음악제, 강원 <사계> : 앙상블블랭크(협연 첼로 배성우)

Q. 이번 12월 대관령음악제에서 앙상블블랭크와 첼로를 협연하는데 어떤 작품을 연주하는지요?

하이든의 첼로협주곡 제1번 C장조를 협연합니다. 앙상블블랭크에서 활동한 지 벌써 5년이 넘었습니다. 앙상블블랭크에서 해석하고 연주한 고전작품은 전통적인 해석과는 좀 다릅니다. 전통적으로는 우아하고 고풍적인 느낌을 선호한다면, 앙상블블랭크의 고전은 ‘익사이팅’입니다. 고전음악이 연주 당시 대중음악으로 파티음악, 유흥음악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전통적 음색보다는 익사이팅하면서 뻔하지 않은 표현을 추구하기로 한 거죠. 자유로운 표현으로 연주하게 될 하이든의 첼로협주곡 제1번 C장조를 기대해 주세요.


Q. 현대, 고전, 영화음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를 연주하는 특별한 이유나 계기가 있는지요?

뭔가의 틀에 얽매이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처음 협연 제안이 들어왔을 때 거부감이 없었습니다. 사실 20년이란 시간 동안 클래식 음악을 공부했는데 돌이켜보면 무대에 올리는 음악은 모두 아름다웠습니다. 솔로만 활동하면 앙상블의 묘미를 깨닫지 못할 수도 있는데, 앙상블블랭크를 통해 또 다른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어요.

Q. ‘소리에 대한 높은 음악적 재능으로 한순간 모두를 몰입시킬 수 있는 음악가’(독일에 있는 첼리스트 마스터클래스)라는 평이 있습니다.

평소 음악을 많이 듣는 편입니다. 기본적으로 소리가 좋아야 들을 맛이 나는 것처럼 그 ‘좋은 소리’를 가지기 위해 부단히 연습하는 것이죠. 그러기 위해서는 악기 셋팅에 대한 공부, 취향에 맞는 소리를 찾기도 하고, 주법에 있어서도 심도있게 연구하다보니 그런 평가를 받는 것 같습니다. 앙상블블랭크와의 협연은 제가 갖고 있는 이런 음악적 기량과 성향을 가장 잘 드러내 줄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15일 공연에서는 최재혁 지휘자와 첼로와의 환상적인 캐미를 맛보시길 바랍니다.

‘새로운 아름다움, 익숙하지 않은 아름다움’이라는 수식어를 넘어 시공간을 초월하는 음악의 존재 이유와 영속성을 탐구하며 다양한 음악의 매력을 전하는 앙상블블랭크가 펼치는 강원도 설원에서의 웅장하고도 심오한 음악 세계를 만나보자.

일시: 12월 15일 (금) 오후 7시 30분
장소: 평창 알펜시아 콘서트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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