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첼리스트였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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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제주전국장애인음악축전
10월 27일 (금) 오후 5시, 28일 (토) 오후 3시 제주문예회관 대극장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산다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나는 고통스러웠다. 신이 사람을 서로 다르게 만든 것은 비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구별하기 위해서’라고 하는 데도…
난 내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게 아니다. 어느 날 눈을 떠보니 지구라는 별에 떨어져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 땅의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아무리 노력해도 쉽게 이해할 수 없다는 게 문제다. 의사소통에 얼마나 어려움이 많은지 모른다. 나는 태생적인지 후천적인지 혼자 있는 걸 좋아하게 됐다. 사람들은 이런 내게 ‘자폐스펙트럼장애’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자폐스펙트럼장애라 불리는 나는 다른 사람과 대화가 안 되는 대신 나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걸 좋아한다. 동화작가 김현정 선생님의 글처럼, 우선 눈에 띄는 모든 물건을 무조건 제자리로 돌려 보내줘야만 한다고 믿는다. 그래야 마음이 편하다, 주변에 있는 종이, 페트병, 유리병, 멀쩡한 엄마 서류, 언니 오빠의 공부노트 등 물건들은 원래 왔던 자리로 돌려보낸다. 그래야 지구가 깨끗해질 것 아닌가. 그러자 어느 날 사람들은 나를 ‘강박장애’가 심하다고 수군거렸다. 도대체 나보고 어쩌란 말일까?
나는 음악이 참 좋다. 그런데 내가 음악을 좋아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사람들의 말이 너무 헷갈리기 때문이다. 헤어질 때만 해도 그렇다. 누구는 ‘안녕히 가세요’ 또 누구는 ‘안녕히 계세요’라고 한다. 어느 말이 맞는지 알 수 없는 나는 말로 하는 것보다 음악이나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 내가 상상할 수도 없었던 이변을 맞았다. 꿈속에서나 가능한 음악공연을 펼친 것이다. 이제 실제로 일어난 일인지 꼬집어보기도 했다. ‘아야!’ 옛 생각이 풀풀 피어오른다. 내가 엄마 아빠라는 존재를 인식하게 되었을 때, 엄마는 며칠 동안이나 눈이 퉁퉁 불만큼 울었다. 아빠는 무엇을 드셨는지 살냄새와 지독한 알코올 냄새를 풍기며 불쾌한 얼굴로 말없이 벽을 바라보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나는 외톨이처럼 나만의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방에 들어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문고리를 잡고 남몰래 흐르는 엄마의 눈물 소리만이 거실의 정적을 깨곤 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다 엄마는 언어 대신 음악으로 소통하는 걸 좋아하는 나를 끝내 ‘받아들이고’ 첼로를 가르쳐주셨고 드디어 이번에 무대에 선 것이다.

지난 10월 27일(금), 7시와 28일(토) 제주문예회관 대극장이다. 엄마는 내가 ‘제주전국장애인음악축전’에 오케스트라 멤버로 참가한다면서 참으로 오랜만에 환하게 웃으셨다. 우리 엄마가 장미를 닮았다는 걸 처음 깨달았다.
얼마 전 제주도의 김광수 교육감이 텔레비전에 등장해 나 같은 사람들을 교육청이 정식으로 음악 단원으로 채용한 뒤 음악 활동을 지원해주고 싶으니 ‘의원 여러분 도와 달라’고 했을 때 제주도의회 김경학 의장님이 내 어린 시절처럼 눈물 콧물 잔뜩 흘리며 훌쩍였다. 그 방송을 보고 엄마는 그야말로 펑펑 울고 말았다.
그런 엄마가 오늘은 백합이 필 때처럼 환하게 웃으신다. 첼로 자리가 어디인지 나는 아직도 헷갈리지만 그게 무슨 대수란 말인가. 정말 뿌듯하고 행복할 뿐이다.
무대에 오르기 전 두 번 정도 넘어졌지만, 그때마다 일으켜주던 엄마는 제주문화예술진흥원 김태관 원장님이 써주신 환영사를 읽어주셨다. 내 귀를 쫑긋하게 하는 부분에서 ‘엄마 잠깐만!’이라는 뜻으로 손을 허위허위 저었다.
‘오늘 개최하는 음악회는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간극을 좁히고 서로의 감정과 음의 앙상블을 통해 아름다운 하모니를 만들어내는 자리입니다.’
김태관 원장은 그렇게 썼다. 갑자기 주차장의 장애인 구역이 떠올랐다. 커다란 주차장에 장애인 주차구역을 표시해 두었지만, 주차장은 분명 비장애인들 비장애인들이 ‘함께 사용하는’ 공간이었다. 전철도 그렇다. 임산부석이 있지만, 전철 칸이라는 공간 속에 일반 좌석과 같이 있지 않은가. 갑자기 신났다. 지금 제주도는 우리를 차별하지 않고 단지 ‘구별하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에 뿌듯했다.
엄마는 이번 무대는 장애인만 연주하는 게 아니라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연주한다고 설명해주었다. 서울에서 온 하트하트오케스트라(지휘 안두현)와 제주위드어스 윈드오케스트라(단장 고영림, 지휘 장유석), 소리풍경어린이합창단(단장 김지혜, 지휘 김수연), 아이캔클라리넷앙상블(단장 신혜수, 지휘 양성식), 우누스오케스트라(단장 김용섭, 지휘 예지영), 하음오케스트라(단장 송수연, 지휘 성민우) 등이 참여하는데 이들 공연단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같이 연주한다고 귀띔해주셨다.
‘아직 비밀’이라며 한 가지 더 정보를 주셨다. 올해는 첫 번째 제주전국장애인음악축전으로 치렀지만, 내년부터는 국제행사로 발돋움해 장애인을 향한 더 큰 원을 그릴 것 같다는 미확인 정보 말이다.
나는 참 복 받은 사람이다. 나 같은 장애인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데 이런 성대한 공연에 참가하다니 복이 아니고 무엇인가. 더구나 이번 축전에서 나를 사랑해주는 분들이 그토록 많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지 뭔가. 소프라노 강정아 선생님도 우리를 따뜻하게 안아주셨다. 내가 두 번 태어나도 따라가지 못한 만큼 뛰어난 트럼페티스트 임제균 선생님, 클라리네티스트 이상재 선생님의 친구 같은 인사는 지금도 선하다.
사회를 봐주신 피아니스트 김미경 선생님의 맑은 눈동자는 말 따위는 존재하지 않아도 의사소통이 가능할 것처럼 투명하고, 어쩌면 그렇게 말씀도 잘하는지 솔직히 감동했다. 그런데 우리 엄마는 조금 엉뚱한 곳에서 춤을 추었다. 내 연주보다 더 신명난다는 듯… 광개토제주예술단(단장 권준성)과 비보이그룹 제주트레블러즈가 대극장을 뒤집어놓고 혼 줄을 쏙 빼놓았기 때문이다.
무대 밖 대극장 로비에는 2023 발달장애인 초청전시회로 고동우, 김현정, 이진원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어 우리들의 얼굴을 더욱 환하게 비춰주었다. 내년에는 나와 같이 ‘구별된’ 친구들이 더 많이, 더 자주 이런 공연에 참가했으면 좋겠다. 음악은 세상 사람들과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소통창구이기 때문이다.

글 김종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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