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로딘의 ‘먼 조국의 강변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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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위대한 작곡가 라흐마니노프의 탄생 150주년을 맞는 올해는 러시아 국민악파의 독특한 일원인 알렉산드르 보로딘의 탄생 190주년을 기념하는 해이기도 하다. 보로딘은 5인조 중에서도 독특하고 특이한 인물이다. 그는 유명한 화학자이며 의사이며 작곡가이다.
5인조를 모으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발라께례프가 1837년에 태어났고 세자르 큐이가 1835년, 무소륵스키가 1839년, 림스키-코르사코프가 1844년에 태어났으니 1833년생인 보로딘이 가장 맏형인 셈이다.

보로딘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그루지야 출신의 공작 루카 게데바니쉬빌리의 사생아로 태어났다. 출생 당시 그는 공작의 종인 포르피리 보로딘과 그의 아내 따찌야나의 아들로 기록되었다. 8세가 될 때까지 소년은 아버지의 농노였으며, 아버지는 1840년에 아들에게 자유를 주었고 그와 어머니를 위해 4층짜리 집을 샀다. 어머니는 1839년 은퇴한 군의관 크리스티안 클라이네케와 결혼했다. 출생배경으로 인해 초중등학교에 들어갈 수 없었던 보로딘은 초중등 과정의 모든 과목을 홈스쿨링을 통해 교육받았다. 영어와 라틴어로 수업을 받았고, 젊었을 때 이미 프랑스어와 독일어를 유창하게 구사하였다. 또한 플루트, 피아노, 첼로를 배워 1847년경 14세의 나이에 플루트와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을 쓰기도 하였으나 아쉽게도 이 작품은 현재 남아있지 않다. 보로딘은 열 살 때부터 화학에 관심을 가졌고 그것이 결국 그의 전문 직업이 되었다.

1850년 9월 17세의 알렉산더 보로딘은 상트페테르부르크 의학외과아카데미(IMHA)에 입학하였다. 1853년에 그는 자신의 직업 경력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니콜라이 진닌 교수의 지도 아래 아카데미에서 화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과학에 헌신적인 연구자이자 동시에 배려심 많은 멘토였던 진닌의 인품은 보로딘의 인생에 깊은 각인을 남기게 된다. 의학외과아카데미(IMHA)에서 공부하는 동안 보로딘은 가곡, 피아노 곡, 실내악 및 기악 앙상블을 작곡하였다. IMHA를 졸업한 후 그는 제2군 지상병원에서 레지던트 의사로 일하기 시작했고 같은 해 4월 IMHA의 일반병리학과 일반 치료과의 의사가 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에 진닌 교수의 조교로 학생들을 위한 실습 세미나를 열었고 1859년부터 화학에 대해 강의하기 시작하였다. 1856년 10월, 병원에서 근무하던 중 보로딘은 그곳에서 근무하던 장교인 모데스트 무소르그스키(Modest Mussorgsky)를 만났다. 젊은 의사와 젊은 장교는 음악을 통해 서로 공통의 언어를 찾았고, 그들은 지속적인 만남을 갖게 된다.
1862년 9월 보로딘은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왔고, 같은 해 가을 M. A. 발라키레프를 만나 그의 그룹에 합류했는데, 이 그룹은 이후에 ‘Могучая кучка’(든든한 동지들)로 일컬어지게 되는 러시아 국민악파이다. 같은 해 12월, 그는 의과대학 부교수가 되었고 그곳에서 무기화학 과정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1864년 3월 그는 일반 교수로 화학과장을 맡았다.

러시아 사실주의의 대가 일리야 레삔이 그린 보로딘의 초상화

이렇게 화학과 음악을 병행하던 보로딘은 스스로를 ‘일요일의 작곡가’라고 칭하였다. 월요일에서 토요일까지는 화학과 의학을 연구하는 일에 매진하고 일요일에만 작곡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보로딘의 극도의 분주함과 자신에 대한 높은 요구는 완성된 음악 작품의 수가 적은 이유를 설명해준다. 보로딘의 가장 중요한 작품은 작곡가가 18년 동안 작업했지만 결국 완성하지 못한 오페라 ‘이고르 공’이다. 보로딘의 사후 니콜라이 림스키-코르사코프와 글라주노프가 보로딘의 자료를 바탕으로 오페라를 완성하고 편곡하여 1890년 상트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극장에서 처음으로 상연되었다. 이 오페라 2막의 발레음악인 관현악 합창곡 ‘폴로베츠키의 춤’은 너무나 유명하여 독립적으로 연주되어질 때가 더 많은 작품이다.

오페라 ‘이고르 공’ 2막 ‘폴로베츠키의 춤’ 장면

일요일의 작곡가였던 보로딘은 다른 국민악파 작곡가들에 비해 현저하게 작품 수가 적은 편이다. 미완성인 3번을 포함해 3편의 교향곡, 분실된 1곡을 포함한 4편의 오페라와 여러 가지 기악곡을 작곡하였으며 가곡은 단 16곡만을 작곡하였다. 그 중 6곡의 가사를 자신이 작사하였고 3곡은 하이네의 시를 작곡가가 직접 번역하여 곡을 붙였다.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시에 붙인 가곡은 단 한곡인데, 바로 이 곡이 명불허전의 걸작이다.
오데사에 살았던 이탈리아 상인의 아내 아말리아 리즈니히가 이탈리아로 떠나고 1년 후 폐병으로 사망하자 이를 기리기 위해 알렉산드르 푸시킨이 작시하고 헌정한 이 시는, 그 언어의 아름다움으로 인해 다른 여러 작곡가들도 곡을 붙였지만 보로딘의 가곡이 가장 훌륭하다고 음악가들이 평가하는 가곡이다. 보로딘은 이 아름다운 가곡을 작곡하여 사랑하는 아내 예까쩨리나 보로디나에게 헌정하였다.

먼 조국의 강변에 서서
그대는 낯선 타향을 떠나가는데
잊지 못할 슬픔의 시간
나는 오랫동안 그대 앞에서 울었소.

나의 차가운 두 손은
그대를 안으려고 애썼다오.
이별의 끔찍한 고통
나의 신음은 끊어버리지 못했소.

그러나 그대는 뜨거운 입맞춤으로부터
스스로의 입술을 떼어 놓았소.
추방과 방랑의 유배지를 떠나
이국 땅으로 나를 부르며….

말했다오. “벗이여,
영원히 푸른 하늘 아래
올리브 그늘 속에서 만나는 그 날
사랑의 입맞춤으로 우리는 다시금 하나가 되겠지요..”

하지만 그 곳에서, 창공이
찬란한 푸르름 속에 빛나는 곳에서,
절벽 아래 강물이 꿈꾸는 그 곳에서,
그대는 영원히 잠들었다오

그대의 아름다움, 그대의 고통
이젠 무덤 속으로 사라졌다오.
만남의 입맞춤도 사라졌다오.
그러나 나는 기다린다네, 그대의 약속은 남아있기에..

– 알렉산드르 푸시킨 ‘먼 조국의 강변에 서서’

알렉산드르 푸시킨 시에 의한 가곡 “먼 조국의 강변에 서서” 악보
발라키레프의 살롱에 모인 러시아 국민악파 5인조 “든든한 동지들” -A미하일로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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