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클래식 공연 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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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았던 공연, 나빴던 공연, 이상했던 공연

월간리뷰 상임평론가로 임명되어 처음 방문했던 공연이 2023년 2월 2일 롯데콘서트홀에서 개최된 아드리엘 김 지휘, 한수진이 독주자로 나서고 오케스트라 디 오리지널이 연주한 막스 리히터 레볼루션이었다. 그 후 10개월 동안 얼추 50여 회의 음악회를 방문하고 월간리뷰에 평을 게재했는데 그중에서 올해 좋았던, 나빴던, 이상했던 공연을 분류해서 정리하며 올 한 해 클래식 공연계를 결산해 본다.

이상했던 공연

성남시립교향악단 브람스 교향곡 제4번
8월 12일 (토) 롯데콘서트홀​

성남시향은 어쩔 수 없이 수도권 시립과 민간 관현악단의 경계에 서 있는 걸 느낄 수밖에 없었다. 수원, 부천과 더불어 경기도의 트로이카를 형성해 발돋움을 해야 하는데 자잘한 게 발목을 잡는다. 예를 들어 자신의 파트가 나오지 않는다고 팔짱 끼고 허리를 의자 깊숙이 기대고 있는 앉아 있는 단원의 모습은 그게 습관이든 무의식이든지 간에 매너리즘에 빠진 전형적인 고인물의 작태로 보일 수밖에 없다. 이런 현상은 12월 7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렸던 부천시향의 라흐마니노프 <교향적 무곡>에서도 발견될 수 있었는데 부천필이 부천아트센터까지 생기고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다면 예전보다 더 나은 기량을 선보여야 하는데 현재 츠베덴의 서울시향과 잉키넨의 KBS 그리고 옥사나 리니우가 지휘했던 국심과 비교해 한때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그들의 자리를 위협했던 부천필이 맞나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매너리즘에 빠진 일개 지방 시립관현악단의 위치에 안주하고 이러기 위해 그 평지풍파를 겪었냐고 물어보고 싶다.​

관크*의 끝판왕이었던 공연

제34회 이건음악회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현악4중주단 초청콘서트
10월 13일 (금) 롯데콘서트홀​

강조하건대 연주는 최고였다. 드뷔시 현악 4중주 4악장, 하이든 현악4중주 1악장, 슈베르트 현악5중주 2악장이랑 3악장에서 어떻게 저런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는가 하는 감동에 빠져서….. 눈물이 났다. 갖은 역경을 극복하고 어려움을 아우르면서 사람을 존중하고 서로의 가치를 인정하면서 이런 척박한 환경과 불모지에서 클래식의 꽃을 피우려고 했던 박영주 회장의 유지와 그걸 충실히 따르는 이건 가족들의 문화 나눔의 모습에서… 앙코르로 아리랑까지 편곡(그것도 동아방송대학교 2학년 김다연이라는 학생의)해서 들려주는데 뭐가 그리 바쁜지 수십 명이 아랑곳하지 않고 짐 챙겨 나가 버리고 온갖 방해 공작과 시도 때도 없이 터지는 박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집중력과 미소, 여유를 잃지 않으면서 최상의 연주를 들려준 연주자들에게 미안하고 고마울 지경이었다.

* 관크: 한자 ‘觀(볼 관)’과 ‘비판적인, 비난하는’ 등의 뜻을 가진 영단어 ‘critical’을 합쳐 만든 신조어로, 관객 크리티컬의 줄임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관람하는 공연장이나 극장 등에서 다른 관객의 관람을 방해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가장 큰 이슈를 불러왔던 음악회

미하엘 플레트네프 피아노 독주회
9월 10일 (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마치 외딴섬에 혼자 떨어져 어느 작은 거 하나 구애받지 않으면서 자기 맘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연주자. 쇼팽을 치는 게 아닌 플레트네프가 쇼팽을 작의적으로 잠식해버리면서 연주자의 에고(Ego)가 작품을 뒤덮어버린 주객전도의 케이스. 무대에서 쇼팽을 연주하는 피아니스트가 아니다. 그냥 연습실이나 살롱 같은 자기만의 공간에서 자신의 흥과 자의식에 취해 연주하고 듣고 싶으면 들으라는 셈이다. 그냥 그럴 바엔 클래식 피아니스트 말고 키스 자렛이나 조지 윈스턴같이 재즈 또는 뉴에이지 피아니스트를 하거나 아님 자작곡을 발표하는 21세기의 플레트네프가 되면 되었지 왜 19세기의 쇼팽을 구현하려고 하는가. 그래도 그냥 플레트네프 자체가 좋다면, 그의 음색과 연주가 좋다면야 독립된 개체로서 인정하여 뭐라고 할 순 없겠지만 말이다. 이제 어느 누구도 뭐라고 할 사람도 없고 간섭할 사람도 없는 마당에 자기 맘대로 한들 뭐가 대수랴.

경건하고 고결했던 연주회

피아노와의 삶 80주년 장혜원 음악회
12월 10일 (일) 예술의전당 IBK홀

경이롭고 존경스러웠으며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80의 나이에 새로운 레퍼토리에 도전해 에튀드를 치는 그 지치지 않은 끝없는 열정과 장인 정신, 그리고 완벽주의가 큰 울림을 주고 음악계의 큰 어른이라는 분명한 사실을 다시 한번 각인시켰다. 희로애락 인생 속에서 피아노와 함께 달려온 삶의 여정을 통해 그의 음악 인생 80년을 고스란히 담아낸 연주회였다.

앙코르는 당연히(?) 슈베르트의 <음악에 부쳐>(An die Musik)였다. 경건했다. 장혜원의 삶을 한마디로 요약한 셈이었기 때문이다. 숙연했다. 어느 누구도, 어떤 무엇도 막을 수 없는 음악 외길에 “일을 해야지, 움직여야 사람이지! 90살이 돼도, 100세가 되어도 돌아다니면서 일할 거야”라는 카랑카랑한 장혜원의 음성이 묵언으로 들려서. 과연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반성하게 만드는 장혜원의 가르침의 시간이었다.

⑤ 나빴던 연주회

어느 하나를 지칭하면 당장 항의가 들어올 테니 직접적인 언급은 삼가겠다. 8월의 모 외국에서 온 예술감독이 지휘자로 나선 것은 올해 필자가 방문한 콘서트 중 가장 객석 점유율이 높았던 연주회였다. 다만 손님수와 연주력과는 하등 연관이 없다는 걸 증명한 시간이기도 했다. 4월 서울시오페라단의 <마술피리>는 15,000원이라는 입이 딱 벌어지는 프로그램북의 가격에 비해 오케스트라가 실망스러웠다. 6월의 라하브 샤니가 로테르담 필하모닉을 지휘한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은 협연자인 김봄소리와 너무 기싸움을 하였다. 9월 장한나 지휘는 음악가와 셀럽 사이, 음악가와 엔터테이너의 사이에 서 있는 건 아닌지 의아했으며 앞으로의 행보를 궁금하게 만들었다.

⑥ 좋았던 연주회

성심성의를 다해 큰 감동을 안겨준 연주회들을 일일이 거론하진 않겠다. 그건 당연한 것이다. 그러지 않은 연주회가 문제가 있는 거니. 음악 본연에 집중한, 음악 외적인 스캔들이나 이슈를 거부하며 진지하게 자신만의 길을 걷는 음악인들을 존경하고 부도옹 같은 음악인들의 자세가 감명 깊다. 2024년은 과연 어떤 음악회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현장에서 뜨거운 울림을 온몸으로 체감하고 싶다. 연주의 현장성을 강조하며 실연이야말로 음악의 ‘실존’이자 연주자는 연주 행위를 통해 정당한 대가를 받아야 하는데 가끔 음악회장에서는 코로나 시국이 생각나기도 한다. 다닥다닥 붙어 온갖 절대 바뀌고 개선되지 않고 평생 싸웠고 싸울 관크들과 빌런 등 때문에… 여전히 눈에 선한다. 트리오 콘 브리오 코펜하겐의 그 절절했던 차이콥스키의 <위대한 예술가를 추모하며> 3중주가 끝나고 그저 신났다는 표정으로 삼삼칠 박수를 치던 어느 중년 여성의 표정과 몸짓을!

글 성용원 (작곡가, 월간리뷰 상임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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