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 리하르트 데벨 시집 <여인과 세계> 중 ‘두 사람’, 쇤베르크 ‘정화된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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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wei Menschen (두 사람)

Zwei Menschen gehn durch kahlen, kalten Hain;
der Mond laeuft mit, sie schaun hinein,
Der Mond laeuft ueber hohe Eichen,
Kein Woelkchen truebt das Himmenslicht,
In das die schwarzen Zacken reichen,
Die Stimme eines Weibes spricht:

두 사람은 헐벗고 스산한 숲을 걸어가고 있다.
달은 그들을 따라가며 비춘다.
달은 떡갈나무 위를 떠다니며,
하늘에는 빛을 가릴 구름 한 점 없이,
검고 뾰족한 나뭇가지들만 걸려 있다.
여자의 목소리가 말을 꺼낸다:

Ich trag ein Kind, und mit von dir,
Ich geh in Suende neben dir,
Ich hab mich schwer an mir vergangen;
Ich glaubte nicht mehr an ein Glueck
Und hatte doch ein schwer Verlangen
Nach Lebensfrucht, nach Mutterglueck
Und Pflicht – da hab ich mich erfrecht,
Da liess ich schaudernd mein Geschlecht
Von einem fremden Mann umfangen
Nun hat das Leben sich geraecht,
Nun bin ich dir, o dir begegnet,

나는 아이를 가졌어요. 하지만 당신의 아이가 아닙니다.
죄책감에 사로잡힌 채 당신의 옆에서 걷고 있어요.
잘못된 길을 선택한 나이기에
나는 더 이상 행복을 바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나는 강하게 갈망하였어요,
삶의 풍족함과 아이의 엄마가 된다는 행복과
그리고 의무를 – 그래서 나는 죄를 저질렀어요,
그리고 나는 이제 나의 죄를 떨면서 고백하고 있어요.
낯선 사내의 품에 안겨,
그리고 축복받는 듯한 감정까지 느꼈어요.
이 용서받지 못할 삶,
이제 나는 당신을 찾아왔어요, 아, 당신을 만났어요.

Sie geht mit ungelenkem Schrutt,
Sie schaut empor, der Mond laeuft mit;
Ihr dunkler Blick ertrinkt in Licht.
Die Stimme eines Mannes spricht:

그녀는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긴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고, 달은 계속 따라온다;
달빛이 그녀의 어두운 시선을 비춘다.
남자의 목소리가 말을 꺼낸다.

Das Kind, das du empfangen hast,
Sei deiner Seele keine Last,
O Siehm wie klar das Weltall schimmert!
Es ist ein Glanz um Alles her,
Du treibst mit mir auf kaltem Meer,
Doch eine eigen Waerme flimmert
Von dir in mich, von mir in dich;
Die wird das fremde Kind verklaeren,
Du wirst es mir, von mir gebaeren,
Du hast den Glanz in mich gebracht,
Du hast mich selbst zum Kind gemacht,

당신이 품은 이 아이는
당신 영혼의 짐이 되지 않을 거예요.
이 우주가 얼마나 밝게 빛나는지를 봐요!
우리 주위의 모든 것이 빛나고 있잖아요.
당신과 내가 차가운 바다를 떠다니고 있다 할지라도,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타오르게 할 거요.
당신으로부터 내가, 나로부터 당신이.
이 열기가 그 낯선 이의 아이를 정화할 거요.
그리고 당신이 그 아이를 낳고, 내가 그 아이를 기를 거요.
당신은 나에게 그 빛을 비춰줬어요.
당신은 나조차도 아이로 만들어 주었다오.

Es fast sie um die starken Hueften,
Ihr Atem mischt sich in den Lueften,
Zwei Menschen gehn durch hohe, helle Nacht.

그는 그녀를 팔로 강하게 감싸 안는다.
그들의 숨결은 공기 속에서 섞여 들어간다.
두 사람은 높고 찬란한 밤을 걸어간다.

달빌 아래를 걷는 두 남녀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시 ‘두 사람’(Zwei Menschen)은 독일의 시인이자 작가 ‘리하르트 데멜’(Richard Fedor Leopold Dehmel, 1863-1920)이 33세의 나이였던 1896년에 출간한 연작 시집 ‘여인과 세계’(Weib und Welt)에 수록된 서사시입니다. 이 시는 행복과 쾌락만을 추구하던 여성이 남편으로 추정되는 이가 아닌 다른 남자와 넘어서는 안되는 선을 넘어버렸고, 결국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하고 달빛이 강하게 내리쬐는 숲을 산책하다 자신의 죄악을 고백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리하르트 데멜

‘리하르트 데멜’은 원래 시를 쓰던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베를린의 보험회사에서 일하며 소소하게 글을 쓰던 그는 1889년 동화 시인인 ‘파울라 오펜하이머’(Paula Oppenheimer-Dehmel, 1862-1918)와 결혼하고 그녀의 동화책을 만드는 데 함께하며 1891년 첫 시집인 ‘구원’(Erloesungen)을 발표하였습니다. 파울라가 데멜을 구원하였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사람들의 생각이 무색하게 그는 파울라와의 사이에 3명의 아이가 있음에도 첫 시집을 낸 다음 해인 1892년, 파울라의 친구이자 번역가였던 ‘라흐만’(Hedwig Lachmann)과 사랑에 빠져 1893년 두 번째 시집인 ‘그러나 사랑’(Aber die Liebe)을 출간하였습니다. 1895년에는 예술가들을 후원하던 여성권리 운동가이자 예술협회장이었던 ‘이다 아우어바흐’(Ida Auerbach, 1870-1942)와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이 세 명은 1898년부터 2년 가까이 삼자관계를 유지하였는데, 이다와 데멜은 함께 살고 파울라는 옆집에서 사는 기괴한 관계를 이어갔습니다. 하지만 결국 1899년 파울라는 데멜과 이혼하였고, 이다는 데멜의 두 번째 부인이 되었습니다.

데멜의 시집 ‘여인과 세계’는 이다와 사랑에 빠진 다음 해인 1896년에 출간되었으며, 이 시집 속에 등장하는 ‘위로의 비너스’(Venus Consolatrix)라는 시가 신성 모독죄로 고소당하며 그의 이름과 시집이 큰 유명세를 얻게 되었습니다. 예수의 어머니인 성모 마리아, 그리고 막달라 마리아와 비너스와 겹쳐지는 여성 인물과의 미스터리한 성적 행위를 그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기말의 시대’라 묘사할 수 있는 19세기 말의 혼돈과 타락의 분위기를 잘 그리고 있는 데멜의 작품 세계 중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이 바로 이 논란의 중심에 선 시집 ‘여인의 세계’에 수록된 시 ‘두 사람’입니다.

숲 속을 강하게 비추는 달빛이 부정한 일을 저지른 상대를 정화하고 자신조차 순수한 어린 아이로 돌려놓았따는 남편의 말로 데멜의 시 ‘두 사람’의 공간과 시간은 모두 성스러운 순간이 되었으며, 이 두 사람은, 아니 세 사람은 비로소 하나의 가족이 됩니다. 달빛으로 정화되는 죄를 그리고 있는 이 시를 작품에 녹여낸 사람이 바로 12음계로 유명한 작곡가 ‘쇤베르크’입니다.

아놀드 쇤베르크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아놀드 쇤베르크’(Arnold Schoenberg, 1874-1951)는 근현대 음악사의 가장 영향력 있는 작곡가 중 한 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조음악’이라 불리는 조성이 없는 음악, 12음을 모두 사용하는 이 기법을 개척한 인물인 쇤베르크가 아직 후기 낭만 음악의 특징을 지닌 작품들을 작곡하던 시기였던 1899년, 25세의 나이에 작곡한 곡이 바로 데멜의 시 ‘두 사람’을 음악으로 녹여낸 곡인 ‘정화된 밤’(Verklaerte Nacht, Op. 4)입니다.

현악 육중주, 즉 2대의 바이올린, 2대의 비올라, 그리고 2대의 첼로를 위한 곡으로 작곡된 ‘정화된 밤’은 20여 년이 지난 1917년, 쇤베르크에 의하여 현악 합주용으로 편곡되었습니다. 그리고 26년이 지난 1946년 이 현악 합주를 위한 버전을 한 번 더 수정하였으며 현재까지 현악 육중주의 원곡과 개정된 현악 합주 버전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쇤베르크의 대표적인 작품이 되었습니다.

단악장의 교향시적인 성격을 띄고 있는 이 작품은 5개의 연으로 구성된 데멜의 시 ‘두 사람’처럼 다섯 부분으로 구성되어 시의 내용을 묘사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달빛이 비추는 잔잔한 첫 번째 파트는 ‘매우 느리게’(Sehr Langsam) 연주를 해야 하며, 여성이 고백을 하는 두 번째 부분은 ‘조금 움직이듯’(Etwas bewegter) 연주하며 긴장감을 고조시켜야 합니다. 좌절한 여성의 걸음과 혼란스러운 남자의 마음 그리고 남자의 마음을 예견한 듯한 모습을 그린 세 번째 파트는 ‘매우 무겁게’(Schwer betont) 연주되는 스케르초입니다. 남자의 말과 심리를 사랑스럽게 표현하고 있는 네 번째 파트는 ‘매우 넓고 느리게’(Sehr breit und langsam) 연주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섬세하고 ‘매우 조용한’(Sehr ruhig) 현악기들의 움직임 속에 첫 번째 파트의 달빛을 의미하는 주제가 다시 등장하며 정화된 두 사람과 밤의 모습을 조용하게 그립니다.

‘정화된 밤’ – 페리 아를레(Ferry Ahrle)

이렇게 쇤베르크는 ‘정화된 밤’을 통하여 데멜의 시 속의 ‘두 사람’을 입체화시키고 그들의 밤을 더욱 숭고하게 만들며 두 작품 모두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오래 지속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또한 그는 이 작품에서 보여준 ‘표제 음악’의 정석과 같은 작곡 능력을 한 단계 더 발전시켜, 12년 후인 1912년 ‘달에 홀린 피에로’에서 또 한 번 펼쳐내며 12음계의 발전에도 이바지하게 되었습니다.

글 박소현

– 쇤베르크 ‘정화된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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