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불씨를 꺼내고 전소시키는 앙상블코미디, 김지운 감독의 ‘거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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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평있는 연출력과 미장센으로 5년 만에 영화 ‘거미집(2023)’으로 메가폰을 잡은 김지운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 점화, 착화, 발화란 자신의 연출 신조를 과감히 구현한다. 1970년대 영화 촬영 현장을 단골 무대로, 검열받는 시대적 상징을 코믹하게 풀어간다.
신성필름의 김열 감독(송강호)은 신 감독에 대한 열망과 싸구려 치정극만 내는 자신을 비관하다 대본 결말을 바꿔 후반부는 촬영장 곳곳에서 자신을 불사른다. 극 중, 톱스타 강호세(오정세)는 영화 속 감칠맛을 준 캐릭터로 부각된다.

나뭇잎이 떨어져서 김추자

타이틀 오프닝 곡, 김추자가 부른 ‘나뭇잎이 떨어져서’는 70년대를 주름잡던 노래인데 김 감독이 식당에서 평론가와 마주치고 가던 골목에서 배경음악으로 맞물린다. 외로운 뒷모습과 낙엽 소리가 하나의 스타일로 굳어져 영상과 일치되는 매력으로 감정을 증폭시킨다.

한동안 뜸했었지 – 사랑과 평화

비워졌던 스튜디오가 다시 활기를 찾고 연기자들이 모여들 때 70년대 인기 그룹, 사랑과 평화가 부른 ‘한동안 뜸했었지’가 분위기를 압도한다. 바뀐 극본에 재촬영은 연기자들에게 부담인데 특히 강호세(오정세)는 낡은 편견을 180도 바꾼 우스꽝스러운 캐릭터로 곳곳의 장면과 표정을 한 곡으로 소화하기에 충분하다.

샹송 노래하는 밀랍인형 – France Gall(프랑스 갈)

영화의 색을 뚜렷이 표현하고 오랜 세월 대중들의 기억에 자리 잡은 곡인 만큼 감독은 이번 곡에 선택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아수라장이 된 화재 씬에서 터진 샹송 ‘노래하는 밀랍인형’(Poupée de cire, poupée de son)은 자아를 숨긴 밀랍인형처럼 김 감독의 자기 내면의 시차를 대변한다. 영화 결말을 바꾼 이유가 자신의 욕망과 맞물려 노래와 절정을 이룬다.
보물상자를 열 듯 영상은 샹송과 조합되어 시나리오를 탈출한 과정을 그리고 노래를 통해 또 다른 가능성을 지시한다. 몽롱하고 반복된 가사는 과거의 향수와 열망을 나타내며 일정 패턴의 감정선을 만들고 김 감독이 불을 응시할 때 밀랍인형같이 묵시적인 이미지와 연결된 톤을
각인시킨다.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

신 감독의 내면의 소리에서 배경음악에 설정된 푸치니 ‘나비부인’은 신비감과 코믹한 장면이 맞서 이율 배반성을 드러내며 오케스트라 음악이 배가되어 복잡하게 어우러지는 마력을 드러낸다. 뭉게구름을 손으로 잡는 사운드에서 재빠르고 탄력이 느껴진다.

Wednesday’s child – Matt Monroe(맷 몬로)

과거의 사고 날의 비밀이 밝혀질 때 영상을 휘감는 Matt Monroe ‘Wednesday’s child’는 김 감독의 허망된 꿈이 현실로 느껴지는 고독감과 생생한 리얼리티를 전해준다. 차분하게 흐르는 메인테마의 분위기를 일순간에 암울하게 바꿔놓고 정체성 혼돈의 안식을 주는 가사는 영상이 교체될 때 그 이상의 가치를 준다.

리듬으로 전달되는 영화의 메시지

음악감독 모그(Mowg)는 캐릭터를 대중의 입맛에 맞추는 음악적 메시지를 주며 작품 속에 인간과의 교감을 통해 묘한 카타르시스를 생성한다. 1970년대 사회상과 음악이 대중성 있게 전달되어 친숙하게 파고들며 신중현의 전자기타는 맥락 있게 곧게 뻗은 대나무처럼 시원한 이미지로 스토리 전개에 무게를 실어준다.
극중 스토리에서 영화 검열과 연기자들의 긴장감이 음악과 결부되어 전기기타 연주로 절정이나 기교 없이 일관적 스타일을 구사한다. 영화 촬영장에서 벌어지는 공포스러운 광경과 불길한 장면도 평온한 톤 같지만, 리듬 사이로 파생된 불길한 기운을 내뿜는 연주는 집단의 이기심과 그릇된 판단이 아무 소득은 없다는 것을 시사한다.
엔딩 크레딧은 장현이 부른 ‘나는 너를’인데 영화 속 내용에서 김 감독이 자신의 열망을 성취하지만 허탈감만 오는 심정이 노래의 소재와 반복적인 리듬에서 음악감독은 빠른 템포의 리듬과 자극적인 일렉트릭 기타의 도입부를 거쳐 편안한 사운드 구축에 중심을 둔다.

극의 초반에 최고조의 궁금증을 유발하고 한 번에 해소하는 김지윤 감독의 전개 스타일에 한층 접근했다. 70년대 통기타음악이 대중음악의 고전으로 손꼽는 이유는 많지만, 작품을 해석하는 감독의 탁월한 역량과 사운드트랙을 빼놓을 수 없다.
영화를 소재로 한 영화 속의 영화 ‘거미집’은 양파 껍질을 벗기듯이 인간 내면성은 악의 가면은 쓰고 있으나 애절한 사연과 흥미진진한 암시가 조합되어 느와르적이며 작품의 연장선에서 메카닉한 디자인을 설정한다. 서로의 이데올로기 속에 상반된 사운드가 충돌하면서 갈등의 파편을 응집력 있게 연결한다.

評 정순영 (음악평론가, 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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