툴뮤직장애인예술단 창단연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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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연료라면 결코 꺼지지 않아
1월 13일 (토) 오후 5시

피아니스트 이훈이다. 윤슬처럼 부드럽게, 때로는 왼쪽으로 가파르게 여울져가는 강물처럼 피아노를 연주해낸다. 왼손만으로 저렇게 아름답게 연주한다면 대체 오른손은 얼마나 부러워할까 싶다. 그의 오른손은 흡사 부러워하듯 왼손의 현란한 타건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이훈은 왼손 피아니스트다. 그도 미국 유학 중에 뇌졸중으로 넘어지기 전까지 누구도 부럽지 않은 뛰어난 피아니스트였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닥친 병은 온전한 육신의 기능과 기약 없는 이별을 고해야 했다. 스크리아빈의 ‘Prelude and Nocturne Op. 9 for Left Hand’에서 가을의 쓸쓸함을 채색하며 흐트러짐 없이 연주해내는 왼손을 보고, 오른손은 그저 바라만 보았다. 그러다 고도프스키의 ‘Studies on Chopin’s Etudes Op. 10 No. 3 & Op.10 No. 12 for Left Hand’에서 오른손은 ‘비록 내가 없어도 홀로 피아노의 탑을 쌓아가는’ 왼손을 경배하는 듯했다.

지난 1월 13일 오후 5시 JCC아트센터 툴뮤직장애인예술단 창단연주회 현장이다. 클라리네티스트 이종혁은 추억의 페이지를 열 듯, 한 편의 영상미를 펼치며 연주해냈다. 그가 연주한 망가니의 ‘Pagina d’album’은 인생의 한 페이지라는 제목에 걸맞아 보였다. 이종혁은 ‘현재 지금 이 순간’이 너무도 소중하다는 듯 연주했고, 모차르트의 ‘Clarinet Concerto in A Major, K. 622 1st-mov’는 모차르트가 진심 어린 친구 안톤 쉬타틀러를 위해 작곡한 것만큼 사랑의 마음을 이슬을 투과하는 빛나는 햇살처럼 투영했다. 눈을 지긋이 감으면 흐트러짐 없는 클라리넷 선율은 고운 산들 바람을 제대로 탄 패러글라이딩처럼 비행해나갔다.
피아니스트 김경석은 쇼팽의 ‘Scherzo No. 4 in E Major Op. 54’와 베토벤의 ‘Piano Sonata No. 32 in c minor Op. 111 1st’을 각각 연주했다. 아마도 청각장애를 앓고 있던 베토벤이 어떻게 이런 위대한 작품을 써내려 갔는지 알 수 있다는 듯, 자신감 있는 타건, 피아니시모와 포르티시모의 비약에서도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스스로 몰입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이날 특별 출연한 친구들로 인해 음악회는 더욱 빛났음을 부인할 수 없다. 첼리스트 손정환은 엘가의 ‘Cello Concerto in e minor Op. 85, 4th mov’를 피아니스트 배성연은 리스트의 ‘Rigoletto Paraphrase, S. 434’를 각각 연주했다.

그래! 작년보다 훨씬 여유로운 연주를 펼쳤다. 이훈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의 가사가 떠올랐다.
‘머물러 있는 사랑인 줄 알았는데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점점 더 멀어져 간다’
정말 우리는 매일 이별하며 산다. 길이가 정해진 시간의 종이 위에 오늘 인생의 길을 기록하지만 내일이면 이별의 흔적이 되는 삶. 그러기에 이훈이 잃어버린 오른손의 감각과 청춘, 그리고 젊음… 또 자폐증상으로 오감의 상당수를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오늘의 연주자들에게 ‘상실’은 그들만의 것이 아니리라. 누구든 매일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으니까.
이미 정해진 시간의 종이에 인생의 기록을 지금 쌩쌩하게 남길지라도, 우리 역시 언젠가는 글을 쓸 때 그토록 자주 언급했던 단어를 잃어버릴 것이며, 언젠가는 운전면허를 반납해야 할 것이며, 언젠가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모두 망실하게 되리라. 밥맛을 잃어가고 손을 잡고 교회가던 그 길을 혼자 걷게 될 것이며 머리털은 점점 사라지고 손의 물기도 황무지처럼 변하리라. 오늘의 연주들은 우리들도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상실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미셸 몽테뉴는 ‘잃은 것보다 여전히 내 안과 밖에 갖고 있는 것들을 먼저 생각하라’고 했다. 모차르트가 죽기 2개월 전에 ‘나는 병들어 어차피 죽는데 이 작곡이 무슨 소용이람’ 하며 작곡을 포기하는 대신 궁핍한 가운데 자신을 도와주었던 쉬타틀러를 위해 영혼의 음표를 쥐어짜내 클라리넷협주곡을 작곡한 것처럼…
이훈은 아직 불태워야할 왼손이 있으며 다른 연주자들 역시 아직 소진해야 할 연료가 충분하다는 것을 일러주었다. 톨스토이가 멕시코 왕의 가르침을 언급하면서 ‘인생에서 소멸이나 부패란 없다. 암흑은 태양의 보금자리이며 별이 빛나기 위해서는 어둠이 필요하다’고 하지 않았는가.
아브라함이 만난 떨기나무와 딸기나무는 무엇이 다를까? 보잘 것 없는 떨기나무는 불타오르지만 신이 공급하는 연료로 영원히 꺼지지 않는 나무가 된 반면, 딸기나무는 달콤한 딸기 한번 맺을 뿐 결국 흔적 없이 사라지고 만다.
툴뮤직 정은현 대표는 지금 아브라함이 만난 떨기나무를 세우고 있다. 장애인 예술단을 만들어 그들에게 내재해 있는 희망과 꿈과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그러나 그 연료는 우리가 공급해야 한다고 넌지시 말한다. 다름 아닌 우리들의 사랑이다. 그 사랑이 마르지 않는 한 세상의 모든 장애인들은 삶의 열정, 희망의 불을 끝없이 태울 수 있으리라.

글 김종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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