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 대신 밀수를 하게 된 해녀와 뱃사람들의 해양 범죄활극, 류승완 감독의 ‘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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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베를린’, ‘베테랑’, ‘모가디슈 등을 연출한 류승완 감독이 실화를 바탕으로 한 2023년 신작 영화 ‘밀수’에서 다시 메가폰을 잡았다. 군천이란 가상 바다를 기점으로 한 이번 영화는 이례적으로 가수 장기하가 음악감독을 맡아 60~70년대를 아우르는 사운드를 생성한다. 개성 강한 캐릭터들의 내공이 응집력 있게 도출되어 대표적인 14곡의 사운드트랙과 영상 구석구석에 꽂혀 도전적이고 호기심을 자아낸다.

장면 속 감정의 촉매제가 되는 음악

이번 영화의 오프닝 음악은 최헌이 부른 가요 ‘앵두’로 주연을 맡은 조춘자(김혜수)와 엄진숙(염정아)의 균열과 진실 속에 갈등하는 착잡함을 그려내며 끈끈한 촉매제가 된다. 극의 긴장감을 끌어내고 주체할 수 없는 마력을 발산하는 김추자 ‘무인도’는 상반된 양립성을 보여 영상에서 이율배반적 기능을 한다. 영화의 끝부분에서 배가 돌아갈 때 배경음악이 되어 긴 시간을 압축하고 화면에 연속성을 부여한다. 편곡 버전으로 쓰인 교도소 장면은 우울함과 적막감이 짙어 점차 냉소적으로 변화된다. 권상사(조인성)의 액션씬에서 롱테이크로 음악적으로 자극하는데 산울림의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는 격투 상황과 맞물려 분열적인 내면 풍경을 살린다. 뉴종로다방 신에서 고옥분(고민시)의 연기와 펄시스터즈 ‘님아’는 장면을 유도하며 범죄 세계에서 벌어지는 배신과 암투성을 암시했고 신중현의 70년대 하드코어 디스코를 상징한 무정형화된 노래의 질량과 밀도가 버무러져 스토리의 분위기와 흐름을 움켜잡는다.

가요의 식상한 테두리에서 향수를 자극하다

김추자 ‘월남에서 돌아온 김 상사’와 김정미 ‘바람’은 신중현이 말하는 그의 음악, ‘another’ 대중음악이다. 전자는 통화 신에서 배경음악이며 후자는 춘자의 종로다방 컴백 신에서 기능한다. 한국적 울혈을 갖고 브라스와 키보드, 드럼과 베이스의 합연이 걸죽하게 들리며 비트가 아닌 우리의 정서와 현대화된 리듬의 합작 음악이 펼쳐진다. 고동치는 심장의 요동과 닮아 불투명한 내일을 상징하며 리얼함을 갖는다. 나미와 머슴 아들 ‘미운 정 고운 정’은 나이트클럽에서 흐르는 70년대 펑키한 사운드로 대중들의 설움과 애환이 녹아있고 갈등과 해소과정이 영화의 맥을 이루고 생생한 현장성을 뿌리로 하고 힙합의 강렬함이 배어있다.
브로커가 소주집에서 진숙 아버지를 설득할 때 삽입곡, 한 대수 ‘하루아침’은 음형과 리듬의 반복되고 허스키 보이스와 기타가 절충되어 무드 변화에 흥미를 주고 소재가 산재되어 여러 성부를 누비고 다닌다. 얼터너티브하고 긍정적 호감을 준 음악으로 과거 밀수 성공시대 장면에 채워진 김 트리오 ‘연안부두’는 편하게 부를 수 있는 가요의 식상한 테두리에서 향수를 자극하는 여러 장면의 가능성을 시사한다. 내적 결합력과 경쾌하고 빠른 곳의 맛을 유도해 즉흥적인 감흥을 만든다.

한 시대의 음악을 박물관적으로 관찰한 음악감독 장기하

의상실에서 영상 음악에 기능한 나미와 머슴아들 ‘행복’은 극 중 코드화된 음악은 아니지만 사운드의 연장선에서 작용하여 노래 자체에 에너지를 준다. 이장춘(김종수)이 선상을 검문할 때 송대관 ‘해뜰날’은 다이내믹을 섞어 절정이나 기교없이 일관된 스타일을 고집한다.
심리적 불안감을 영상에 접목하고 음악에 고증을 피하려는 감독의 전개 스타일이 현시적이다. 2차 나이트클럽 신에서 무대 위 노래와 배경음악이 된 ‘밤차’는 하이량이 가창하여 묵가적이고 고딕적 경향의 큐어를 보였고 장면에 파고드는 플라톤적 고양감은 따뜻한 음색효과로 유도된다. 70년대 장기하의 선곡은 쉴 새 없이 관객의 심리를 사로잡고 한 시대의 음악을 박물관적으로 관찰, 고증하여 정교하게 생성한다. 액션 등장 시, 느리고 둔중한 보컬이 리드미컬한 기타 소리와 배합되어 권 상사와 장도리(박정민)의 액션 장면과 맥락화된다.

영화 ‘밀수’의 사운드트랙은 시대성을 대변하고 실외의 스릴을 실내로 끌며 모든 가요들이 ‘사운드 디자인’의 범주 안에 직설적으로 조명된다. 사운드의 활용에서 기념비적 장면들을 갖고 있는 이번 영화는 류승완 감독의 큰 도전이며 낯선 반전을 보여준다.
구성진 출연진과 음악과의 캐미가 좋고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혁신적이다. 관행에서 일탈로 차분한 그루브를 지닌 감동을 주며 단골 테마의 등장과 테크노적인 드라이브감이 절제 있게 버무려져 그 진가를 발휘한다.

글 정순영 (음악평론가, 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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