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제주국제합창축제 김현동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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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잃어 고통당하는 이들에게 보내는
희망 메시지 ‘화합(UNITAS)’

예산이 삭감되어도 지원이 줄어들어도 제주국제합창축제의 로코모티브는 멈추지 않는다. 2024 제8회 제주국제합창축제는 여전히 아시아 최대 규모로 꾸며진다. 국내는 물론 전 세계 어디를 가나 갈등과 반목, 겁박이 그 어느 때부터 무서운 악마의 독버섯처럼 성장하고 있다. 이런 무서운 세상을 막자! 이번 합창제의 주제는 그래서 화합(UNITAS)이다.
인류는 지난 4년 여간 전대미문의 전염병을 겪었다. 그 어려운 시기에 전 세계는 그 어느 때보나 강고한 단결력으로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공공의 적이 사라지자, 이전보다 더 강한 인간본성이 회귀하고 말았다. 또다시 이념과 전쟁, 지역주의와 민족주의가 이전보다 더 강한 면역력을 무장하고 세상을 뒤덮고 있다. 화합보다는 분열이 창궐하면서 우리 사회를 갉아먹고 있다.
제주국제합창축제의 김현동 본부장은 이런 위험한 시기에 합창축제가 화합의 기제로 작동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합창에서 아름다운 소리를 만나기 위해서는 나만을 고집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합하다’ ‘모으다’라는 뜻을 지닌 ‘합’(合)과 노래 부르다는 ‘창’(唱)이 만나 생긴 단어 ‘합창’(合唱)은 그 기원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마음과 소리를 모아야만 이뤄지는 음악 장르이다. 김현동 본부장 역시 그 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제주국제합창축제는 올해로 8년 차를 맞으며 하나의 전통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그 어느 때보다 큰 고통을 겪고 있다. 원만한 진행을 위해서는 예산이 미리 책정돼야 하지만 뒤늦은 결정과 예상 밖의 지원금 삭감은 축제의 뼈를 깍으라 강요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제위원회는 그 고통을 감내하면서 백방으로 뛰고 있다. 제주국제합창축제의 핵심 가치는 ‘소통’이다. 제주국제합창축제는 지원금 삭감을 원망할 겨를이 없다. 소통을 위해 시민들과의 열린 무대를 기획하고, 축제에 참여한 국내, 외 합창단들의 명지휘자들과 합창인들의 만남을 통해서도 서로가 느끼는 고충과 의문점을 해결할 비책(?)을 찾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 힘든 여정의 결과를 기다리며 잠시 제주의 해변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김현동 본부장을 만났다.

함께 모여 노래하는 즐거움 진정한 의미의 축제

주제를 정한 이유를 들은 후, 축제의 이모저모가 더욱 궁금해졌다. 제주국제합창축제가 여타 합창제와 확연하게 드러나는 차이는 무엇일까?
“우리 축제는 국내를 넘어 국제적으로 다 함께 참여하여 합창을 공유한다는 목적을 지닌, 순수한 의미의 축제를 만드는 것에서 출발했습니다. 합창경연대회보다 축제로 시작한 것은 경연 자체를 폄훼하는 것은 아니지만, 치열한 경쟁 과정에서 문제점들이 빚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 축제도 일면 경연의 형태를 갖추기는 하지만, 함께 모여 노래하는 즐거움에 집중합니다. 따라서 참가자는 물론 축제를 보러 오시는 분들도 함께 즐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구체적이고 지속적으로 실천하는 문제는 또 다릅니다. 매년 축제를 준비하면서 이번 축제는 여느 음악축제, 합창축제와 다른 ‘그 어떠한 특징’을 만들어 내야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항상 출발합니다.”
그러나 모든 상황을 예측할 수는 없다. 당연하지만 처음 계획을 수정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럴 때 리더가 어떻게 판단하고 진행하는지에 따라 운명을 달리 한다. 제주국제합창축제는 특히 대규모 국제행사로 진행되는 만큼 변수가 다양하다.
행사에 참여하는 합창단의 상황 변화, 또는 기획자가 예상치도 못했던 국제정세와 펜데믹과 같은 불가항력적인 일, 그리고 현실적으로 정부나 지자체의 행사 예산 지원금의 축소 등 민간 기획자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상황에 부딪히게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번 축제 역시 합창단이 훌륭함에도 불구하고 전쟁과 분쟁 때문에 참여할 수 없는 팀이 있다. 무엇보다 비극적인 수준으로 감소된 지원금은 기획했던 수많은 행사들은 물론이거니와 정상적인 행사 진행도 어려운 지경이어서 무언가 새로움을 만들어내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김현동 본부장은 그간의 노하우로 본 축제를 축제다운 행사로 만들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많은 어려움들이 있죠. 행사를 기획하고 그 기획한 것들을 실행하면서 세웠던 계획들이 마음처럼 순조롭게 이루어지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늘 가슴 아프고 또 저희의 능력 한계에 부끄러움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어려운 상황일수록 이 축제에 순수한 목적으로 동참하려는 국내외 훌륭한 합창인들의 협력이 절실히 필요했지요. 다행스럽게도 그 점에서는 우리 축제가 그 어느 축제와 견주어도 결코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해외 정상급 합창단과 지휘자들이 방문하고 있습니다.”
제주국제합창축제는 매년 전 세계에 걸쳐 훌륭한 합창단과 합창지휘자 및 음악축제 관계자들이 참여하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제주를 찾아 온 수많은 국가들에 대한민국의 음악 역량을, 또 제주도라는 우리의 보물 같은 섬이 가진 문화, 예술의 힘과 우리가 그간 만들어 놓은 좋은 합창 인프라를 세계에 알리는 큰 마중물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전적으로 국제 합창무대에서 오랫동안 활동해 오신 김희철 예술총감독의 역량이 큰 힘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십여 년 이상 중앙아시아와 서아시아 정부들과의 문화교류를 지속해 온 IOV KOREA(국제민간문화예술교류기구)의 도움도 우리 축제의 큰 자산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국내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중남미국가의 합창단, 발트국과 중앙아시아국 등 어찌 보면 제3세계라 할 수 있는 나라의 합창단 참여도 우리 축제의 큰 특색이라 할 수 있지요.”

국내외 최정상급 합창단이 한자리에

해외합창단을 섭외하는데 김현동 본부장과 김희철 예술총감독의 외국계 네트워크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국제축제로 시작할 수 있었던 비결과 펜데믹에서 엔데믹으로 전환된 올해는 어떤 팀들이 참여하는지 궁금하다.
“합창으로 평생 일해오신 김희철 감독께서 더 많이 수고하고 합창단 모집에도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계십니다. 저는 민간단체들보다는 외국의 정부와 일을 해본 경험을 바탕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또한 저를 믿고 도와주시는 유네스코협력기구들의 도움도 있었고요. 대표적으로 지난해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의 국, 공립 합창단원들이 참여했습니다. 해당 국가의 문화부에서 예산을 지원해주었고, 前, 現 문화부장관, 차관들이 많은 관심을 갖고 방한까지 했습니다. 이런 일들이 가능했던 것은 저의 능력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번 축제에는 코로나19 이후 최대규모로 진행된다. 여러 국가의 합창단과 국내 공립, 아마추어합창단 등 다양한 국가의 여러 합창단이 합창의 아름다움을 나누기 위해 제주 땅을 찾는다.
“세계합창에서 아주 귀한 합창국가라 할 수 있는 라트비아의 ‘콰이어 발타합창단’과 ‘에스토니아 국립대학합창단’ 그리고 미국 ‘미주리주립대학합창단’과 일본의 ‘사이노쿠니 플래티넘합창단’, 필리핀의 ‘캄머코어마닐라합창단’과 인도네시아의 ‘미나하사탱가라 남성합창단’ 등 여섯 개국의 해외합창단을 비롯해 부산시립, 순천시립, 창원시립, 동두천시립 등의 공립합창단, 더보이스챔버콰이어, 세종CEO합창단, 클리시쿠스합창단, 라뮤즈여성합창단, 부산중구구립합창단, 금천구립합창단, 송파구립합창단, 양천구립합창단, 해운대구립합창단, 남구구립오륙도여성합창단 등 아마추어 합창단들이 대거 참여합니다. 최대 규모인 만큼 더 잘 준비하고 싶은데, 너무나 적은 지원을 받은 상황이라 안타깝기만 합니다.”

아쉬운 예산삭감, 축제에는 큰 고통

이번 축제는 규모는 최대이지만, 최소한의 예산으로 준비해야 하는 실정이다. 2024년 문화예술계 예산이 어느 지역을 막론하고 대폭 삭감되었다. 한국의 컨텐츠는 세계 시장에 큰 바람을 일으키는 데 반해, 정부는 문화예술계 지원을 감소하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물론, 정부의 지원만을 바라는 것은 문제가 있을 수 있으나, 국가가 지원해줘야 하는 부분은 분명 존재한다. 제주국제합창축제의 상황도 이와 다르지 않다.
“모든 공연이나 축제, 행사 기획자들이 공히 느끼는 점이겠지만, 안정된 축제예산 확보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제주특별자치도의 후원으로 시작한 제주국제합창축제는 처음부터 제주특별자치도의 도움과 협조, 예산지원 속에 예술감독 이하 많은 스태프들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축제입니다. 제주국제합창축제의 경우에도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몇 년 동안 기존 예산의 40%씩 감액하는 등 예산 축소가 있었습니다.”
중앙정부나 지방정부나 할 것 없이 2월에 국제행사 개최는 흔치 않은 일이다. 우선 예산 확보와 집행에 시간이 촉박하기 때문이다. 연말이 돼야 그다음 해의 축제예산이 의회를 통과한다. 그렇기에 2월에 시작하는 축제의 경우 전체 틀은 전년도 상반기에 완료돼야 한다. 실제 행사보다 반년 정도 일찍 계획, 초청해야 할 합창단체와 음악인, 귀빈들은 스케줄을 조정, 항공권 예약 등이 진행되며, 이에 맞춰 예산이 확정되고, 의회를 통과한다.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예산을 축소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대처하기가 어려워진다.
“갑자기 예산에 변동이 생기면 사실 외국팀들은 사비나 국비를 들여 항공권 예약을 마친 상태라 초대를 취소할 수도 없거니와, 대한민국과 제주도의 위상은 국제 음악계에서 추락합니다. 사람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세계적 전염병도 큰 난적이지만, 정부나 지자체의 편의적 행정에 의한 손쉬운 예산삭감은 행사를 기획하고, 제작하는 저희 민간인들에게는 모든 것을 좌절시키는 어마어마한 고통일 수밖에 없지요.”
예산의 변동, 축소는 축제 개최와 진행에 직접적인 타격을 준다. 이번 축제 역시 턱없이 부족한 예산으로 진행해야 한다. 부족한 예산은 어떻게 채울 것인지, 만약 부족한 대로 진행하면 축제가 졸속으로 전락할 우려도 있다.

“예산이 행사를 진행하는 것에는 절대적인 요소 중 하나인 것은 분명합니다. 축제 기획은 안정된 예산을 전제로 해서 계획을 작성하고 실행에 옮기는 것을 기본으로 합니다. 이번 년도 같이 턱없이 삭감된 예산 현실에서는 그 어려움이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실제 저희는 어느 합창단이라도 공연료나 교통경비를 지원하지 않습니다. 순전히 초청장만 보내고 축제를 위해 참가하는 팀들의 숙식과 도내 이동에 따른 교통수단만 제공합니다. 그럼에도 여기에 예산의 가장 많은 부분이 지출되고 있습니다. 현재 예산으로는 바로 이러한 최소의 부분들도 해결할 수 없습니다. 또한 이와 맞물려 축제 전문 인력에 대한 수급도 큰 어려움입니다. 축제는 아무리 작은 축제라 하더라도 인력의 숫자에 차이는 있을 망정 그 전문성에 대한 필요성에는 차이가 없습니다. 행사가 크면 더 많은 스태프들이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작은 행사라 해서 비전문적인 스태프를 동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행정공무원들이나 정치인들의 인식은 그렇지 않습니다. 행사 기간이 4일이면 4일 정도 일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인건비 정도의 일이라는 인식이 여전합니다. 그러다 보니 그 적은 인건비에 축제를 잘 이끌어간 스태프들을 구하는 일이 거의 하늘에 별따는 일만큼이나 어렵지요. 그동안은 제가 현장에서 함께 일하며 우정을 나눈 많은 스태프들이 좋은 의미로 도와줬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훈련된 인력들도 축제를 멀리할 수밖에 없는 아픔이 있습니다.”
김 본부장은 시장의 물가를 반영하지 않은 행정기관의 예산 산출기준을 따라야만 하는 어려움을 ‘숨어있는 가장 강한 복병’으로 비유한다. 이 모든 것이 축제 주최 입장에선 숨길 수 없는 일이다. 그렇기에 김희철 예술총감독과 축제의 살림을 맡은 김현동 본부장은 팔방으로 뛰어다니며 도움을 읍소하고 있다.
하늘을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몇몇 업체들과 식당 사장님들 또 우리 축제를 아껴주시는 도내 어른들이 이런 저런 도움을 주시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문제가 존재한다. 축제가 보여주어야 할 최소한의 퀄리티를 유지하기 위해 이 모든 어려움을 감내하고 있다. 사실 예산에 맞춰 졸속으로 행사를 만들면 이런 고민과 걱정은 없다.
하지만 김현동 본부장을 비롯해 제주국제합창축제 조직위원회는 그 모든 것을 뛰어넘어 기적을 만들고야 말겠다는 의지로 무장하고 있다. 이것이 온갖 어려움 속에도 지난 수 년 동안 버텨온 제주국제합창축제만의 노하우라고 할 수 있다.
“저예산의 행사이지만 그런 점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여러 사람들의 노하우와 노력들이 더해지고 있다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확신에 차서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서 제주국제합창축제의 자부심이 느껴졌다.

축제를 넘어 문화, 산업, 정치 등 영향을 주는 창의적 축제

김현동 본부장은 제주국제합창축제 본부장으로서 축제의 전반적인 것들을 챙기면서 그 사이 사이에 조용하게 크고 넓은 활동을 펼쳐왔다. ‘오페라로 읽는 인문학 강좌 여인의 향기’ ‘오페라로 읽어보는 인문학 10강’ ‘오페라 속의 도시 이야기’ 등 오페라를 주제로 한 다양한 강의 활동은 물론 ‘바다로 간 산신령’이라는 오페라 대본을 창작해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이 모든 활동이 축제 제작의 밑거름이 되고, 그물처럼 하나의 망을 이룬다.
“제가 하는 모든 일에는 연관성을 갖고 있습니다. 축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 모든 것이 사람이 사람을 통해 만들어지는 일들이기 때문이죠. 사람이 기획하고 제작하고 또 사람을 모으고 그 사람들과 함께 작은 것들과 큰 것들을 만들어 가는 것이 축제이고 공연이기 때문입니다. 상대는 매번 바뀌지만 이 모든 것이 사람을 행복하게 해 주자는 일에서 시작된 것이니 그 기본은 다르지 않습니다.”
김 본부장은 강연 제목을 만들고, 원고를 쓰면서 어떻게 해야 이 강연을 듣는 수강생들이 보람과 재미, 또 감동까지 얻어갈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한다. 이런 고민은 강연뿐만 아니라 공연도 마찬가지다. 관객들에게 제주를 알리고 문화를 일깨우고자 하는 의미와 공연의 절대적 명제인 재미, 기억에 남는 작품을 만들겠다는 마음에서 탄생한 작품 ‘바다로 간 산신령’이다. 김현동 본부장이 제주도 설화를 바탕으로 대본을 쓴 ‘바다로 간 산신령’은 관객들에게 웃음과 감동의 콜라보였다며 감성을 채우는 오페라로 큰 호평을 받았다.
“연주자들이 저의 의도를 잘 이해해주었습니다. 공연하는 사람들이나 공연을 관람한 사람들 모두 저의 그런 계획에 부합했다고 믿습니다. 축제도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고, 저 역시 축제의 작은 순서 하나하나에 그러한 의도를 반영해 보려 애쓰는 중입니다.”

그런 그의 신념은 축제에도 녹아 있다. 음악 안에서 행복하고 합창을 즐기는 것이 제주국제합창축제의 기본이념이지만, 축제 기획자는 더 넓은 숲을 봐야만 한다. 김 본부장은 세계적인 음악축제로 발전하려면 제주국제합창축제가 단순히 즐기는 축제를 넘어 문화, 산업, 정치, 경제 등 여러 분야에서 창의적인 생산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축제론’을 펼친다. 기획자는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의 정신으로 참가국들이 합창 이외에도 무엇을 원하는지를 잘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제주국제합창축제 본부장으로서 늘 해외 참가국과의 외교와 상호 협력방안까지 구상한다.
“앞서 밝혔듯이 이러한 계획들이 실현되려면 꾸준하고도 안정적인 예산이 보장돼야 합니다. 올해도 두 개 정도의 국가에서 문화, 예술 분야 외교관들의 참여가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축제 예산의 엄청난 삭감으로 말미암아 그 계획은 추후로 미룰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무척이나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정말 세련된 외교는 문화와 예술을 앞세운 외교입니다.”
돈 가방과 무기를 테이블에 놓은 나라와는 친구가 될 수 없다. 문화적으로 동질감을 갖고, 예술적 가치를 공유하는 관계는 끈끈한 친구가 될 수 있다. 김현동 본부장은 이번 축제를 준비하면서 세련된 문화 외교를 알리는 일 또한 제주국제합창축제의 사명이라고 강조한다.

천혜의 자연 품은 제주와 숭고한 가치 지닌 예술의 만남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에스토니아 합창축제

합창축제가 문화 외교의 주축이 될 수 있다는 점은 이미 세계의 여러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다. 그중 대표적인 축제가 발트 3국 중 하나인 에스토니아 합창축제다. 이 축제는 5년 주기로 개최하는데, 매번 13만 명이라는 엄청난 인원이 참가한다. 그 비결을 스토리텔링에 있다. 그렇다면 제주국제합창축제만의 스토리텔링은 무엇일까?
“아시다시피 에스토니아의 합창과 댄스축제의 모티브는 저항정신입니다. 침략의 위기에서 민족과 국가가 화합하여 단결된 모습으로 불의에 저항하는 정신에서 합창과 춤의 모습으로 그 의지를 표명한 것에서 그 축제가 생겨났고 발전되어 왔죠.”
물론 그 역사적 결과가 항상 성공적인 모습으로 승전가를 부른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발트 3국의 단결된 힘과 그들 고유의 민족 자긍심, 합창에 대한 역사의식 등은 수많은 국가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저는 우리 민족이 당한 역사의 수많은 역경들, 그 가운데 4.3사건 등 제주도민이 당한 숱한 역사적 고난의 사건들도 충분히 이러한 합창축제에 녹여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 축제가 처음부터 이 부분들을 드러내지 못했던 것은 아직도 우리의 정치사가 그다지 세련되지 못한 이유도 있습니다. 따라서 직접적인 역사적 모티브를 축제에 담아내기보다 제주가 가진 아름다운 문화와 제주도민의 정, 민속적 전통을 알려주고자 하는 것이죠. 이 부분이 저희만의 스토리텔링을 만들어가는 작은 시도입니다.”
스토리텔링이란 결국 시간이 만들어 간다. 시간과 경험이 하나둘씩 쌓여야 자신만의 이야기로 탄생하기 때문이다. 아직 제주국제합창축제는 너무나 어린 축제다. 한해 한해 지금처럼 최선의 노력으로 경주한다면 어느 축제와 견주어도 빛날 수 있는 고유한 역사와 전통으로 자리 잡지 않을까?

김 본부장은 세계적인 음악축제 중 하나인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을 예시로 들며 설명을 잇는다.
“관광과 비즈니스의 중심이 된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은 오늘날 이상적인 축제지만, 첫 시작은 시민들의 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생존형 축제였습니다. 2차 세계대전 직후 잘츠부르크는 예술가들이 전쟁의 참혹한 현실 앞에서 그야말로 한 조각의 빵마저 해결할 수 없는 절체절명의 상황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이런 험난한 시간을 겪으며 10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잘츠부르크 축제는 자신들만의 노하우를 쌓아왔고 지금은 하나의 축제를 넘어 산업과 외교, 문화,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축제도 잘츠부르크축제를 충분히 벤치마킹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또 그럴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현재 제주는 당시 잘츠부르크처럼 의식주의 문제를 지니고 있지는 않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여러 딜레마 속에 놓여 있다. 김 본부장은 그 딜레마들을 해결해나갈 마중물이 바로 제주국제합창축제가 될 것이라 믿는다. 제주국제합창축제의 경험이 쌓여 세계적인 축제로 거듭나면 문제들이 조금씩 해결될 것이라고 본다. 천혜의 자연을 품고 있는 제주와 숭고한 아름다움을 지닌 예술인 합창이 만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변할 수 없는 두 가치가 만났을 때, 사람은 모일 것이며, 모이는 곳에서는 늘 부가가치가 높은 일들이 발생한다. 하지만 김 본부장은 그 사업의 가치에 대해서는 따져봐야 한다고 말한다.
“k-팝, k-드라마, k-무비 등의 열광과 별개로 이미 우리 클래식 음악의 수준과 그를 만들어가는 인적 인프라는 차고 넘칩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식견 있는 정치인이나, 이 분야에 미래 먹거리가 존재한다고 믿는 공무원들이 없다는 것이 비극이라면 비극이지요.
언론이나 사회학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항상 누가 세계대회에 우승하고 나면 몇 달 떠들기 바빠요. 그들이 만들어 가는 문화적 가치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런 인재들을 수없이 만들어 내는 이 나라의 숱한 음악 단체들과 그런 단체나 축제를 만들어 가는 민간 조직과 전문가들에게는 관심이 없습니다.”
제주국제합창축제는 아주 짧은 시간에 세계 합창단체나 인사들의 입에 회자하고 관심을 받는 축제로 거듭나고 있다. 제주국제합창축제에 초청되는 숱한 국외 음악감독들이 자국의 축제에 한국의 단체들과 지휘자들을 초청하고 있다. 서방 선진국에서는 이러한 음악축제가 민간 주도로 만들어지고 운영되지만, 아직도 많은 북, 동유럽, 중동, 중앙아시아, 중남미 국가들은 정부 주도로 만들어지고 운영되고 있다. 이런 축제의 교류가 외교와도 직결되기 때문이다. 김 본부장은 정치, 언론, 국민 등이 근본적인 문화적 가치에 관심을 가져야 함을 역설한다.

세계적 축제 거듭나려면 지속적인 지원, 정책 중요

축제가 외교 통로라는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앞서 언급한 두 축제 말고도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축제, 브레겐츠 페스티벌 등도 엄청난 외교적 성과와 경제적 효과를 보고 있다. 하지만 이런 축제를 기획에도 고민은 존재한다. 매년 똑같은 방식으로 진행한다면 ‘또 그 방식?’ 하며 지루해할 것이고 매번 매번 구성을 새롭게만 한다면 정통성을 세우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제주합창제만의 전통과 혁신을 조화롭게 해야 한다.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변화시키며 축제를 기획할까?
“축제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항상 딜레마에 빠지는 부분이죠. 축제에서 새로움이라는 것은 하루 아침에 시도하고, ‘아니면 버리고’ 식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전향적인 지향점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세계의 수많은 음악축제들에서 제시되고 시도된 여러 형태들이 각 국가의 상시적인 극장이나 공연단체들이 모방하고 발전시켜 보다 더 참신한 공연 형태를 만들어 가는 것을 우리는 많이 봅니다.”
예를 들어, 호수 위에 거대한 수상 무대를 만들어 오페라를 공연하는 브레겐츠 페스티벌을 모티브 삼아 많은 나라에서 호수나 강을 이용하여 무대를 만들어 공연을 올리고 있다. 그런데 브레겐츠 페스티벌은 하루 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 이들의 전통도 진보적으로 발전해온 결과물이다. 야외무대를 이용한 여름 오페라페스티벌의 모태는 이탈리아의 베로나에 있는 원형경기장(ARENA) 오페라나, 토레 델 라고(TORE DEL LAGO) 오페라페스티벌 등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이다.
“우리 축제의 전통도 이제 점점 만들어져 자리 잡고 있습니다. 우리 축제의 전통은 핵심 가치는 ‘소통’에 있다고 봅니다. 제주국제합창축제는 공연이나, 경연 등의 일반적인 행사에 머무르지 않고 지역민들과 참여한 시민들과의 열린 무대를 통해 만남의 기회를 갖고, 축제에 참여한 국내, 외 합창단들의 명지휘자들과 합창인들의 만남을 통해서도 서로가 느끼는 고충과 의문점을 해결할 비책을 서로 나누는 시간을 갖습니다.”
2024 제주국제합창축제는 횟수로는 8회를 맞이하는 아주 어린 축제이다. 그 중 3년은 코로나19라는 어려움 속에서 제대로 된 축제를 만들어 볼 수 없었다. 이제야 겨우 발걸음을 떼고 있는 어린아이 같은 축제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소통이라는 전통을 잘 지켜나가면서도 늘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소정의 성과를 올린 새로움을 말하자면 너무 초라 하지만, 몇 해 전에는 개막공연에 제주의 전통소리를 전통적인 방법으로 함께 부르는 노동요, 소위 제주민요 합창을 소개한 바 있습니다. 그간 서구식 합창만을 합창이라 생각해 온 많은 합창인에게는 신선함과 이색적인 공연으로 다가올 수 있었겠지만 의외로 외국 지휘자들이나 합창 관계자들의 귀에는 새로움으로 다가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국적 멜로디와 창법이 그 이유였겠지요.”

이뿐만이 아니다 제주국제합창축제에 참여하는 합창단들은 외국 합창단이라 하더라도 우리 창작곡을 하나 이상씩 배우고 간다. 한국민요를 배우건, 새로운 창작곡을 배우건, 개막공연이나, 특별공연에서도 미리 나눠준 우리 합창곡들을 외국 합창단이 숙지하고 함께 부르는 시간을 가진다.
“우리는 합창축제가 그저 공연 몇 개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축제라는 이 행사를 통해 여러 민족과 국가의 축제들과 연계하고 서로 소통하고 교류하면서, 이 또한 서로 화합하는 새로운 길을 개척한다는 마음으로 매 발걸음을 걸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여전히 나아가야 할 길들이 있지만, 제주국제합창축제는 한발 한발 나아가고 있다. 그 반응은 해를 거듭할수록 뜨겁게 나타나고 있다. 제주국제합창축제가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를 대표하는 음악축제로 거듭나는 예술축제로서 확립하기 위해 어떠한 지원과 도움이 필요할까?
“지원과 도움의 첫 번째는 역시 안정되고 꾸준한 예산지원이고, 또한 전문가를 인정하고 그에 따른 행정, 정치의 인식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예산을 어마어마하게 주고 국가의 정책자들이 관심을 가진다고 해서 100%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중국같이 국가적인 큰 행사에 많은 예산과 정부의 관료들이 관심을 가지고 행사를 개최하기도 하지만, 숙련된 전문가들이 부족하고 국제무대에서 오래 인적 인프라를 만들어 낸 인재들이 없다면 그 역시도 행사를 성공적으로 안착시키는데 큰 난관이 생길 것입니다.”
많은 쌀을 만들어내는 일에는 좋은 땅과 적당한 비와 햇빛 등이 우선적으로 필요하지만 정작 부지런하고 솜씨 좋은 농부가 없다면 농사는 불가능하듯이, 예술축제처럼 전문성과 솜씨를 갖춘 전문가가 필요한 행사에는 이러한 인재들을 잘 찾아 제 역할을 주는 일 또한 큰 과제이다. 그렇기에 연속성이 중요하다.
“현실적으로 우리나라는 정권이 바뀌고 담당 공무원이 바뀌면 그동안 진행되고 있던 것들이 지속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때, 그때 그 권력자나 담당자의 입맛에 맞는 인력들이 축제를 어설프게 만들죠. 대한민국에서 긴 생명력을 지닌 예술축제를 찾아보기 힘든 이유가 이것입니다. 정말 이 숙제는 우리나라의 예술계와 정치, 공공단체, 지자체 등 모든 관계자들이 가슴을 열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들여다봐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이 있듯이, 세상에는 단숨에 한순간에 이뤄지는 일은 없다. 노하우와 경험이 차곡차곡 쌓여 자산이 되고, 길이 되는 것이다. 4월에 있을 총선 결과에 따라 예술계가 또 휘청거리는 일이 없길 바란다.

축제는 열린 마당, 연주자도 관객도 축제의 구성원

인터뷰의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음악축제 제작자로서 축제에 참여하는 합창인들에게 또 합창제에 참여하는 관객들에게 꼭 하고 싶다는 제언을 요청했다.
“축제는 모든 사람들이 그 주인공입니다. 축제를 만드는 사람들은 일종의 서비스직이죠. 합창을 하러 온 사람들도, 또 합창을 보러 온 사람들도 모두가 이 축제의 주인공들입니다. 주인은 누구의 눈치를 보며 즐길 필요는 없습니다. 열린 마음으로 자유롭게 축제의 모든 프로그램을 즐기고 또 재미있게 함께 만들어 나가면 됩니다.”
김현동 본부장은 축제 스텝들은 안전하게 그 모든 일이 잘 진행될 수 있게 서비스하는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간혹 합창단원들이 자신들을 손님으로 대해주길 원하시는 분들도 간혹 있긴 하다. 그런 분들은 축제와 단순 초청공연을 혼동하는 사람들이라고 분명히 말했다. 그렇다면 과연 축제의 손님은 누구일까?

“축제에서 손님을 찾아야 한다면 그건 아마도 미래에 이 축제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어린 대중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합창축제에서는 공연을 찾는 관객도 함께 즐기는 축제의 한 구성원이라야 합니다. 박수치는 입장이라 해서 손님이 아니라 웃고, 소리치고 박수치는 역할을 하고 있는 축제의 일원입니다. 그렇다고 공연을 관람하다가 무대 위를 막 뛰어 올라가도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관객이라는 역할을 하는 그 당시의 축제 일원이란 뜻이죠.”
이어 그는 진정한 축제란 정해진 공연이 끝나면 로비에서 거리에서 합창단과 어우러져 노래하고 즐기고 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는 축제가 그 어떠한 행사보다도 열린 마당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행히 우리 축제는 모든 공연이 끝난 후 로비에서 관객들과 어우러지는 시간들을 가지는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주국제합창축제는 시민과 합창단이 함께하려는 열린 마음만 있다면 언제나,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마당을 제공할 것입니다.”

대가들에게도 어려움은 존재했다. 단지 그 어려움을 버티고 극복했기에 그 자리에 오른 것뿐이다. 고난은 성장을 위해 벗겨내야만 하는 포장지이다. 제주국제합창축제도 숱한 어려운 시기를 겪으며 한 단계 성장했다. 국내를 넘어 세계의 합창 관계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제주국제합창축제와 대한민국의 문화 외교 마중물이 될 때까지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오늘도 쉬지 않고 달리고 있는 제주국제합창축제 김현동 본부장. 제주의 문화유산으로, 세계의 예술인이 모이는 음악축제로 거듭나기 위해 경험을 쌓아가고 있는 그 발걸음을 한 명의 국민으로서 응원을 보낸다.

글 허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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