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가곡의 르네상스를 꽃피우다, 서울우리예술가곡협회 이사장 이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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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에 우리 국민들을 위로해주고 희망을 건네주었던 가곡, 하지만 현재 가곡은 외면받고 있다. 가곡이 왜 중요할까? 우리의 소중한 유산이기 때문이다. 가곡은 비록 서양음악의 작곡법을 따르나 일제강점기 한국 시를 바탕으로 한 우리 민족의 정서가 담긴 장르이다. 그렇다면 가곡은 과거에 멈춰있는 장르일까? 아니다. 현재에도 공유해야 할 우리의 소중한 유산이다. 다문화 시대로 가고 있는 만큼, 가곡은 하나의 선조들의 정신을 배우고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문화의 다양성이 대두되는 만큼 고유의 문화를 지키는 것 역시 중요하다. 타문화를 받아들일 때 우리의 정체성을 중심으로 다른 문화를 포용해야 우리의 고유의 정체성을 지켜나갈 수 있다. 한민족 고유의 정체성이 담긴 가곡이 사라지면 우리 고유의 문화가 사라지는 것이며, 회복이 불가할 것이다. 이런 가곡의 중요성을 알고 가곡의 저변확대를 위해 가곡을 ‘K-Clapop’이라는 이름으로 알라는 데 앞장서고 있는 사람이 있다. 11년전 2013년 서울우리예술가곡협회를 창립한 정원 이경숙 이사장이 그 주인공이다.

서울우리예술가곡협회 정원 이경숙 이사장은 지난해 한국방송신문협회가 주최한 ‘2023 대한민국 발전 대상’에서 문화예술공로 가곡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이경숙 이사장은 K-Clapop의 대중화와 세계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고, 서울예술가곡제와 대만, 인도네시아, 모스크바, 파리 등 해외공연을 비롯해 ‘달빛 그린 음악회’ ‘국군 초청 음악회’ 등 크고 작은 음악회를 수백 회 개최하며 공연 때마다 만석을 채우는 등 국민의 눈과 귀와 마음을 즐겁게 해주었다. 가곡이 중요성이 대두되는 현재, 가곡 전도자로 살아가는 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발걸음을 향했다.

가곡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단법인 서울우리예술가곡협회(이하 예술가곡협회)에는 시인, 작곡가, 전공성악가, 비전공성악가 등 가곡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공연을 펼친다. 그렇기에 연주자들의 마음가짐이 특별하다. 대부분 연주자들은 출연 제의를 받고 연주한다. 주최측에서 원하는 만큼만 가곡을 부를 수 있다. 하지만 서울우리예술가곡협회의 공연은 가곡 부흥을 위한 공연이다. 의도하는 바가 다르다. 가곡이 에피타이저나, 양념이 아니라, 메인 요리인 셈이다.
“지금 세계에 ‘K열풍’이 불고 있잖아요. k-팝, k-뷰티, k-뮤비 등 한국의 문화가 세계의 인정을 받고 있어요. 한국의 정서는 특별함이 있어요. 온갖 고난의 시간을 이겨냈던 원동력이기도 하고요. 특별하죠. 우리 가곡도 정말 특별합니다. 저는 한국 가곡을 K-Clapop이라고 불러요. 클래팝이란 흔히 우리는 서양의 고전음악의미하는 클래식과 아트팝의 합성어입니다. 아트팝은 예술적인 측면과 대중성의 팝이 융합된 단어입니다. 즉, k-클래팝, 한국의 클래식인 가곡에 대중성을 가미해 한국적 예술가곡의 세계화를 표방하고자 합니다.”
한국 가곡의 세계화에 앞서고 있지만, 사실 이경숙 이사장은 성악 비전공자이다. 초등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임한 40여 년을 교육에 힘써온 교육자이다. 그런 그가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인생 후반기에 가곡에 올인(All-in)하고 있다. 그와 가곡은 어떤 인연이 있기에, 이토록 가곡 사랑에 푹 빠진 것일까?

배움에 나이가 무슨 상관이냐

이경숙 이사장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전교에서 1위에 뽑혀 CBS 어린이 합창단 단원으로 활동하기도 했을 정도로 어려서부터 음악의 재능이 있었다. 하지만, 그가 계속 음악의 길을 가기엔 수많은 장애물들이 막았다. 그는 타협할지언정 포기하지 않았다. 생활고 등 어려운 상황으로 그는 서울교대에 입학했지만 연구교과를 음악으로 선택하며 음악에 대한 갈증을 달랬다. 그런 그의 음악 사랑은 교직에서도 이어졌다. 79년 서울시 초등학교에 국악시범학교가 생기게 된 계기도 이 이사장의 선구자적인 연구활동에서 비롯되었으며, 발령받은 학교마다 동요대회, 어린이 기악연주대회, 어머니 합창대회 등을 열었다. 그의 사랑이 담긴 음악교육의 파급력은 대단했다. 학생들과 학부모를 넘어 지역사회까지 음악의 아름다움에 푹 빠졌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면 전할수록 이 이사장은 고민에 빠졌다. 비전공자인 내가 할 활동이 맞는가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전문적인 지식에 대한 갈증이었다. 특히 한반도의 역사와 함께 성장해 온 가곡이 홀대받는 모습을 보면서 가곡에 마음이 쓰였다. 그렇게 그렇게 정년을 1년 앞둔 2008년 한국예술종합학교 문화예술 최고위과정 수료을 비롯하여 퇴임 후에는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서양음악연구소 성악전공자 과정, 개인레슨, 작년에 국립오페라단 아카데미까지 음악을 배울 수 있는 곳이라면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성악을 배우러 다녔다. 가곡이 이대로 쓰러져 가는 것을 볼 수 없었다. 하루하루가 가곡 동호회, 등 가곡 관련한 활동으로 쏜살같이 보냈다. 그런 그의 사랑의 결정체가 바로 서울우리예술가곡협회이다. 그렇게 그는 가곡의 르네상스를 위해 헌신하고 어떤 청춘보다도 열정으로 뛰었다.

가곡 전도사로서의 자부심

“주변에서 전문성악가들이 해야 할 일을 이사장님이 비전공성악가들을 데리고 해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많이 받아요. 한국 가곡의 세계화, 저변확대를 위해서 전문성악가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물론 노력하는 성악가들도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세계적 프리마돈나 조수미씨가 있죠. 하지만 좀더 힘을 써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1986년 조수미가 동양인 최초로 워너뮤직 산하 에라토 레이블에서 앨범 발매를 하게 되었을 때, 그 조건이 한국 가곡 ‘보리밭’을 넣는 것이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당시 조수미는 ‘우리나라 말로 된 노래가 앨범에 들어가야 한다’고 강력하게 어필했다. 음반사에서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노래, 또 우리나라 말로 하는 노래를 누가 듣겠냐며 반대했지만 조수미는 앨범에 그 곡을 꼭 넣는 조건으로 사인했다. 앨범에 ‘보리밭’이라고 적혀 있는데, 당시에는 한글 활자를 찾기도 힘들었던 시절이다. 한 전문 성악가의 파급력은 대단했다.
전문 성악가들에게만 맡기고 손을 놓을 이경숙 이사장이 아니다. 그는 가곡 저변확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했고, ‘듣는 사람’이 많아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크고 작은 음악회를 지속적으로 개최했다. 그 결과 공연은 300여 회를 넘겼고, 만난 관객의 수는 100만이 넘는다.
“단순히 공연 횟수만 늘리는 것에 집중하지 않습니다. 생음악에서 느낄 수 있는 감동을 전해야 한다는 소명이 있어요. 그렇기에 공연장을 선택할 때 고심하고, 만석을 채워야 한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음악회는 홀이 중요해요. 음악적으로 음향을 갖춘 곳에서 음악을 들어야 감동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기 때문이죠. 이런 기준은 세종문화회관, 영산아트홀, KBS홀 등에서 연주할 수 있도록 했고, 비전공자 연주임에도 매진되었습니다. 큰 홀을 고집하는 이유는 음악적으로 감동을 전하는 것은 정말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관객들에게는 경험이 중요해요. 음악적 감동, 우리 가곡을 찾아서 발걸음을 옮기는 것, 성악가를 만나서 음악으로 소통하는 것 등의 경험들이 다음 음악회를 기다리게 되는 동기가 되거든요.”
또한 이 이사장은 다음세대를 위한 공연에도 열정을 아끼지 않는다. 육군 1군단, 51, 25, 17사단, 해병대 2사단 등에서 가곡음악회를 16회 정도 개최했고, 6000명정도의 군인들 만났다. 청년들이 가곡을 즐기는지 궁금했다.
“재미없어 할 것 같죠? 예술가곡협회의 공연 후에 퀴즈를 내는데, 얼마나 열심히 인지 몰라요. 감동받아서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요. 저는 이것이 진정한 가곡의 저변확대라고 생각해요.”
그의 이런 열정은 청년들의 마음을 울렸다. 그렇기에 그는 멈출 수 없었다. 지난 2022년에는 육군 60사단과 MOU를 맺어 지속적으로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그리고 이 이사장은 공로를 인정받아 육군참모총장의 감사패를 받기도 했다.

가곡의 매력을 전하기 위해

이경숙 이사장과의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창의력’이라는 단어 맴돌았다. 주어진 상황에서 다양하면서 새롭고 적절하고 가치 있는 것을 창출하는 능력 ‘창의력’(創意力), 남들과 똑같은 길을 가는 것이 아닌 나만의 길을 개쳑해 가는 그의 모습은 그 누구보다고 창의적이었다. 정년퇴임 이후에 새로 성악을 시작하는 것, 비전공자가 가곡협회를 운영하는 것 등 그는 나이와 상황에 주저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경험들은 제2의 빛나는 인생을 만들어 냈다.
그의 창의력은 예술가곡협회 공연 기획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어떻게 하면 가곡의 관심을 높일 수 있을까, 그는 쉬지 않고 고민했다. 일례로 한국 가곡의 시초에 대한 논쟁을 공연에 녹여냈다. 한국 최초의 가곡을 홍난파의 봉선화로 보기도 하고, 박태준의 동무생각으로 보기도 한다. 홍난파가 봉선화를 1920년에, 박태준이 동무생각을 1922년에 작곡했다. 이렇게 보면 봉선화가 시초인 것 같지만, 봉선화의 노랫말은 1925년에 붙여졌다. 그렇기에 시초에 대한 논쟁이 여전히 남아있다. 그는 이 두 시초를 공연에 담아냈다. 그는 2020년에는 한국 최초의 가곡 봉선화로부터 100년 기념 연주를, 2022년에는 동무생각으로부터 100년 기념 연주를 펼쳤다. 프로그램북에도 봉선화를 효시로 할 때와 동무생각을 기준으로 했을 때를 각각 나눠 그동안 가곡들을 작곡가와 함께 연표로 정리했다. 관객에게 한번더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가곡과 드라마를 융합한 예술가곡드라마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 월남전의 이야기를 담은 예술가곡드라마 ‘꽃별’은 국내뿐만 아니라 베트남에서 성공적으로 공연했다.
“예술가곡드라마 꽃별에는 제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교직에 있을 때, 월남전 참전 용사에게 보냈던 위문 편지가 모티브가 되었습니다. 당시 외화를 벌기 위해 타국으로 떠난 군인들, 고엽제의 희생자들 등 가슴 아픈 역사를 가곡과 함께 담아냈습니다. 그렇기에 꽃별을 한-베수교 31주년 기념 음악회로 진행했다는 점은 제게 더욱 의미가 남다릅니다. 베트남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은 감동이었습니다. 전석 매진되었고, 반응이 뜨거워서 2년마다 초청공연을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그의 창의력은 가곡의 세계화에 앞장서고 있었다.

k-클래팝이 세계인들의 마음을 울리는 날까지 달려가기 위해 오늘도 쉬지 않고 기획하고 배우는 그의 열정에 감탄의 박수가 절로 나왔다. 이경숙 이사장의 호는 정원(正園)이다. 바를 정에 뜰 원, 넓은 곳으로 바른 이념을 펼쳐나가라는 의미다. 그의 호에는 그의 삶이 녹아 있었다. 40여 년간 교육자로, 가곡의 아름다움을 전하는 예술가로 살아온 이경숙 이사장. 그가 있었기에 한국 교육에서 음악이 발전할 수 있었고, 가곡이 죽지 않고 르네상스를 맞이하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 그는 한국 가곡의 아름다움을 모든 사람이 알기까지 그의 도전과 걸음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 걸음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글 허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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