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과 같은 희망과 위로의 물결을 온누리에, 코리안퍼시픽필하모닉오케스트라(KPPO) 지휘자 강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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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소금’ 예수가 산상수훈을 가르칠 때 나온 비유 중의 하나로 “너희는 세상의 빛”,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는 데에서 따온 말이다.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빛처럼, 부패한 세상을 깨끗하게 하는 소금처럼 살라는 의미라고 볼 수 있다. 지금껏 오직 음악만을 바라보며 걸어온 좁은 길 위에서 초심(初心)의 사명을 지키는 것만큼 어려운 것이 없는데, 그 엄청난 뚝심을 발휘하는 이가 있었다. 바로 코리안퍼시픽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강원호 지휘자다.
그는 지휘자이기 이전에 한 명의 신앙인으로서 본인의 달란트를 통해 아가페적 사랑을 드러내며 사람들에게 희망과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다.

자연스레 걸어온 음악의 길

미8군에서 기타를 치셨던 음악가 아버지 밑에서 자라며 그의 인생은 음악과 매우 밀접했다. 그 후 만 8세 때 피아노를 시작해 작곡전공을 위한 기본기를 다졌다. 물론 작곡을 전공하는 것은 지휘자의 길을 걷기 위한 하나의 빌드업일 뿐이었다.
“지휘자가 되고자 마음을 먹은 후 주변의 선생님들을 보니 모두 작곡을 전공하셨더라고요. 그래서 한국에서는 작곡으로 시작했고, 오스트리아에 가서는 지휘전공으로 다시 학부부터 정확히 배웠습니다.”
그가 바라는 지휘자가 되기 위해서는 한국에서부터 오스트리아까지 그 기나긴 연단의 시간이 필요했다. 늘 모든 면에서 연구하는 학구적인 스타일인 강 지휘자는 작품에 대한 작곡가의 이해도가 전달되는 소통의 창구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렇게 들어섰던 음악의 장벽은 너무 높았다. 게다가 이것을 단순 취미가 아닌 생업(生業)으로 삼아 살아가는 연주자들에게조차 호락호락하지 않았던 현실까지 겪어보니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좋은 음악을 들려주기 위해서는 그러한 예술 세계를 공유할 수 있는 ‘자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저는 나고 자라면서부터 음악만 해왔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이 음악이라는 것이 진입 장벽이 너무 높더군요. 일반인뿐만 아니라 연주자들에게도 높았어요. 문득 이런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연주자들에게는 하나의 직업 창출의 기회가 될 수 있으면서, 동시에 사람들에게 예술 세계를 지속적으로 공유하며 찾아가는 형태를 만들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라고요. 그렇게 시작했던 것이 지금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하나의 단체를 조직하여 운영한다는 것은 그저 ‘할 수 있다!’라는 파이팅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 힘들고 험난한 길이기에 집념과 끈기, 무엇보다 ‘왜 이것을 하고자 하는가’에 대한 뚜렷한 목표가 있어야만 버텨낼 수 있다. 2018년 야심 차게 창단되었지만 불과 1년 후인 2019년, 돌연 코로나19 라는 역병과 함께 온 세계가 혼란으로 뒤덮였다. 사람들 간의 교류와 만남은 극한으로 제한되거나 사라졌는데, 그러한 교류와 만남으로 이루어지는 예술공연계에 들이닥친 치명타는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모두가 속절없이 쓰러져갔던 지독한 팬데믹을 질풍경초(疾風勁草)의 정신으로 당당하게 견뎌냈다.

빛과 소금의 평화사절단

‘코리안퍼시픽필하모닉’(Korean Pacific Philharmonic)이라는 이름만 보면 마치 ‘한국을 중심으로 태평양을 두루 아우르는 오케스트라’라는 의미처럼 보이지만, 이는 강 지휘자 본인의 신앙관을 내포했다. ‘퍼시픽’(Pacific)이라는 단어는 그에게는 곧 예수님의 사랑이었다.
“사람의 마음을 다 덮을 수 있을 만한 어떤 크기를 표현할 수 있는 건 태평양인 것 같아요. 사실 빛과 소금처럼 살라고 말하면서 정작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렇게 살려면 바깥으로 노출이 되는 무언가를 만들어야 하는데, 문득 ‘한국의 평화사절단’이라는 이미지가 떠올랐어요.”

2018년에 창단하여 불과 2년 만에 서울특별시 지정기부금 단체로 지정받으며 공식적으로 전문예술법인이 되었고 어느덧 햇수로 6년 차에 접어들었다. 매번 여유 있고 넉넉한 것은 아니었지만 감사하게도 적재적소에 후원받을 수 있었고, 좋은 인연으로 이어져 나갈 수 있는 분들도 만났다.
“물론 경제적인 요소가 아예 없으면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운영 포커스는 신앙적으로 가지고 있되, 물심 양면적인 부분도 동시에 추구해야지만 상생할 수 있는 ‘윈윈’(WIN-WIN)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융복합적으로 부지런히 노력하는 중이죠.”

지극히 개인적인 목적을 위해서 높이 세우자는 것보다는 오케스트라를 통해서 하나님의 복음, 말씀 그리고 음악을 많은 사람에게 알려야겠다는 것. 그것이 그의 목표이자 신념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오롯이 홀로 감당했다면 아마 이 자리까지 올 수 없었을 거라며, 그는 마음과 뜻을 함께 모아준 귀한 동료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우경오, 신하용 이사, 안병길 사무국장, 신명은 예술기획팀장, 오승미 재무실장 그리고 이석형 대표이사가 그 믿음의 동역자들이었다.

쓰임 받을 수 있는 곳이라면 기꺼이

한때 정부와 교육부에서 지원해주던 ‘꿈의 오케스트라’라는 것이 있었다. 약 5년가량은 잘 유지되는가 싶더니 지원이 끊긴 뒤로는 자체적으로라도 운영할 형편이 못됐다. 초창기에 오케스트라 창단을 위해 들여놓은 바이올린은 창고에서 먼지만 켜켜이 쌓여가고 있었다. 멀쩡히 잘만 하고 있던 일에 돌연 지원을 중단한다는 의미는 한편으로는 그것을 유지 시켜야만 하는 확실한 이유를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터. 그러한 현상이 번복되지 않기 위해서 코리안퍼시픽필하모닉오케스트라는 심지어 팬데믹 기간에도 끊임없이 연주를 지속해왔다. 이 외에도 ‘한빛예술단’(장애인 예술단체) 오케스트라 강사 파견, SIE 국제학교 음악 수업 등 공연 이외에도 다방면으로 모범적인 활동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SIE 국제학교(Shepherd International Education)의 경우 교내 오케스트라 교육을 한 적이 있는데, 그는 이러한 합주를 통해서 아이들에게 좋은 교육의 효과를 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후 학교 측과 다시 한번 이러한 사업을 추진하는 방향으로 대화를 나눴고, 결국 단기간 안에 초등학교 오케스트라를 만들어 거의 100명 가까이 되는 단원들을 모아 연주하는 것을 실현시켰다.
“제가 당시 SIE 이사장님과 대화를 나눴을 때, 이곳은 국제학교다 보니 아이들이 나중에 미국에 가서 제출하게 될 에세이를 위해서라도 특기 수업을 경험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 했었어요. 음악 수업을 1인 1학기로 할 수 있게 된다면 좋은 에세이 주제뿐만 아니라 단합하는 것에 있어서도 많은 도움이 될 거라고 했죠. 요즘 세상을 살아가는 아이들에게는 합심해서 무언가를 한다는 게 참 쉽지 않거든요. 합주를 통해 그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동시에 어떻게 사람들과 교제하고 나아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영원함을 머금은 걸작, 클래식

세대가 많이 바뀐 만큼 음악의 장르 또한 매우 다양해졌다. 물론 정통 클래식을 알리려고 융복합적으로 다양한 시도를 해오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세대의 귀는 대중가요, 댄스곡을 넘어 환갑이 넘어가는 나이 정도는 되어야 공감할 만한 트로트까지 무서운 속도로 번져나가고 있다. 클래식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한편으로 이러한 판세들이 걱정되기도 한다. 장르가 다를 뿐 음악의 퀄리티를 논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지만 크로스오버라는 ‘믹스 앤 매치’(mix and match)의 명목 아래 클래식 장르까지 필요 이상으로 침범하는 현상이 부지기수다. 가장 큰 이유라 하면 그렇게 해야만 대중들의 관심을 끌 수가 있을뿐더러 그들을 위한 눈높이가 맞다고 해석하기 때문이다. ‘클래식’(Classic)의 어원은 고대 로마의 단어 ‘클라시쿠스’(Classicus)에서 유래되었으며 ‘모범적이고 영원성을 지니는 명작 혹은 예술작품’을 뜻한다. 이처럼 클래식이란 고전음악이라는 일반적인 의미에 국한되어 그저 ‘낡은 음악’, ‘옛 음악’이 아닌 여러 시대를 거쳐도 걸작으로 추앙받는 예술작품인 것이다.

“복고라는 말은 사실 클래식에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죠. 왜냐하면 클래식은 그냥 기본적으로 ‘베이직’(Basic)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클래식을 기반으로 바리에이션(Variation)이 이루어져 새로운 장르가 탄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떠한 장르라도 이 클래식이 바탕이 되지 않는 음악은 뿌리를 찾지 못한 장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특정 트렌드에 맞는 관객의 니즈를 채워줄 수 있는 음악을 한다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클래식을 대중들에게 친밀감 있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하면서 동시에 다른 대중적인 음악도 같이 시도하며 섞여가는 방향으로 가야만 가장 좋은 교류가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실질적으로 트렌드란 본인의 취향을 따라가는 것이지만 클래식은 늘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이처럼 인간의 삶에 늘 존재했지만, 사람들이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들을 적극적으로 활동하며 알려야만 하는 것이 우리 음악가들의 몫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이러한 풍토를 누군가는 문제로 볼 수도 있고 다른 누군가는 그저 시대의 한 흐름으로만 볼 수도 있다. 각자 해석하기 나름이겠지만 그는 이러한 시대, 혹은 세대의 변화를 긍정적으로 보되, 더욱 올바른 융복합적인 ‘윈윈’(WIN-WIN)의 형태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적합한 방향성인지 소신 있게 자기 생각을 밝혔다.

강물은 표면으로만 보면 굉장히 물살이 세 보이지만, 그 아래에는 보이는 것과 다르게 매우 묵묵히 흐른다. 그리고 그 두 가지의 물줄기가 하나가 될 때 비로소 강물이 이루어진다. 이처럼 음악문화 중에서도 표피적으로 흐르는 것은 우리가 소위 말하는 트렌드고, 밑에서 묵직하게 흐르고 있는 것이 클래식이 아닐까 싶다. 즉 음악의 조화로운 강물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양쪽의 역할이 다 필요하다는 것. 강원호 지휘자의 바람처럼 코리안퍼시픽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이러한 사명을 넉넉히 감당하며 더 넓은 세계로 항해하는 빛나는 시온의 대로가 되기를 기원한다.

글 민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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