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개와 바닷가재와 친구 주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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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불멸의 존재였지 싶다. 하지만 어떤 일인지 인간은 불멸의 존재임을 포기하고 제한된 수명 속에서 살기로 결심한 것 같다.
교회 예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친구 ‘주 사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며칠 전 두서너 차례 통화를 시도했지만 번번히 연결이 안 되어 화가 난 모양이지만 나의 변명에 금방 속아 넘어간다.
어쨌든 최근의 제 근황을 설명해나가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원래 불멸의 존재였다! 인간은 어쩌면 목적이 주어지는 한 끝까지 투쟁하며 삶을 꾸려가는 존재였을 게 분명하다는 생각이다.
‘지독한 놈이군, 그 나이에 또 공부라니…’
심장의 칠판에 감탄사를 좍좍 그으며 보이지 않는 문자로 표현했을 뿐, 입밖으로는 발설하지 않았다.
“야, 대단하다. 아니 그 나이에 그냥 지금까지 취득한 자격증만 해도 노후 생활이 빵빵할 텐데 거 무슨 공부를 한다고 엠병질이냐. 앙?”
정말 그랬다. 그도 한때는 전기로 밥을 먹고 사는 전기 일꾼이었다. 그런데 나이 50이 넘어서 갑자기 전기산업기사에 도전하겠다며 일이 끝나면 곧바로 앉은뱅이책상 머리에 앉았다.

책상 위에는 일병인지 이등병인지 순박한 해병대 인형을 앞에 두고 마음이 흐트러질 때면 해병대 인형에게 제 영혼을 힘껏 밀어넣고, 깐족거리듯 명령을 내리며 공부에 전념했다.
“일병! 너 정신 안 차릴래. 정신 차렷, 이 녀석이 군기가 빠져 가지고, 얼차려 준비!”
가끔 보여주는 문제지는 볼트와 암페어와 다양한 수식, 함수 등 복잡한 수학용어가 절대 해답을 알려주지 않겠다는 듯 현란한 춤을 주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 친구는 그 복잡한 문제를 기어이 풀어내고, 그때마다 다시 해병대 인형에게 ‘열중 쉬어’에 이어 ‘쉬어’를 명령하고 스스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해병대의 끈기인지는 몰라도 이 친구는 결국 ‘전기산업기사’ 시험에 합격했다.
사실 그 정도에서 멈춰도 된다. 이미 노후 용돈쯤은 두둑히 채워주는 ‘인세’ 못지 않은 보장 장치를 가진 셈이지 않은가.

“아녀야~ 전기산업기사까지 합격했응께 그 기술이 아깝자녀~ 그리서 이번 2월말에 전업사(전기산업기사)보다 한 단계 높은 전기기사를 따야겄어. 전업사 후 경력 1년 지났응께 따야지. 놀먼 뭐혀.”
지난번 전업사 시험장에서 시험감독관은 친구가 문제를 풀던 컴퓨터의 모니터를 보고 깜짝 놀랐다. 요즘 시험은 시험이 끝나자 마자 컴퓨터에 예상점수와 예상 합격여부가 곧바로 뜨는 모양이다. 그런데 저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아저씨가 전기산업기사에 ‘턱’ 합격할만한 예상점수로 나오니 놀랄 수밖에. 와 이 양반 대단하네…놀라면서 엄지척!
2월 말 시험에 합격하고 2년 동안 경력을 쌓으면 이제 100층 건물도 공사를 맡을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주씨 가문의 영광이다. 놀라운 집념의 한국인이며 결코 늙을 수 없는 불멸의 젊은이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은 앉은 자리에서 부패하고 썩어지는 존재가 아니라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늘 새롭게 자신을 변화시키는 능력을 가졌다는 이론은 일찍부터 존재해왔다. 오토포이에시스(autopoiesis)는 칠레의 생물학자 움베르토 마투라나(Humberto Maturana, 1928~2021)가 사용한 용어로 자신이 스스로 자신을 생산하고 제작하며 스스로를 창출하는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오토포이에시스는 어원에서 짐작하듯이 그리스어에서 ‘스스로(self)’를 의미하는 auto와 생산(production)을 의미하는 poiesis가 결합한 말이다. 인간은 그렇게 변화에 적응하며 자기 삶을 끝없이 바꿔나가는 존재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인간이 풍요로워지면서 성장의 한계로 빚어지는 고통에서 해방되면서 변화하지 않으려는 습성을 갖게 되었다.
지금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처음 솔개의 생명 연장 방법이 회자되었을 때는 충격이었다. 솔개는 40년이 지나면 부리가 너무 자라 구부려져 가슴팍에 닿게 되고 깃털은 무성해 비행할 때 날개가 아니라 방해물로 전락한다. 발톱은 무뎌지고 노화되어 사냥감을 잽싸게 잡아챌 수 없게 된다. 그냥 그대로 죽을 것인지 반년 정도의 고통을 통과해 삶을 두배로 연장할 것인지 결정해야 할 때 솔개는 높은 바위산에 올라 고통의 변신을 감행한다. 부리를 바위에 쪼아 박살낸 후 새로운 부리가 돋도록 길을 열어주고 부리가 자라면 그 부리로 낡은 발톱을 쪼아서 빼내고 이어 날개 깃털도 모두 뽑아버린다. 새 부리와 새 발톱, 새 날개로 드디어 30년 이상의 사냥을 즐긴다는 이야기다.

류시화의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온다. 바닷가재의 딱딱한 껍질은 한번 형성하면 더 이상 커지지 않는 반면 껍질 안에 있는 생명체는 계속 성장하면서 결국 생명체는 답답함을 느끼게 된다. 안에 있는 말랑말랑한 속살이 껍질 때문에 고통을 느끼면 안전한 바위밑 은신처를 찾아 그 답답한 껍질을 벗기고 새로운 껍질을 만든다고 한다.
그러나 다시 속살이 성장하면 그 껍질이 옥조이게 되면서 또다시 껍질을 벗기는 과정을 반복하게 된다. 이런 과정을 무려 27번이나 거치면서 커다란 바닷가재로 성장한다. 이것 역시 오토포이에시스의 일환이 아닐까?
친구는 지금 그런 과정을 꾸준히 걷고 있다. 2월말 시험을 치르기 위해 지금도 책상 앞에 앉아있다.
그가 전기기사에서 머물까? 아닐 것이다. 육신은 말을 듣지 않더라도, 전기기사 자격증 소지자 10명과 전시산업기사 5명으로 구성된 전기설비회사를 설립하고 어쩌면 200층 건물의 총 책임자로 역사에 족적을 남기지 않을까 싶다.

소설가 신경숙은 ‘인생이든 상황이든 견딜 수 없게 되었을 때 오히려 변화가 찾아온다’고 했다. 나사실험에서 180도 뒤집는 실험을 적응하는데 27일이 걸린다고 하는데 그 27일 동안 두뇌는 구토를 하면서도 견디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 재조정해 나간다고 한다. 맞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말은 견디는 과정이다. 바닷가재가 27번의 고통을 견디고 성장하듯이, 변화하는 과정을 피하지 않아야 한다.

사람들은 하루 아침에 꽃이 피었다고 말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떠오른 별이라고 말하지만

사람들은 하루 아침에 그가 변했다고 말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그가 무너졌다고 말하지만

꽃도 별도 사람도 세력도
하루 아침에 떠오르고 한꺼번에 무너지지 않는다.

(중략)

박노해, <조금씩 조금씩 꾸준히>

글 발행인 김종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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