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격 형성을 통한 잠재력을 이끌어 내는 음악교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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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한국스즈키음악협회 총괄이사 황선경

음악적 재능과 함께 인문학적 지성을 필요로 하는 미국의 아이비리그 출신인 첼리스트 황선경은 예일대와 텍사스 오스틴 주립대학에서 각각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귀국했다. 최고의 연주자로 활동할 수 있는 발판을 갖췄지만, 그의 운명은 두 갈래로 확장되었다. 연주자와 교육자. 재능을 발휘하는 예술가 대부분은 성장하는 동안 위대한 연주자보다 어린 시절 함께 지냈던 학교 선생님의 인간적인 따스함을 더 기억한다고 한다.
결국 황선경은 그 ‘따뜻한 교육자’야말로 첼리스트의 역할만큼 중요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 교육의 매개체로 스즈키 메소드는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어릴 때부터 부친인 황경익 회장의 가르침 덕분에 체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한국스즈키음악협회의 총괄이사로 활동하며 스즈키 메소드를 위해 누구보다 막중한 역할을 맡고 있는 황 이사를 만났다.

언뜻 생각하면 현악기를 가르치는 아버지 밑에서 모든 것이 다 갖춰진 재능형으로 자랐을 것 같지만, 그는 오히려 남들보다 더 치열하게 공부하고 연구해 온 노력형의 표본이었다.
영국 사상가 허버트 스펜서는 ‘교육의 가장 커다란 목적은 지식이 아니라 행동’이라고 했다. 이처럼 황선경은 한국스즈키협회의 총괄이사로서 스즈키 메소드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들과 교육 방식들을 같이 나누고 전파하며 아이들 인생에 옥토를 깔아주고 있는 진정한 교육자였다.

음악교육은 무엇보다 환경이 중요

황선경 이사는 아버지인 황경익 회장이 레슨할 때면 소파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잠들던 일을 회상한다. 그의 생활 속에는 항상 음악이 있었다. 스즈키 메소드에서 말하고 있는 것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꼽는 것은 환경이다. 이런 점에서 그는 확실한 음악적 환경 속에서 성장한 셈이다.
“회장님은 스즈키를 국내에 처음 도입하고 시작하신 분입니다. 주변에는 음악가들과 함께 합주, 캠프, 음악회 등 스즈키 메소드를 위한 행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딸인 저에게 회장님은 음악을 강요하지는 않았습니다. 전적으로 저에게 선택하도록 했지요. 그러나 환경이 이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바이올린을 선택하게 되었죠.”
그는 첼리스트지만 처음에는 바이올린으로 입문했다. 중학교에 와서는 첼로에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고 마침 회장님의 권유로 첼로로 전향했다.
“바이올린에 비해 첼로 소리가 제 마음을 더 편안하게 했고 여러모로 성향도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어쩌면 악기 때문에 성격이 변한 건지도 모르죠. 하지만 지금은 그 어떤 악기보다 첼로 연주가 행복하답니다.”
요즘은 연주전공으로 박사까지 마친 연주자들이 스즈키 메소드를 찾는 일이 자주 있지만 황 이사가 귀국할 당시만 해도 극히 드문 일이었다. 미국에서 석‧박사과정까지 마치고 돌아온 그를 두고 주변에서는 연주자의 길을 예상했다. 하지만 운명의 나침반은 이미 유학 당시부터 스즈키 교육자로서의 방향을 가르키고 있었다.

“스즈키 메소드 교사 연수를 전 세계의 다양한 나라에서 받아봤습니다. 처음에는 한국에서, 그다음 일본 마츠모토에 있는 국제스즈키학교에서 1년간, 미국에서는 학교를 다니면서 스즈키 1권부터 10권까지 다시 들었죠. 이처럼 여러 국가에서 경험하다 보니 스즈키 메소드만의 다양한 장점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스즈키 메소드는 늘 진화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전 세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티처 트레이너(Teacher Trainier)들이 온갖 교육 노하우를 공유하거든요. 공유된 교육 트레이닝에서 충분히 숙지한 내용을 아이들 교육에 접목합니다. 이런 시스템으로 교육 시키기 때문에 늘 최상의 교육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죠.”
황 이사는 전 세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교사들에게서 공유한 노하우에 더해 본인이 직접 가르치면서 터득한 교육 방법을 바탕으로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 전역에 걸쳐 스즈키 첼로 교사들을 양성하고 있다.

연주실력과 관계없이 교육자라면 티처 트레이닝을 받아야

음대 졸업생들은 학교를 졸업하면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다고 과신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막상 교육할 때면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 교육 중 걸림돌을 만났을 때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 음악대학은 연주자 양성하기 위한 교육만 있을 뿐 교육자를 위한 교수법 커리큘럼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학을 졸업했다고 해서 갑자기 선생님으로 나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음악 전공자들이 오케스트라 등 연주 활동만으로 충분히 생활을 영위하지 못하기 때문에 대부분 레슨 활동을 겸한다.
“레슨을 통해서 제자 양성을 해나가는 일은 굉장히 보람된 일이죠. 하지만 문제는 스스로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학생을 가르쳐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다 보면 내가 악기를 배웠을 때 기억나는 시점을 입문의 기준으로 두고 가르치게 돼요. 여기서 근본적인 문제가 발생합니다. 정작 내가 처음에 어떻게 현악기를 시작하고 배웠는지 기억이 제대로 나질 않는 거예요. 저 역시 스즈키 메소드로 배웠지만, 시작점이 어딘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티처 트레이닝을 받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How to teach’, 말 그대로 ‘어떻게’ 가르치느냐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배우기 때문에 연주 실력과 관계없이 레슨을 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배워야 한다. 특히 어린아이들을 가르칠 때에는 그 접근법이 어른과 다르다는 점을 이해하고 구체적인 방법을 적용해야 성공적인 교육이 가능해진다. 스즈키 메소드는 그런 티칭 과정이 가장 체계화된 교육 방법이며 이미 전 세계적으로 검증이 완료된 악기 교습법이다.

첼리스트로서 우뚝 서기까지

교육자라면 오직 교육에만 충실해야 할 것 같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연주를 잘하기 위해 열정적으로 연습한다. 황선경 이사는 그는 여전히 연주하는 것을 좋아하고 무대 역시 굉장히 즐긴다. 그렇게 무대 위에서 천의무봉처럼 연주하기까지 엄청난 인고의 노력을 기울이던 시절이 있었다.
“처음부터 자유롭게 즐기는 타입은 아니었고 오히려 많이 떠는 편이었어요. 그래서인지 어렸을 때는 연주하고 난 뒤에 멍하니 앉아서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과 함께 허무함에 빠지기도 했고요. 겨우 이렇게 하려고 그토록 연습했나 싶었어요. 너무 상심해서 연주가 끝난 후 꽃다발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황 이사는 어렸을 적 완벽주의 성향이 유난히 강했다. 꽤 높은 수준까지 배웠던 바이올린 대신 첼로로 전향했기에 또래에 비해 첼로를 늦게 시작한 셈이 되었다. 멘델스존 바이올린 콘체르토를 연주하다가 스즈키 첼로 1권부터 다시 시작했다. 귀는 하늘에 달려있건만 손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연주해야만 상황에서 괴리감은 커지고 자존감은 떨어지면서 첼로 연주는 힘들기만 했다. 하지만 매사에 준비가 철저한 황선경은 누구보다 치열하게 연습했다. 시간이 약이었을까? 점차 나아지긴 했지만, 결정적으로 지난 2018년에 작고하신 故 현민자 교수님을 대학교 때 만나면서 서둘러 가려고만 하는 마음을 다시금 다잡을 수 있었다.
“악기를 시작하면 10년 동안은 테크닉이 성장하는 법이란다. 그런데 선경이는 늦게 시작하는 바람에 아직도 10년을 채우지 못했잖아. 다른 애들은 대학 올 때 이미 어느 정도 성장 되어있는 상태라서 드라마틱한 성장은 기대할 수 없단다. 하지만 너는 지금도 꾸준히 성장 중이니, 포기하지 말고 계속한다면 반드시 일취월장할 거야.”
현 교수님의 말씀은 하나의 주문이 되었다. 황선경은 현 교수님의 조언을 동아줄처럼 붙들었다. ‘그래, 난 아직 10년 안 됐으니까. 10년 안 됐으니까 더 열심히 해야지’ 그렇게 버티며 남들 쉬고 놀 때 어김없이 연습실 지박령(地縛靈)을 자처했고, 그 결과 학부 시절에도 1등을 놓치지 않았다.

시간이 걸릴 뿐 노력해서 안 되는 일은 없다

“돌이켜보면 중학교 때 전공을 바꾸었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보다 뒤처졌다는 불안감이 떠나지 않았어요. 물론 그 덕분에 더욱 독하게 연습하고 버틸 수 있었지만요. 그런데 다른 관점으로 보면 아직 테크닉이 완성되지 않은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좋은 학교도 입학하고 유학까지 갈 수 있었던 것은 저의 음악성 덕분이지 않았나 싶어요. 콩쿠르 연주나 입학 연주를 할 때 돌아오는 피드백은 늘 같았습니다. ‘참 음악적이구나. 테크닉은 아직 덜 완성되었지만 앞으로 잘할 거야.’ 이런 피드백이었습니다. 결국 이 모든 것들은 스즈키에서 얻어진 자연스러움이라고 생각해요. 첼로를 한 기간은 짧았지만, 음악 자체만큼은 오랫동안 몸에 배어있었으니까요.”
테크닉만 미친 듯이 연습해서 음정 하나 빗나가는 것 없이 연주한다고 해서 꼭 감동적인 연주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음악은 음악적 표현과 진심이 동반해야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기막힌 테크닉을 구사하는 연주는 순간적으로 듣는 이를 압도할 수 있지만 깊은 여운까지는 보장할 수 없다.

예일대를 진학했을 때 전액장학금을 받았다. 그러나 막상 입학했을 때 깜짝 놀랐다. 도대체 왜 나에게 전액장학금을 줬을까? 전 세계에서 기라성 같은 학생들이 모여 있었다.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자신감은 더 떨어졌다.
“대학원 다니는 동안 스스로가 만든 컴플렉스를 극복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어떻게 하면 무대 위에서 덜 긴장하며 자신감 있게 할 수 있을까? 또 어떻게 하면 몸을 편안하게 쓸 수 있는지 부단히 연구했죠. 누군가에게 이러한 것들은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겠지만 저는 철저하게 노력해야 하는 노력형입니다.”
포기하지 않고 나만의 방법을 모색한 결과, ‘이 또한 반복 학습하면 된다’ 사실을 깨달았다. 동시에 시간이 걸릴 뿐 노력해서 안 되는 일은 없다고 믿게 되었다. 덕분에 자신감을 회복하고 석사 졸업 후 박사과정을 하는 동안에는 그 누구보다 자유롭게 편안하게 황선경만의 음악세계를 연주하게 된다.

유학지에서 새롭게 다가온 스즈키

미국은 스즈키 메소드가 성공적으로 자리 잡은 나라다. 동양인 일본에서 시작된 스즈키 메소드는 이미 서양의 전통 클래식 교육이 체계화된 미국으로서는 스즈키 교육방식이 생소할 수 있다. 그럼에도 미국은 효과적으로 교육법을 수용하였고 성공적으로 스즈키 메소드가 자리 잡게 되었다. 한국은 학원 시스템으로 돌아가지만, 미국은 대부분 대학 내 프리스쿨(Pre-school, 예비학교) 시스템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안에 스즈키 프로그램이 들어가 있다. 황선경이 박사과정을 밟았던 텍사스 오스틴 주립대학에서도 ‘스즈키’라는 이름만 사용하지 않을 뿐, 스즈키 연수를 받지 않으면 교사로 채용해 주지 않는다. 해당 교사들을 양성하기 위해 학교 자체에서 강사를 초청해 스즈키 메소드 과정을 습득하게 한다. 미국에서 스즈키 메소드는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한 일종의 필수 이수 과목처럼 인식되고 있는 셈이다.
“현재 줄리어드 음대와 미시간 대학에서 교수로 활동하고 있는 리처드 아론(Richard Aron)이라는 유명한 첼리스트를 한국 스즈키 캠프에서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 인연으로 미국의 캠프를 참가하였고 결국 미국으로 유학하게 된 계기가 되었죠. 유학 중 미국에서 만났던 Suzuki Teacher Trainer들은 대학교수면서 프리스쿨에서 스즈키를 담당하시던 분들이 많습니다. 어릴 때부터 스즈키 교육 환경에서 자란 제가 스즈키를 선택하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웠지만 이미 명성 있는 대학교수인 분들이 스즈키 메소드 교육을 선택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만날 때마다 여쭤봤어요. 대부분의 ‘스즈키는 티칭 메소드도 훌륭하지만, 아이들을 위한 철학에 함께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답했습니다.

스즈키 메소드는 악기 지도 이상의 전인교육 방법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일본에는 전쟁고아들이 많았다. 그 모습을 본 스즈키 신이치 박사는 ‘이 아이들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고 그대로 자라난다면 일본의 미래가 없다’고 생각했다. 우선 본인이 악기를 하다 보니, 이 악기 교육을 통해서 어떻게 하면 바르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아이들을 키워낼까 하는 고민을 하면서 스즈키 메소드가 개발된 것이다. 이처럼 스즈키 메소드 철학은 단순히 악기 교육에만 목적을 두고 있는 게 아니었다. 아이들의 사회성과 인간성, 예의, 협동심, 배려 등을 배양하고 어릴 때부터 음악을 가르침으로써 창의력, 정밀함, 암기력, 순발력, 공간개념과 같은 능력을 키우는 데 있었다.
“스즈키로 자란 아이들은 처음에는 크게 드러나지 않던 아이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또래들보다 음악적이고 뛰어난 경우가 많거든요. 어릴 때부터 음악을 많이 들려주고, 음악의 뉘앙스를 배우고, 배운 것을 토대로 꼼꼼히 표현하면서 모두 암기합니다. 이렇게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갈고닦으면 잘하게 될 수밖에 없어요.”
스즈키 메소드는 분명 악기를 가르친다. 그러나 전인적인 인격체로 키운다는 교육 철학에 있어서 스즈키는 일종의 전인 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교사들 역시 악기만 가르친다고 생각하지 않고, 항상 아이들의 인생에 있어서 몇 수 앞을 더 내다보고 가르친다. 이는 스즈키 교사들이 가져야 할 기본적인 덕목으로 자리 잡았다.

창의력과 모방의 관계

우리나라 사람들은 무언가를 금방 배우고 캐치하는 능력이 뛰어난 편이다. 하지만 그만큼 금방 포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다르게 생각해 보면 기초는 튼튼한 것 같지만 뿌리는 그렇지 않은 사람이 많다는 반증이다. 왜 그럴까?
“가장 큰 원인 중의 하나는 도제식 교육을 꼽을 수 있어요. 우리는 모두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하는 것에 익숙해요. 당장은 그게 지름길로 보이지만 시간이 흘러 누가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좌표를 일러주지 않는 나이가 되면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됩니다.”
미국의 극작가 버나드 쇼는 ‘만일 당신이 어떤 사람에게 무언가를 가르쳐준다면, 그 사람은 절대 스스로 배우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에서는 사제관계에 있어 선생님과 학생이 동등한 위치에서 무엇보다 개개인의 주장과 의견을 중요시한다. 예외는 있겠지만, 누군가 알려주기보다 스스로 깨닫게 하고 선택하는 교육 방식을 선호한다.
“다른 분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저는 레슨할 때 ‘질문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연습할 때도, 레슨 받을 때도 스스로 생각해서 하는 습관을 길러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본인 것이라고 할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제 수업은 어른과 아이들을 막론하고 질문이 굉장히 많은 편입니다.”
그러나 시작하는 순간에는 언어교육처럼 모방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듯이 창조는 모방이 선행된다. 아이들이 모방하게 되는 대상은 자연스레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고, 그런 의미에서 선생님의 역할과 책임이 누구보다 막중하다.

“보통 저희에게 오는 아이들은 만 3세에 시작해서 중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배워요. 꼭 전공생이 아니더라도요. 그 긴 시간 동안 한 명의 선생님이 그 아이를 만난다는 것은 어쩌면 부모 다음으로 가장 중요한 사람이 된다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본인도 모르게 선생님의 말투, 사고방식 등 사소한 것 모두가 아이에게 영향을 미치게 돼요.”
스즈키 메소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것은 바로 ‘모국어 교육 방식’이다. 모국어 교육 방식이란 말 그대로 우리가 언어를 배우듯이 악기를 배우는 방식이다. 요즘 영어를 구사하는 아이들을 보면 발음이 상당히 좋다. 거의 원어민과 같은 발음으로 얘기하는 수준이다. 그만큼 많이 듣고 따라 하기 때문이다. 글을 배우는 것은 그다음이다.
“음악에 있어서 악보를 먼저 보고 그다음에 듣는 것을 연습하게 된다면 아이들 대부분은 실제로 소리는 듣지 않고 악기를 켜게 되는 셈이에요. 음악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만큼 소리를 들으며 모방하는 훈련이 중요합니다.”

양질의 교육 밸런스를 위한 디테일

합창의 경우도 그러하지만, 현악기도 악기가 많이 모이면 모일수록 공명이 많이 생긴다. 어찌 보면 내가 조금 못해도 잘하게 들리는 효과도 있다. 이처럼 여러 명이 모여서 연주하는 것에는 생각 이상으로 이점이 많다. 게다가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거라면 그렇게 즐거워할 수가 없다. 덕분에 다 같이 음악회를 몇 번 하고 나면 아이들은 훌쩍 성장한다. 하지만 오케스트라도 결국 개개인이 모여 하나가 되듯이, 음악은 개인의 역량이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자칫 스즈키는 무조건 그룹레슨으로만 이뤄진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일주일에 개인레슨 1회, 그룹레슨 1회로 이루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쪽의 장점을 모두 갖췄다고 할 수 있어요.”
요즘 초등학교에는 음악수업이 방과후수업으로 이루어지는 곳이 많다. 전문 음악교육기관을 제외하고 일반적으로 그룹레슨을 언급했을 때 방과후수업을 예로 든다. 모든 악기들이 다 그렇지만 특히 현악기 교육은 디테일이 매우 중요한데,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아이들을 한꺼번에 잘 가르치는 일은 불가능하다.

“아이들을 다 같이 모아놓았을 때 가장 큰 장점은, 서로를 보면서 또래에게 자극받는다는 것이죠. 악기를 교육함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이 바로 동기부여인데 선생님께 받는 동기부여와 또래에게 받는 동기부여는 전혀 달라요. 단순히 1등, 2등의 여부를 떠나 같이 악기를 켜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의 자극과 집중력이 매우 향상되죠. 그렇지만 그룹레슨만 이루어진다면 디테일이 떨어지는 것은 불가피하기 때문에 개인레슨은 필수입니다.”
스즈키에서 기본 개인레슨 시간은 30분 정도다. 얼핏 보면 짧아 보이지만 아이들 입장에서는 5분도 버티기 어려울 수 있다. 이처럼 집중을 어려운 친구들도 합주 현장에 데려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30분 동안 꼼짝 하지 않고 연주를 감상한다. 심지어 캠프에서는 50분 수업에도 놀랄 만큼 집중한다. 특별히 지시하지 않아도 스스로 다음 수업을 찾아가고 연주를 감상한다는 것은 스스로가 즐거워하고 있다는 증거다.

“스즈키 선생님들은 연수를 통해서 그룹레슨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 배웁니다. 그러한 방식으로 이루어진 그룹레슨 안에서 아이들은 새로운 과제를 부여받게 됩니다. 그것을 반복하다 보면 아이들은 그 어떤 새로운 것을 접하더라도 두려움이 없어요. 동시에 ‘난 해냈어, 할 수 있어’라는 자신감도 생깁니다. 어리면 어릴수록 그룹레슨 없이 레슨을 진행해 나가기란 어려워요. 그런 점은 개인 레슨의 한계죠. 하지만 합주는 친구들과 함께한다는 것에 있어서 재밌으니 아이들 자신도 모르게 ‘저곳에서 같이 연주하려면 나도 준비해서 가야 되겠다’라는 생각이 심어지게 되는 거예요.”

엄마와 함께 싹 틔우는 교육

일반적으로 선생님들은 레슨할 때 엄마가 같이 들어와 있는 것을 불편해한다. 간혹가다 지나친 참견을 하는 학부모들도 있기 때문이다. 혹여나 학생이 지나치게 부모님의 눈치를 보는 경우도 있어서 유난히 조심스러운 부분인 것도 맞다. 하지만 스즈키 메소드에서는 되레 특이하게도 ‘엄마와 함께하는 수업’을 고수한다.
“선생님의 교육 철학이 확고하면 학부모님들을 따라오게 되어있어요. 물론 예외적인 경우에는 필요시 부모님께 양해를 구하기도 합니다. 대부분은 학부모님들께서 수업에 들어오시다 보니 선생님과 굉장히 밀접한 대화를 나누게 됩니다. 단순히 청강 개념의 참관이 아닌 아이와 같이 배우는 방식이기 때문이죠. 특히 3세~5세 때는 엄마가 직접 해보고 가르쳐줘야 합니다. 이런 식으로 함께 교육을 병행해야만 집에서는 선생님 대신 연습을 시켜주실 수가 있어요. 아이들은 예민하기 때문에 너무 한꺼번에 여러 가지 요구를 하게 되면 마음의 문을 금방 닫아버리는 수가 있습니다. 선생님들도 마찬가지로 항상 ‘스텝 바이 스텝’을 마음에 새기고 기다려야 해요.”
선생으로서 더 잘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욕심 같아서는 이것저것 말하고 싶지만, ‘차근차근’이라는 생각과 함께 늘 스스로를 다잡는다.
“부모님이 한 공간에서 같이 방향으로 가는 형태가 되어야만 가장 바람직하고 성공적인 교육 형태를 이룰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일반 레슨과의 가장 큰 차이점이죠. ”
특히 남자아이의 경우 음악교육을 더 길게 지속시킬 것을 권유하는 황 이사다. 아이들이 장성하고 나면 대부분 엄마와의 공통 분모가 사라져 대화하기가 힘들어진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아이와 함께 악기를 배우며 자연스럽게 대화도 많이 나누다 보면 추억도 쌓이고 섬세함도 길러진다.

차세대 리더, 새로운 비전

교습법 커리큘럼이 대학교에 전무한 가운데 대학에 교습법과 관련한 학과를 개설된다는 것은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다. (사)한국스즈키음악협회 황경익 회장이 국민대에 스즈키 과를 처음 개설한 것을 시작으로 전주대, 대구 카톨릭대를 포함해 총 세 개의 학교에 개설되었다.
“스즈키 교사를 하게 되면 기본적으로 연수를 받기는 하지만, 대학원은 고등교육기관으로서 교습법을 학문적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곳입니다. 우리는 개인레슨도 해야 하기 때문에 교사 개인의 기량도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교과목에는 개인레슨과 실제로 가르칠 수 있는 앙상블, 그룹레슨법, 교수법, 교육철학, 발달단계에 따른 교육법, 인지심리/행동심리학 등이 두루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일반 음악대학원과는 조금 다르다고 할 수 있죠.”

황 이사는 황경익 회장의 뒤를 이어 국민대 대학원 스즈끼 재능교육전공을 맡게 되었다. 황 이사는 일면 부담스럽기도 하다. 황 회장은 교육대학원을 나와 젊은 시절 초등학교 교사 생활과 유치원 운영, 대학원 교수 등 다양한 교육 현장을 경험했다. 이만큼 폭넓게 분야에서 교육활동을 하신 분은 찾아보기 힘들다. 황 이사는 후임자로서 혹여나 황 회장에게 누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가운데 대학원 강의도 협회 일만큼 열심히 임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자신도 몰랐던 본인의 장점을 발견했다.
“저는 장황하게 설명은 잘 못하지만 일목요연하게 정리를 잘하는 편이거든요. 그래서 선생님들로부터 ‘이해가 잘 되게끔 설명을 잘해준다’라는 피드백을 종종 들어요. 또한 스즈키 철학에 대한 수업을 할 때 어떠한 선생님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주제를 많이 다루곤 합니다. 결국 마음이 행동을 만들어 내는 거니까요. 그 덕분에 감사하게도 ‘다시 마음을 잡고 아이들을 가르치러 가게 된다’라는 말을 자주 듣곤 해요.”
그는 예원예술대에서 교수로 재직할 때 실기 외에도 다양한 이론과목을 가르쳤던 경험들이 도움이 많이 되었다고 한다.
“스즈키 메소드로 가르치고 배우는 인원이 점점 늘어남에 따라 캠프는 700명, 졸업 연주에는 1600명까지도 한 무대에 세우고 있습니다. 큰 규모의 행사들에는 시스템화가 필수라 컴퓨터 작업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가끔은 제 전공이 뭔지 헷갈릴 때가 있어요(웃음)”

요즘은 특히 소통도 단톡방을 활용하고 업무도 스마트 워킹 시스템을 도입하여 많은 것들이 온라인상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전국 어디에 있는 교사와도 함께 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덧붙인다.
“보통 음악가들은 혼자 활동을 많이 합니다. 하지만 한국스즈키음악협회는 아이들에게 더 좋은 경험을 주기 위해 뜻을 함께하는 동료 선생님들이 계시기 때문에 함께 일하고, 고민하고, 연주합니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들도 함께하면 현실로 만들어집니다.”
그는 최근에 아이들 동기부여를 위해 졸업 배지를 제작하는가 하면 첼로 교사들의 동기부여와 화합을 위한 앙상블 연주회를 성공리에 마쳤다. 한국스즈키음악협회 30주년인 올해는 해외 스즈키협회와의 교류를 통해 오케스트라 합동 연주와 함께 ‘2025 여수 아시아 스즈키 컨퍼런스’ 등이 계획되어 있다.
“이미 많은 아이들이 스즈키로 배우고 있지만, 조금만 더 욕심내본다면 아직 전국적으로 스즈키 교실이 없는 곳들이 많이 있는데 앞으로 더욱 많은 선생님들께서 오셔서 우리의 이러한 가치관과 교육 방식을 나누며 함께 양질의 교육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더 좋은 스승을 향한 또 다른 발판

지난 2월 26일에 이뤄졌던 ‘스즈키 첼리스트 창단연주회’는 황 이사를 포함해 전국에 파견되어 있는 스즈키 첼로 교사들에게 있어서 매우 뜻깊은 연주였다. 그 역시 마찬가지지만 모든 교사들은 현재 연주자로서보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에 더 힘을 쏟고 있다. 하지만 그들 역시 한때 교육자보다는 연주자로서의 꿈을 키웠던 사람들로 무대 위 연주에 대한 갈망이 크다는 것을 황 이사는 모를 리 없었다.
“연주를 통해서 선생님들 역시 자존감이 많이 올라가요. 하지만 아무래도 티칭을 주로 하다 보면 오케스트라도 병행하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죠. 일단 아이들 레슨 시간이 있다보니 선생님 임의적으로 변동을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스케쥴 맞추기가 힘들거든요. 그렇지만 이 모든 것들을 포기하고 교육자의 길로 들어선 만큼 그들에게 같은 연주자로서의 무대를 만들어 주고 싶었어요. 이번 음악회를 준비하면서 따로 말은 하지 않아도 서로를 훨씬 믿고 따르게 되었고 더 깊은 친밀감이 형성됐어요.”

이렇게 신뢰가 바탕이 된 친밀감은 같이 아이들을 교육하는 입장에서도 훨씬 긍정적인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다. 일 년에 두 번이나 이뤄지는 대규모 음악제 캠프 등을 준비할 때 오롯이 아이들의 소중한 경험을 위해 한마음 한뜻으로 협조해 주는 교사들의 그 마음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변하게 된다는 점에서 무척 고무적인 시도의 출발이라고 볼 수 있다.
“학생들 입장에서도 본인의 선생님이 무대에 선 모습을 봤을 때 선생님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지고, 신뢰도 형성에 있어서도 중요합니다. 선생님 자신과 학생 그리고 학부모님들 모두에게 너무나 의미 있는 연주였어요. 선생님으로서 연주와 티칭의 밸런스를 맞추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이러한 기회를 가능한 한 많이 만들어 주고 싶어요.”

2~3년 전부터는 교사 양성 차원에서 첼로 교사들을 지속적으로 무대에 세웠다. 그렇게 교사 스스로도 한 곡 한 곡을 섬세하게 완성해 나가며 잊고 있었던 것들을 리마인드 할 수 있고, 동시에 본인의 실력을 점검하며 향상시키는 기회이기 때문에 어떠한 완성도 있는 작업을 한다는 것은 필수 불가결한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창단연주회를 기점으로 꾸준히 연주를 가질 예정이라고 밝혔다.
스즈키에서 하나의 슬로건처럼 내세우는 세 가지 말이 있는데, ‘비교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서두르지 말고’이다. 아이들은 다 똑같지 않다. 다시 말해 선생님과 부모님 둘 다 아이들만의 고유성, 차별성을 인정해 주지 못하고 성장 속도를 기다려주지 못하면 아이는 개인의 잠재력을 키우기가 매우 어려워지는 것이다. 요즘엔 ‘멘토가 부족한 시대’라는 말을 많이들 한다. 도대체 아이 교육에 대해 누구한테 물어봐야 할지 모르는 이 시대에 스즈키 메소드 철학은 전 세계 사람들에게 많은 공감과 인정을 받고 있다.
“분명한 것은 이런 것들이 아이들에게 아주 긍정적인 영향을 많이 끼친다는 점이예요. 저희 또한 늘 마음속에 이 세 가지를 새기고 아이들을 교육하면 음악뿐만 아니라 진정으로 훌륭한 인간으로 키워낼 수 있지 않을까요?(웃음)”
스즈키 교사들은 악기만을 가르치는 사람이 아닌 한 아이의 전반적인 인생 자체를 책임진다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교육하고, 본인 스스로도 틈틈히 되돌아볼 줄 알았으면 좋겠다는 황선경 이사. 늘 현재진행형으로 부단히 나아가고 있는 그의 손이 닿는 곳마다 더 많은 아이들이 음악의 진정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되는 그날까지 황선경 이사와 스즈키 협회의 행보는 계속될 것이다.

글 민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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