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에 봄을 싣고 봄소식 전하다_소프라노 이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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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9일 오후 7시반 세종체임버홀

목동이 오랜 여정 끝, 님을 만나다

소프라노 이윤지는 봄과 같은 여인이다. 어느 극장이든 공연장이든 그가 부르는 노래는 언제나 신선하기 때문이다. 이런 평가에 대해 누군들 부정하리요. 그런데 봄의 처녀가 오는 3월 19일 오후 7시반 세종 체임버홀 독주 무대에서 그의 이미지에 걸맞게‘봄의 날개 위에’라는 타이틀을 걸고 피아니스트 이영미와 함께 독창회를 개최한다.
‘봄의 날개 위에’는 봄을 사모하는 여인을 뜻하는 ‘춘녀사’(春女思)의 노래처럼 누군가를 그리워하다 마침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으로 결말을 짓는 스토리텔링으로 펼쳐진다.
“멘델스존의 ‘노래의 날개 위에’가 이번 공연의 모티브격입니다. 이름도 멋지잖아요. 노래 대신 봄으로 치환했더니 왠지 이번 봄에는 날개를 펴고 세상 밖으로 여행을 떠나고픈 생각이 밀려오거든요. 연인이 있다면 그리워하는 연인을 찾아나서는 의미도 있고요.”
이번 독창회는 진정 사랑하는 이를 찾아 나가는 여정으로 꾸민 것 같다. 이번 무대에 선보일 작품의 작곡가는 슈베르트와 멘델스존, 요한 슈트라우스, 베르디, 샤미나데, 정덕기, 안정준 등으로 이어지는데, 그 곡들을 잇는 실타래를 따라가면 하나의 드라마가 된다.

끝내 환희의 왈츠를 추다

이윤지의 봄의 여정은 그리움에 목말라 저 산 너머에 그리움의 노래를 불러야만 하는 숙명적인 주제의 슈베르트 작품으로부터 출발한다. 클라리네티스트 김우연과 함께 장식하는 오프닝 곡은 바위 위의 목동(Der Hirt auf dem Felsen, D.965)이다.
“홀로 서 있는 목동이 멀리 있는 연인을 그리워하면서 노래를 부르죠. 높은 골짜기에 서서 고독하게 노래를 부르지만 돌아오는 건 메아리밖에 없는 거죠. 그 쓸쓸함을 클라리넷이 표현하는데 그럴수록 그리움은 더욱 깊어만 가는 내용입니다.”
봄의 시작을 알리기에는 이보다 더 좋은 곡이 없다. 도입은 밝게 시작하여 중간 부분에 외로워하는 목동의 몸부림이 느껴지고, 봄을 맞아 마침내 여행을 떠나는 모습이 경쾌하게 그려진다. 얼마나 멋진 곡인가.
두 번째 무대는 그 유명한 멘델스존의 작품이다. 원래는 6개의 가곡모음 ‘6 Gesänge, Op.34’인데 그 중 Auf Flügeln des Gesanges(노래의 날개 위에)를 비롯, Frühlingslied(봄의 노래), Suleika(여성이름 줄라이카), Sonntagslied(일요일의 노래) 등 네 곡을 노래한다. 물푸레 나무의 향기처럼 봄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지적이고, 감성적인 기쁨이 가득하다. Frühlingslied(봄의 노래)는 바위 위의 목동이 그리운 사람을 찾아가는 도중 맞이하는 봄의 노래라고 생각하면 제격이다.
그러다 마침내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 왈츠를 춘다고 상상해보라. 그런 상상을 현실화하려는 듯 이윤지는 요한 슈트라우스의 ‘봄의 소리 왈츠’(Frühlingsstimmen, Op.410)에서 마치 연인을 만났을 때의 환희에 찬 춤사위와 입맞춤으로 봄을 묘사한다.
“대표님과 대화하다 보니 의도적으로 구성하지는 않았지만 정말 목동이 그리운 사람을 찾아나선 끝에 여인을 만나 환희의 왈츠를 추는 것 같네요.”

봄을 맞아 사랑에 빠지다

2부에서는 어떤 이야기로 엮기어질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지만 여인도 목동을 사랑했을까? 그건 의심해볼 사안이다. 그래서 이윤지는 베르디의 리골레토 중 ‘Caro nome che il mio cor’(그리운 그 이름)을 선곡했나보다.
“이 곡은 여주인공 질다가 처음으로 사랑을 느끼는 순간이잖아요. 이성에 대해서 처음으로 사랑을 느끼는 순간… 생각만 해도 두근거리고, 가정환경으로 인해 얼어붙었던 마음에 사랑의 봄이 찾아오는 것이죠. 저는 질다의 마음에 드디어 봄이 찾아왔다고 생각하거든요. 이전까지는 어머니도 돌아가시고 아버지와 단둘이 갇혀서 살고 있었는데, 처음으로 남자의 향기를 느끼기 시작한 것이에요.”
다음 곡은 샤미나데의 작품 4곡이 이어진다. 5월에 막 밀을 거두어 수확한 후 마을 잔치가 한창 벌어지는 장면을 그린 Villanelle(목가)를 비롯, 한번 사랑에 빠지면 마치 포로처럼 쉽게 헤어나지 못하는 강한 사랑은 ‘amour captif(포로가 된 사랑)과 연인을 보석같이 예찬하는 Écrin(보석함)을 거쳐 사랑의 계절인 뜨거운 여름(L’été)으로 이어진다.

고난도‘아리 아리랑’으로피날레

“마지막 스테이지는 우리 노래로 장식합니다. 정덕기 선생님의 ‘클릭 봄날’과 안정준의 ‘아리 아리랑’입니다. 특히 아리 아리랑은 ‘서울 아리랑’이라는 부제를 갖고 있는데, 우리 가곡이지만 콜로라투라의 모든 기교를 다 보여줘야 하는 곡입니다. 듣다 보면 숨이 막힐 정도로 애절한 구간들이 있는데요. 그래서 다른 곡들보다 더 다이나믹한 곡이라고 할 수 있어요. 성악의 기교를 쏟아부어야 완성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어느 날 제자가 가르쳐달라고 들고 온 곡인데, 가르치면서 제가 감동해서 선곡했습니다.”
이윤지는 천상 소리쟁이다. 연습할 때도 목표를 향해 진군하지만 그 연습까지도 즐기는 성악가다. 콩쿠르에 참여한다손 쳐도 그 콩쿠르의 승부에 얽매이기보다 연주 자체를 즐긴다. 그러한 이유 때문인지 그를 찾는 음악단체들이 참으로 많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성실함을 단 한번도 잃지 않는다. 게다가 노래를 또 얼마나 능숙하게 소화해내는가. 특히 창작곡은 그가 자주 부르는 단골 메뉴 중 하나다. 악보를 보고 허투루 노래하지 않고, 예리한 시창과 정확한 딕션, 완벽한 곡 해석에 이른 후에야 초연에 임하기 때문이다.

소프라노 이윤지가 걸어온 길

청아한 음색과 섬세하고 풍부한 표현력으로 깊이 있는 음악을 선사하는 소프라노 이윤지는 수많은 오페라 주연 이외에도 오라토리오 솔로, 현대곡 세계초연, 예술가곡 연주 등으로 미국 Lincoln Center, Carnegie Hall, National Opera Center, Seiji Ozawa Hall, Merkin Hall 등에서 폭넓은 레퍼토리를 연주하는 학구적인 성악가로 두각을 나타내었다.
미국 Tanglewood Music Festival, Oregon Symphony, Metropolitan Opera Guild, Gotham Chamber Opera, Opera Theater in Pittsburgh, Opera North Young Artist Program, SongFest, 국내에서는 국립오페라단 (찾아가는 오페라),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 성남문화재단 오페라 정원, 서울오페라앙상블, 경상오페라, 충북도향, 진주시향, 익산시향, 이상근 국제음악제 등 많은 전문단체들과 활동하였다.
수상 이력으로 NY Lyric Opera Theater Vocal Competition, Mario Lanza Institute Scholarship Competition, Orpheus Vocal Competition, Violetta Dupont Competition, Career Bridges Grant, NY Arts Foundation, Sorell Foundation, Young Singers Foundation 등의 콩쿠르 수상과 그랜트를 받으며 그녀의 가치를 인정받았다. 특히 예술가곡 전문 프로그램인 SongFest에서 2014년 가장 뛰어난 여성 음악가’로 선정되어 전액 펠로우쉽을 수여받은 바 있다.
오페라 가수로서 ‘호프만의 이야기’, ‘피가로의 결혼’, ‘돈 파스콸레’, ‘마술피리’, ‘사랑의 묘약’, ‘세빌리아의 이발사’, ‘팔스타프, ‘카르멘’, ‘헨젤과 그레텔, ‘신데렐라’, ‘디도와 아이네아스’, ‘오르페우스’, ‘오를란도’,‘지옥으로 간 오르페우스’, ‘아이와 마법’, ‘낙소스 섬의 아리아드네’, ‘메리 위도우’, ‘남명’, ‘캐시미어 (세계 초연) 등의 주역으로 활약하였고, 오라토리오 솔리스트로서도 카네기홀에서 헨델의 Let the bright Seraphim’을 연주한 것을 비롯하여 헨델 ‘메시아’, ‘사울’, 브람스 ‘장엄미사’, 모차르트 ‘다단조 미사’, ‘장엄미사’, ‘대관식미사’, 하이든 ‘천지창조, 미카엘 하이든 ‘성 레오폴트 미사’, 바흐 ‘성 요한수난곡’, 비발디 ‘글로리아’, 포레 ‘장엄미사’, 멘델스존 ‘시편 115편’, 스트라빈스키 ‘미사’, Schnittke ‘장엄미사’, Michael Cox ‘Deo Gratias’, Irlandini ‘달’, Julian Yu ‘신년미사'(세계초연), Kevin James ‘사다코 오라토리오'(세계 초연), 백유미 ‘사도신경'(세계 초연)과 Ligeti(대역) ‘장엄미사’ 등을 연주하여 많은 종교 레파토리를 보유하고 있다.
현대음악을 매력적으로 해석해내는 음악가로도 이름을 알리고 있는 그녀는 풀리처상과 그래미상 수상 작곡가인 Jennifer Higdon의 연가곡 ‘Love Sweet’을 세계 초연, 링컨센터에서 Julian Yu의 ‘신년미사’와 카네기홀에서 John Plant의 Insomnia를 세계 초연, 또 줄리아드 교수였던 Gheorghe Costinescu의 가장 난이도 높은 곡 ‘Jubilus’를 훌륭히 연주해냄으로써 현대음악의 맛을 잘 표현해내는 음악가로 이목을 집중시켰다. 또한 드레스덴 국립음대의 특별초청을 받아 Udo Zimmermann 작곡가 헌정 기념 학술 콘서트에서 그의 현대곡을 독창하였다. 그녀가 2019년 세계 초연하였던 Lori Laitman의 연가곡 The Ocean of Eternity는 미국 Acis에서 발매된 ‘The Ocean of Eternity’ 음반에 타이틀곡으로 수록되어 있으며, 2022년 그래미상 베스트 클래식 부문 후보에 오른 바 있다.
소프라노 이윤지는 이화여자대학교 음악대학 학사, 인디애나 음악대학 석사, 매네스 음악대학 전문연주자과정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였고,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경상국립대학교, 국립 군산대학교에서 후학을 양성하며 전문 연주자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글 김종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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