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 갈월중학교 음악회- 우리는 열정 십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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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4일 포천 갈월중학교 강당, 클라리넷 김기웅 플룻 한숙현 바이올린 임향하 엘렉톤 백순재 테너 하세훈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 신약성경의 나오는 말이다. 그러나 마르틴 부버는 ‘태초에 관계가 있었다’고 정의했다. 그 관계는 ‘나와 너’의 동등한 관계를 뜻한다. 서로 동등한 관계… ‘나와 그것’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것’은 얼마든지 다른 물건으로 대체할 수 있다. ‘그것’이란 ‘인간’이 아니라 단지 ‘사물’이기 때문에 애착이 증발하면 다른 물건으로 망설임없이 갈아치우게 된다.
지난 3월 4일 포천의 갈월중학교에서 개학 및 입학을 축하하는 작은 음악회 ‘우리는 열정십대’를 개최했을 때 연주자는 물론 주최측도 깜짝 놀랐다. 어린 중학생들이 위대한 철학자 마르틴 부버의 말을 이미 알고 있기나 한 것처럼, 음악을 ‘나와 그것’으로 인식하는 게 아니라 ‘나와 너’로 인식하고 있었다.
음악을 경청할 뿐 아니라 클라리넷과 플룻 바이올린 멜로디언 엘렉톤 등 다양한 악기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들을 포근히 감싸안는 인상을 주었기 때문이다.

음악을 쏙쏙 빨아들이기는커녕 통제하기 어려우리라 예상했던 중학생들이 음악회 진행 내내 조용히 앉아있는 자체만으로도 깜짝 놀랄 만한 일이다. 멜로디언은 이미 학교에서 배웠을 법하기에 시시하게 여길 수도 있건만 ‘공원에서’가 흘러나오자 멜로디언의 소리흐름에 정신을 온전히 맡긴 듯했고 ‘이웃집 토토로’나 ‘인생의 회전목마’ ‘학교가는 길’ ‘할아버지의 11개월’ 등을 듣고 ‘아~ 이 노래’하면서 제나름의 추임새도 넣었다. ‘뉴진스’의 음악이 흐를 때도 어깨를 흔드는 등 이런 공감능력이야말로 요즘 학교에서 가장 필요한 교육이기에 주최측으로서는 그저 흐뭇할 수밖에 없었다.
교육자가 아니기에 이즈음의 교육이란 진정한 교육의 좌표상 어느 위치에 설정돼 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한가지 아는 바는 여전히 입시위주의 교육이라는 50년 전 좌표가 변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입시 위주는 결국 좋은 고등학교, 좋은 대학이라는 목표를 설정하고 그 관문을 들어서는데 필요한 교과목에 치중할 수 밖에 없다. 예체능 교육이 콘서트의 부대행사처럼,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과목이 된지 오래 되어 이제는 깰 수 없는 코리안 콘트리트 교육을 전락해버렸다.
아무리 봐도 이런 교육시스템이라면 아이들 인성을 망치겠다 싶은 일부 깨어있는 학부모들은 어릴 때부터 아이들에게 EQ교육을 강화한다. 개별적으로 피아노교육을 시키거나 미술학원 발레 무용 태권도 등 다양한 예체능교육 현장으로 내보내 아이들을 ‘교육 조리돌림’의 굴레 안에 가둬놓는다.

하지만 EQ교육은 ‘내 아이 인성을 망치겠다’고 걱정하는 부모들의 기대에 결코 부응하는 교육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EQ는 도덕성과 전혀 무관한 제2의 기능교육으로 전락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홀로 감성이 풍부할수록 타인을 조종하고 타인의 것을 빼앗는 능력만 탁월할 수 있다. 이는 이미 오래전부터 심리학자들이 인정하는 학설이다.
문제는 단순히 EQ만 키울 게 아니라 도덕지능과 연결할 수 있는 협동교육, 공동체교육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협동교육 공동체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요체는 바로 ‘나와 너’의 관계를 인지하고 깨닫는 것이다.
그럴 때 타협과 대화가 가능하고 남을 조정하고 무시하는 편협한 인간에서 탈출할 수 있지 않을까? 포천의 갈월중은 어떤 학교인지 모르지만, 이들 학생들은 나와 너의 관계, 나와 음악의 관계, 나와 연주자의 관계를 동등하게 여기고 있었다.

학교 음악회는 학생들에게 음악을 진지하게 듣는 자세로 키워주지만 그동안 몰랐던 어떤 학생의 재능의 싹을 ‘톡’ 틔워주는 역할도 한다. 학교 정규교육에서 많이 홀대를 받고 있는 음악교육이기에 이런 음악회를 통해서 음악에 관심 있는 학생들이 나올 수 있는 까닭이다.
멀티플라이 이펙트의 저자 와이즈먼 회장은 멀티플라이란 탁월한 능력을 이끌어내는 능력을 말한다. 학교란 이런 멀티플라이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 한번의 연주회라도 누군가는 플룻 연주를 직접 듣고 본인도 모르는 플룻의 싹틔움에 화들짝 놀랄 수도 있고, 누군가는 단 하나의 악기로 오케스트라 음악을 연출하는 엘렉톤 소리를 듣고 천둥치는 신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또 누군가는 게임음악을 들었을 뿐 실제 연주를 보고 게임에 빠질 바에야 음악도 섭렵하겠다는 단단한 각오를 할 수도 있다.
아니면 음악적인 재능이 아니더라도 어린 나이에도 생의 의미를 깨달을 수도 있지 않을까? 키에르케고르는 ‘음악은 가장 직접적인 것이다. 인간을 엄습해서 그를 우둔한 일상성으로부터 탈피시켜 생의 원천으로 이끌어주는 그러한 음의 힘은 말로써 재현할 수 없다’고 했다.

학교 음악회는 스스로 책을 선택해서 읽는 자유독서의 의미와 맞닿는다. 흔히 현대 학교는 바나나 숙성학교로 비유되곤 한다. 빨리 숙성시키기 위해 대량의 에틸렌가스를 살포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이런 교육 현상을 타파하기 위해 일본의 아키타초등학교는 학교 수업 시작 15분 동안 아이들 스스로 고른 책을 각자 조용히 읽는 독서교육을 시키고 있다.
국어와 수학 과학 영어 등 정답이 주어진 집체교육만으로는 아이들의 올바른 인성을 형성하기에 부족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각자 선택한 책을 통해 세상을 향한 제 나름의 시각을 키우려는 의도다. 음악회도 마찬가지다.
음악회는 똑같이 바라보고 있지만 음악을 느끼는 감정은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 음악을 받아들이는 정답을 가르쳐주지 않고 느낌대로 받아들일 기회만 제공할 뿐이다.
언젠가 만난 피아니스트 임종필은 ‘음악은 암호화된 언어’라고 설명했다. 그 암호를 해석하는 것은 각자의 자유의지와 경험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조선 천재 정약용은 글쓰기의 조건으로 다상량이라고 했지만, 음악이야말로 다상량 최적의 재료가 된다.

우리는 열정 십대! 다른 학교는 모르거니와 갈월중학교에 가장 잘 맞는 음악회 제목이었다. 열정은 태도에서 나온다. 식사를 하면서 음악을 듣는 것은 요리사에게도 모독이고 연주자에게도 모독이라며 G. K. 체스터톤은 음식점에서의 음악회에 호통을 쳤다.
핸드폰은 보면서, 떠들면서 음악회를 본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래서 갈월중이야말로 열정 있는 학교임을 알게 되었다. 아무리 학생들의 태도가 좋아도 교장선생님의 이해와 결단이 없으면 이런 음악회는 언감생심이다. 그러기에 화통한 김윤섭 교장선생님과 갈월중 선생님께 더욱 감사드린다.
포천은 서울과 가깝지만 문화소외지라는 말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기에 이번 음악회는 여러모로 의미있음을 밝힌다.
이번 음악회에 역시 열정을 다해 연주해준 클라리넷 김기웅, 플룻 한숙현, 엘렉톤 백순재, 바이올린 임향하, 테너 하세훈에게도 고맙다 전하고 싶다.

글 김종섭(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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