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뷔시를 향한 흥미로운 시각 ‘김민준 피아노 독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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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4일(목) 오후 7시 30분 인춘아트홀

물의 이미지 담은 드뷔시의 음악
팝 칼럼니스트인 밥 스탠리(Bob Stanley)는 빌 헤일리(Bill Haley)가 1954년 발표한 <락 어라운드 더 클락>(Rock Around the Clock)을 모던 팝의 시작점으로 규정하고 또한 모던 팝은 ‘철저하게 도시의 산물’이라고 정의했다. 이는 팝 음악과 클래식 음악을 구분하는 중요한 포인트다. 클래식 음악은 철저하게 자연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물론 거슈윈과 같이 아슬아슬하게 경계를 밟고 서 있는 음악가도 있지만, 대부분 클래식 음악의 영감은 자연에서 비롯됐다. 현대인의 가슴을 어루만지는 세련된 감성과 음향 그리고 도회적인 몽환적 분위기로 널리 알려진 드뷔시이지만 결국 그 음악적 영감은 자연이었음이 자명하다. 예컨대 드뷔시의 대표작인 교향시 <바다>(La Mer), <3개의 야상곡>(3 Nocturnes L. 91) 등의 곡은 자연, 특히 물의 이미지를 담고 있다. 따라서 드뷔시의 음악을 해석하고 연주하는 과정에서 그 세련됨만을 강조한다면 청중의 드뷔시의 한쪽 면만 감상하게 될 수도 있다.

세련된 소리로 감성에 호소하는 연주
드뷔시의 작품만으로 연주회 프로그램을 구성한 피아니스트 김민준의 접근법은 앞서 언급한 이유들로 상당히 흥미로웠다. 음향적인 면에서 현대음악에 가까운 세련된 소리를 구사하며, 아티큘레이션을 풍부하게 활용함으로 감성에 호소하는 연주를 선보인 까닭이다. 그리고 이런 접근은 연주회 1부에선 뛰어난 효과를 발휘했고, 2부에선 1부만큼 적절하게 연주에 스며들지 못했다. 연주회 1부에선 <베르가마스크 모음곡>(Suite Bergamasque L. 75)과 <피아노를 위하여>(Pour le piano L. 95)가 무대에 올랐다. <베르가마스크 모음곡>의 첫 곡인 ‘전주곡’(Prélude)부터 루바토(tempo rubato)를 다채롭게 활용함으로 피아노의 울림이 물결치듯 홀을 가득 채웠다. 전체적으로 확신에 찬 연주였다. 이러한 접근은 세 번째 곡인 <달빛>(Clair de lune)에서 명료하게 드러났다. 여유로운 템포가 연주 전반을 지배하는 가운데 색채감이 돋보였다. 분명히 객석의 마음을 움직이는 연주였다.
이어진 <피아노를 위하여>는 반복되는 리듬 가운데서도 명료함이 드러난 ‘전주곡’과 ‘토카타’(Toccata). 그리고 음색의 정갈한 밸런스가 일품이었던 ‘사라방드’(Sarabande)로 인해 연주회 2부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연주회 2부는 <12개의 연습곡>(12 Etudes L. 136)이 장식했다. 연습곡은 연주자들에게 큰 고민거리다. ‘연습’곡으로서의 정체성에 집중해 연주한다면 자칫 지루한 음악이 될 수 있으며, 그렇다고 풍부한 표정으로 연주한다면 연습곡의 미덕이 발휘되기 힘든 까닭이다. 이날 김민준의 선택은 최대한 연주곡답게 연주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제1곡인 ‘다섯 손가락을 위하여’(Pour les ‘cinq doigts’)를 살펴보자. C음에서 G음 사이를 반복하는 단순한 첫 4마디에서도 김민준은 변화를 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작곡가는 해당 프레이즈를 신중하게(sagement) 연주하고 다이내믹은 피아노(p)로 설정해 놓았을 뿐 연주자에게 직접적으로 다른 주문을 하지 않는다. 따라서 첫 4마디의 변화구는 김민준의 적극적인 해석의 결과로 볼 수 있다. 이어지는 프레이즈에서 김민준의 해석은 더욱 대범해진다. 작곡가의 다양한 지시를 십분 활용해 연습곡이 아닌 연주곡으로서 해석의 결을 확고히 했다.

오랜 훈련의 성과가 빛났던 시간
김민준은 약 45분에 걸쳐 에너지를 쏟아냈다. 연습곡의 특성상 피아니스트의 손가락은 한순간도 긴장을 놓지 못하고 내달려야 한다. 거기다 프레이즈마다 다양한 표정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으니 에너지는 배로 소모됐을 것이다. 그럼에도 마지막 음까지 팽팽하게 긴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오랜 시간 겹겹이 쌓아올린 연습의 결과일 것이다. 다만 연습곡을 연주곡으로 청중에게 전달하기 위한 노력이 어떤 부분에선 연습곡이 가진 구조적인 미덕이 드러내는 데 다소 방해가 됐던 순간도 있었다. <12개의 연습곡>은 6곡씩 제1권과 제2권으로 나뉘어 있은데, 제1권의 경우 교육적 특성이 강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아쉬움이 크게 남았다. 반면 제2권의 경우 테크닉 교육을 엄두에 두면서도 피아노가 낼 수 있는 음색의 지경을 넓히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있기에 김민준이 시도한 해석의 방향과 잘 맞아떨어지는 결과를 낳았다. 최근 들어 여러 피아니스트들이 연습곡을 부대에서 선보이곤 했다. 일종의 트렌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드뷔시의 <연습곡>이 무대에 오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렇기에 이날의 선곡은 그 자체로 돋보였으며, 뚝심 있게 자신의 해석을 밀고 나아간 김민준에게 박수를 보낸다.

권고든(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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