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듯 닮은 듯, 버르토크와 브람스 <2024 교향악축제_서울시립교향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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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교향악단의 프로그램 구성은 흥미로울 때가 많다. 프로그램을 멀리서 넣고 봤을 때 각 작품의 서사가 하나로 이어지기도 하며, 어떤 경우엔 전혀 상관없는 듯한 작품들이 하나의 이미지를 공유할 때가 있으며 때론 작품 순서를 독특하게 배치해 새로움을 선사할 때도 있었다. 예컨대 2016 교향악축제에선 슈만 <교향곡 1번 “봄”>을 연주회 1부에,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오보에 협주곡>을 연주회 2부에 배치한 적도 있었다.

2024 교향악축제 무대에서 서울시향은 버르토크 <바이올린 협주곡 2번>과 브람스의 <교향곡 3번>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얼핏 그리 특별할 게 없어 보이지만 두 작품을 연속해서 들어보면 사뭇 흥미롭다. 버르토크의 작품이 주는 현대적인 감성과 브람스의 고전적인 방향성이 서로 반대되는 듯하면서도 정서의 일정부분을 공유하는 듯한 인상을 받기 때문이다. 중음부가 풍부하면서도 과거의 선법을 활용하는 모습이라든지 또한 살짝 뒤틀린 듯한 이미지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버르토크 <바이올린 협주곡 2번> 연주를 위해 바이올리니스트 이지혜가 무대에 올랐다. 하프의 온화한 3화음과 비올라와 첼로 피치카토를 바탕으로 이지혜는 6마디부터 희뿌옇고 흥미로운 주제를 연주했다. 상당히 밀도가 높은 음색이었다. 그렇기에 오케스트라 사운드의 포화 속에서도 뚜렷하게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었다. 특히 풍자적인 인상의 1악장 제2주제를 연주할 때는 신랄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것이다. 그렇다고 이지혜의 연주가 항상 날이 서 있었던 것은 아니다. 중세의 선법을 활용한 2악장에선 서정성마저 챙겨 가는 연주를 들려줬다. 하프와 현의 포근한 음향 안에서 이지혜의 바이올린은 화사한 순간을 연출했으며, 3악장에선 역동적인 모습으로 짜릿한 피날레를 선사했다.

이지혜는 앙코르 부대에서 서울시향 부악장 웨인 린과 함께 버르토크의 <2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44개의 2중주> 중에서 ‘헝가리 행진’을 연주했다. 그런데 앙코르를 마치고 퇴장하던 중 넘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후 다시 무대로 올라와 인사하며 관객들을 안심시키는 프로페셔널한 모습을 보였다. 부디 이지혜가 부상을 당하지 않았기를 바란다.

브람스 <교향곡 3번>을 시작하는 관악기의 F-Ab-F 상승음형은 ‘Frei Aber Froh’(자유롭지만 행복하다)를 의미하는 일종의 애너그램으로, 브람스 시작부터 상당히 중요한 동기를 배치해 놓았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제1바이올린 그 화음을 기본으로 하강음형 동기로  제1주제를 제시한다. 여기까지가 악보로 치면 아직 첫 장을 넘기지도 않은 지점이다. 이처럼 다채롭게 진행되는 까닭일까. 지휘봉을 잡은 피터 빌로엔은 프레이징 역시 다채롭게 구사했다. 예컨대 둘째 마디의 ‘Ab’에서나, 일곱 째 마디 바이올린의 점2분음표에서 크레센도를 사용하는 것 등이다. 빌로엔의 해석은 무뚝뚝하다 못해 다소 마초적이라 느껴지는 브람스 음악에 세련된 인상을 부여했다. 또한 애수에 젖는 3악장에서도 낭만적인 연주로 풍부한 감성을 내보이기 보단 절제된 진행으로 한층 도시적인 정서의 음악을 들려줬다.

그런데 한편으론 현이 이전에 비해 다소 매끈하지 못하다는 인상도 받았다. 브람스이기 때문에 지나치게 세련된 음색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이날 빌로엔의 해석은 전체적으로 세련된 음색을 지향하는 것으로 보였기에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었다. 또한 앙코르로 연주한 브람스 <헝가리 무곡 1번>은 흥겨움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일지, 아니면 약간 긴장이 풀어진 까닭일지 앙상블이 조금 어긋나는 부분도 있었다.

평 권고든(음악평론가)

2024 교향악축제_서울시립교향악단
일시·장소: 4월 18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 피터 빌로엔
협연: 바이올린 이지혜
연주: 서울시립교향악단

프로그램
버르토크: 바이올린 협주곡 2번 Sz. 112
버르토크: 헝가리 행진 – 2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44개의 2중주 Sz. 98 중에서 (바이올린 앙코르)
브람스: 교향곡 3번 F장조 op. 90
브람스: 헝가리 무곡 1번 G단조 (오케스트라 앙코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