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격과 아카데미 사이, 피아니스트 임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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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정하면 ‘왕벌의 비행’ 동영상으로 뜬 유튜브 스타이자 SNS를 통해 활발하게 대중들과 소통하는, 현대 트렌드와 미디어의 흐름을 일찌감치 포착하고 거기에 자신을 맞춘 브랜드와 전략을 짠 연주자 정도 인식되었다. 남들이 다 하는 방법으론 절대 부각할 순 없다는 걸 파악하고 유튜브를 통해 자신을 노출시키고 청중과 팬을 찾아서 만들어간 사람이다. 신문, 방송 등 전통 매스미디어 대신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콘텐츠를 제공하고 창작할 수 있는 크리에이터로 코로나 초기, 경각심이 극도로 달했을 때 내한을 감행, 큰 이슈를 만들었던 우크라이나 출신 피아니스트 발렌티나 리시차와 유사한 케이스다. 또한 과도한 제스처와 표정, 미믹(mimic) 등의 외적인 요소로 어필한다는 평도 다분한 연주자인데 그녀가 고양아람누리에서의 2022년 바흐의 평균율로 리사이틀을 개최하더니 올해 4월에는 같은 장소에서 세계 최초로 연주 시간 145분에 달하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전곡을 단 한 대의 피아노로 편곡하여 연주하는 파격적인 공연을 단행했다.

임현정의 바흐 평균율은 연주자의 자의식이 너무 강해 기존 바흐의 문법을 깨고 바흐라기보다는 임현정스러웠었다. 통상적인 해석과는 거리가 멀고 속주 위주다. 마치 리스트, 라흐마니노프를 치는 듯 과한 피아니즘을 추구하며 재즈적인 즉흥 요소도 다분했다. 임현정이 교감 공명이라고 명명한 홀의 잔향은 라흐마니노프에서 모든 것을 흡수하고 피아노 한 대로 연주함으로써 청중들에게 한계가 없는 완전히 공간을 선사했다.

전체적으로 임현정의 작품을 이루는 방식은 더 나아가 임현정이라는 피아니스트를 규정하는 키워드는 독특한 개성과 파격, 신선함에 혀를 내두를 정도의 속주에 기존과는 다른 악센트 이동을 통한 재해석이다. 과거의 유산을 현대인의 기호에 맞게 Remake했다. 바흐 평균율 피아노 곡집의 대표적인 연주자로 굴렌 굴드가 떠오른다. 1955년에 굴드가 골드베르크변주곡으로 그리고 잇따라 평균율을 세상에 내놓았을 때의 센세이션이 오늘날 임현정의 평균율에서 느끼는 그 감정과 그 당시 사람들이 느꼈던 감정이 비슷했을까? 흔히 알고 있는 바흐가 아닌다. 그렇다면 원래부터 우리가 알고 있는 소위 ‘바흐’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고 그게 표본이자 정격 연주의 정석이어야 한다는 거 또한 지나친 관습적이자 학습적인 선입견이지 않을까? 바흐 만큼 서양음악사를 통틀어 실용음악의 대가가 또 어디 있는가! 미사곡을 쓰고 예배를 집행했으며 오르간을 치고 성가대를 지휘하고 그 당시 발명(?) 되고 개량된 악기들을 위해 곡을 쓰고 학습용 작품을 남긴 세상의 모든 음악을 품은 유니버설한 생계형 직업 음악인이었는데 지금 바흐의 작품은 문헌적인 요소로만 자리 잡아 연구과 보전의 대상이 되어 있는데 이런 박제품에 임현정 같은 개척자가 나와 시대와 트렌드에 맞는 생기와 파격을 불어넣어야 계속해서 생명력을 얻고 고리타분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필자 개인적으로 인문학이네, 토크네, 힐링이네 따위의 부재를 붙여 연주만 하는 게 아닌 해설과 설명을 곁들인 콘서트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유튜브 방송 역시 떨떠름하다. 대중들에게 클래식을 알리고 소개한다는 명목 하에 요 3~4년 사이에 부쩍 생겨난 이런 현상은 처음의 순수한 음악에 대한 봉사와 사명이라는 취지에서 한참 벗어나 연주력 떨어지고 노래 안되는 사람들이 새로운 활로로 대중들과 접촉하는 수단으로 삼아 가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에고(Ego)를 들어내고 성공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게 전락되어버려 웃음과 애교 팔면서 가십성 신변잡기, 흥미 위주 음악계 비하인드 스토리나 들려주면서 대중들의 관심과 조회수 구걸에 나서기 때문이다.

특히 임현정 보다 한 세대의 위의 4-50대 음악가들 사이에서 마지막 활로로 이런 방법을 택하는데 임현정은 그들과 비교할 수 없는 넘사벽의 연주력으로 큰 차이점을 보인다. 지금까지의 고독한 홀로서기와 독고다이로 학벌로 똘똘 뭉치고 아카데미라는 미명 하에 경직되고 무개성의 ‘참 잘했어요~~’ 연주자, 레스너만 넘치는 이 구역(Field 또는 일본어 단어를 차용한다면 표현이 딱 찰지겠지만)에서 여기까지 이룬 그녀지만 이젠 그러지 않아도 된다. 이미 임현정이 엔터테이너가 아닌 피아니스트로서 비르투오소에서 대가가 될 수 있다는 걸 충분히 증명했고 잠재력이 높으니 유튜브에 노출되고 이미지를 소비하는 한국형 인플루언서로 소모됨을 지양하고 음악 장인으로서 정진, 본인 또래 고만고만한 경쟁자들 틈바구니에서 한 단계 더 도약하길 바란다.

글 성용원(작곡가, 상임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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