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시대의 우상과 코즈모폴리탄 Cotton Project 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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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1일 일요일 오후 3시 금호아트홀 연세

음악회 제목이 워낙 거창해서 압도 당하는 와중에 Cotton Project가 무엇을 뜻하는지 궁금해 아무리 검색해도 정보가 나오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목화’, ‘실’ 등을 일컫는 그 Cotton인가? 아님 필자는 모르지만 뭔가 심오한 뜻이 담긴 프로젝트인가? 처음도 아니고 두 번째라고 하는데 인터넷을 아무리 뒤져도 안 나온다. 프로그램북 어디에도 음악회에 관한 설명 없이 연주자 프로필만 나열되어 있는데 오늘 연주한 모차르트, 글리에르, 쟈댕, 에네스쿠가 시대의 우상이고 국제인이라는 코즈모폴리탄이라는 건가? 아님 이수민, 이정수 그리고 신호철이 그렇다는 건가? 도무지 모르겠지만 음악 들으러 간 거니 더 이상 따지지 않고 일요일 오후 3시 금호아트홀 연세 뒷좌석에 편하게 몸을 젖히며 연주자들이 입장하길 기다렸다.

첫 곡으로 바이올린의 이수민과 비올라의 이정수가 연주한 모차르트의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위한 듀오, K.423’은 고전파음악의 정형을 보여주면서 산뜻했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바이올린 이수민의 힘차고 활기찬 소리였다. 금호아트홀 연세의 울림에 잘 맞춰 뻗어나가면서 비올라와의 균형도 조화로웠다.

글리에르의 ‘8개의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소품’은 한 대 이상의 현악기들이 앙상블을 이루는 러시아 현악 음악의 전통을 계승하고 알려주는 빛나는 소품집이었다. 풍부한 상상력과 다채로운 악풍이 서로 특색을 보이고 맞물리면서 듣는 즐거움을 선사했다. 바이올린의 G음 연타에 첼로로 제시되는 선율과 성부가 바뀌어서 연주되는 1번 ‘전주곡’에서는 음울하게 지속되는 8분음표를 효과적으로 표현하였다. 2번 ‘가보트’는 분명 훗날 쇼스타코비치에게도 영향을 끼쳤을 테고 신고전주의를 예고케 했을 정도였다. 중간부의 중음에 이어 다시 등장한 가보트의 주제에 첼로가 활력을 더해주었다. 3번 ‘뱃노래’는 약음기를 낀 두 악기에서 바이올린 선율이 매혹적이었으며 첼로 역시 노를 젓는 듯한 16분음표의 움직임이 하염없는 권태에 빠지게 만들었다. 첼로의 아르페지오에 바이올린의 노래를 더한 4번 ‘칸초네타’,  양 성부의 교차와 주고받음이 자연스러웠던 5번 ‘인터메쪼’에 이어 6번 ‘즉흥곡’에서는 첼로 신호철의 장대한 선율미가 돋보였으며 7번 ‘스케르초’는 절로 어깨를 들썩이게 만들었다. 피치카토와 트레몰로의 질주였던 8번 ‘에튀드’는 짧아서 아쉬울 뿐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곡을 마친 이수민의 멋쩍은 미소가 더욱 더 여운으로 남았다.

인터미션 후 3명의 주자가 나와 트리오를 선보였다. 쟈뎅의 ‘현악3중주 2번’은 국내 초연임과 동시에 필자도 처음 접한 곡인데 1부의 모차르트와는 비슷한 듯하면서 다른 고전파음악의 한 예를 보여주었다. ‘새벽에’라는 뜻의 에네스쿠의 ‘현악3중주 오바드’는 루마니아의 민속적 특징과 선율이 어우러지면서 악식에 맞춘 앞의 곡들과는 다르게 3명의 현악 연주자들도 소박하면서도 이국적인 색채를 드러내었는데…

오늘의 음악회는 오후 3시에 시작해서 4시 12분에 끝났다. 중간의 15분 휴식 시간을 제외한다면 실질적인 연주 시간은 1시간에도 못 미쳤다. 여기에 앙코르로 피아졸라의 ‘망각’까지 더한다고 하더라도 일요일 오후 신촌까지 발걸음을 한 입장에는 너무 짧아 입맛만 다시다가 만 격이었다. 교향곡이나 그랜드 소나타에 비하면 길다고 할 순 없는데 음악회가 길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나오는 길에 곱씹어 보았다. 듣는 관객에게 길다는 것인지 아님 무대에서 연주하는 사람들이 힘들고 길다는 건지 아리송했지만 분명한 건 시대의 조류인지 모르겠으나 국내 독주자들의 음악회 프로그램이 갈수록 짧아지고 기획음악회가 많아진다는 사실이다. 십수 년간 똑같은 곡을 연주하고 반복해왔지만 변한 건 1도도 없는 국내 음악 실정과 갈수록 모든 게 짧아지고 빨라지는 시대적 흐름에 입각한 변화라는 걸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지만 한편으론 순수하게 무대에 서는 음악인의 음악에만 초점을 맞추고 보고 들으러 발품을 팔고 정성을 들이는 애호가에겐 충분한 음악적 보상이 돌아오길 바라는 것도 인지상정이다. 비전 스트링 콰르텟까지 바라지는 않더라도 허탈하긴 했다. 연주가 별볼일 없고 훌륭하지 않았더라면 1분을 듣더라도 길고 곤혹이었을 텐데 이수민, 이정수, 신호철은 분명 보여줄 게 많은 사람이 확실해 보였는데…

평 성용원(작곡가, 상임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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