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교향악단 제801회 정기연주회’깊은 밤 들려오는 유목민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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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4일 수요일 오후 8시, 롯데콘서트홀

① 쇼스타코비치 바이올린협주곡 1번, 협연: 카렌 고묘

바이올리니스트 카렌 고묘는 호흡이 길고 진중하면서도 깊은 내면의 감정이 켜켜이 쌓여있는 쇼스타코비치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훌륭하게 소화해 내었다. 멋지다, 황홀하다, 대단하다 등의 감탄사가 아니라 훌륭하다는 형용사를 쓴 만큼 연주자로서 갖추어야 모든 기본과 기량을 가진 아우구스틴 하델리히와 같은 류의 학구파였다. KBS교향악단은 비올라, 첼로, 콘트라베이스의 유니즌으로 시작되는 도입부터 집중력 높은 여리게(p)로 군더더기 하나 없는 농축된 긴장을 치밀하게 전개해 나갔다. 튜바와 팀파니 그리고 타악기 Gong이 삽입되는 부분에서도 밸런스를 깨지 않고 지극히 안정적으로 하나의 색깔과 조직(Texture)으로 흐트러지지 않고 느슨해지지 않은 높은 밀도를 선보였다. 하프와 베이스 클라리넷의 소리까지 누르고 억제해 가면서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마디와 마디를 넘어갔다. 2악장의 플루트와 클라리넷의 옥타브 유니즌은 자로 잰 듯이 정확했고 독주 바이올린 옥타브 2중음 강한 터치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더니 ‘맥베스 부인'(Lady Macbeth)의 광란의 질주가 더한 괴기함은 그로테스크하기 그지없었다. 2악장 마지막의 오케스트라 튜티 이후 잉키넨은 accel.을 시전하였는데 정신없이 흔들리지 않으면서 몰아가는 게 백미였고 피콜로의 고음이 날카롭게 찌른 잔향은 4악장 피날레와 함께 잉키넨의 장점인 완급조절 그리고 강약의 대비가 확연하게 드러나 Goat이였다.
무시무시한 공포정치를 연상케하여 숨소리조차 크게 내면 잡아갈까 봐 조마조마한 3악장 전주에서의 브라스의 육중함과 3과 4악장 사이에 놓여 있는 동 작곡가의 현악4중주 8번과 비슷한 형태로 작곡된 카덴차까지 어느 하나 흠잡을 데 없었다. 빈곤과 공포에 못다 핀 꽃 한 송이 피우고자 하는 살려달라는 외침과 “나 여기 있어요”라고 부르는 간절한 쇼스타코비치의 호소가 절절하였으며 그 안에서도 이불 속의 하이킥과 같은 조소와 아무리 입틀막을 한다 해도 숨길 수 없는 조롱이 간간이 드러났다. 앙코르까지 사무엘 아담스의 현대곡을 소개하는 걸 보고 카렌 고묘의 장인 정신이 실로 부러울 지경이었다.

② 드보르자크 교향곡 8번

아~ 첫 소절을 듣자마자 감탄사를 삼켰다. 오~~ 프라하 오~~도나우, 오~~체코의 평원… 드보르자크가 확 들어왔다. 그래, 이게 바로 내가 알던 체코의 시골 드보르자크 영감님, 반가워요! 작곡가마다 특성과 매력, 좋아하는 점이 있기 마련인데 연주자가 일관적으로 자신만의 스타일로 덮어버린다면 작품의 차이와 개성이 어디에 있는가, 그냥 연주자가 재가공한 가공품에 불과하지, 물론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들이야 그 연주자가 뭘 하든 다 좋아하겠지만 원전이 사람을 위한 수단과 매개가 되면 쓰겠는가! 그래서 필자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잘못을 바로잡는 용기를 가지고 오직 음악만 본다.
2악장 도입부의 악보를 참조하라. KBS는 이대로 연주했다. 어느 하나 과하거나 치우치지 않고 악보에 적힌 대로 보잉과 아고긱을 했다. 4성부 현악 앙상블의 묘미가 일품이었으며 여기에 더한 2명의 클라리넷 주자의 3도 유니즌과 플루트의 청명한 새소리 그리고 중간부의 즐거운 하향 옥타브 스케일은 숲속에서의 자연과의 조우 그 자체였다. 2악장 코다에서의 트럼펫이 깔린 현의 노을 지는 광경은 장관이었고 현, 특히 바이올린이 아름다운 KBS이기에 기대가 컸던 3악장은 밤베르크 심포니커보다 더 보헤미안적이면서 세련된 토속미로서 슬라브 춤곡의 기대를 충족시키고도 남았으며 중간의 오보에는 체코의 이름도 모를 어느 작은 마을의 인심 좋은 아낙이었다. 이제 소풍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야 함을 알리는 4악장 트럼펫의 나팔이 울리니 더 듣지 못함에 아쉬움만 몰려왔다. 그래서 더욱 여운이 남는 4악장을 마치면서 KBS는 밤베르크보다 더 드보르자크 다웠고 체코필보다 더 체코의 향기를 물씬 풍겼다. 종로나 명동에 즐비한 외국인 대상 관광객 상대하는 한식당보다 김제나 진안의 어느 허름한 길의 선술집 안이나 초라한 골목 한편의 연탄집에서 파는 시골된장이나 돼지껍데기에 소주 한 잔이 진국이다. 촌스럽다고 드보르자크에서 뽕필을 빼버리면 비닐장갑 끼고 간장게장을 먹는 할리우드 배우 마이클 파스벤더가 장갑 벗고 자기식대로 포크로 먹으면서 간장게장의 참맛을 느꼈다고 하는거와 뭐가 다르겠는가!

800회에 이어 801회에서도 연타석 홈런을 친 KBS가 다시 한번 증명한 Fact.

  1. KBS가 하는 현악기 콘체르토 반주는 일언반구 의심의 여지가 없이 잘한다.
  2. 완급조절은 잉키넨. 누구같이 강(强)으로만 밀고 달리지 않는다.
  3. 강약 대비도 잉키넨. 그리고 작품 특성을 제대로 파악해 내서 들려주며 스토리텔링이 명확한 잉키넨이니 바버든 슈트라우스든 레스피기든 그리고 쇼스타코비치와 드보르자크까지 제대로다!

    평 성용원 (작곡가, 상임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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