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급조절이 빚어낸 긴장감 가득한 연주 ‘2024 교향악축제 수원시립교향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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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5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걸작의 숲에서 탄생한 베토벤의 유일한 바이올린 협주곡을 들고 바이올리니스트 김응수가 무대에 올랐다. 팀파니의 조용한 연타가 네 번 울리고, 오보에와 클라리넷 그리고 파곳이 함께 포근한 제1주제를 제시했다. 한참동안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이어진 뒤 짙은 바이올린의 선율이 흘러나왔다.

2024 교향악축제 스무 번째 날, 수원시립교향악단(지휘 최희준)의 무대 광경이다.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과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1번 ’1905년‘, 언뜻 단출해 보이는 프로그램이지만 그 무게감은 사뭇 다르다. 먼저 김응수가 협연자로 나선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부터 살펴보자.

김응수의 음색은 짙고 깊이가 있었다. 여린 패시지를 연주할 때도 짙은 음색이 작품의 무게감을 대변했다. 19세기 활동한 바이올리니스트 요아힘(Joseph Joachim)은 독일이 보유한 위대한 바이올린 협주곡 네 곡을 꼽으며, 그중 최고로 베토벤의 작품을 꼽았다. 그만큼 완성도를 자랑하지만 바이올린의 테크닉을 드러내기 쉽지 않다. 오케스트라의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날 협연자와 악단의 호흡은 좋은 편은 아니었단 점이 다소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 작품에선 바이올린의 우아한 선율미가 도드라지는데, 오늘 김응수의 연주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도 바로 여기였다. 그는 최대한 프레이즈를 길게 가져가며 레가토로 연주했는데, 작품의 특징과 잘 맞아 떨어졌다. 최근 프레이즈를 짧게 설정하고 다이내믹이나 악센트를 다채롭게 활용하는 연주자가 많은 편인데, 김응수의 연주는 이러한 방식과는 방향성이 달랐다.

또 하나 김응수의 연주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피아니시모(p, 여리게)에서 음색이 더욱 생생했단 점이다. 3악장에서 밝고 높게 도약하는 선율을 연주할 때 이러한 특징이 더 빛을 발했다. 아울러 앙코르로 선택한 바흐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 1번‘ 중 ‘아다지오’ 또한 그의 음색이 가진 장점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연주였다.

율리우스력으로 1905년 1월 22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벌어진 이른바 ‘피의 일요일’ 사건을 주제로 한 쇼스타코비치의 열한 번째 교향곡이 이날 무대의 메인 프로그램이었다. 1월의 차가운 공기처럼 예리하게 펼쳐지는 현의 피아니시모(pp, 매우 여리게) 연주는 시작부터 긴장감을 더했다. 또한 저음현이 빚어내는 불안한 정서 또한 김장감을 높이는데 한몫했다. 이후 다소간의 실수는 있었지만 음악의 흐름을 방해하지는 못했다.

최희준의 해석과 지휘는 이성적이었다. 자신이 설정한 템포, 다이내믹, 뉘앙스를 철저히 지켜가며 결코 흥분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날의 음악이 차가웠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충분이 뜨겁고 광포했으나 그것이 그의 해석과 지휘 안에 있었던 것이다. 오랜 연습에서 빚어지는 현의 일사분란하고 날카로운 움직임은 쇼스타코비치의 신랄한 패시지와 비판을 더욱 예리하게 드러냈으며, 관의 포효하는 듯한 울림은 유혈사태 군중들의 소함소리처럼 처절했다. 특히 4악장에서 울려퍼지는 분노한 군중의 노래는 콘서트홀을 가득 채웠다.

이날 긴장감 넘치는 연주를 가능케 한 요소는 다름 아닌 완급조절이었다. 포르티시모(ff, 아주 세게)에서 순식간에 피아니시모로 다이내믹을 떨어뜨리는 모습에서 최희준과 수원시향의 호흡을 느낄 수 있었다. 연주가 마친 후 앙코르는 없었다. 하지만 아쉬움은 없었다. 이편이 여운을 더욱 길게 즐길 수 있기 때문이었다.

2024 교향악축제_수원시립교향악단
일시·장소: 4월 25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 최희준
협연: 바이올린 김응수
연주: 수원시립교향악단

프로그램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op. 61
바흐: 아다지오 –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 1번 G단조 BWV 1001 중에서 (바이올린 앙코르)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1번 G단조 op. 103 ‘1905년’

평 권고든(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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