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은하게 오래 가는 플루트사랑이 진짜 사랑, 세종음악상 신인음악상 플루티스트 홍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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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은하게 오래 가는
플루트사랑이 진짜 사랑

세종음악상 신인음악상
플루티스트 홍안나

월간리뷰 2022년 1월호 커버스토리, 플루티스트 홍안나

연습은 무대를 위한 식량


‘오래오래 사랑스러운 사람은 뜨거운 사람이 아니라 따뜻한 사람이다.’ – 도종환

장사를 잘하는 사람이 ‘어린왕자’에게 알약을 팔기 위해 약 선전을 한다. ‘일주일에 한 알을 먹으면 아무것도 마실 필요가 없단다.’ 어린왕자는 그걸 왜 파는지 묻는다. 장사꾼은 그 약을 복용하면 일주일에 53분을 절약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 그 53분 동안에는 무엇을 하죠?” “아무거나.. 하고 싶은 걸 하면 돼.” 장사꾼의 대답에 어린왕자는 이렇게 답한다.
“나 같으면 그 53분 동안 천천히 걸어서 물이 있는 우물가로 걸어갈 거예요.”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에 나오는 이야기다.
음악가 중에는 연주는 잘하고 싶지만 그 연주를 위한 힘겨운 연습은 피하는 이들이 있다. 결과는 좋아하지만 그 결과를 얻기 위한 과정은 가능한 생략하고 싶은 게다. 하루 일을 하지 않으면 하루 밥을 거른다는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의 백장스님의 이야기나, 삶은 산을 정복하는 ‘등정’(登頂)이 아니라 산으로 오르는 ‘등로’(登路)가 중요하다는 박영식 등반가의 이야기에는 손절하는 사람들이다.
플루티스트 홍안나는 저 멀리 물을 찾아 떠나는 ‘어린왕자’와 같다. 그러기에 그를 두고 주변에서는 ‘학구적’이라고 표현을 쓴다. 연주도 좋아하지만 지식을 얻고자 하는 마음과 의욕이 마르지 않는 까닭이다. 어쩌면 장자의 ‘공부식량론’을 몸소 실천하는 음악가가 아닐까? 공부란 지금 이후에 살아갈 식량을 저축하는 것과 같다지 않은가.
“주변에서는 제 성격에 대해 차분하다고 하지만 이건 좀 과찬이고요, 무대에서는 오히려 열정적인 편이에요.”
홍안나는 무대 아래에서는 공부식량론처럼 무대에서 쏟아부어야 할 양식을 끊임없이 쌓곤 한다. 연주자는 악기 안에 본인의 모든 것을 담아내야 하기 때문에 홍안나는 원하는 소리를 만드는데 진력한다. 그러기에 작은 체구에서 뻗어 나오는 그의 소리는 강하고 풍성할 뿐 아니라 듣는 이도 감동의 농도가 짙을 수밖에 없다.

연주도 티칭도 연주자마다 다른 이유

풍성한 사운드를 구현한다는 호평에 홍안나는 손사래를 치며 단점이 더 많다고 말한다. 단점이라고? 그게 뭘까 싶어 물었다. 음표의 음가(音價) 이상의 화려한 소리는 내지 않는다고 겸손하게 말한다.
“정해진 음표와 규칙 속에서 최대한의 열정을 분출하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홍안나는 이를 스스로 단점이라고 표현했지만, 이는 단점이 아니라 음표에 충실하려는 연주자의 당연한 태도로 보인다. 오히려 본질적인 음색보다 과도한 ‘화려’와 ‘윤색’을 가한다면 이는 ‘피장화초’(皮匠花草)에 다름 아니다. 가죽신 위에 불필요한 꽃을 장식한다는 뜻이다. 겉보기에만 덧칠한 화초는 실제 기능과는 무관하지 않은가.
음악을 대할 때 본질에 충실하려는 홍안나의 자세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레퍼토리는 무얼까. 그는 프랑크 소나타를 비롯,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주는 라이네케의 운디네 소나타, 그리고 고난도의 ‘카르멘 판타지’ 등을 꼽는다. 특히 바이올린 소나타가 원곡이지만 최근에는 플루트곡으로 자주 연주되는 프랑크 소나타는 그의 연주실력을 성숙하게 해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테크닉은 그다지 어렵지 않지만 편곡작품은 단순한 선율보다 분출해야 하는 에너지가 훨씬 많기 때문에 플루트 테크닉과 호흡 등 제가 소화할 수 있는 이상을 요구하는 작품입니다. 그래도 정말 좋아하는 곡이죠. 잘 부르고 싶지만 쉽지 않기 때문에 더 매력적인지도 모르지만요.(웃음)”
원래 말러작품에는 말러가 자신의 세계를 가감없이 표현하기 위해 많은 기호를 사용했지만 말러의 생각 그대로를 해석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그러기에 세계적인 지휘자라 해도 말러곡은 쉽게 도전하지 않는다. 그러나 홍안나는 작곡가의 의도대로 연주하는 것은 좋지만 그것 때문에 자기 색깔을 상실하는 것은 원치 않는다. 똑같은 곡을 열 명의 연주자가 연주한다고 치자. 다 똑같을까? 어떤 경우에도 똑같은 톤과 매너는 있을 수 없다. 모두 다르다.
세계적 명교수 도라는 레슨에서 모든 학생이 똑같이 연주하는 태도에 일침을 가한다. 미스터 김! 그건 당신의 음악이 아니지 않은가, 왜 다른 사람의 음악을 따라서 하느냐, 그렇게 지적하곤 한다. 그는 같은 악보로 열 명을 가르쳐도 모두 다르게 가르친다. 그 곡이 설령 모차르트나 베토벤 곡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좋은 연주 따라하기보다 자기 스타일 찾아야

“모방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예전에는 CD를 듣고 공부했다면 요즘은 유튜브를 통해 세계적인 연주자들의 음악성과 스킬을 모방합니다. 누군가를 따라하려는 것은 굉장히 좋은 모티베이션이 될 수 있죠. 그러나 거기서 멈추면 안 된다고 봐요.”
홍안나는 플루티스트 피터 루카스 그라프(Peter-Lukas Graf)를 굉장히 좋아한다. 많은 연주자들이 그렇듯 그 역시 그의 연주를 흠모한 나머지 그의 테크닉을 부단히 따라했다. 그러나 30대 초반이 지나면서 모방을 멈췄다. 다른 사람의 음악과 똑같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때부터 제가 느끼고 좋아하는 스타일로 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세계적인 대가가 특정 프레이즈에서 숨을 쉬거나, 크레센도와 피아노를 연주해도 그것을 따라하기보다 저에게 맞는 쉼표 하나를 체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이죠. 그런 자세로 공부를 꾸준히 해왔습니다. 한해 한해 나이를 먹는 건 싫은데 이렇게 공부하면서 음악적으로 성숙해가는 제 모습을 보면 행복합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성숙해진다는 건 곡에 대한 자세가 더 겸손해진다는 뜻은 아닐까? 홍안나는 어떤 작품도 쉽다거나 어렵다는 등 난이도로 구분할 수 없으며 하나같이 진지하고 소중한 작품들이라고 말한다. 그다지 화려하지 않고 느린 곡일수록 오히려 심오하고 표현이 섬세하다. 세상에 쉬운 곡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음악을 알면 알수록 연주가 쉽거나 어렵다거나 하는 등의 갈라치기로 구분할 수 없게 됩니다. 테크닉적으로 쉽다고 해서 쉬운 게 아니라 표현이 훨씬 심오하거든요. 그러니 모든 작품은 그저 진지하게, 겸손하게 대해야 합니다.”

가장 힘들 때 위로해준 라이네케 운디네 소나타

아름답기로 따진다면 영혼을 흔드는 무수한 곡들이 존재한다. 그런데 연주자마다 특정 작품을 좋아하게 된 계기를 물으면 저마다 이유가 다르다. 안나 카레니나의 법칙처럼 좋아하는 감정은 하나로 모이지만 그 이유를 물으면 99가지가 되는 것처럼… 홍안나가 라이네케(Reinecke, Carl Heinrich Carsten)의 운디네 소나타를 좋아하게 된 배경이 있다.
“이 곡은 독일 프라이부르크국립음대 입학을 준비했을 때 공부했던 낭만곡 레퍼토리 중 하나였습니다. 당시 겨울이었어요. 송곳을 찌르는 듯한 독일 특유의 추위도 그렇지만 하늘과 땅과 바람과 사람 모두 그지없이 삭막했습니다.”
독일 유학생들은 모두 경험하겠지만 홍안나 역시 어학원에 막 등록해 언어에도 익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입학시험을 치르던 때가 있었다.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그때 라이네케의 운디네 3악장이 힘든 마음을 어루만져주었다. 신비하게도 심장에서 삼출되는 눈물이 차오르며 큰 위안을 받았다. 테크닉적으로 힘든 2악장 연습에 집중해야 하는데, 마땅히 공부해야 할 2악장은 뒤로하고 3악장을 연주하며 스스로 위로받았던 기억이 난다고 이야기한다.
“지금도 가장 애정이 가는 곡이에요. 연주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필수 레퍼토리로 운디네 소나타를 내놓곤 합니다.”

홍안나를 이끈 9할, 스승과 어머니

영화 ‘어느 멋진 순간’(2006 리들리 스콧)에서 듀플러라는 농부는 포도나무를 가꿀 때 늘 노래를 부른다. 햇빛과 비 못지않게 사람의 정성이 균형을 이뤄야 좋은 땅이 되고 좋은 포도가 열린다. 듀플러는 밭의 잡초를 뽑는 단순한 일에도 영혼을 담아서 한다. 시를 쓰듯이 말이다. ‘코앙 페르두’와 같은 보르도 포도주처럼 완숙한 플루티스트로 성장하는데 홍안나 혼자 성장했을 리는 없다.
홍안나의 실력에 햇빛과 비와 리듬의 조화를 이루게 한 사람은 누구인지 물었다.
“그동안 저를 가르쳐준 모든 선생님들이 햇빛이었지요. 그러나 땅을 굳게 하고 균형잡게 해준 분을 꼽으라면 저희 어머니와 송영지 선생님이 먼저 떠오릅니다.”
홍안나의 음악을 사랑해주는 친구들과 선생님들은 홍안나의 연주에 호된 평가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머니는 달랐다. 무대에서 긴장하거나, 시선 처리 등 연주의 세부적인 면을 조용한 말씀으로 늘 바로 잡아주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플루트에 자신감을 갖게 해준 분은 송영지 선생님이다.
“연습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해주셨거든요. 예고시절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에 입학했는데 제자들 훈련에 깐깐하기로 유명하신 송영지 선생님을 만난 거예요. 솔직히 겁부터 났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수업에 들어갔는데 테크닉이 잘 안되는 부분은 무려 1시간 동안 계속 반복해서 연습을 시켰습니다. 본인의 마음에 들 때까지 계속… 계속…”
그 덕분에 홍안나는 예고 때 이상으로 연습에 매진할 수 있었다. 20년 전 당시에는 혹독했다고 생각했지만 음악을 대하는 자세가 완전히 바뀐 것은 바로 송영지 선생님을 만나면서부터다. 플루트의 정도(正道)를 가르쳐주던 송영지 선생님은 홍안나와의 인연을 끝으로 미국으로 떠나면서 더 이상 레슨을 받을 수 없었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제 인생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기신 분이지요. 그 덕분에 독일 나스타시(Prof. Dr. M. Nastasi)의 이론적인 연주 메커니즘을 소화할 수 있었고요. 나스타시는 화성 등 이론에 철저하게 기초를 두고 가르쳤는데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했어도 실제 연주에 임할 때는 호흡 구사력이 확장되고, 선율의 전환이 능숙해졌습니다. 참 이상한 게 제가 선생님들의 가르침이 얼마나 크고 깊은지 깨달을 때쯤이면 학습이 끝난다는 점이에요. 나스타지 선생님도 연세가 많으셔서 나중에는 레슨을 지속하지 못했거든요.”

음악을 알면 알수록 연주가 쉽거나 어렵다거나 하는 등의 갈라치기로 구분할 수 없게 됩니다. 테크닉적으로 쉽다고 해서 쉬운 게 아니라 표현이 훨씬 심오하거든요. 그러니 모든 작품은 그저 진지하게, 겸손하게 대해야 합니다.

잊지 못할 연주, 세월호 참사 당시의 독주회

연주자의 삶을 이야기한다면 거의 절반은 무대이야기가 된다. 그 사람의 삶의 절반이 전부 연주와 연결되는 까닭이다. 결국 우리는 무대를 향해서 가는 사람들이지 않은가. 그런데 유독 잊지 못할 무대가 있다. 홍안나에게도 마찬가지다.
“저도 잊지 못할 연주가 있죠. 2014년도 독주회 때 세월호 침몰사고가 터졌습니다.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 연주 성격을 바꾸기로 했죠. 포스터 배경색은 물론 의상까지도 검은 색상으로 바꿨는데 마지막 앙코르곡도 원래 정해진 곡이 아니라 찬송가 ‘내 평생 가는 길’을 편곡해서 올렸습니다. 세월호 영향이겠지만 안타까운 희생과 오버랩되어 정말 많은 분들이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저도 울었고요.”
음악의 사회성이란 이런 것일까? 홍안나가 만약 플루트를 연주하지 않았다면 세월호의 슬픔을 어떤 방법으로 타인과 공유할 수 있었을까? 다양한 방법으로 슬픔을 같이 나눌 수 있지만 음악만큼 파급력 있는 예술이 어디 있을까 싶었다.
“그때 느꼈습니다. 사회 전체든 한 개인이든 어떤 고난과 역경을 당할 때, 절망적 상황에 처할 때 그걸 위로하고 에너지를 채워주는 건 음악이며 나의 플루트가 바로 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요.”
그러나 요즘처럼 코로나19로 지구촌 활기가 뚝 떨어졌지만 이를 위로할 수 없는 게 안타깝다. 플루트는 호흡을 통해 연주하기 때문에 코로나19에서는 제일 먼저 침묵해야 할 악기가 아닌가. 레슨도 어렵고 무대는 더더욱 힘든 악기가 돼버렸다.
“관악기 연주자로서 지난 2년간 한 일이 별로 없어 굉장히 속상했죠. 레슨도 힘들고, 얼마 전에는 출강 대학교에서 학생이 감염되어 15일간 격리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팬데믹상황에서는 뭔가를 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요.”

세월호 사건 이후의 연주회 포스터

연주는 자신을 녹슬지 않게 벼리는 연마제

그러나 연주자 중에는 코로나19가 아니라 ‘마음의 코로나’ 때문에 악기 연주를 중단하는 이들이 많다. 10년전 만해도 음악분야에서 플루트전공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가 우리나라였다. 플루트를 가장 많이 수입할 정도였으니 전공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짐작할 수 있지 않은가. 그 많은 전공자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40세가 넘으면 대부분 레스너로 활동할 뿐 무대 기회는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려워진다.
알다시피 플루트는 여성용 악기가 아니다. 제 소리를 내기 위해 쏟아붓는 열정은 트럼펫보다, 호른보다 더많은 훈련과 호흡을 요구한다. 다른 관악기는 호흡량 10을 불어넣으면 10의 소리가 나오지만 플루트은 호흡의 절반 이하만 소리로 발현되기 때문이다. 그토록 어렵게 공부했건만 막상 세상 밖으로 나오면 활약할 무대는 신기루의 그림자보다 찾기 힘들다. 오케스트라 단원 중 고작 한두 명만 뽑고 나머지는 각개전투로 활동해야 한다. 고결하고 예쁘기만 한 악기가 실은 연습도 연주도, 세상밖에서 활동하기가 이토록 어렵다는 걸, 누가 알겠는가.
“한창 연주할 나이인데 대부분 전공자들이 어쩔 수 없이 주저앉아요. 아마 저도 그럴 운명을 피할 수 없었을 거예요. 말씀을 드리지 않아도 한국의 대학 현실을 잘 알 거예요. 다행히 몇 곳의 학교를 출강할 수 있고 구리시교향악단의 연주 기회도 생겨서 지금도 열심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연주자들은 이런 기회가 얼마나 소중한지 다 알 거예요.”
플루트 연주자라면 모를 리가 있겠는가.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면 누군가 자신을 기다려줄 것으로 착각한다. 그러나 아무도 없다. 어떻게 독주회를 펼치고 어디에 취업을 해야할지, 대학강사나 교수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떻게 교향악단에 입단해야 하는지에 대한 로드맵이 없기 때문이다. 살아온 날도 어려웠는데 한국에서 살아갈 날은 그냥 ‘절벽’이다. 그러다 어영부영 금방 40세가 넘는다. 그렇다고 대충 산 것도 아니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연습한다. 열심히 연습한다고 되는 게 아닌데 말이다.

학생들이 미디어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선생님

“터닝포인트는 바로 그 순간인 것 같아요. 포기하지 않고 그래도 자신이 녹슬지 않도록 매진하는 그 순간 말이에요. 다행히 저는 공부를 하기 위해 독주회 등 무대를 꾸준히 펼친 덕분에 구리시교향악단의 플루트연주자로 나설 수 있게 됐고, 애초부터 대학교수를 꿈꾸지 않았지만 최근에는 필리핀 마닐라에 소재한 제너럴 트리아스 칼리지(General Trias College of Cavite)의 플루트 전임으로 활동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최근에는 예전쿤스트짤에서 독주회를 펼치면서 숨통이 탁 트였고요. 코로나 이후 단 한 번도 무대를 갖지 못했거든요.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어려운 시기에 학생들은 오히려 제 레슨을 믿고 따라준다는 거예요.”
레슨은 일주일에 한두 번 하면 되지만 학생은 다음 레슨 때까지 치열하게 연습해야 한다. 그러나 학생들의 연습환경은 예전과 비교해 집중도가 훨씬 떨어지고 있다. 미디어에 너무 많이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자기주도적 학습’이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다. 실력은 부족하지 않더라도 누군가 잡아주지 않으면 학생들은 미디어의 유혹에 금세 빠져든다.
“부모님들도 컨트롤하기 어려운 시대입니다. 최소한 저의 제자들은 제가 그 일을 감당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자기주도 능력이 없는 아이들을 어떻게든 연습으로 끌어올리는 게 쉽지 않죠. 자기주도 연습에 실패하는 학생들은 결국 플루트 대신 다른 악기 전공을 권하기도 합니다. 개중에는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그래도 플루티스트의 길을 가겠다는 학생도 있지만요.”
어떻게든 플루트를 공부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면 홍안나는 엄마 이상의 정성과 사랑으로 아이들을 캐어한다. 일단 연습에 임하면 혹독하다. 1시간 동안 연습해도 해결되지 않으면 자신의 개인적 시간을 모두 포기하더라도 3시간씩 붙잡고 가르친다. 돌이켜보니 송영지 선생님이 가르치던 방법을 지금 홍안나가 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홍안나에게는 늘 학생들이 줄을 잇는다. 코로나19 때문에 관록있는 연주자들도 학생들이 줄줄이 빠져나가는 상황이지만, 홍안나의 제자들은 늘 넘친다. 안되면 될 때까지 같이 연습하는 끈기와 정성에 학생들의 실력이 쑥쑥 성장하는 까닭이다.
“저는 연주도 그렇게 하거든요. 될 때까지 하는 편이에요. 이 정도면 청중들도 만족하겠지 하는 청중의 입장이 아니라 제 머릿속에 담긴 음악적 표현력이 완성될 때까지 연습하는데 학생들도 그렇게 가르치는 편입니다.”

재단법인 세종국제예술문화재단 세종신인음악상 수상

홍안나는 2022년을 맞아 독주회 준비와 함께, 매년 치러야 할 제너럴 트리아스 칼리지의 초청독주회도 준비하고 있다. 필리핀 마닐라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수석과 악장 등 제너럴 트리아스 칼리지의 강사 및 교수진들과 함께 하는 연주회에도 출연할 계획이란다.
“올해에는 지난해 창단을 하려다 코로나 때문에 미뤄진 트라이스 심포니오케스트라도 계획대로 추진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 오케스트라와도 함께 해야죠.”
심리학 서적에 관심이 많지만 켈리 최의 ‘파리에서 도시락을 파는 여자’, ‘웰킹씽’을 읽고 서비스와 마케팅에도 관심이 많은 연주자, 녹슬기를 거부하는 홍안나는 오늘도 자신의 연습뿐만 아니라 학생들에게도 두세 시간의 연습으로 단련에 임하고 있다. 그의 이런 노력은 2021년 12월 16일 재단법인 세종국제예술문화재단(총재 전용원)의 시상식에 높이 평가받았다. 재단법인 세종국제예술문화재단은 제11회 세종음악상 신인음악상에 플루티스트 홍안나를 선정, 최근 시상식을 마쳤다.
“단지 제 스스로가 녹슬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했을 뿐인데 이런 상이 주어져서 너무 감사하고 기쁩니다. 앞으로 기회가 주어진다면 더 많은 무대로 코로나로 무력해진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명징한 음색 2022년에도 계속 선보일 터

이제 홍안나가 걸어온 길을 따라가보자. 홍안나는 인천예고와 추계예대 실기수석으로 입학하고 졸업했을 정도로 실력이 뛰어났다. 독일 프라이부르크국립음대에서 전문연주자과정을 마치고 최고점수로 디플롬을 취득했을 만큼 타고난 재능과 끈기가 돋보였던 홍안나. 플루티스트 최은정, 송영지, 이상은, 이지영 등 국내 최고의 연주자들의 가르침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재학 중에는 숙명음악콩쿠르, 청주대콩쿠르, 한국음협콩쿠르, 파주시전국음악콩쿠르 등지에서 입상, 최우수상, 대상 등을 차지하며 뛰어난 음악적 기량을 인정받았다. 서울심포니오케스트라 등 국내 오케스트라와 수차례 협연했던 홍안나는 아시아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아카데미 워크샵에 합격, 정명훈과 함께 인천, 성남, 도쿄 등 순회 연주에 참가하는 등 다양한 무대를 경험했다.
또한 세계적인 연주자 막상스 라뤼(Maxence Larrieu) 안드레아 리버크네히드(Andrea Lieberknecht) 등의 마스터클래스에 참가하는 한편, 독일 유학생 시절에도 솔로 리사이틀을 틈틈이 개최하는가 하면 독일 프라이부르크시 주최로 해설이 있는 음악회 ‘Text und Ton’ 초청연주에 출연했다.
귀국독주회를 통해 ‘절제된 음악의 내적 요소와 객관적인 해석이 어우러져 아카데믹한 연주를 소화하며 맑고 명징한 음색을 가진’ 연주자로 호평을 받았던 홍안나는 현재 제너럴 트리아스 칼리지(General Trias College of Cavite) 전임교수와 구리시교향악단 단원으로 활동하는 가운데 인천예고, 고양예고, 인천여중 음악과 등에 출강하고 있다. 또 플라우토앙상블 음악감독, 인천청소년 필하모닉오케스트라, 김포청소년윈드오케스트라 등의 지도강사로서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다.

글 김종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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