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젤보이스의 아름다움에는 누군가의 ‘고통과 은혜’의 삶이 있다, (재)유엔젤보이스 박지향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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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월간리뷰 4월호 커버스토리, (재)유엔젤보이스 박지향 이사장 ⓒChangho

장미의 아름다움에 숨겨진 가시의 고통

음악평론가 탁계석 선생님의 아들 결혼식에서 특이한, 연주가 아주 기막힌 클라리넷 연주자를 발견했다. 열예닐곱 때 양 부모를 모두 잃었지만 혼자 악기를 독학해 유학까지 다녀온 친구다. 젊은이들이 자립하기에는 너무도 혹독한 시기에 애면글면 돈을 모아 스스로 아파트까지 장만한 멋진 청년이었다.
보는 이들은 ‘와! 연주 잘 한다’며 칭찬으로 끝나지만, 자세히 보면 그의 이면에 새겨진 파란만장한 삶의 무늬가 바위에 새겨진 파도의 흔적처럼 보이기 마련이다. 음악이라면 대부분 유복하고 행복한 집안에서 넉넉한 뒷바라지로 유학까지 다녀온 사람들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악기의 뚜껑을 열면 그 안에는 집안의 배경을 먹고 자란 음악이 아니라, 치열한 삶의 땀을 마시며 성장한 젊은이들이 참으로 많다. 그 땀을 손끝으로 찍어보고 그 진한 짠내에 감동한 누군가는 그들을 돕는 지원군으로 나서기도 한다.
청년그룹 ‘유엔젤보이스’ 역시 현실보다 높은 이상을 향해 열정적으로 노력하는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 그 땀의 가치를 알아주는 누군가를 만났기에 지금 세상을 향해 아름다운 노래의 꿈을 펼칠 수 있는 건 아닐까? 맞다. 바로 박지향 이사장을 만났기에 가능한 일이다.

모두가 호랑애벌레일 때 노랑애벌레를 선택

박지향 이사장은 순수음악을 사랑하지만 그보다 청년의 순수를 더 사랑하는 편이다. 요즘 성악에 자질이 있는 수많은 젊은이들은 ‘미스터트롯’이나 ‘펜텀싱어’와 같은 대중 프로그램에 문전성시를 이룬다. 트리나 폴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의 호랑애벌레처럼 그저 꼭대기로만 향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고 무작정 올라가는 호랑애벌레들 말이다. 그러나 박지향 이사장은 ‘노랑애벌레’ 같은 젊은이들에게 재능을 개발할 수 있도록 일용할 양식과 일용할 공간을 제공해주고 있다.
“우연찮게 ‘쇼미더머니’라는 프로그램을 봤어요. 노골적으로 서로를 디스하면서 ‘너보다 내가 낫지’와 같은 불성(不誠)한 어투로 싸우듯 하더군요. 작가들이 만들어준 이미지도 있겠지만 실제 ‘짠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청년들의 주제는 80% 이상 돈 벌고, 좋은 차 사고, 좋은 집 구하는 내용입니다. 그 돈으로 부모님께 차, 집 구입해드리고 효도하겠다는 내용도 있고요. 그런 가사를 들으며 애잔함을 느낀 거예요.”
몇 년 전의 일이다. 박 이사장은 힙합그룹을 후원하는 한 지인의 팔소매에 끌려 인천의 한 경기장에 펼쳐지는 거대한 힙합콘서트를 본 적이 있다. 엄청난 인파 속에 다양한 힙합그룹이 출연했다. 이상한 일은 한 가수가 생수를 마신 후 그 물을 청중에게 불어대자, 마치 성수(聖水)를 받듯 그 물을 마시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날린 멘트가 가관이었다. ‘너희들은 내가 어떻게 보여? 나는 너희들이 불쌍해 보여. 너희들이 평생 벌 돈을 난 오늘 한 시간에 다 벌걸? 수많은 자동차에 보석 귀걸이… 난 돈이 너무 많아, 하고 싶은 건 다 할 수 있어. 부럽지?’
노래 가사가 그랬다. 그 노래에 청중은 더욱 뜨겁게 열광했다. 이상한 일이다.
“부르는 사람들이나 밑에서 물을 맞으면서 신들린 듯 좋아하는 아이들을 보고 정신 나갔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진솔한 아이들도 눈에 띄었죠. 제가 안타까운 건 모든 가사가 ‘기승전(起承轉)머니’로 연결되는 젊은이들의 의식구조입니다. 부모님들에게 뭘 해드리고 싶어도 결국 돈이죠. 그러니 돈을 벌어야 된다는 게 모든 가사의 결론이라는 거예요.”
모든 목적이 돈으로 귀결되는 현상은 호랑애벌레들의 아우성이다. 유엔젤보이스는 이런 호랑애벌레들 속에서 유행에 휩쓸리지 않는 노랑애벌레와 같은 존재들이다. 언젠가는 노랑나비로 탄생할 애벌레들…
“저도 피아노를 전공했는데 예전에는 뭔가 의미있는 일이면 돈과 상관없이 열정페이로 공연하곤 했잖아요.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물 한 병이라도 사주는 일이면 기꺼이 참여했다는 말이예요. 친구끼리 찬양팀을 꾸려 먼 오지를 다녀도 기쁨으로 연주하고 노래하곤 했거든요. 시골에 피아노가 없으면 낡은 풍금으로도 연주하고요. 듣는 사람들이 할머니 할아버지, 시골 사람들이지만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클래식 연주자들까지 좋은 콩쿠르에 입상해 좋은 에이전시를 만나 좋은 조건으로 몸값을 받고 무대에 오르는 게 목적이 돼버렸다. 이런 시대의 흐름을 나무랄 생각은 없다. 예전처럼 열정페이를 부탁하며 무대를 꾸려달라고 하기에는 세상이 너무도 많이 변한 까닭이다.
박 이사장은 유엔젤보이스만은 성공을 향한 목적지향으로 내몰 생각이 없다. 그보다 주어진 오늘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도와주는데 목적이 두고 있다. 지금까지 유엔젤보이스를 거쳐간 멤버들이 100명이 넘는다. 돈을 생각했다면 이들을 가장 유명한 아티스트 그룹으로 만들어 몸값을 올리면 되지만 그는 그런 세계에 초연한 자세를 보인다.

연이은 고통, 쉴새없이 파고들어

“유엔젤보이스가 2008년 12월에 재단법인으로 출범했으니 꽤 세월이 흘렀죠. 본격적인 활동은 2009년에 시작했고요. 유엔젤보이스의 모체는 IT회사 유엔젤입니다. 정보통신공학 출신인 남편이 운영하는 회사인데 그 회사의 도움을 받아 유엔젤보이스를 꾸준히 운영해왔죠. 그러다 5년 전쯤 청천벽력 같은 일이 생겼답니다.”
박 이사장은 잠시 호흡을 가다듬는다. 평소에도 쉽게 지치곤 했던 게 심상치 않았는데 갑자기 신장암 판명을 받고, 슬퍼할 시간도 없이 신장 절제 수술을 받았다. 비극은 마치 목마른 악마처럼 박 이사장의 삶에 득달처럼 달려들었다. 그로부터 1년 후 남편 역시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야 말았다. 이 같은 비극을 어찌 글로 문장으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박 이사장은 신장 하나로 스트레스를 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조금만 무리해도 피곤이 엄습하고 육신은 물먹은 스펀지처럼 부어올랐다. 피곤과 스트레스는 그가 피해야 할 가장 무서운 적이 되었다. 시간은 그에게 신장암으로 인한 후유증을 달랠 틈을 허락하지 않았다. 먹구름은 쉬이 가시지 않았다. 그즈음 친정 아버지 역시 세상을 떠나셨다.
“신장암 투병과 신랑과 부모님의 사별로 인해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의 나날이었습니다.”
좀처럼 슬픔을 추스릴 겨를이 없었다. 남편이 떠난 다음에는 평소 조금씩 앓던 허리 협착증의 고통이 점점 숨통을 조여왔다.
“통증을 견딜 수 없어 병원을 찾았죠. 그런데 진료가 아니라 곧바로 수술실로 끌려가 3개의 철심을 박았습니다. 삶이 온통 흑색이었습니다. 3주씩 입원하다 퇴원하고 다시 3주 입원하고 퇴원하는 과정 속에서 1년 동안 버텼습니다.”
재활치료할 때 휠체어 의자에 앉은 채 의사에게 언제쯤 다시 지팡이라도 짚을 수 있는지 물었다.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라는 담당의사는 ‘휠체어에 오줌주머니 똥주머니 이런 걸 차고 살아도, 그래도 사는 게 낫다. 그렇게 사는 사람들도 많다.’며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넸다. 최선을 다해 치료할 뿐이지 언제 낫는다는 보장도 없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자꾸 하면 더 우울해지니까 다시 걷을 생각은 아예 하지 말라는 얘기로 들렸다.
“그런 위로가 저에게 와 닿을까요? 아뇨. 재활 치료 병동이 11층이었습니다. 의사의 위로는 ‘가망이 없다’는 말과 같았습니다. 우울과 체념은 점점 깊어지고 11층에서 늘 뛰어내릴 기회만 노렸습니다. 제 남편을 사별한 곳도, 부모님이 돌아가신 곳도 이 병동이에요. 제 인생에서 2년 동안 생지옥이었습니다.”

뒤늦게 성경의 참 샘물을 마시다

“극복하기 어려웠을 것 같은데 지금 이렇게 웃고 계시잖아요. 어떻게 그 험한 길을 뚫고 일어나셨어요. 눈물이 나네요.”
“심각한 우울증이었죠. 제가 살아온 길을 설명하면 아마 믿기 힘들 거예요. 돌아가신 아버님은 군목 대령 출신의 목사님이었습니다. 아버님이 목회하실 때는 성경이 읽히지 않더라고요. 제가 병원에서 1년 동안 투병 중일 때도 ‘믿음’은 제 곁에 없었습니다. 삶의 모든 걸을 바닥에 내버렸으니까요.”
그렇게 힘겹게 투병생활을 하던 중 러시아에서 15년간 선교활동하던 동생이 귀국해 찾아왔다. 누님의 와병상태를 목도한 동생은 중병도 중병이지만 심각한 우울증 때문에 무슨 일이 벌어질까 걱정돼 매일 병원을 찾아왔다. 침대 발치에 의자 하나 놓고 매일 성경을 읽어주는 일은 하나의 수행(修行)이었다.
“그러다 정말 갑작스럽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어요. 죽을 때 죽더라도 하늘에 가서 하나님과 딱 대면했을 때 성경을 얘기하면 뭐라고 하지? 예수님이 지상에서의 신앙에 대해 묻는다면 뭐라고 답해야 하지? 아버지가 목사였지만 저는 성경을 그저 재미로 읽었거든요. 재미있는 부분만 골라 읽고 재미없으면 건너뛰고… 늘 그런 식이었어요.”
동생에게 가장 큰 활자 성경을 구입해 달라고 하자 즉시 달려왔다. 급격히 쇠진한 시력을 붙들고 창세기부터 읽어내려갔다. 재미없어 건너뛰었던 구절도 반복해서 읽었다. 그러자 어느 순간 숨이 턱 막히며 뜨거운 눈물이 성경책 위에 뚝뚝 떨어졌다. 바로 ‘욥기’였다.
“믿음 좋은 욥이 모든 걸 다 잃었지만 나중에는 몇 배의 복을 받았다는 정도만 알았거든요. 욥기를 읽어나갈수록 제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욥의 친구들도 다 믿음 좋은 원로 장로들인데, 제가 바로 그런 욥의 친구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욥의 친구들처럼 잘난 척했던 제 자신이 유리알처럼 투명하게 투영되었습니다. 저희 집안은 아버지 외에도 목사님만 일곱 분입니다. 저는 평생 목사의 딸로 살았고요. 욥기를 읽으면서 교만에 찬 진짜 제 모습을 본 거죠.”
성경은 완독하면 다시 창세기로 돌아갔다. 시지프스의 바위처럼 몇 번이고 반복하고 ‘꼭꼭 씹어 삼키면서’ 성경을 읽었다. 7시쯤이면 병원의 첫밥이 나오는데 밥 먹을 시간이 없었다. 점심 때 새로 식판이 들어오고서야 그때도 있는 아침식사를 거둬갔다. 최소 한 끼는 식사를 해야 한다지만 점심까지 거르고 성경 삼매경에 빠진 날들이 많았다. 배가 고프지 않기도 했지만 그 짧은 점심시간마저 아까웠다.
“간호사가 너무 걱정한 나머지 저녁식사라도 먹으라며 꼭 찾아와요. 그 지극정성에 결국 저녁 밥 한 술 뜨고 또 성경을 읽으면 새벽 빛이 창가에 비칩니다. 밥보다 꿀맛이었어요.”
“믿는 자에게는 곤비함이 없다고는 하지만, 밥을 굶으면서까지 몰입하면 육신이 버티기 힘들었을 텐데요.”
“허리협착으로 병원에 입원하기 전에 조금만 움직여도 기진맥진해서 침대에 누워 있어야 했어요. 그런데 그 성경을 읽으면서 크게 회개한 뒤 새로운 생명의 빛을 발견했습니다. 11층에서 조금만 몸을 내밀면 죽을 수 있지만 그 심각한 우울증까지 극복한 것이죠. 옛날 제 프로필 사진을 보면 늘 지팡이를 짚고 있는 모습이에요. 지팡이가 저를 지킨 것인데 퇴원할 때는 똥주머니 오줌주머니 차지 않고 지팡이도 없이 제 걸음으로 퇴원했습니다.”

박지향 이사장, ⓒChangho

유엔젤보이스와 함께하는 것, 은혜

그런데 인간적인 면에서 궁금한 점이 있다. 병원에서 그토록 생사를 스스로 결정하고 싶을 만큼 절체절명의 순간들이 계속된다면 귀찮아서라도 ‘유엔젤보이스’ 같은 곳에 지원을 중단하거나 해체시킬 법 한데, 박 이사장은 끝내 이끌어왔기 때문이다.
“이유가 무엇인지요?”
“저도 하루에 몇 번씩 유엔젤보이스 생각을 했지요. 제 몸이 이토록 아픈데 내가 저 아이들을 붙잡고 있을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끊임없이 밀려왔습니다. 내가 이걸 왜 갖고 가지? 그냥 그만둘까?”
달리는 한혈마(汗血馬)의 ‘등에’처럼 유엔젤보이스를 버릴 생각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일은 유엔젤보이스가 10년 이상 활동하면서 스스로 ‘굴러가는’ 시스템이 갖춰졌다는 점이다. 유럽 투어공연이 결정되면 국내 기획사와 유럽 에이전시들이 순조롭게 연결되어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매끄럽게 치러졌다. 불멍하듯 가만히 있으면 ‘이걸 왜 가져가야지’ 하는 잡념이 들다가도 원격으로나마 일을 지시하고 나면 ‘그래! 이렇게라도 유엔젤보이스 아이들과 연결이 되었으니 오늘 하루도 은혜구나’ 하면서 기도하곤 했다. 그 이상 다른 말로는 설명할 수가 없었다. 하나님의 크고 비밀한 일을 우리가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을까?
그토록 삶의 경계를 오가는 동안에도 유엔젤보이스 역시 많은 변화를 겪었다. 어쩌면 박지향 이사장의 고통을 자양분 삼아 성장했는지도 모른다. 멤버들은 대부분 2년마다 교체되곤 한다. 성악전공자들이 주류를 이루기 때문에 유학을 떠나 해외에서 아예 활동하는 친구들이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멤버들은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팬텀싱어’ 프로그램에 출연, 두각을 나타내는 친구들도 많다. 베이스바리톤 길병민을 비롯, 손태진 김민석 등이 바로 유엔젤보이스 출신들이다.
“유엔젤보이스의 본질은 여전히 클래식 발성에 있습니다. 저희 지도 교수는 한양대 고성현 교수님입니다. 마스터클래스와 강도 높은 훈련을 거치면서 아이들의 실력이 쑥쑥 성장하거든요. 오히려 학교 수업보다 더 강도 높은 레슨을 받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야 어떤 무대에서도 ‘클래식 성악’과 ‘뮤지컬 발성’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줄 수 있으니까요.”
이렇게 훈련받은 멤버들은 국내 콩쿠르는 물론 세계적인 콩쿠르에도 두루 출전, 입상의 쾌거를 거두기도 한다. 오사카 콩쿠르 등 해외콩쿠르는 물론, KBS콩쿠르 1위, 동아콩쿠르 2, 3위 등 국내 최고 경연대회에서도 곧잘 입상하기도 한다.

스타일은 변해도 순수의 본질은 변하지 않아

“그런데 점점 클래식 무대가 없어지는 게 문제 아닐까요? 무대가 사라지면 유엔젤보이스도 힘들텐데요.”
“솔직히 걱정이죠. 트로트, 힙합도 다 좋지만 8살도 안 된 어린이에게 어른들이 불러야 할 노래를 시키고 그걸 또 즐겁다고 박수치는 현상에 대해 참 걱정입니다. 물론 어린이들도 잘 부를 수 있습니다. 어른 감성 따라 하면서 ‘꺾기’도 잘하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어린이들은 그 성장단계에 맞는 감성을 가져야 해요. 초등, 중등, 고등 등 그때그때 배워야 하고 습득해야 할 감성이 있다는 거예요. 이런 문화 감성의 단계를 거치지 않고 갑자기 어른 감정을 주입시켜 돈벌이로 내모는 것은 이 사회 전체의 책임입니다.”
‘돈독’에 병든 사회는 어린이들을 위한 동요와 중고등학생들이 부를 수 있는 합창곡에 전혀 관심이 없다.
“학교에 가보세요. 합창부 다 없애고 음악 수업도 정규수업에서 제외한지 오래되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앞으로 어디로 갈 건지 걱정입니다.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문화가 돼 버렸다고 확신해요. 물론 일본을 제외하고요.”
일본의 교육은 사실상 망가지고 있다. 지나친 개방성으로 인해 학생들의 개인주의가 심해진데다 문화 자체가 퇴폐적으로 변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그 문화를 따라가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그런 문화의 오염 속에서 우리만의 순수음악을 지키기 위해 그 어떤 시류에도 쉽게 영합하지 않는, 비록 그 장르를 포용하더라도 본질을 잃지 않는 그룹이 바로 유엔젤보이스가 아닐까?
“이사장님.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진정한 한류의 특징을 생각해보았습니다. 세계 어느 누가 보더라도 유엔젤보이스는 가장 바르게 활동하는 그룹이 아닐까요? 유엔젤보이스를 이끌어가는 철학적인 기조는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스타일은 조금 변해도 본질은 변하지 않는 것’이죠.”
박 이사장은 기자의 분석에 고개를 끄덕인다. 너무 순수만 강조해도 클래식은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으로 오해할 수 있기 때문에 최근 들어 단원들의 외모에도 변화를 주고 있다. 가까이 다가와도 볼 만한 장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다. 무대에서 소화할 곡도 마찬가지다.
“훈련된 목소리에 파격적인 분장을 시도, 지난 3월 3일 롯데콘서트홀에서의 공연에서 많은 변화를 주었죠. 염색과 모던한 타이, 레퍼토리도 다양하게 했습니다. 역시나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댄디한 교회오빠 같은 이미지도 필요하지만 이제 변화할 때가 된 것 같아요.”
최근에는 뮤지컬 ‘모차르트’, ‘레베카’, ‘엘리자벳’ 등을 작곡한 실베스트 르베이 측과도 뮤지컬 넘버 10여 곡에 대해 라이센스 계약을 체결했다. 그동안 오페라와 뮤지컬을 한 무대에서 배틀 형식으로 꾸민 적은 없었다. 이제 유엔젤보이스만이 추구할 수 있는 뮤지컬 넘버를 새롭게 창조, 기성그룹과는 차별화된 무대와 안무를 활용해 오페라 아리아와 함께 화려한 공연을 펼칠 계획이다.

한때 유엔젤디바스도 선발해 운영했지만…

유엔젤보이스는 단원들이 젊을 뿐만 아니라 일정 기간 활동하면 멤버가 체인지된다. 멤버를 청년으로 유지하는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박 이사장은 유엔젤보이스의 지속성을 오페라 ‘나비부인’의 초초상이나 ‘카르멘’의 카르멘, ‘로미오와 줄리엣’의 줄리엣처럼 ‘젊음’에 두고 있다. 16세 17세가 해야 할 역할을 40대 50대가 연기하는 오페라와 같은 넌센스 공연을 지양하고 싶은 게다.
“그건 코미디일 수 있습니다. 열 여덟 풋풋한 성악가가 해야 할 역할을 40대 이상이 연기하는 것을 보고 관객이 감동할까요? 오페라는 사실상 ‘막장 드라마’가 많은데 그런 막장 드라마에서는 40대가 어울릴지 모릅니다. 노련한 성악가가 어린 모습으로 화려한 아리아 실력을 뽐낼 수는 있지만 청중이 극에 몰입할 만큼 핍진한 현실감은 주지 못할 것입니다. 유엔젤보이스가 젊은 수혈을 계속하는 데는 그런 이유가 있습니다.”
얘기가 나온 김에 그런 풋풋한 ‘나비부인’ 역을 맡을 만한 여성 가수들로 구성된 그룹도 결성할 생각은 없었느냐고 묻자, 재미있는 일화를 꺼낸다. 왜 그런 생각을 안 했겠냐는 것이다. 아니 실제 엄격한 오디션을 거쳐 5명을 선발해 ‘유엔젤디바스’를 결성, 철저한 훈련을 거쳐 2개월여 활동시키기도 했다.
“5년 전 신장암 수술 직전이었어요. 공개 오디션으로 선발했습니다. 독일 이태리 등 석박사 출신 소프라노들이 250명 이상 지원했는데 그중 일차로 7명을 뽑고 인턴기간을 마친 후 5명을 최종 선발했습니다. 그러나 이런저런 사정으로 불과 두 달 만에 해체하고 말았습니다. 무척 기대했는데 지금도 계속 아쉬움으로 남아 있습니다.”

기쁜소식, 축복을 뜻하는 유앙겔리온 줄여 ‘유엔젤’

유엔젤보이스의 모체는 전술하다시피 IT회사 ‘유엔젤’이 모체다. 회사의 탄생 배경이 궁금해서 물었다.
“남편분께서 시작한 유엔젤도 처음에는 아주 작게 시작했다고 하던데 어떻게 출범했나요?”
“신랑은 SK그룹의 1기 연구원으로 대전엑스포단지 내에서 근무했었죠. 그러다 97년 IMF가 터지면서 연구소가 정보통신대학원으로 넘어가고, 직원들은 모두 서울 마포본사와 분당으로 분산 이전했습니다. 그때 그 그룹에 잔존해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었겠지만, 신랑은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같이 일하던 팀원 5명과 함께 실평수 15평 정도의 작은 사무실에 컴퓨터 대여섯 대 놓고 사업을 시작했답니다. 처음에는 이리저리 어려움이 많았겠죠.”
회사 이름을 무엇으로 정할까 고민하던 남편은 마침 12명으로 구성된 아버님의 목사모임에 작명을 의뢰했다. 열두 개의 이름 중 가장 눈에 띄는 이름이 바로 ‘유앙겔리온’, 즉 성경에 나오는 ‘축복’ 또는 ‘기쁜 소식’이라는 뜻이었다. 그 이름을 줄여서 유엔젤이라고 정한 것인데 결국 ‘축복의 통로’ ‘수호천사’가 되기를 바라는 열망이 담겨 있었다. 그 축복은 실제 실현되었다. 창사 5년만에 코스닥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코스피로 진출, 경제신문마다 ‘혜성처럼 등장한 IT회사’라는 제목이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실로 급격하게 성장했다.
“휴대폰 컬러링과 휴대폰 자판의 문자 배열 등을 개발하면서 일종의 돌풍을 일으킨 거죠. 회사의 재정 규모도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면서 남편은 쉴 틈이 없었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박지향 이사장은 성가대원들과 환우를 위한 음악회 등 다양한 병원 봉사활동을 펼쳤다. 회사가 정상가도를 걷자 남편은 아내가 봉사활동을 본격적으로 펼칠 수 있도록 재단법인 설립을 도와주었다. 마침내 2008년 재단법인 승인을 받고 본격적인 ‘유엔젤보이스’ 그룹의 활동이 시작되었다.
“봉사활동으로 출발했지만 제가 일을 크게 벌린 것이죠. 아마 남편에게는 철없는 짓이었을 거예요. 오디션으로 유엔젤보이스를 결성하자, 마치 초창기 유엔젤 회사가 거침없이 성장하듯 저희 아이들도 쑥쑥 성장했습니다. 예술의전당에서도 공연하고 유럽투어도 다녀오곤 했죠.”
그때마다 남편이 후원금을 조달했다. 박 이사장은 유엘젤보이스가 일반기획사 같으면 열 번도 더 망했을 것이라고 한다. 더구나 음반을 출반해 홍보를 해놓으면 단원들이 유학 등 다양한 이유로 떠났기 때문에 지속성에는 늘 한계에 부딪혔다.
“단원들이 바뀔 때마다 서운하지 않았어요?”
그렇지는 않단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란다.
“창단 때부터 그랬습니다. 열심히 훈련하고 무대에 설 만하다 싶으면 유학을 떠가거나 군대, 직장 등 다양한 이유로 탈퇴하곤 했으니까요. 떠나는 것이야 서운할 게 없지만 누구나 그렇듯이 떠난 다음 연락이 없을 경우에는 좀 아쉽죠. 그런데 제가 다시 건강을 회복한 다음에는 그마저도 서운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장님 열 명을 눈 뜨게 해주었지만 단 한 명도 찾아오지 않았거든요. 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살리고 깨달음을 주었지만 연락한 사람은 많지 않았으니까요.”
물론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다. 특히 가장 고생을 많이 한 1기 멤버들은 아예 ‘엄마’라고 부를 만큼 살갑다. 파리와 이태리 등지에서 활동하다가도 한국에 오면 항상 ‘엄마’를 찾는다.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이 열리는 법

유엔젤보이스는 올해로 14년째를 맞지만 늘 새로운 길을 개척해야 한다. 어쩌면 인생이 그렇듯….
“맞아요. 세상이 많이 변했잖아요. 요즘은 음원 녹음만으로는 홍보에 한계가 있어 유튜브 영상송출이 굉장히 중요한 미디어가 됐습니다. 그래서 안무연습실이나 촬영실을 대여하는 일도 만만찮아요. 우리를 반겨줄 촬영실과 연습실을 늘 찾아야 하는 숙제가 놓여있었는데 다행히 자체적으로 화보촬영까지 원스톱으로 해결할 수 있는 장소를 마련했답니다.”
단독주택을 임대해 대대적으로 리모델링, 지하는 안무 및 연습실, 1층은 교육실, 2층은 영상촬영실로 꾸미고 40석 미니콘서트홀도 마련했다. 나아가 메타버스콘서트홀과 플랫폼은 유엔젤 본사에 구축하고 있다. 그야말로 광속시대의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이야기가 종착역을 향해갈 때쯤, 박 이사장의 일상을 가장 지근 거리에서 지켜보고 있는 신상진 감독에게 이사장님은 유엔젤보이스에게 어떤 분인지 물었다. 신 감독은 유엔젤보이스 1기 리더출신이다.
“이사장님은 처음이나 지금이나 너무 겸손하세요. 정말 친자식들처럼 아껴주십니다. 과시용 액세서리나 의류, 가방 등 그 어떤 것도 사치스러운 제품을 사지 않아요. 그 비용으로 한 푼이라도 문화예술인들을 후원하는데 사용하시는 편이죠. 저는 이사장님이야말로 이 시대의 ‘메디치’라고 생각해요.”
신 감독은 유엔젤보이스의 창단 계기를 언급한다. ‘영혼까지 갈아서 배울 만큼’ 성악을 공부해도 성악가들이 국내 예술의전당이나 세종문화회관, 오페라하우스 등에서 공연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전공자들에게 ‘저 꿈의 무대’는 그저 환상일 뿐이다.
“이사장님은 그런 현실을 안타깝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젊은 성악가들이 무대를 가질 수 있을까 고민하다 음악인들의 무대경험, 역량강화를 위해 이 일을 시작한 것이거든요. 재단 설립 이전부터 그런 고민을 하셨습니다. 그 당시 수많은 학생들을 후원하기도 했었고요. 특히 유엔젤보이스 단원들이 받은 혜택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저는 1기 리더였기 때문에 유엔젤보이스에서의 경험만으로도 사회생활에서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박지향 이사장은 신 감독의 설명에 멋쩍은 듯 미소를 짓고 말을 잇는다. 유엔젤보이스를 통해 돈을 벌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기에 그저 ‘My Pleasure!’ 은혜로만 생각했다고 말한다. 이제 그 은혜는 신상진 감독으로 이어지고 있다. 아이들을 더 잘 이끌려면 문화예술에 대한 전문적인 공부를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늦은 나이지만 문화예술학 박사학위도 취득했다. 하지만 몸이 옛날만큼 자유롭지 못하기에 신상진 감독의 도움이 얼마나 큰지 모른다.
“신 감독이 일주일에 한 차례씩 도와주었지만 지금은 거의 매일 함께 하고 있어 유엔젤보이스의 앞날이 밝습니다. 이제 저 혼자가 아니라 ‘우리’가 되어, 어떤 일도 헤쳐나갈 것입니다. 성경에도 말씀하셨잖아요. 예수님께서는 늙고 병든 과부와 고아를 도와주라고 했는데 우리 신상진 감독은 분명 큰 축복을 받을 거예요.(웃음) 오늘처럼 대표님 만난 것도 은혜입니다.”
육신의 고통이 비를 애타게 기다리는 마른 땅의 찢어짐처럼 계속 될 때마다, 유엔젤보이스의 존립 문제로 고민하곤 했다. ‘이 일을 그대로 접어야 하는 건 아닌가?’ 그러나 한쪽 문이 닫히면 한쪽 문이 열리는 법이다. 죽도록 힘들 때 성경을 통해 은혜가 찾아왔고, 몸이 지칠 때 젊은 지도자가 나타나 유엔젤보이스가 젊은 피로 수혈되고 있다.
이제 유엔젤보이스는 새롭게 태어날 것 같다. 안무와 함께 펼쳐지는 단원들의 엄청난 합창 연습 때문에 거의 소음 속에서 진행한 인터뷰였지만, 칵테일 효과처럼 박 이사장의 목소리는 이상하게도 분명하게 들렸다. 인터뷰마저 은혜로웠다. 유엔젤보이스의 앞날에, 박 이사장의 앞날에 축복이 있길 기도한다.

글 김종섭

https://uangelvoic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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