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와 화해의 오페라, 키즈오페라 ‘소리마녀의 비밀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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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와 화해의 오페라

키즈오페라 ‘소리마녀의 비밀상자’

8월 15일(일) 오후 2시 세종문화회관 꿈의숲 퍼포먼스홀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욕심이 지나치면 그렇다. 내 친구의 재능이 욕심이 나서 친구 재주의 모든 것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을 때가 있다. 아니 그게 정상이다. 욕심을 누가 나쁘다고 할 수 있겠나. 심리학에서도 ‘인간이 일으키는 실수’는 인간을 인간 되게 하는 하나의 ‘인간 요소’(Human Factor)에 불과하다고 한다. 항공기 사고 원인 중 기계적 결함은 11%에 불과하지만 인간의 부주의, 욕심, 무능, 비겁, 어리석음 등 인간의 실수가 73%에 달한다 하지 않은가.

따라서 지나친 욕심으로 인한 사고가 발생한다면 그 욕심쟁이만을 탓할 수 없다. 당신도 환경만 조성된다면 언제든 그런 욕심꾸러기로 표변할테니…

문제는 깨달음의 순간을 맞이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 욕심이 지나쳤구나’ ‘문제의 원인에는 내 욕심에 있었구나’ 하는 ‘인간요소’를 발견하면 얽히고설킨 실타래도 시간이 흐르면서 딸기잼 뚜껑 열리듯 ‘뻥’하고 풀리게 된다.

한국네덜란드음악교류협회(회장 김미영)가 제작한 키즈오페라 ‘소리마녀의 비밀상자’(대본 박나경, 작곡 오이돈, 연출 최대용)는 어린이들이 봐야 할 공연이라지만 인간관계의 순리를 위해 우리가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보여주는 좋은 드라마가 아닐까? 8월 15일 꿈의숲아트센터에서 펼쳐진 이 오페라의 등장인물은 모두가 욕심쟁이들이다.

오직 자신의 노래 실력만 믿고 항상 최고의 대우를 원하는 ‘나디바’(소프라노 정시영) 욕심쟁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나디바를 위해 정렬해야 한다는 인정욕구의 욕심쟁이 ‘오비서’(바리톤 최정훈), 수준 낮은 다른 여섯 음들과 함께 놀기에는 자신의 재능이 너무 아깝다고 생각해 자신의 파트 ‘솔’에서 과감히 이탈, 최고가 되고 싶은 욕심쟁이 ‘최고솔’(소프라노 송난영)이 그들이다.

이들은 한 가족과 같은 집단이지만 각자의 욕심 때문에 조용할 날이 없다. 그러니 아름다운 음악 역시 나올 리 없다.

집을 뛰쳐나온 최고솔은 어디로 갔을까? 남의 집에 불이 나면 그 기회를 틈타 구멍 난 냄비를 때우는 난이취지(亂而取之)의 달인이 등장한다. 최고솔이 찾아간 곳은 공교롭게도 욕심의 주파수가 딱 들어맞는, 소리 욕심쟁이의 달인인 ‘소리마녀’(소프라노 박은정)였다. 소리마녀는 세계 최강의 마녀가 되기 위해 아름다운 소리들을 채집해 비밀상자에 담아오던 중 최고솔을 만난 것.

결국 최고솔이 소리마녀의 유혹에 넘어간 사실을 안 나디바는 최고솔을 두고 소리마녀와 한판 대결을 펼친다. 청중의 박수를 더 크게 받는 사람이 최고솔을 차지하기로 한다.

그러나 오페라는 결정적인 순간을 맞는다. 나디바와 소리마녀는 서로 얼굴을 바라보고 어린 시절 서로를 위로해주던 친구 사이였다는 걸 깨달으며 오페라는 해피엔딩으로 미끄러져 간다.

어린 시절을 공유했다는 건 중요한 연결끈으로 작동한다. 지금은 욕심 많은 사람으로 변했더라도 다시 옛 시절로 금세 돌아갈 수 있는 까닭이다. 한쪽이 힘들고 외로울 때 등을 다독여주고 위로하던 사이… 소리마녀는 모든 소리를 비밀상자에서 꺼내 모두에게 나눠주며 가장 아름다운 합창으로 마무리한다.

알프레드 아들러는 뒤틀린 욕망으로 옳지 않은 목표를 위해 펼치는 모든 행위를 ‘인생의 거짓말’(life lie)이라고 정의한다. 누구나 거짓말쟁이가 될 수 있지만 자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파렴치이거나, 거짓말임을 알면서도 끝까지 가던 길을 고집하는 것은 아무리 재주가 많아도, 아무리 아름다운 노래를 불러도 영혼을 악마에 팔아넘기고 악마적 트릴을 구사하는 타르티니에 불과하다.

작은 오페라 ‘소리마녀의 비밀상자’는 ‘잘못을 깨닫거든 고치지를 꺼려하지 말라’는 논어의 말씀을 되새김질하게 만든 드라마다.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인간은 도구로서 인식되지 않아야 그것을 도구로 선택한다’고 했다. 욕심쟁이들의 특징은 자신이 ‘욕심’이라는 악마의 희생양, 즉 일시적인 도구로 사용된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이 그 악마의 희생양이 된다는 생각이 들어야만, 다시 온전한 인간성을 회복하는 길이 열린다.

이 드라마를 통해 인간성을 회복하는 인물 중 단연 으뜸은 소리마녀. Arditi의 Il bacio(입맞춤)을 부를 때는 박수를 최대치로 끌어들이기 위해 무리하게 박수를 유도해내는 모습이 마녀(?)다웠다. 그리고 워낙 각선미가 뛰어나 소리마녀를 ‘마녀’가 아니라 ‘미녀’로 착각했다.

나디바 정시영도 소리마녀와 곧 화해하게 된다. 그는 베르디 오페라 라트라비아타 중 비올레타의 ‘Sempre libera’ 일부분을 부른 데 이어, 소리마녀와의 대결에서는 마이어베어 오페라 디노라 중 ‘Ombre légère’로 절묘한 창법을 자랑하며 도도한 자태를 잃지 않았다.

‘세빌리아의 이발사’의 피가로 역할처럼 극을 끌어간 오비서 역의 바리톤 최정훈의 능청스러운 연기는 또 어떤가. 그야말로 어린이 그대로의 모습을 연출한 최고솔 소프라노 송난영의 앙증맞은 노래와 연기도 이번 오페라를 맛깔스럽게 했다.

작은 오페라다. 그러나 보는 시각에 따라서 어린이들에게는 따돌림의 세계를 반추하는 계기로, 어른들에게는 용서와 화해란 그리 어렵지 않다는 교훈을 주기에 충분한 드라마였다.

글 김종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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