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트와 라흐마니노프의 완벽한 빙의 그 이상! 미국 반 클라이번 국제피아노콩쿠르 최연소 우승, 임윤찬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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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18세, 전 세계가 놀란 피아니즘
‘어떤 난곡을 마주쳐도 가장 효율적으로 준비하고 투명할 정도로 선명하게 나타나는 음색, 음악 속으로 맹렬히 파고드는 집중력과 듣는 이의 호흡을 무차별하게 사로잡는 연주자로서의 모습, 음악적 사고와 열정을 바탕으로 한 무한한 테크닉, 상상력, 표현력, 시적인 섬세함, 그리고 그것들의 조화를 만들어내는 균형 잡힌 지성… 윤찬 군은 음악가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이 조화를 이루어 성장해 나가고 있다.‘
지난해 한 매체에서 당시 5년여 동안 임윤찬을 지도해온 피아니스트 손민수 교수는 그렇게 평했다. 이번 반 클라이번 국제피아노콩쿠르와 관계없이 이미 임윤찬은 클래식계의 스타였고 시쳇말로 ’괴물 피아니스트‘였다. 지난 2021년 하우스콘서트 신년음악회로 임윤찬을 초청한 ’하콘‘ 박창수 대표는 임윤찬 군에 대해 ’신인류의 발견‘이라고 격찬했다. 그가, 특별히 콩쿠르에 욕심이 없던 그가 반 클라이번 국제피아노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해 온 국민에게 행복을 주고 있다.
우승을 발표하던 날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휴게소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있을 때 문자 메세지가 연달아 세 개가 진동했다. 통영국제음악재단과 금호문화재단, 목프로덕션 등에서 거의 비슷한 시간에 비슷한 보도자료를 동시에 보낸 것이다. 사실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단지 다른 매체보다 기사를 빨리 작성해 인터넷신문 ‘아이리뷰’(월간리뷰)에 올려야겠다는 생각에 내심 기다리고 있었던 보도자료들… ‘피아니스트 임윤찬 미국 반 클라이번 국제피아노콩쿠르 우승’ 또는 ‘금메달’이라는 제목에 커피를 던지고 노트북을 켰다.
물론 인터넷 기사뿐만 아니라 페이스북에 올렸으며 블로그에도 빠르게 올렸다. 그러던 중 이번 콩쿠르에 우승할 것 같다는 임윤찬의 스승 피아니스트 김경은과의 대화가 떠올랐다. 엊그제 만난 우리는 이미 임윤찬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눈 터였다.
워낙 많은 매체에서 다루었기에 이번 반 클라이번 국제피아노콩쿠르에 대해서는 잘 알 것이다. 복기하자면 임윤찬은 미국 포트워스에서 열린 2022 미국 반 클라이번 국제피아노콩쿠르에서 1등상인 금메달을 차지했다. 현재 만 18세의 나이이기에 그가 앞으로 펼칠 피아노의 세계는 그 어떤 거장보다 큰 기대를 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반 클라이번 국제피아노콩쿠르 60년 역사상 최연소 우승자로서 이번 콩쿠르 자체가 기념비적인 역사로 기록될 일이다.
임윤찬이 국제 클래식계에 두각을 나타낸 것은 지난 2019년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 쯤이 아닐까. 당시 만 15세 나이로 역대 최연소 우승을 차지해 한마디로 센세이셔널한 반응을 일으켰다. 사실 그때부터 임윤찬은 세계적인 연주자로서의 서광을 내비친 것이다.
그러나 ‘꽃은 하루아침에 피는 게 아니라’고 했다. 이미 임윤찬은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 이전부터 클래식계에 핫한 이슈를 불러일으킨 피아노 스타였다.

금메달 이외에 비벌리 테일러 스미스 특별상 등도 수상
반 클라이번 국제피아노콩쿠르는 지난 6월 2일부터 18일까지 진행됐다. 이번 우승으로 임윤찬은 상금 10만달러(한화 약 1억 2천 900만원)와 음반 녹음, 3년간의 국제 활동 매니지먼트 지원과 세계 투어 공연 등의 혜택을 받게 된다.
임윤찬은 금메달만 받은 게 아니다. 현대곡을 잘 연주한 경연자에게 수여하는 비벌리 테일러 스미스 특별상과 중계방송 시청자들의 투표로 선정하는 카를라&켈리 톰슨 청중상도 함께 수상했다. 2019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 우승 당시에도 박성용 영재특별상과 청중상인 유네스코음악창의도시특별상을 함께 받은 바 있다.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실력을 갖춘 천재 피아니스트이다.
임윤찬의 수상이 얼마나 기뻤던지 통영국제음악재단 대표를 역임했으며 이번 콩쿠르를 현장에서 참관한 플로리안 리임 국제콩쿠르세계연맹 사무총장은 입상자가 발표된 직후 페이스북부터 열고 축하세메시를 즉석에서 써 내려갔다.
“3년 전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에서 우승했던 임윤찬이 오늘 또 한 번 파란을 일으켰습니다!”
임윤찬은 결선에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3번과 더불어 2019 윤이상국제콩쿠르 결선에서 연주했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연주해 청중의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었다.
이쯤에서 간단히 반 클라이번 국제피아노콩쿠르에 대해 알아보자. 냉전 시절인 1958년 소련에서 열린 제1회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미국인 피아니스트 반 클라이번(1934-2013)이 우승을 차지했다. 냉전시대 소련에서 미국인이 우승했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화제가 되었다. 더군다나 피아노교육은 러시아의 피아니즘이 세계 최강을 자랑하고 있던 때였다. 이 영광의 우승자 반 클라이번의 이름을 딴 콩쿠르가 바로 반 클라이번 국제피아노콩쿠르다. 이번 2022년 콩쿠르에서는 예선에서 51개국 388명이 지원했다. 그중 비디오와 서류심사를 통해 30명만이 1번째 라운드에 진출했고 그중에서도 2번째 라운드까지 진출한 사람은 단 18명에 불과하다. 명실상부한 위상과 권위를 입증하듯 쟁쟁한 실력자들 사이에서도 최고만을 골라내는 것이다. 미국을 대표하는 이 피아노콩쿠르의 한국인 최초 우승자는 2017년 선우예권이다. 임윤찬은 그 두 번째인 셈이다. 그럼에도 선우예권 당시보다 이번 수상이 화제가 되는 것은 임윤찬 군이 최연소로 입상, 계속 파란을 일으킬 연주자이기 때문이라는 게 피아노계의 해설이다.

손민수 교수, ‘윤찬 군 기억을 만들어내는 음악가’ 격려
임윤찬의 수상에 대해 수많은 사람들이 우선 축하하고 나섰다. 특히 영재원 시절부터 임윤찬 군을 지도하기 시작한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손민수 교수는 ‘윤찬 군은 기적을 만들어내는 음악가’라고 말했다.
“아무리 힘든 순간이 오더라도 굽히지 않고 음악에 진실되게 혼을 담아내는 윤찬이의 마음을 존경합니다. ‘천재’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기 쉽지만, 그 뒤에 숨어있는 그 피땀 어린 노력은 인간 정신의 위대함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열정이라는 단어의 진정한 의미인 것 같습니다. 러셀 셔먼과 변화경 선생님으로부터 물려받은 횃불이 윤찬이를 통해 활활 타오르고 있는 것을 보며 감격하고 있습니다. 한 예술가의 밑거름이 되어준 한국예술종합학교가 자랑스럽고요. 그리고 윤찬이는 피아노 세계에 큰 획을 긋는 삶을 살아가리라 믿습니다.”
임윤찬은 이미 오래전부터 클래식계의 아이돌 이상으로 연주회 때마다 늘 매진이었을 만큼 인기가 많았다. 한국의 대표적인 피아니스트 송영민과 하우스콘서트의 대명사격인 박창수 대표, 작곡가 성용원 등이 이미 높이 평가한 바 있으며 수많은 음악인이 임윤찬의 실력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토마토클래식TV의 이윤민 제작팀장 역시 임윤찬을 초청해 연주회를 개최한 바 있어 그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누구보다 임윤찬의 수상 소식에 기쁨의 눈물을 흘린 스승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재아카데미 입학 당시부터 가르치기 시작했던 피아니스트 김경은이었다.

8살 때부터 가르친 피아니스트 김경은의 회고담
“윤찬이가 8살이 되던 1월 영재아카데미에 입학했을 때부터 제가 배정받아 가르치기 시작했어요. 예원 졸업할 때까지 꾸준히 가르쳤으니 8년은 가르친 셈이죠. 그리고 영재원에 입학했습니다. 예원 2학년 때부터는 더 폭넓은 교육을 위해 다른 교수님께도 병행해서 배우도록 했지만, 상당히 오래 가르쳤어요. 그뿐만 아니라 여러 교수님에게 윤찬이를 소개하면서 그때그때 마스터클래스를 받도록 노력했답니다.”
임윤찬은 2017년 예원 입학 당시 예원학교 교육에 더해 토요일마다 영재원에서 더 깊이 있는 공부를 하는 게 좋겠다는 김경은 선생님의 판단에 따라 영재원에 입학, 피아니스트 손민수와 인연을 맺은 것이다. 임윤찬의 실력은 초등학교 4학년, 당시 영재아카데미를 다녔을 때 금호영재 최연소로 오디션에 합격함으로 실력이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6학년 때 다시 한번 금호영재 오디션에 합격, 두 차례에 걸쳐 금호영재가 되기도 했다. 전례 없는 일이었다.
예원학교에서도 임윤찬의 피아노 연주능력은 탁월했다. 전체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협연자 오디션에도 합격, 롯데콘서트홀에서 개최된 정기연주회에서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3년을 협연해 화제가 되었다.
“언론에 혹자들은 영재아카데미에 입학했을 때 악보를 읽지 못했다는 둥 오해할 만한 이야기들이 나오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영재아카데미에 입학했을 때 불과 8살인데 악보를 금방 읽는 것은 아니죠. 그건 특별히 윤찬이만 그런 게 아니라 누구나 처음에는 악보를 완벽하게 읽는 게 아니거든요. 그런데 이런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제가 가르치기 시작한 지 불과 몇 개월 만에 국내 삼익콩쿠르에서 1등을 했다는 사실이에요. 이미 피아노 영재였던 것이죠. 그때 윤찬이가 참 남다른 재능을 가졌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꼭 제가 가르쳐서 입상했다는 말은 아니에요. 이미 재능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실력이 쑥쑥 성장하는 가운데 영재아카데미를 다니던 초등학교 4학년 때 금호 영재에 도전해 최연소로 합격했다. 김경은과의 사제의 관계는 예원에까지 계속 이어지고 역시 영재아카데미의 연속선에 있는 영재원에 입학해서도 꾸준히 지도했다.
“예원과 영재원에 다니면서 아무래도 저 혼자에게 배우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해 다른 교수님께 연결해주었습니다.”
그 사이 2018년에는 세계적인 주니어콩쿠르인 클리블랜드 청소년 피아노 국제콩쿠르에서 2위와 쇼팽특별상을 차지하고, 미국의 쿠퍼국제콩쿠르에도 출전해 최연소 참가자를 기록하며 3위 및 청중상을 수상해 세브란스홀에서 클리블랜드오케스트라와 협연하기도 했다. 국제콩쿠르 이전에도 음악저널콩쿠르, 예원콩쿠르, 음악춘추콩쿠르, 모차르트한국콩쿠르 등 국내 콩쿠르 등을 모두 석권했다.
그의 이런 실력은 곧 많은 후원단체의 관심을 갖게 돼 KT&G 장학재단 메세나음악장학생, 대원문화재단 장학생으로 지원받았고 2020년부터는 현대차정몽구재단 장학생으로 선발되기도 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국내 클래식계를 깜짝 놀라게 하는 사건은 역시 2019년도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였음은 부인할 수 없다.

두 차례 금호영재 발탁 등 이미 영재성 보여
김경은은 그 우승에 한이 풀렸다고 토로했다. 김경은은 8세 때 예후디 메뉴인 음악학교에 입학해, 퍼셀음악학교를 거쳐 줄리어드음대에서 학사 석사를 마치고 뉴욕맨하탄 음대에서 최고연주자과정과 박사학위를 취득하기까지 오직 피아노만 공부하고 연주해왔지만 국제콩쿠르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김경은은 한국에서 제대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국제콩쿠르에 입상해야 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크게 후회하고 있던 차였다.
“국제 콩쿠르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처음 한국에 귀국했을 때 제자를 양성한다면 무조건 국제콩쿠르에 내보내기로 마음먹었거든요. 한국에서는 어쨌든 콩쿠르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음악가라면 모두 알 거예요. 오죽하면 제자가 국제콩쿠르에서 1등상을 받는 게 제 꿈이 되겠어요.
김경은은 임윤찬을 가르치면서 여러모로 놀라운 점을 발견했다. 어린 나이에 비해 무리하다 싶은 테크닉 관련 곡을 제시하면 금방 소화해냈다. 그것도 한두 곡이 아니라 다양한 곡을 과제로 내주면 힘들이지 않고 해냈다. 초등학교 3학년인 불과 10살 때 이미 쇼팽 에튀드를 하나씩 정복하더니 전국을 연주했을 때 김경은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래서 난다 긴다 하는 영재아이들이 모이는 금호영재에 도전했고, 그것도 한번이 아니라 4학년, 6학년 때 두 번씩이나 합격한 것이지요.“
김경은은 임윤찬의 재능으로 보아 나이는 어리지만, 일찌감치 협연을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협주곡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윤찬이를 처음 맡았을 때는 너무 어려운 곡을 시키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 나이에 소화할 수 있는 곡들을 다양하게 제시했던 이유 중 하나가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키도 작았고 손도 작았기 때문입니다. 4학년 때 금호영재에 도전했을 때만 해도 어려운 곡이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5학년부터 폭풍 성장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레퍼토리도 크게 확장되었죠.“

세상에서 제일 좋은 것은 피아노 연주
김경은은 윤찬 군의 영재성을 가장 가까이에서 접한 스승이다. 임윤찬은 일찍부터 피아노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다고 술회한다.
”윤찬이는 하나를 가르쳐주면 실제로 열을 해와요. 보통은 어릴 때 바이엘, 체르니 이런 통상적인 곡부터 시작하잖아요. 그런데 윤찬이는 하이든을 연주했거든요. 윤찬이 생일 때 어머니가 무얼 사줄까 하고 물었을 때 윤찬이는 우르텍스트판 ‘하이든 소나타’를 선물해달라고 할 정도였어요. 그 말을 듣고 정말 놀랐거든요. 어떻게 이런 어린 나이에 악보를 갖고 싶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첫 소나타 악보를 받았다고 너무 좋아했는데 그 모습을 보고 저 또한 너무 행복했답니다.“
이처럼 임윤찬은 보통 나이에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곡들도 자주 공부했다. 스크리아빈 작품도 김경은이 준 곡이 아니었다. 본인이 그 곡을 연주하고 싶다고 스스로 선택했다. 이런 윤찬이의 재능을 간파한 그는 또래 아이들이 별로 치지 않는 드뷔시나 바흐 작품 등 점차 어려운 작품도 가르쳤다.
”윤찬이는 음악에 관한 한 편식이 없습니다. 곡들도 국가가 서로 다른 다양한 작곡가들의 작품을 두루 다루었거든요. 너무 피아노만 연주할 때면 제가 부러 주말에는 좀 피아노에서 벗어나 놀고 와도 된다고 해도 윤찬이는 피아노를 치는 게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실제 학교에서 돌아오면 제일 먼저 가방을 던지고 곧바로 피아노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만큼 피아노를 좋아하는 임윤찬이다. 오죽하면 산속에 가서 피아노만 치고 싶다고 했을까?
임윤찬에게는 그대로 ‘매튜의 법칙’이 적용한 것 같다. 지식을 쌓으면 그 지식이 새로운 지식을 쌓게 하고 점점 더 깊은 지식을 갖게 되는 원리이다. 임윤찬은 어떤 곡을 주든 다음 레슨에는 모두 암보해왔다. 레슨의 속도가 빠를 수밖에 없었다. 열심히 익힌 곡은 그냥 쌓아놓고만 있지 않았다. 김경은은 이를 토대로 다양한 연주경험을 위해 초등학교 3학년부터 서초동 코스모스아트홀 등에서 미니 독주회 등을 계속 마련해주었다.
”아마 코스모스악기 심일권 전무님도 윤찬이를 잘 아실 거예요. 자주 연주회를 했으니까요. 이런 무대 경험은 또다시 새로운 곡을 공부하고 싶은 욕심을 일으켰습니다. 일종의 연쇄작용이죠.“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에서 최연수 우승 차지
이쯤에서 잠시 2019년 윤이상국제콩쿠르 당시를 회고해 보자. 통영국제음악재단의 이용민 대표는 당시 임윤찬의 연주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고 말한다.
”기억하죠. 예원학교 다니는 학생이었는데 고등학생 이하의 어린이들이 입상한 경우가 두 번 있었습니다. 한번은 부산에서 온 부산예고 1학년 학생이고 두 번째는 윤찬 군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윤찬 군은 서울예고나 선화예고도 아닌 이제 어린 예원학생이라는 것입니다. 그때 그동안에 제가 갖고 있던 모든 선입견이 깨졌습니다. 영재는 나이와 무관하다는 것입니다. 윤이상콩쿠르는 세컨드 라운드를 거친 후 결승으로 갑니다. 그런데 예심은 논외로 치더라도 첫 라운드에서 임윤찬이 이미 1위를 했습니다. 지금은 다 지났으니까 이야기를 할 수가 있지만, 그 친구가 너무 잘해서 심사위원 모두 깜짝 놀랐어요. 세컨드 라운드에 갔을 때도 아마 1등을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래도 그때까지는 약간의 ‘파란’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결선에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하고 압도적인 점수로 1등을 차지한 겁니다. 실로 파란을 일으켰습니다. 당시 콩쿠르가 20년이 다 되어가는데 그때 제가 그랬습니다. 야! 우리 콩쿠르에서 제대로 된 ‘인물’ 한 명 나왔다고 소리치며 흥분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저희 콩쿠르는 아시다시피 국제콩쿠르연맹에 등재한 세계적인 콩쿠르입니다. 그러니 흥분하게 되죠.“
이용민 대표는 콩쿠르가 끝난 후 임윤찬을 보고 두 번 놀랐다고 말한다. 심사위원들과 미팅 후 부모님들과 인사 나누었다. 마침내 1등을 차지한 어린 영재는 발견한 이용민 대표는 축하인사를 건넸다. 축하인사를 해도 수줍어한 나머지 ‘네’ 하고 간단히 말할 뿐 자기표현을 애써 내색하지 않았다.
”그때 제가 했던 축하 멘트를 기억합니다. ‘너는 앞으로 정말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될 것 같다. 그런데 지금부터 시작이다. 앞으로 많은 난관들이 있겠지만 그때마다 정신적으로 무장하고 잘 견뎌야 한다.’고 했습니다.“

임윤찬을 둘러싼 다양한 인연들의 기억
TLI아트센터의 박평준 관장 역시 임윤찬의 실력을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박 관장은 심지어 임윤찬의 손을 통해 신이 강림했다‘고 평했다.
”우리 홀에서도 이미 임윤찬 군의 초청연주회를 개최한 바 있습니다. 그때로 너무 연주를 잘해 진행진들이 모두 놀랐던 기억이 있어요.“
토마토클래식TV의 이윤민 제작팀장 역시 임윤찬에 대한 남다른 기억을 갖고 있다. 윤찬 군을 처음 만난 것은 지난해 11월 6일 포항음악제때였다. 스승 손민수 교수와의 듀오무대였다. 당시 모리스 라벨의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라발스‘를 연주했는데 호흡과 균형 면에서 흠잡을 수 없을 만큼 완벽하게 연주하는 모습에 감동했다.
”연주가 전혀 어색하지 않고 오히려 음악을 빛나게 했습니다. 카메라로 보았던 긴 앞머리 속에 숨겨진 강렬한 눈빛이 아직도 선하게 기억에 남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만남이 11월 20일에 이어졌습니다. 정나라 지휘자의 지휘 아래 경기필하모닉과 라흐마니노프 3번 협주곡 연주했을 때였습니다. 리허설 때 깜짝 놀랐습니다. 같이 있던 후배 피디와 함께 ‘제2의 조성진’이 왔다고 얘기했거든요. 저희 둘 다 피아노 전공이기 때문에 윤찬 군에게서 말할 수 없는 비범함을 느꼈습니다.“
당시 윤찬 군은 본인이 음악을 리드하려는 듯 템포가 빠르고 번득이는 그런 부분들도 간혹 있었지만, 정나라 지휘자는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의 밸런스를 잘 맞춰 나가면서 라흐마니노프의 엄청난 테크닉과 아름다운 음악성을 너무 잘 표현하게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얼마 전 2022년 5월 18일이에요. 토마토홀에서 윤찬 군 리사이틀이 있었습니다. 이번 반 클라이번 국제피아노콩쿠르에 출전하기 전이었죠. 윤찬 군의 음악은 확실히 지난해보다 훨씬 성숙되어 있었습니다. 프로그램은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스크리아빈 등 시대별 다양한 작곡가들의 곡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양한 작곡가들의 각각의 느낌을 너무 잘 살려내는 거예요. 예를 들어 첫 곡 ‘스티븐 허프의 팡파레 토카타’는 사실 처음 듣는 곡이었는데, 윤찬 군과 굉장히 잘 어울렸습니다. 쇼팽 (Variations On “La ci darem la mano”, Op.2 )변주곡과 베토벤 영웅 변주곡의 어려운 테크닉들도 너무 잘 연주해서 그동안 얼마나 연습했을까 상상할 수 있었죠. 당시 영상 연출하면서 ‘이렇게 피나는 노력을 해서 윤찬 군 본인의 음악을 완성하는 성취의 기쁨을 잘 느끼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거든요.“
이윤민 제작팀장은 특히 청중들에게 수줍게 인사하지만 연주를 일단 시작하면 순식간에 몰입하는 그 눈빛이 생생하다. 아마도 당분간 윤찬 군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지 않을까?
이 팀장은 세 번의 만남을 통해 임윤찬과 정이 들었는지 모른다. 반 클라이번 국제피아노콩쿠르 파이널 경연을 보면서 울고, 우승 소식을 듣고 또 울었다고 고백한다.
”연주가 너무 좋아서이기도 하지만 윤찬 군의 알 수 없는 그 무언가가 나한테 전해졌던 것 같았습니다. 너무 대단하고 대견해요. 앞으로도 지금처럼 열심히 정진해서 세계적으로 더욱 빛나길 응원합니다.“
임윤찬은 지난해 4월 14일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에서 최희준 지휘자가 이끄는 수원시립교향악단과 협연한 바 있다. 당시 예술의전당 송성완 본부장은 임윤찬 군은 교향악축제 최고의 기대 공연 중 하나로 손꼽혔다고 기억하고 있다.
”‘괴물 신예’라는 별명처럼 어떤 연주를 들려줄까 음악팬들의 관심이 뜨거웠습니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2번에 이어 앙코르로 라흐마니노프의 라일락을 들려주었죠. 많은 음악팬의 기대처럼 임윤찬은 이날 수준 높고 성숙한 연주를 들려주었습니다. 주눅 든 기색 없이 자신이 준비한 모든 걸 오롯이 쏟아붓는 듯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악보에 담긴 작곡자의 의도든 본인이 채워야 할 여백이든 모두에 적용되는 것이었습니다.
교향악단의 연주 흐름에 동화되던, 최근 콩쿠르 연주 영상에서도 보여주었던 피아노 앞의 모습은 작품의 천진함과 서정적인 낭만, 품격과 유머의 반전도 조화시킬 줄 아는 노련함을 증명하는 듯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며 입혀질 관록이 더해지면 어색해 어쩔 줄 몰라 하던 커튼콜에서의 소년이 아니라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우리 시대 거장이 되어 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예술의전당 유튜브 채널에 올라와 있는 교향악축제 연주를 거듭해 들어봤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대단했던 공연이었죠.“

피아니스트 송연민이 말하는 피아니스트 임윤찬
피아니스트 송영민 역시 임윤찬과 각별한 인연을 맺고 있다. 본인이 윤찬 군을 직접 초청해서 독주회를 개회하기도 했기에 이번 콩쿠르 내내 윤찬 군의 연주를 지켜보았다. 피아니스트 송영민과 윤찬 군과의 인연과 콩쿠르 관전기를 들어보자.
’윤찬 군을 처음 본 건 그가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에서 막 우승한 뒤였습니다. 임윤찬이라는 소년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국제콩쿠르에서 우승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의 연주 영상을 보게 되었죠. 그리고 그가 연주하는 쇼팽에튀드 작품번호 25 전곡. 특히 그중 5번을 듣고 바로 느낌이 왔습니다. 엄청난 피아니스트가 나타났다는 걸요.
그리고 곧바로 일면식도 없는 상황에서 연락을 취했고, 제가 총감독으로 있는 ‘최인아 책방콘서트’에 섭외를 하였습니다. 그게 2020년 10월이었죠. 그리고 불과 2년이 채 지나지 않아 임윤찬이라는 이름은 전 세계인에게 각인되게 되었습니다.
과연 무엇이 그의 연주를 특별하게 할까요? 이번 반 클라이번 국제피아노콩쿠르에서 가장 놀랐고 개인적으로 감동적이었던 무대는 리스트의 ‘초절기교 에튀드 전곡’ 무대였습니다. 결국 제가 윤찬 군의 무대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공교롭게도 쇼팽과 리스트의 에튀드였습니다. 에튀드란 즉 연습곡이죠. 피아노의 기교적인 연습을 위해 만들어진 곡이지만 쇼팽과 리스트는 단순히 에튀드가 연습곡을 벗어나 하나의 음악적인 장르로 격상시킨 인물들입니다. 물론 그 안에는 기교적인 연습과 발전을 위한 교육 목적이 당연히 있지요. 에튀드, 즉 연습곡을 가장 연습곡같이 치지 않은 그의 연주에 우리는 충격과 감동을 받았습니다.
수많은 경우 에튀드를 연주할 때 어려운 패시지, 가장 연습을 많이 하고 힘든 부분이 나오면 그 부분을 클린하는 것이 먼저 드는 생각입니다. 그렇게 되면 음악적인 부분보다는 기교적인 문제를 클린하는 것에 중점이 되어버리죠.
하지만 임윤찬의 연주는 애초에 그런 느낌이 없습니다. 즉 기교적인 부분에서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엄청난 자신감이지요. 마치 김연아 선수가 점프를 뛰러 들어갈 때 다른선수와 비교해 주저함 없이 자신감 있게 뛰는 모습과 비슷합니다. 결국 기교적 연습을 위해 만들어진 곡을 가장 기교적이지 않게 연주함으로써 그는 수백 년간 내려온 수천 번의 연주를 뛰어넘는 또 하나의 연주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라흐마니노프의 협주곡을 연주하면서 우승을 확정지었지요. 쇼팽과 리스트, 라흐마니노프… 이 세 인물은 역사상 가장 피아노를 잘 쳤던 세기를 대표하는 피아니스트입니다. 그가 수많은 다른 작곡가가 아닌 피아니스트가 쓴 곡으로 본인이 가장 빛난 점 역시 주목할 만합니다. 2020년 윤찬 군은 저와 하기로 한 연주가 먼저 약속되었다는 단 한가지 이유로 그해 여름 큰 무대에서의 연주를 하지 않겠다는 뜻을 전해온 기억이 있습니다.
그 말에 오히려 저는 더 감동받았고 당연히 지금은 큰 무대에 서는 것이 맞으니 그쪽에 집중하라고 이야기해 주었지요. 그리고 우리는 다시 연주날을 잡아 여름 큰 연주와 가을 저희 책방콘서트 까지 성황리에 마무리했습니다. 사람과 약속을 귀히 여길 줄 아는 예전의 그 마음을 잊지 않고 간다면 그는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음악가가 되리라 믿습니다. 다행히 이미 주위에 훌륭한 스승님과 좋은 분들이 계시지요. 앞으로 그가 들려줄 음악이 더욱 기대되며, 진심으로 그의 행보를 응원합니다.‘

문익점은 원나라 사진으로 갔다가 붓뚜껑에 목화씨를 숨겨왔다. 목화씨를 한 개만 가져올 리 없다. 수십개는 숨겨왔을 것이다. 그중에서 딱 한그루가 살아 그 솜으로 무명직물을 만들어 삼베옷의 역사를 갈아치웠다. 우리에게 피아노음악은 서양음악이지만 1965년 피아니스트 한동일이 리벤트리트콩쿠르에서 우승함으로써 이 땅에 콩쿠르의 씨앗, 파아노음악의 씨앗을 심었다.
이후 1974년 정명훈이 차이코프스키국제콩쿠르에서 공동 2위를, 1980년 서혜경이 부조니콩쿠르에서 공동2위를, 2005년 임동민과 임동혁이 쇼팽국제콩쿨에서 공동3위를 각각 차지하면서 한국의 피아노음악을 세계에 알렸다. 이후 2006년 김선욱이 리즈콩쿠르 우승, 2011년 손열음이 차이코프스키국제콩쿠르 2위, 2015년 조성진이 쇼팽국제콩쿠르 우승, 문지영이 부조니콩쿠르 우승, 2017년 선우예권이 반 클라이번 국제콩쿠르 우승, 2021년 박재홍이 부조니콩쿠르 우승 등의 길을 걷다 마침내 최연소로 임윤찬의 쾌거로 만개한 것이다.
피아니스트 조은아가 한국일보 칼럼에서 언급한 것처럼 임윤찬 군에게 바라는게 있다. 새로운 입상자가 등장하면 대중의 시선에서 점점 사라지는 피아니스트가 아니라 언제가 우리 곁에서 행복을 주는 영원한 피아니스트가 되길 기대한다.

발행인 김종섭

음악평론가 성용원 작곡가의 평론

(임윤찬의 반 클라이번 국제피아노콩쿠르의 유튜브 영상을 보면서 준결승과 결승의 감상평)

임윤찬은 이번 콩쿠르에서 1차 라운드에서는 모차르트 소나타 K.311과 이번 콩쿠르를 위해 위촉된 스티븐 허프의 ’팡파레 토카타‘를 연주했고, 2차 라운드에서는 바흐, 스크리아빈, 쇼팽으로 리사이틀을 구성했다. 끝으로 이번 윤찬 군이 반 클라이번 국제피아노콩쿠르에서 연주하는 영상을 음악평론가 성용원 작곡가는 윤찬 군의 준결승과 결승 연주에 대해 객관적인 평을 보내주었다.

1. 준결승 세미 피날레(Semi finale):

리스트 12개의 초절기교연습곡집(LISZT 12 Transcendental Etudes)
1번 전주곡: 장대하면서 대양과 같은 아르페지오가 한 치의 흔들림도 없다.
2번: 명확한 박자감, 그리고 양손의 박진감 넘치는 교차
3번 풍경: 거인들 사이에 끼인 쉼터… 전원적인 수채화의 풍경이 펼쳐지며 하지(夏至) 오후에 나른함을 더해준다.
4번 마제파: 실황인데 이렇게 안 틀리고 치는 피아니스트가 전 세계에 또 존재할까? 미친 듯한 속주, 악마에게 팔아넘긴 완벽에 가까운 테크닉과 지치지 않는 젊음의 스태미나, 체력 안배와 완급 조절! 곡 전체가, 그리고 콩쿠르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나도 모르게 마제파를 마치니 벌떡 일어나 브라보를 외쳤다.
5번 도깨비불: 인간이 칠 수 있는 가장 어려운 곡을 이렇게 가볍고 산뜻하게 가지고 놀 수 있다니… 경이롭다.
6번 환영: 쇼팽의 겨울바람 리스트 버전이다.
7번 영웅: 테크닉은 기본이고 연주에 필수적인 구성과 형식에 대한 기본 이해가 밑받침되어 있다는 걸 증명하는 탄탄한 서사
8번 사냥: 동양인이라고 믿을 수 없다. 마치 한국 출신의 농구선수가 NBA를 제패한 거 같다. 이제 체격적으로도 전혀 꿀리지 않는다.
9번 회상: 리스트의 순례의 해 1권의 6번 ‘오베르망의 골짜기’도 나중에 꼭 들어보고 싶다.
10번: 19세기 유럽의 리스트가 21세기 한국의 임윤찬에 빙의한 듯한 신들린 그 자체
11번 밤의 회상: 어떻게 바로 앞의 광기를 끊고 단 3-4초 만의 짧은 호흡으로 전혀 다른 음악적 표현과 세계를 연출할 수 있는 걸까? 오른손과 왼손의 반대 방향 도약이 오차가 없이 도달한다. 반음계 화음도 정확하다. 나이를 망각시키는 중간부의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악풍과 그것을 이은 격정의 토로.
12번 눈보라: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트레몰로와 거기에 용해되어 있는 낭만파 음악의 깊은 미장센

콩쿠르에서 12개의 초절기교 연습곡을 쳤다는 게 믿어지지 않고 실황이라는 게 더욱더 믿을 수 없다. 임윤찬이 치는 초절기교연습곡 보고 ‘나도 한번 쳐보자’라는 섣부른 치기로 곡에 접근하면 곡소리 난다. 이젠 리스트 초절기교 연습곡은 보리스 베레조프스키가 아닌 임.윤.찬이다.

2. 결승 세미 피날레(Finale) :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RACHMANINOV Piano Concerto No. 3 in D Minor, op. 30
1악장의 제시부 2주제의 서정적인 도입과 선율미는 일품이며 카덴차에서는 맹수 같은 강렬한 타건으로 압도하면서 1악장 중간부의 절정으로 치닫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16분경의 재현부의 1주제에서는 담백하기 이를 데 없는 무위의 세계를 펼쳐 보인다. 라흐마니노프 예술의 총체인 황홀한 2악장과 빠르게 몰아가지만 절대 삐거덕거리지 않았던 광폭 질주의 3악장까지 18살의 예술가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의 담대함이다.
섣부른 자기 과잉과 자기애 대신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온전히 오케스트라와 밸런스를 맞추는 음악의 정석을 보여준다. ‘내가 독주자니 나한테 맞춰라’ 하는 듯한 오만도 없고 그렇다고 나이도 어리고 콩쿠르 참가자라는 겸손한 자세로서 무조건 지휘자와 오케스트라에만 맞춰 나가는 게 아닌 진정한 협주곡이란 그리고 음악 만듦이란 이런 거라는 걸 보여준다.
이 한 편의 협주곡만으로 그보다 훨씬 연륜이 앞서고 더 배운 그리고 치지도 못하면서 겉멋에만 찌든 이기주의자들 앞에 깊은 가르침을 선사한다. 뜨려고 여러 가지 현대적이고 자의적인 해석과 별의별 시도를 하는 연주자들의 입을 대번에 막아버리는 연주의 정석: 이렇게 연주하면 누가 클래식이 과거이며 사장된 예술이며 생명력을 잃었다고 하겠는가. 결국 임윤찬 같이 못 하니 다른 편법을 쓰는 거라는 거만 드러난 셈. 앞의 초절기교 연습곡이 리스트의 빙의라면 이번에는 라흐마니노프의 완벽한 빙의이자 그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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