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용원의 이 한 장의 음반 – 비킹구르 올라프손,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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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내한하는 음악가의 명반

깨끗하다. 맑다. 명료하다.

10월 6일 유니버설뮤직 산하 도이치 그라모폰(DG)을 통해 발매된 아이슬란드 출신 피아니스트 비킹구르 올라프손의 스튜디오 앨범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2018년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이후 그가 두 번째로 발매한 바흐 작품이다. 건반 음악 중에서도 손꼽히는 비르투오소적인 음악으로, 하나의 거대한 참나무 그림처럼 웅장하지만 그 속에 생동감이 가득한 골드베르크 변주곡 녹음을 25년간 꿈꿔왔다고 밝힌 올라프손은 각 변주가 펼쳐질 때마다 각각의 드라마와 감정에 사로잡히며 작품 속 놀라운 작은 소우주에 빠져들어 이를 발견하는 즐거움이 충만해진다고 말했다.

유럽 대부분의 나라에 비해 서양 클래식 음악의 영향을 적게 받은 나라 라고도 할 수 있는 아이슬란드에서 그 누구보다 자유롭게 음악을 접한 올라프손은 미국 줄리아드 음악원에서의 박사 학위 취득 후 콩쿠르 출전 대신 본인만이 가진 음악성을 마음껏 담을 수 있는 음반 작업과 공연, 그리고 방송을 통한 자유로운 음악적 소통에 집중하며 팬층을 쌓아왔다. 필립 글라스, 모차르트 등을 녹음하며 모던한 해석과 감각적인 표현을 통해 현대인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Johann Sebastian Bach’(2018) 음반에서는 작품 수록곡들의 배열을 달리해 그가 생각하는 바흐 작품의 단편들로 만들어낼 수 있는 새로운 음악적 맥락을 소개하거나, 가장 최근 발매된 ‘From Afar’(2022) 음반에서는 전체 수록곡을 화려하고 명료한 소리의 그랜드 피아노와 부드럽고 아련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업라이트 피아노로 녹음해 더블 앨범 구성으로 발매하는 등 획기적인 아이디어로 독창성과 기획력을 볼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연주자의 자의식이 너무 강해 개성과 해석이라는 미명 하에 기존의 문법을 깨고 바흐, 베토벤 또는 쇼팽이라기보다는 연주자의 이름을 전면에 내세우는 또 한 명이 아닐까 우려하면서 첫 번째 트랙인 아리아를 틀었다.


바흐가 악보에 이 곡을 어떻게 연주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적어 놓지 않았으니 수많은 해석과 접근이 용이할 테고 반대로 하면 그만큼 마치 망망대해에 컴퍼스도 없이 뗏목 하나에 표류하는 거와 같은 막막함이 몰려 올테다.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전곡 연주와 녹음은 피아니스트들에게 언제나 하나의 이벤트요 훈장과도 같다.  가장 최근에 이 곡을 녹음한 연주자의 음반을 찾아보니 코로나가 한창 기세를 부린 2020년 바흐의 유골이 묻힌 라이프치히의 성 토마스 교회에서 녹음된 랑랑의 것이 있었다. 그도 이 곡을 익히기 위해 독일의 하프시코드 연주자인 안드레아스 슈타이어를 통해 바로크 스타일을 배우면서 20년을 인내했으며 기존의 자신의 모습과 이미지에서 탈피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엔터테이너가 아닌 한 명의 연주자로 인정받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었다. 랑랑보다 5년의 세월이 더 걸린 올라프손의 골드베르크에서는 여러 음의 다양한 색깔들이 그의 손끝에서 조화롭게 섞여 선명히 드러났다. 인위적이지 않고 억지로 가공하지 않으면서 섬세하다. 그리고 절제되어 있다. 건반에 최면이 걸린 듯한 존재였고, 시공간을 초월하여 시대를 초월한 분위기의 사진들로 골드베르크 변주곡에 내재된 빛과 그림자의 인상을 마치 바흐의 영혼과 대화를 나누면서 각 변형을 극적인 틀 안에 배치하는 듯하다.


12월 15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비킹구르 올라프손 피아노 리사이틀에서는 오늘 소개한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연주한다. 5년 만에 다시 한국에 와서 4차례의 국내 공연을 통해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들려준다. 무엇보다 이 음반에서 가장 청명했던 13번 변주곡과 2부에서의 극적인 감정 전환이 실황에선 어떻게 구현될지 손꼽아 기다리게 만든다.

評 성용원(작곡가,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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