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 헤르만 헤세 소설 ‘데미안’, 3. 바흐 ‘죽음의 칸타타’(Actus Tragic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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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날에도 이 음악 (마태 수난곡) 속과 저 <죽음의 칸타타 (Actus Tragicus)>를 모든 시와 모든 예술적 표현의 정수라 생각한다.
– 헤르만 헤세 <데미안> 中

소설 ‘수레바퀴 아래서 (Unterm Rad)’, ‘유리알 유희 (Das Glasperlenspiel)’, ‘향수 (Peter Camenzind)’ 등을 쓰고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독일의 작가 겸 시인 ‘헤르만 헤세’(Hermann Karl Hesse, 1877-1962)의 대표작인 소설 ‘데미안’(Demian-Die Geschichte von Emil Sinclairs Jugend)에 등장한 클래식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은 바로 소설 ‘데미안’ 안에서 ‘죽음의 칸타타’라고 묘사되는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의 칸타타 106번 ‘하나님의 시간이 최상의 시간이다’(Gottes Zeit ist die allerbeste Zeit, BWV.106)입니다.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
헤르만 헤세 (1905 by Ernst Wuertenberger)

1708년에 작곡된 것으로 알려진 바흐의 칸타타 106번의 원본은 현재 아쉽게도 분실이 되었고, 초연이 올려지고 60년이 지난 1768년, 독일의 교회음악가였던 ‘크리스티안 펜첼’(Chrisitan Friedrich Penzel, 1737-1801)의 필사본이 그 명맥을 이어줬습니다. 펜첼은 이 사본에 ‘비극’이란 의미의 라틴어 ‘악투스 트라지쿠스’(Actus Tragicus)란 부제를 붙였으며, 지금까지도 그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리고 있습니다.
바흐가 작곡한 최초의 칸타타 중 하나일 것으로 추측되는 이 작품은 그가 22세의 나이였을 때 작곡한 것으로, 죽음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독일 ‘뮐하우젠’(Muehlhausen)시의 교회에서 오르간 연주자로 일하고 있던 바흐가 당시 전 시장이었던 ‘아돌프 룸프’(Adolph Rumpf)의 장례식을 위해 작곡되었다는 설과 바흐의 외삼촌이었던 ‘토비아스 램머히르트’(Tobias Laemmerhirt)의 장례식을 위해 작곡되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누구를 위하여 작곡되었는지 확실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추모를 위하여 작곡된 것은 확실한 작품입니다.
칸타타 106번은 죽음을 피할 수는 없지만 죽음 이후 구원을 갈구하고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를 찬양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느린 도입부로 시작되는 서곡인 ‘소나티나’(Sonatina)로 시작됩니다. 이어지는 두 번째 파트는 4개의 곡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첫 번째는 ‘하나님의 시간이 최상의 시간이다’란 가사로 시작되는 합창이며, 이 가사 때문에 칸타타 106번을 ‘하나님의 시간이 최상의 시간이다’(Gottes Zeit ist die allerbeste Zeit)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시간이 최상의 시간이다 (Gottes Zeit ist die allerbeste Zeit)
Gottes Zeit ist die allerbeste Zeit.
In ihm leben, weben und sind wir, solange er will.
In ihm sterben wir zur rechten Zeit, wenn er will.

하나님의 시간이 최상의 시간이다.
그의 안에서 그의 뜻에 의하여 우리의 삶과 죽음, 그리고 존재가 있나니
그의 안에서 그가 뜻하는 때에, 우리는 그 시간에 죽게 될 것이니.

두 번째 파트의 두 번째 곡은 테너의 ‘아리오소’(Arioso)로 첫 번째 합창에서 바로 이어지는 ‘오, 주여, 우리가 결국 죽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게 만들어 우리를 지혜롭게 만드소서’(Ach, Herr, lehre uns bedenken, dass wir sterben muessen, auf dass wir klug warden)입니다. 이 느린 아리아 풍의 노래는 성경 중 시편 98장의 12절을 인용한 가사로 이뤄져 있으며 제목이 곧 가사인 작품입니다.
세 번째 곡은 이사야 38장의 1절을 가사로 하고 있으며 베이스는 죽음 이후를 준비하라는 내용을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너의 집을 준비하라, 너는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고 더 이상 숨을 쉬지 못하리니’(Bestelle dein Haus, denn du wirst sterben und nicht lebendig beiben)
이어지는 합창과 소프라노 솔로로 구성된 네 번째 곡으로 1부는 화려하게 끝을 맺게 됩니다. ‘그것은 오래된 규율’(Es ist der alte Bund)란 테너의 노래로 시작하는 이 곡은 죽음이라는 벗어날 수 없는 족쇄에 묶인 약한 인간이 구원을 바라는 마음을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소프라노가 그것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그것은 오래된 규율 (Es ist der alte Bund)
Es ist der alte Bund: Mensch, du must sterben!
Ja, Komm, Her Jesu, komm!
이것은 오래된 규율이니: 너는 반드시 죽음을 맞이하리라!
그러합니다. 오소서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2부의 시작을 알리는 세 번째 파트는 알토의 아리아 ‘내 영혼을 당신의 손에 맡기나이다’(In deine Haende befehl ich meinen Geist)와 알토와 베이스의 아리오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천국에 있으리라’(Heute wirst du mit mir im Paradies sein)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시편 31장 5절을 인용한 첫 번째 아리아는 누가복음 23장 46절에 등장하는 예수가 십자가에 죽임을 당할 때 한 말로 시작합니다.

내 영혼을 당신의 손에 맡기나이다 (In deine Haende befehl ich meinen Geist)
In deine Haende befehl ich meinen Gest.
Du hast mich erloset, Herr, du getreuer Gott.
내 영혼을 당신의 손에 맡기나이다.
당신이 나를 해방시켰습니다 .주여, 나의 신실하신 하나님이여.

‘오늘 네가 나와 함께 천국에 있으리라’는 누가복음 23장 43절을 인용한 가사로 구성되어 있으며, 베이스가 근엄하게 구원을 선언하는 내용으로 매우 아름다운 코랄로 작곡되어 젊은 바흐 교회 음악에의 치밀하면서도 진지한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아름다운 작품입니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천국에 있으리라 (Heute wirst du mit mi rim Paradies sein)
Heute wirst du mit mi rim Paradies sein.
Mit Fried und Freud ich fahr dahin
In Gottes Willen,
Getrost ist mir mein Herz und Sinn,
Sanft und stille.
Wie Gott mir verheissen hat:
Der Tod ist mein Schlaf geworden.

오늘 네가 나와 함께 천국에 있으리라.
평화롭고도 즐겁게 나는 그 곳으로 떠난다.
하나님의 뜻으로,
나의 마음과 혼은 확신으로 가득하고,
평온하고 고요하다.
하나님이 내게 약속하신 것과 같이
죽음은 나의 잠이 되리라.

이 장대한 칸타타의 끝은 합창으로 마무리되는데 이는 구원을 확신하며 죽음을 극복할 수 있음을 희망적으로 화려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광과 존귀와 찬송과 영화가 (Glorie, Lob, Her und Herrlichkeit)
Glorie, Lob, Her und Herrlichkeit
Sei dir, Gott Vater und Sohn, bereit,
Dem Heil’gen Geist mit Namen!
Die Goettlich Kraft macht uns sieghaft
Durch Jesum Christum, Amen.

영광과 존귀와 찬송과 영화가
당신께, 성부 성자와
성령에 있기를!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를 승리하게 하네.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아멘.

소설 ‘데미안’ 표지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에서 주인공 ‘에밀 싱클레어’는 악의 유혹을 데미안과 피스토리우스,그리고 피스토리우스가 연주하는 바흐의 마태수난곡과 칸타타 106번 등을 통하여 이겨냈습니다. 이를 넘어 싱클레어는 마치 데미안처럼 자살을 하려던 동급생 크나우어에게 정신적인 지주의 역할을 하며 도움을 주게 됩니다. 이렇듯 죽음과 시련의 시험 속에서 희망과 극복의 의지를 안겨주는 예술적 표현의 정수 중 하나인 작품이 바로 싱클레어가 죽음의 칸타타라 역설적으로 칭하였던 ‘비극의 칸타타’, 즉 ‘악투스 트라지쿠스’(Actus tragicus)가 아니었을까요?

글 박소현

유튜브 채널 주소
– 바흐 ‘죽음의 칸타타’ : https://youtu.be/2i5O923PzeQ?si=atQBOCTVO80aD7C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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